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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도심의 먼지를 가르며 서있는 아파트들의 몸매는 비슷한데 아주 작은 차이가 저를 당황스럽게 하더군요. 이를테면 현관문의 잠금장치 같은 것 말이에요. 우리 집은 오른쪽으로 90도 돌려야 하는데 친구네 집은 반쯤만 돌려 대각선 방향에서 잠기더군요. 그 익숙하지 못한 각도덕분에 ‘안녕’ 하고 인사를 해 놓고도 현관문을 열지 못해 한참을 헤맸어요.
사람사이도 각도가 다른 현관문 잠금장치 같아요. 내가 말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향의 생각으로 잠기고 또 열리는 사람이 있는 법이죠. 봄의 개강을 맞는 학교에도 낯선 문들이 많아 보입니다. 쉽게 열기 힘든 누군가에게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면 오랜만에 큰 숨을 들이쉬고 ‘삶은 기적이다’처럼 수다쟁이가 되어보세요. 수다쟁이란 별명을 붙인 것은 2시간 30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지는 대사 때문만은 아니에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수다스러움 그리고 즐거움을 안다면 그가 음악감독 까지 겸한 작품에서 얼마나 쟁쟁거리며 귀를 귀찮게 할지 알거예요. 특히 ‘Kiss The Mother’ 는 영화 내내 그림자처럼 당신을 쫓아와요.
루카의 아내 야드란카가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여 따라 부르던 노래의 울림도 되었다 새로운 사랑을 만난 루카의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의 아픔에 눈물 흘리며 자살하려던 불쌍한 당나귀의 안타까움이 되기도 하죠. 어쨌든 처음에는 귀에 거슬리던 그 음악이 어느새 옅게 사라지는듯하더니 화면에 밀착된 배경이 되더란 말입니다. 유독 그 음악이 좋았던 것은 아닌데 그 곡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떠올릴 수 없게 만들어 버렸어요.
사람사이에도 그런 고도의 세뇌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당신과 다른 방식으로 열리고 잠기는 사람들에게 말이죠. ‘집시의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그란 그레고비치의 ‘Thango’부터 아코디언과 피리의 합주, ‘삶은 기적이다’의 밴드음악이나 ‘Moldavian Song’까지 그 특별할 것 없는 음악들이 해낸 작은 기적을 기억해 두세요. 우리는 그렇게 에밀 쿠스트리차의 음악과 같이 애정이 담아 해학적인 톤으로 자꾸 말을 걸어야 해요. 당신이 기억나지 않아도 반갑게 안부를 묻던 목소리가, 관심어린 조언이, 즐거운 웃음소리가 떠오르게 하세요. 나의 진심이 비로소 그곳에 닿을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