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스위트룸

Where The Truth Lies
감독 아톰 에고이안
출연 케빈 베이컨, 콜린 퍼스, 알리슨 로먼
장르 스릴러
시간 107분 개봉 4월 6일
세기의 스타 콤비 래니(케빈 베이컨)와 빈스(콜린 퍼스)가 묵기로 한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여자의 익사체가 발견된다. 사태는 자살이라는 발표로 황급히 수습되지만, 여자의 정체와 사망원인은 끝끝내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 사건에 대해 기사를 쓰기로 한 미모의 여기자 카렌(알리슨 로먼)은 조사를 하게 될수록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고, 인터뷰를 위해 두 남자와 접촉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래니와 빈스의 회상과 현재의 기억이 계속적으로 넘나들면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위트룸’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류사회의 가장 추악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다. 연예계의 이중생활을 폭로하는 두 남자배우의 연기가 특히 만족스럽다. 언제나 영국적 신사로 등장했던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콜린 퍼스, ‘할로우 맨’의 케빈 베이컨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그러나 스릴러 치곤 서스펜스가 부족해 극의 흐름이 다소 느리게 느껴지며, 결말이 모호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B 위험한 욕망, 비극적인 결말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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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빨간 모자의 진실

Hoodwinked
감독 코리 에드워즈 목소리 출연 강혜정, 김수미, 임하룡, 노홍철
장르 애니메이션 시간 80분 개봉 4월 6일
언제나 예쁘고 단아한 동화 속 소녀들의 캐릭터에 식상해졌다면 빨간 모자를 찾을 때가 됐다. 그림형제의 빨간 모자는 여전히 순수소녀일지모르나 에드워즈형제가 발견한 그의 진실은 다소 엽기스럽다. 불량끼 다분한 빨간 모자와 익스트림 스포츠 매니아 할머니,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기자늑대, 카페인 중독에 시달리는 다람찍사까지. 독특한 캐릭터가 특별한 목소리를 만났다. 특히 김수미 할머니의 만담퍼레이드나 노홍철 다람쥐의 수다스러움은 톡톡히 재미를 더한다. 시사회 및 일반상영에서 더빙판만을 상영한다는 것 또한 그들의 목소리가 기대할만한 수준이란 것을 증명한다.
요리책의 범인을 찾아서 빨간 모자, 할머니, 나무꾼, 늑대의 진술을 따라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행적 구조 속에서 추리물 특유의 긴장감도 제법 잘 살렸다. ‘슈렉’이 그랬듯 다양한 영화 패러디는 이제 애니메이션이 놓쳐서는 안 될 재밋거리로 자리 잡았으며 무난하게 한 템포 웃고 즐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B 재밌는 더빙을 못 들었다면 잔혹동화였을 거예요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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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오늘의 사건사고

A Day On The Planet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다나카 레나
장르 드라마
시간 110분
개봉 4월 6일
마사미치의 집들이를 위해 모인 여덟 명의 친구들은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나카자와(츠마부키 사토시)는 자신감이 부족해 어떤 영화도 찍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런 그의 여자 친구 마키는 평생지기 케이토(이토 아유미)만큼 남자친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한편으로 불안하다. 케이토는 잘 생긴 꽃미남 가와치를 좋아한다. 가와치는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화가 난 여자 친구 생각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마사미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이 소홀해질까봐 겁이 난다.
이들이 이처럼 기묘한 밤을 보내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경찰을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벽에 낀 남자, 해변가에 느닷없이 나타난 고래에 대한 뉴스는 마사미치 집 화면을 타고 흐른다. 뉴스에 편집돼 보도되는 장면처럼, 관객에게 보이는 등장인물의 시간, 공간은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 하루 중 지극히 부분적인 일상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봤을 때 전혀 유기적이지 않은 사건들은 우연으로 인해 서서히 연결돼간다. 설명할 수 없는 우연과 인위적인 필연이 교차하는 순간,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생의 순리가 된다. 이러한 것들이 뒤섞여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오묘하게 구성돼 있는지 ‘오늘의 사건사고’는 가장 소박한 방법으로 일깨워준다. 세상이 뒤집힐 만큼 큰 사건이 없어도,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 하루를 보낼 거라는 걸 알면서도 타인과의 교류와 교감을 통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 인간으로서의 묘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진리를 역설한다. 등장하는 많은 청춘들의 풋풋함만큼 산뜻하게 진행되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나라와 정서 차이를 넘어선 같은 청춘으로서의 동질감도 느낄 수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양산해낸 ‘조제 커플’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서로 다른 연인과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A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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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 크래쉬

Crash
감독 폴 해기스
출연 돈 치들, 맷 딜런,
탠디 뉴튼, 산드라 블럭
장르 드라마
시간 113분
개봉 4월 6일

Synopsis

두 명의 흑인 피터(라렌즈 테이트)와 앤소니(루다크리스)는 백인 검찰 리차드(브렌든 프레이저)의 차를 강탈하고 그의 부인 진(산드라 블록)을 총으로 위협한다.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경찰 라이언(맷딜런)은 요도염에 걸린 아버지를 구해주지 않는 의료보험공단의 흑인 담당자에게 욕을 퍼붓고 순찰을 나와 흑인 PD 카메론(테렌스 하워드)의 벤츠를 세운다. 그의 지나친 단속에 화가 난 카메론의 아내 크리스틴(탠디 뉴튼)이 욕을 하자, 라이언은 그녀를 위협하며 성추행한다.

Viewpoint

‘크래쉬’는 올해 3개의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최고의 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상을 비롯 각본상과 편집상을 수상했다. ‘오스카가 동성애대신 인종차별을 선택했다’는 분석처럼 ‘크래쉬’는 인종문제를 다룬 영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푸대접을 받은 흑인 청년들이 백인 검사 부부를 공격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적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검사의 아내는 멕시칸 열쇠 수리공을 모욕한다. 의료보험공단 흑인 담당자에게 요구를 거절당한 백인 경찰이 흑인 운전자를 공격하고, 흑인 운전자는 패배감에 치를 떤다. 백인 총기상에게 무시당한 이란인 상인의 적대감은 멕시칸 열쇠 수리공에게 옮겨가고 그의 어린 딸에게 총을 겨누기에 이른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가던 히스패닉계 여형사는 중국인 운전자와 말싸움이 벌어진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총 여덟 쌍, 각기 다른 인종이다. 이들은 영화제목 ‘크래쉬’의 뜻처럼 인종을 경계삼아 서로 공격하고, 부딪히며, 모욕한다.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갈등이 쌓이고 분노가 증폭되면서 어떤 일,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얼마큼 잔인한 복수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서서히 극에 달한다. 동시에, 전개되는 사건의 리얼리티는 인종간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적대감을 그대로 노출시켜 보는 이의 자기지각 혹은 죄책감을 일깨우고 ‘어찌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잘못된 것 같은’ 암담함을 안긴다.

굉장히 스트레스풀한 영화의 전반부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 결말에 대한 의심과 기대가 증폭된다. 그러나 힌트는 영화 시작에서 이미 던져졌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가던 흑인 수사관 그레이엄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L.A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아. 모두 금속과 유리 안에 갇혀있지. 서로에 대한 느낌이 너무 그리워서, 서로를 느끼기 위해서 공격하고 부딪히고 충돌하는 거야.” 아슬아슬한 마지막 순간에 서서 그들은 아주 조금씩 인간성과 인간애를 회복한다. 영화가 가장 빛을 발하게 되는 순간은 선과 악으로 대표되던 캐릭터들의 위치가 뒤바뀌는 지점이다. 영화는 다른 인종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상황과 사회에서 자연스레 이식받은 편견들을 경계하고, 편견 아래 자리잡은 개인의 상처를 짧지만 깊이, 압축적으로 통찰해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리고는 상처로 인해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편견이 빚어낼 수 있는 비극을 조용히 경고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을 맡아 깊고 뜨거운 인간애, 연대애을 선사했던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을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와 똑같은, 그래서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의 영화입니다. 인종이나 계급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상처에 대한 얘기입니다”라고 소개한다. 마지막, 화려하면서도 외로운 L.A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이제까지 벌어졌던 모든 사건들을 관망하며 감독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한다. 상처를 부여잡고 성난 이빨을 드러내지만 저 아래 빛나는 수 많은 불빛처럼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 우리 사이의 비극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외로운 도시 L.A.
영화 속 L.A.의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부유하기만 한다. 이 도시는 단절과 소외, 외로움의 높은 밀도 하나로 의미심장해지기까지 한다. 마이클 만 감독의 ‘콜래트럴 (Collateral, 사진)’은 ‘크래쉬’와는 조금 다르게 소통의 불가능함을 얘기한다. L.A.를 닮은 킬러 톰 크루즈는 외로운 한 마리의 늑대처럼 이 도시를 떠돌다 지독하게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L.A.경찰이 등장하는 영화가 유독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작 ‘호미사이드(Hollywood Homicide)’부터 멜깁슨의 과거를 확인 할 수 있는 ‘리썰 웨폰(Lethal Weapon)’까지.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쉽게 일어나는 범죄를 매너리즘에 빠져 해결하곤 한다. 50년대 L.A.를 묘사해 호평을 받은 ‘L.A.컨피덴셜(L.A. Confidential)’은 이 잔인하게 외로운 도시를 필름 느와르 장르에 녹여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홈피 www.crash2006.co.kr

A+ 나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한 치열한 시작 (진아)
A 러브 액츄얼리의 '체험, 삶의 현장' 버전 (영엽)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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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패셜]필드에게서 당신에게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축구가 있다
by ‘골! Goal!’의 뮤네즈
내 이름은 산티아고 뮤네즈,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축구선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데이비드 베컴을 꿈꾸는가, 아니면 그에 열광하는 사람 중 한 명인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신화를 꿈꿔왔고, 지금 그 신화를 이룩했으므로.
아버지는 늘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큰 집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잔디를 깎아주고 세차하는 사람들. 나는 두 번째 부류에 속했다. 하지만 축구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열 살이 되던 해, 축구공과 낡은 월드컵 사진만을 지닌 채 미국으로 향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내 경기 모습을 눈여겨봤다며 자기와 함께 영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2부에 입단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 것. 모든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영국에 도착한 나에게 뉴캐슬의 홈구장은 신기루 그 자체였다.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슈팅과 기술을 가진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뽐내는 곳, 그 곳이 바로 뉴캐슬이었다. 축구가 전부인 나에게 축구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묘한 흥분을 일으켰다.
하지만 달콤한 꿈의 왕국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가차 없이 낙오자를 제명시키곤 했다.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동료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공은 나보다 빨랐고, 선배는 나의 재능을 시기했으며, 감독은 내가 호흡기 없이 선수 생활이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프리미어 리그는 점점 내게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 갔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축구공뿐이었다. 과연 축구란 나에게 무엇인가? 본질적인 질문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화려한 파티, 으리으리한 아파트, 열광적인 관중의 응원. 이 모든 것을 떠나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축구에는 있다. 공과 내가 물아일체되는 순간의 참을 수 없는 희열, 그것이 축구의 매력이며, 내가 평생 축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두 나의 이름을 외칠 때, 나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 이전의 이전에도 나는 언제나 축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나에게는 항상 축구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축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축구여, 그들을 현혹시켜라
by ‘그들만의 월드컵 Mean Machine'의 교소도장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사실 좀 실망했다. 명색이 영국 대표 팀의 주장이자 제일 잘 나가던 축구선수 대니였는데, 그 꾀죄죄한 몰골이란! 승부조작 혐의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것도 모자라 음주운전에 경찰관 구타까지 했으니 교도소에 보내지는 것이 당연했다. 마침 우리 교도소에 오게 됐으니 나름대로 친절히 맞아줬다. 그 친절함의 표시로 교도관 축구팀의 감독이 되는 기회를 주려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수를 쓰는 것 아닌가. 간수 팀과 죄수 팀으로 나눠서 축구경기를 해보자나. 분명히 간수들을 이기고 뭔가 요구할 셈인 듯 했지만 꽤 정치적인 인물이라 자부하는 나는 그것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몰두할 것을 던져주면 골칫덩이들은 얌전해지기 마련이니까.
내 생각은 섣부른 짐작이 아니다. 왜냐면 히틀러의 공보장관이던 괴벨스의 선동방법도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전의 천재이자 무서운 정치가였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시켜 최초의 올림픽 TV중계를 이뤄내기도 했다. 덕분에 나치가 의도한대로 국민들은 ‘게르만인의 우수성’에 도취되었고 올림픽이란 ‘화합의 장’을 통해 그들의 ‘민족팽창 욕구’는 세계에 스며들었다. 괴벨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적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시절의 3S정책 중 하나가 바로 Sports 아닌가. 민심을 수습하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야구 등의 각종 프로리그를 창단시키고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고 하니 그도 포퓰리즘에 능했던 인물이다.
나도 축구를 통해 교도소가 내 손아귀 안에서 움직이길 바랐다. 하지만 대니 녀석이 문제였다. 살인 혐의를 씌우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치사한 방법은 다 써봤지만 결국 그를 중심으로 죄수들을 뭉치게 만들었으니, 나의 포퓰리즘은 실패한 셈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드컵을 기다리며 들떠있다고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마음 곱게 써서 충고 한마디 하자면 당신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월드컵 붐도 일종의 정치적 음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중문화계에서는 벌써 ‘코리아 프라이드’를 앞세워 ‘2002년의 신화 재연’을 들먹이며 민족주의 덕을 보려고 한다더라. 내 생각에 당신들은 이미 달콤한 사탕에 중독되어 이성적 판단력을 잃었다. 너도 나도 휩쓸려서 월드컵의 환락에 취한 동안 아마도 등 뒤에서는 제 2의 괴벨스가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항상 이기란 법은 없다
by ‘베른의 기적 Das Wunder Von Bern'의 마테즈
내 이름은 마테스, 독일의 탄광촌에 살고 있는 열세 살 소년이다. 2차 대전에 패하자, 아버지는 러시아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한 나에게 우리 마을에 사는 축구 선수 란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도 나를 동생처럼 귀여워해 주었다. 우리는 골목에서 축구를 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왔다. 눈은 퀭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아버지는 더 이상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우리 가족은 오히려 아버지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 없이 한 골도 못 넣는다던 란마저 대표 팀에 뽑혀 스위스 베른으로 떠나게 됐다. 기쁜 일이지만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 허전했다.
그 뒤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나는 란이 보고 싶었고, 아버지는 날이 잔뜩 선 말로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 독일 팀은 터키에게 8대 3이라는 참패를 당하며 고전 중이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단 1퍼센트의 가능성으로도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이기에, 우리 모두는 기적을 바랐다.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하나, 축구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원, 술집, 쇼윈도 등 라디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람들은 몰려들어 독일 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그들에게 거는 1퍼센트의 희망은 자기 자신에게 거는 희망의 크기와 같았다. 독일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하나였던 것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독일 팀은 유고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아버지는 닫힌 마음을 차츰 우리에게 열어갔다. 그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헝가리와의 결승전을 앞둔 하루 전 날 밤, 나를 깨운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차를 타고 결승전이 열리는 베른으로 향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전반전이 끝나고, 예상외의 선전을 한 독일 팀은 2대 2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자, 이제 란 앞에 내가 나타날 차례였다. 그라운드에 넘어진 채로 나를 발견한 란은 내가 던진 공을 받더니 멋진 골로 연결시켰다. 3대 2, 우리 모두는 열광했다. 다 같이 웃고 울었으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독일 축구팀의 승리가 아니라, 독일인 전체의 승리였다. 후에 란이 말해준 대로 ‘공은 둥글고 게임은 90분’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단 1초의 차이로도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축구였다. 우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승리도 결국 사랑의 힘이었다
by ‘소림축구 小林足球’의 무이
그를 만난 건 ‘맛있는 만두’에서 일하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만두 빚는 걸 보더니 “태극권을 이용해 만두를 빚는 모습이 예쁘다”고 말해줬다. 나는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비웃지 말라고 얘기하면서 정확히 ‘팔강식이유권법’이라고 이름을 알려줬다. 한개에 50센트씩 하는 만두 두개를 먹어치우고는 돈이 없다기에 주인 아주머니께 혼나니 어서 달라고 했다. 그는 다 헤진 운동화를 내던지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처음 만났다. 나는 그날 밤 그의 운동화를 꿰맸다. 많이 헤진 부분에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을 덧댔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고 그가 다시 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운동화를 항상 조리대 아래 간직했다.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소림사 형제들과 함께 축구대회에 나가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머뭇거리다 밤새워 손질한 그의 운동화를 내밀었다. 그날 밤 그는 백화점을 구경시켜주면서 우승을 하면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운동화나 한 켤레 사달라고 했다. 그는 다시 떠났지만 나는 행복했다.
텔레비전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가 나왔다. 나는 그를 기다리면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옷도 사 입었다. 오랜만에 만두가게를 찾은 그를 보니 가슴이 설레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옛날 운동화는 이제 필요 없다고 했다. 새로 사면 된다고.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엔 “우린 친구”라고 대답했다. 바보같이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냥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 일찍 축구장을 찾았다. 축구협회장 훙의 악마팀을 만나 고전하고 있는 그의 팀을 멀리서 지켜보려니 가슴이 아팠다. 그를 지워내려 만두가게까지 그만뒀지만 그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결승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또 밤을 새워 꿰맨 그의 운동화를 들고 전반전을 지켜봤다. 골키퍼가 하나 둘, 악마팀 스트라이커에게 부상을 당했고, 대기선수가 없으면 실격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용기가 솟았다. 나는 대기실에서 23번 선수복을 챙겨 입고 필드로 나갔다. 외롭던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팔강식이유권법’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당신을 돕고 싶어요.” 골대에 부딪히고 상대팀 골키퍼 자리로 가는 등 잠시 허둥댔지만 나는 해냈다. 악마팀 스트라이커가 찬 검은 볼을 내 ‘팔강식이유권법’으로 막아냈고, 그와 힘을 합쳐 승리의 골을 터뜨렸다. 나는 필드에서의 결정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내 자신을 믿었다. 오늘 백화점 큰 간판에는 그와 함께 표지를 장식한 타임지 광고가 부착됐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스트라이커와 골키퍼 결혼에 골인.’
대학내일 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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