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패셜]필드에게서 당신에게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축구가 있다
by ‘골! Goal!’의 뮤네즈
내 이름은 산티아고 뮤네즈,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축구선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데이비드 베컴을 꿈꾸는가, 아니면 그에 열광하는 사람 중 한 명인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신화를 꿈꿔왔고, 지금 그 신화를 이룩했으므로.
아버지는 늘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큰 집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잔디를 깎아주고 세차하는 사람들. 나는 두 번째 부류에 속했다. 하지만 축구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열 살이 되던 해, 축구공과 낡은 월드컵 사진만을 지닌 채 미국으로 향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내 경기 모습을 눈여겨봤다며 자기와 함께 영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2부에 입단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 것. 모든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영국에 도착한 나에게 뉴캐슬의 홈구장은 신기루 그 자체였다. 나와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슈팅과 기술을 가진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뽐내는 곳, 그 곳이 바로 뉴캐슬이었다. 축구가 전부인 나에게 축구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묘한 흥분을 일으켰다.
하지만 달콤한 꿈의 왕국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가차 없이 낙오자를 제명시키곤 했다.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동료들이 부상 등의 이유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공은 나보다 빨랐고, 선배는 나의 재능을 시기했으며, 감독은 내가 호흡기 없이 선수 생활이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프리미어 리그는 점점 내게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 갔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축구공뿐이었다. 과연 축구란 나에게 무엇인가? 본질적인 질문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화려한 파티, 으리으리한 아파트, 열광적인 관중의 응원. 이 모든 것을 떠나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축구에는 있다. 공과 내가 물아일체되는 순간의 참을 수 없는 희열, 그것이 축구의 매력이며, 내가 평생 축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두 나의 이름을 외칠 때, 나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 이전의 이전에도 나는 언제나 축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나에게는 항상 축구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축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축구여, 그들을 현혹시켜라
by ‘그들만의 월드컵 Mean Machine'의 교소도장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사실 좀 실망했다. 명색이 영국 대표 팀의 주장이자 제일 잘 나가던 축구선수 대니였는데, 그 꾀죄죄한 몰골이란! 승부조작 혐의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것도 모자라 음주운전에 경찰관 구타까지 했으니 교도소에 보내지는 것이 당연했다. 마침 우리 교도소에 오게 됐으니 나름대로 친절히 맞아줬다. 그 친절함의 표시로 교도관 축구팀의 감독이 되는 기회를 주려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수를 쓰는 것 아닌가. 간수 팀과 죄수 팀으로 나눠서 축구경기를 해보자나. 분명히 간수들을 이기고 뭔가 요구할 셈인 듯 했지만 꽤 정치적인 인물이라 자부하는 나는 그것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몰두할 것을 던져주면 골칫덩이들은 얌전해지기 마련이니까.
내 생각은 섣부른 짐작이 아니다. 왜냐면 히틀러의 공보장관이던 괴벨스의 선동방법도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전의 천재이자 무서운 정치가였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시켜 최초의 올림픽 TV중계를 이뤄내기도 했다. 덕분에 나치가 의도한대로 국민들은 ‘게르만인의 우수성’에 도취되었고 올림픽이란 ‘화합의 장’을 통해 그들의 ‘민족팽창 욕구’는 세계에 스며들었다. 괴벨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적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시절의 3S정책 중 하나가 바로 Sports 아닌가. 민심을 수습하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야구 등의 각종 프로리그를 창단시키고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고 하니 그도 포퓰리즘에 능했던 인물이다.
나도 축구를 통해 교도소가 내 손아귀 안에서 움직이길 바랐다. 하지만 대니 녀석이 문제였다. 살인 혐의를 씌우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치사한 방법은 다 써봤지만 결국 그를 중심으로 죄수들을 뭉치게 만들었으니, 나의 포퓰리즘은 실패한 셈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드컵을 기다리며 들떠있다고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마음 곱게 써서 충고 한마디 하자면 당신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월드컵 붐도 일종의 정치적 음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중문화계에서는 벌써 ‘코리아 프라이드’를 앞세워 ‘2002년의 신화 재연’을 들먹이며 민족주의 덕을 보려고 한다더라. 내 생각에 당신들은 이미 달콤한 사탕에 중독되어 이성적 판단력을 잃었다. 너도 나도 휩쓸려서 월드컵의 환락에 취한 동안 아마도 등 뒤에서는 제 2의 괴벨스가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항상 이기란 법은 없다
by ‘베른의 기적 Das Wunder Von Bern'의 마테즈
내 이름은 마테스, 독일의 탄광촌에 살고 있는 열세 살 소년이다. 2차 대전에 패하자, 아버지는 러시아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한 나에게 우리 마을에 사는 축구 선수 란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도 나를 동생처럼 귀여워해 주었다. 우리는 골목에서 축구를 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왔다. 눈은 퀭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아버지는 더 이상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우리 가족은 오히려 아버지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 없이 한 골도 못 넣는다던 란마저 대표 팀에 뽑혀 스위스 베른으로 떠나게 됐다. 기쁜 일이지만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 허전했다.
그 뒤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나는 란이 보고 싶었고, 아버지는 날이 잔뜩 선 말로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 독일 팀은 터키에게 8대 3이라는 참패를 당하며 고전 중이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단 1퍼센트의 가능성으로도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이기에, 우리 모두는 기적을 바랐다.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하나, 축구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원, 술집, 쇼윈도 등 라디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람들은 몰려들어 독일 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그들에게 거는 1퍼센트의 희망은 자기 자신에게 거는 희망의 크기와 같았다. 독일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하나였던 것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독일 팀은 유고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아버지는 닫힌 마음을 차츰 우리에게 열어갔다. 그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헝가리와의 결승전을 앞둔 하루 전 날 밤, 나를 깨운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차를 타고 결승전이 열리는 베른으로 향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전반전이 끝나고, 예상외의 선전을 한 독일 팀은 2대 2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자, 이제 란 앞에 내가 나타날 차례였다. 그라운드에 넘어진 채로 나를 발견한 란은 내가 던진 공을 받더니 멋진 골로 연결시켰다. 3대 2, 우리 모두는 열광했다. 다 같이 웃고 울었으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독일 축구팀의 승리가 아니라, 독일인 전체의 승리였다. 후에 란이 말해준 대로 ‘공은 둥글고 게임은 90분’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단 1초의 차이로도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축구였다. 우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승리도 결국 사랑의 힘이었다
by ‘소림축구 小林足球’의 무이
그를 만난 건 ‘맛있는 만두’에서 일하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만두 빚는 걸 보더니 “태극권을 이용해 만두를 빚는 모습이 예쁘다”고 말해줬다. 나는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비웃지 말라고 얘기하면서 정확히 ‘팔강식이유권법’이라고 이름을 알려줬다. 한개에 50센트씩 하는 만두 두개를 먹어치우고는 돈이 없다기에 주인 아주머니께 혼나니 어서 달라고 했다. 그는 다 헤진 운동화를 내던지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처음 만났다. 나는 그날 밤 그의 운동화를 꿰맸다. 많이 헤진 부분에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을 덧댔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고 그가 다시 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운동화를 항상 조리대 아래 간직했다.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소림사 형제들과 함께 축구대회에 나가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머뭇거리다 밤새워 손질한 그의 운동화를 내밀었다. 그날 밤 그는 백화점을 구경시켜주면서 우승을 하면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운동화나 한 켤레 사달라고 했다. 그는 다시 떠났지만 나는 행복했다.
텔레비전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가 나왔다. 나는 그를 기다리면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하고 옷도 사 입었다. 오랜만에 만두가게를 찾은 그를 보니 가슴이 설레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옛날 운동화는 이제 필요 없다고 했다. 새로 사면 된다고.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엔 “우린 친구”라고 대답했다. 바보같이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냥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 일찍 축구장을 찾았다. 축구협회장 훙의 악마팀을 만나 고전하고 있는 그의 팀을 멀리서 지켜보려니 가슴이 아팠다. 그를 지워내려 만두가게까지 그만뒀지만 그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결승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또 밤을 새워 꿰맨 그의 운동화를 들고 전반전을 지켜봤다. 골키퍼가 하나 둘, 악마팀 스트라이커에게 부상을 당했고, 대기선수가 없으면 실격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용기가 솟았다. 나는 대기실에서 23번 선수복을 챙겨 입고 필드로 나갔다. 외롭던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팔강식이유권법’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당신을 돕고 싶어요.” 골대에 부딪히고 상대팀 골키퍼 자리로 가는 등 잠시 허둥댔지만 나는 해냈다. 악마팀 스트라이커가 찬 검은 볼을 내 ‘팔강식이유권법’으로 막아냈고, 그와 힘을 합쳐 승리의 골을 터뜨렸다. 나는 필드에서의 결정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내 자신을 믿었다. 오늘 백화점 큰 간판에는 그와 함께 표지를 장식한 타임지 광고가 부착됐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스트라이커와 골키퍼 결혼에 골인.’
대학내일 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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