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 상상하게 내버려둬!

‘클루리스(Clueless)’의 셰어와 조시
자, 이제는 우리가 연애해야 할 시간. 다 함께 골라보아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 할 것인가,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베버리 힐스 고등학교 최고의 퀸카 셰어도 열심히 고르는 중이다. 자신의 격에 맞으려면 머리 곱게 올빽한 전학생처럼 패션의 최첨단을 걷거나 대학생 정도는 돼줘야 하지 않나싶다. 취향에 맞춰 생선 뼈 발라내듯 주변정리 한번 해주면 대충 후보군이 정해진다. 1번은 성격이 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신선하고, 2번은 다 좋은데 몸매가 좀 슬프다. 취향이라는 것의 파워는 대단하기에 대충 골라 시작하면 진행된다. 운 좋으면 진정한 사랑, 아니더라도 그 과정을 떠올려 보라. 온갖 핑크빛 상상들이 뭉게뭉게 마음속에 피어올라 두둥실 떠오르고 말 것이다.

셰어는 운이 좀 많이 나빴다. 고르고 고른 분께서 성 정체성을 아직 확립하지 않으사 다 된 줄 알았던 밥에 몹쓸 짓을 하고만 것. 그녀가 좌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니 오래전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지켜주던 양오빠 조시가 ‘확’하고 들어온다. 급기야 공부벌레에 시니컬하고, 패션감각 제로를 달리는 그가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영화는 상상이 아닌 일상이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잔잔한 해피엔딩 선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해피엔딩일까? ‘절대퀸카’에 발랄하다 못해 발칙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연애 청사진을 그렸던 그녀가 고작 양오빠와의 잔잔한 사랑에 빠지다니.

아마 그녀는 더 상상했을 것이다. 아니, 그녀에겐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연애를 그리고, 사랑을 그리며 꿈꿀 수 있는 상상력. 시간낭비라며 ‘어두운 등잔 밑’ 찾아보라 말하지 말라. 사랑은 ‘노력의 결정체’라며 침 튀기지 말라. 상상하며 기다릴 권리가 우리에겐 있나니 초절정 스펙터클 판타지 SF 멜로가 당신의 것일지 모른다. 쉽게 타협하지 말고, 대충 골라잡아 그야말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지칠 때까지 상상해라. 지치더라도 상상해라. 상상의 시간이 있어야 진정한 사랑도 있다. 사랑이라는 현실 속 환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분명 비교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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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α] 악동이 진지해질 때

프랑소와 오종과 김기덕 사이
타인에게 충격과 파괴적인 감상을 선사하는 두 악동, 프랑소와 오종과 김기덕은 닮았다. 물론 오종은 파격적인 대신 서정적이다. 김기덕은 불쾌하지만 카타르시스가 있다. ‘크림슨 리버’를 통해 극단적인 현실의 뒤틀림을 선사했던 오종 감독은 ‘8명의 여인들’로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스위밍 풀’을 통해 그만의 재미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독특함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오종의 매력은 악동이 가진 그것이었다. 누구라도 비웃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김기덕은 언론의 부정적 시선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나쁜 남자’나 ‘섬’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의 욕망과 삶의 해체를 보여준다. 엄청난 다작에도 아직도 할 말을 다하지 못한 허기진 그의 영화는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괴팍스런 영화 행보가 계속되지는 않았다. 마치 도라도 깨우친 것처럼 김기덕이 내놓았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이게 정말 김기덕 영화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최근 보았던 오종의 ‘타임 투 리브’는 좀 더 심했다. 오종만의 겉잡을 수 없는 재미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영화가 지루하기까지 했다. 물론,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건 ‘철이 든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순간 진지해진 그들의 영화는 말한다. 진지함과 파괴의 깊이를.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불가해한 비상식과 파격을 넘어선 불쾌함 뒤에 숨어 있는 진지함을 내뿜는다. 삶과 죽음이 평행선에 놓인 것처럼 그들의 작품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불안하게 넘실거리지만 매우 영리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어쩌면 이제 악동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순순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괜한 알은 체보다는 가식을 냉소할 줄도 알고 격식도 차릴 줄 아는 양면을 꿰뚫을 수 있다면 이것은 존경할 만한 일이다.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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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rd League] 너와 나를 이어주는 절묘한 통로

Between you and me
감독 패트릭 레비즈(Patryk Rebisz)
시간 4분 30초 년도 2005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 똑같아 보이는 세상인데도 사진으로 찍으면 왠지 다르다. 그게 좋아 사진 찍을 때마다 묘기를 부린다. 갑자기 셔터를 누르고, 흔들어도 보고,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작은 프레임 속 비치는 세상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사실 마음대로 찍혀주는 건 아니지만)재구성된다. 찍는 나와 찍히는 세상은 그런 식으로 소통하곤 했다.

여자는 매일매일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하루 동안 이어지는 수많은 행동 중 몇 가지는 정지된 상태로 그녀의 메모리에 저장된다. 운동할 때에도, 집 안에서도, 야경을 구경할 때에도 언제나 함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상방뇨를 하던 치한이 이 예쁜 아가씨의 뒤를 밟고, 전철역에서 습격 장면을 목격한 건장한 청년은 단숨에 뛰어 내려가 치한을 처치한다. 이쯤 되면 위기에서 구해준 청년과 아가씨 사이에 뭔가 수상한 분위기가 조성될 법도 한데, 아가씨는 간 데 없고 덩그러니 카메라만 남았다. 단서는 오직 카메라에 찍힌 사진뿐이다. 그녀가 사는 곳을 찾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 두 손으로 작은 프레임을 만드는 그의 모습은 마치 어느 광고의 한 장면 같다.

모든 관계가 ‘사이’로 정의되는 현대 사회에서 간격이란 사이를 재는 매우 중요한 척도임이 틀림없다. 셔터 누르는 소리가 감각적으로 울려 퍼지는 이 작품에서 사진기는 남남에서 ‘아는 사이’로 관계를 한 단계 진척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론 이렇게 매개체가 직접 소통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그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던 바로 그 순간처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간격이 좁혀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새 학기에는 똑같은 모습 안에서 새로움을 찾고 나와 너를 이어주는 작은 프레임을 설정해 소통의 창을 열어보자. 사이를 ‘줌 인’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나쁘지 않으니까.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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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음악처럼] 수다스런 음악의 진심

삶은 기적이다 Life Is A Miracle

며칠 전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도심의 먼지를 가르며 서있는 아파트들의 몸매는 비슷한데 아주 작은 차이가 저를 당황스럽게 하더군요. 이를테면 현관문의 잠금장치 같은 것 말이에요. 우리 집은 오른쪽으로 90도 돌려야 하는데 친구네 집은 반쯤만 돌려 대각선 방향에서 잠기더군요. 그 익숙하지 못한 각도덕분에 ‘안녕’ 하고 인사를 해 놓고도 현관문을 열지 못해 한참을 헤맸어요.

사람사이도 각도가 다른 현관문 잠금장치 같아요. 내가 말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향의 생각으로 잠기고 또 열리는 사람이 있는 법이죠. 봄의 개강을 맞는 학교에도 낯선 문들이 많아 보입니다. 쉽게 열기 힘든 누군가에게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면 오랜만에 큰 숨을 들이쉬고 ‘삶은 기적이다’처럼 수다쟁이가 되어보세요. 수다쟁이란 별명을 붙인 것은 2시간 30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지는 대사 때문만은 아니에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수다스러움 그리고 즐거움을 안다면 그가 음악감독 까지 겸한 작품에서 얼마나 쟁쟁거리며 귀를 귀찮게 할지 알거예요. 특히 ‘Kiss The Mother’ 는 영화 내내 그림자처럼 당신을 쫓아와요.

루카의 아내 야드란카가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여 따라 부르던 노래의 울림도 되었다 새로운 사랑을 만난 루카의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의 아픔에 눈물 흘리며 자살하려던 불쌍한 당나귀의 안타까움이 되기도 하죠. 어쨌든 처음에는 귀에 거슬리던 그 음악이 어느새 옅게 사라지는듯하더니 화면에 밀착된 배경이 되더란 말입니다. 유독 그 음악이 좋았던 것은 아닌데 그 곡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떠올릴 수 없게 만들어 버렸어요.

사람사이에도 그런 고도의 세뇌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당신과 다른 방식으로 열리고 잠기는 사람들에게 말이죠. ‘집시의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그란 그레고비치의 ‘Thango’부터 아코디언과 피리의 합주, ‘삶은 기적이다’의 밴드음악이나 ‘Moldavian Song’까지 그 특별할 것 없는 음악들이 해낸 작은 기적을 기억해 두세요. 우리는 그렇게 에밀 쿠스트리차의 음악과 같이 애정이 담아 해학적인 톤으로 자꾸 말을 걸어야 해요. 당신이 기억나지 않아도 반갑게 안부를 묻던 목소리가, 관심어린 조언이, 즐거운 웃음소리가 떠오르게 하세요. 나의 진심이 비로소 그곳에 닿을 때까지.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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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파라노이드

Paranoid
감독 존 듀이건
출연 제시카 알바, 이아인 글렌
장르 스릴러
시간 93분
개봉 2월 28일
낯선 저택의 창가에는 부슬 부슬 비가 내리고 한 밤중에 깨어난 클로에(제시카 알바)는 혼란스럽다. 쉴 틈 없는 모델일을 벗어나 새 남자친구 네드와 주말여행 온 것은 알겠는데, 그 뒤는 기억에 없다. 저택의 주인이며 네드의 친구라는 스탠(이아인 글렌)과 그의 아내는 왠지 모르게 섬뜩한 사람들이다. 거기다 늘상 걸려오는 말없는 전화 역시 짜증스럽다.
우선 ‘허니’, ‘신시티’, ‘판타스틱4’에서 귀엽고도 섹시한 매력을 보여줬던 제시카 알바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2000년에 제작된 영화는 그 시절의 제시카 알바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밋밋한 연기는 역시 밋밋한 플롯과 딱 맞물려 긴장감 형성에 도움이 안 되니 안타깝다. 만약 낯선 저택에 갖힌 클로에처럼 관객까지 끌어들이고 싶었다면 ‘록키 호러 픽쳐쇼’처럼 독특한 캐릭터창출에 신경 쓰던지 ‘8명의 여인들’같이 맛깔난 스토리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엔딩을 장식하는 반전은 너무 소심해 귀여울 뿐이고 그나마 관객을 웃기는 스토커 아저씨가 있어 다행스럽다. 그의 수사능력만 은근한 기대를 해 볼 것.
C- 애거서 크리스티의 망가진 추리소설을 보는 느낌.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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