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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11월
평점 :
기분이 축 처지는 소설만 계속 읽었더니 유쾌한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뭐가 좋을지 둘러보다가 눈에 띈 이 작품은 기분전환용으로 그만이었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외계인이 지구인들에게 축구 시합을 제안한다. 모든 지구인은 단 한 번 외계인 팀과 축구 시합을 할 수 있고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겠단다. 또한 출전할 멤버의 수준에 맞는 외계인 팀이 나올 거라 형평성은 걱정하지 말란다. 그렇게 사람들은 드림팀을 만들어 외계인들과 경기를 했고 어쩌다가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벼락부자가 되고 영원한 젊음을 얻는 등 소원성취한 자들은 전 인류의 부러움을 샀고, 너도나도 시합에 나갈 준비하느라 아주 난리가 난다. 미디어는 축구 방송만을 다루었고, 시장에서는 축구 용품만을 판매했고, 대중들의 관심사도 온통 축구뿐이었다. 이렇듯 축구는 전인류 대통합을 이뤄냈지만 축구 외에는 전부 가치를 잃어버렸다.
다신 없을 인생역전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환자 및 노약자들은 시합에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까. 10년 전에 무릎 부상으로 축구선수를 은퇴한 ‘욘‘은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다. 파산하기 직전인 그는 이 기회에 동네 축구 교실을 열고 수강생을 모집한다. 그들과 함께할수록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욘의 나날들. 한편 악화돼가는 무릎을 그의 파트너 ‘리오‘가 마사지해주자 기적처럼 다리가 나았다. 그 길로 욘은 축구 교실을 접고 파트너와 함께 외계인 시합을 준비한다. 그의 기쁨이었던 수강생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고, 파트너 리오는 시합 불가 판정을 받았으며, 벤치만 지키던 욘은 팀의 패배로 모든 게 무너져버린다.
보다시피 소재와 설정만 다를 뿐 흔한 전개라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게 단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패배한 주인공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아니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스, 즉 팀워크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그렇게 선수 간의 호흡을 강조해놓고 정작 일상에서는 아무도 의존하지 않는 욘. 경기장 바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고? 과연 그럴까.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강조하지만 절대 타인과 엮이지 않으려고 한다. 웬만한 일들은 혼자 처리할 수가 있고, 힘든 일들은 비용을 내고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이 같은 일인 체제의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의 동의어가 되었고, 미덕이었던 관심은 대단한 실례처럼 돼버렸다. 허나 손익계산에 따라 돌변하는 인간관계로는 절대 시합에서 이길 수가 없는 법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이들도 말 못 할 속 사정은 다 있고, 해결 못해서 끙끙 앓는 경우도 다반사다.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하고, 공을 패스해 주어야 한다. 세상은 절대 일인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외계인과의 시합 패배는 과거의 무릎 부상보다도 더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옛적 광야 생활보다 못한 시궁창의 삶이 찾아온 것이다. 완전히 녹다운 상태였던 욘은 자신에게 남아있는 게 무엇인지 돌아본다. 그리고 자기가 버려두고 떠났던 수강생들을 찾아가 사과를 한다. 또 서로가 슬픔을 주고받으며 팀워크, 신뢰, 호흡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러면 시합은 됐다 치고 현실에서는 어떻게 패스를 주고받느냐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게임을 팀전이라고 생각 못 하고 개인전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패스하는 방법은커녕 패스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삶이 일상의 조각 모음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일상에서는 ‘스몰토크‘가 패스의 개념을 대신한다. 별거 없어 보이는 패스가 시합에서 매우 중요하듯이, 시간 낭비에 불과한 스몰토크가 인생게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팀전에 약한 사람, 즉 패스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공을 뺏긴다고 생각해서 가지고만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인생은 절대 개인전이 아니며, 혼자서는 절대 골을 넣지 못한다. 당신이 메시급 선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아직 못다 한 말들이 있지만 이쯤 해두자. 아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