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손으로 이루어진 세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소매치기(Pickpocket, 1959)’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타짜’는 허영만의 동명의 만화로도 잘 알려져있듯 화투 도박을 소재로 삼고 있다. 끝에 가서는 결국 철저히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도박장에 모여든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자는 손목이 잘릴 때까지(혹은 스스로 자기 손가락을 자를 때까지)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이 무서운 세계의 법칙에서 주인공들도 결코 예외일 순 없다. ‘타짜’라 불리는 노름판의 속임수 고수들의 화려한 손놀림은 영화에서 마치 마술처럼 보여진다. 그들의 손놀림에는 어떤 죄의식도 없다. 단지 모든 걸 그 손놀림에 걸어버린 사람의 섬뜩한 쾌락만이 존재할 뿐이다. ‘타짜’에는 현란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의외로 클로즈업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타짜’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처럼 찍어본다면 그의 어떤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까. 껍데기는 달라도 결국 똑같은 광기에 미쳐가는 인간들의 얼굴이 아닌, 누군지 구별이 불가능한 손의 움직임만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물론 답은 ‘소매치기’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소매치기’ 또한 ‘타짜’와 마찬가지로 유연한 손놀림을 업으로 살아가는 소매치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처음으로 소매치기에 나선 주인공 미셸의 모습이 보여진다. 경마장에서 한창 경마에 열중하는 한 중년 여인의 뒤에 선 미셸은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의 핸드백에 손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그냥 가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찰나의 순간 핸드백을 터는 데 성공한다. 이후 미셸은 세상의 도덕과 단절한다. 그가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소매치기의 기술 뿐이다. 영화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다양한 소매치기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오로지 손만으로 이루어진 클로즈업을 연속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유연한 손과 손이 맞부딪치고, 지갑은 어느새 흘러내려 소매치기의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 브레송은 이러한 신체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통해 배우의 연기가 아닌 무심한 움직임 자체로도 충분히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다. 오로지 손들로만 이루어진 이 클로즈업 숏들은 다이내믹하면서도 한편으로 에로틱하다. 인물의 얼굴은 시종일관 무표정하지만 오로지 손으로만 이루어진 드라마는 풍부한 뉘앙스를 전달하는것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 종종 이러한 파편화된 신체의 클로즈업이등장하는 것은 배우를 단지 실제의 ‘모델’로서 생각하는 브레송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모델’은 연기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 자신을 전시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소매치기’는 오로지 손의 클로즈업만 가지고도 충만한 세계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영화였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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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해석이 되나요]그리움도 힘이 된다

‘집으로 가는 길(The Road Home)’의 쟈오 디

흔히 우리는 ‘첫사랑’을 이루어지지 않아 아름다운 아련함으로 정의하곤 합니다. 아마도 ‘첫사랑’을 ‘짝사랑’의 원류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이 성립되기 위한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감정의 상호작용’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귀찮은 숙제같이 풀리지 않던 연애보다 내 맘대로 사랑하다 놓아버릴 수 있는 ‘짝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은희경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자의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작은 친절일 뿐인데도 자기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으로 보이고, 스쳐가는 눈빛일 뿐인데도 자기의 가슴에 운명적 각인을 남기려는 의사표시로 믿게 만드는 ‘어리석은 맹목성’ 때문이지요. 정말 탁월한 표현 같습니다. 물론 기대감이 무한대로 팽창할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커지고, 그 허무한 빈자리는 ‘그리움’이라는 치명적인 아픔으로 가득 채워지지만요.
‘집으로 가는 길’의 주인공 소녀 쟈오 디는 마을학교 선생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남몰래 조금씩 키워갑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공기를 뚫고 울림을 만드는지 알지 못했던 그녀는 수많은 시간을 머뭇거리다 되돌아서야 했어요. 그런 그녀가 선택한 사랑의 방법은 오직 하나. 선생님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 뿐. 그녀는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선생님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먼 발치에서 선생님이 드시기만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기도 하고, 겨울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선생님의 약속을 곱씹으며 매서운 추위와 맞서 싸우다가 급기야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수업이 없는 날 학교로 찾아가 칠판을 지우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모양내서 오린 빨간 색지로 교실 창문을 장식하며 수줍은 미소를 짓기도 하죠. 먼 길 가는 사람에게 손수 만든 따뜻한 만두 하나 먹이고 싶어 허겁지겁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흙먼지에 뒤덮인 음식과 깨진 그릇을 주워 담으며 아무 말 못하고 엉엉 울던 그녀는 참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주는 만큼 받을 수 없다고 해도 그녀가 참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담장 너머에 있는 흐릿한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야말로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슬픔도 힘이 된다는 어느 책의 한 구절처럼, 그리움도 힘이 되나 봅니다. 그러니 당신의 그리움과 기다림을 애써 떠밀어내지 말아요. 오늘만큼은 마음 놓고 그리워하고 기다려도 좋아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당신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니까요.

안희연 학생리포터 elliott19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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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음악처럼]조금만 더 머물러요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텅 빈 영화관에 자기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도, 아무리 극장 직원들이 나가라고 비수 같은 눈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다보면 종종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짧게나마 영화를 반추해볼 수 있는 시간은 물론, 극장용 고급 스피커로 듣는 사운드 트랙에다가 가끔 볼 수 있는 보너스 영상까지 만날 수 있거든요. 까짓 얼굴 좀 팔린다고 해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는 건 7000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겁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올해 이른 봄에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나고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영화음악은 여전히 제 심금을 울리네요. 수십 년의 시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잭과 에니스의 마음속에 자리한 브로크백 마운틴처럼요. ‘21그램’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 등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구스타보 산타올라야(Gustavo Santaolalla)의 스코어는 카우보이인 두 주인공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컨트리풍의 음악들이 주를 이룹니다. 컨트리 음악을 옛날 백인들이 즐겨 듣는 구닥다리 음악 정도로 취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아름다운 곡들은 영화 속 잭과 에니스의 미묘한 사랑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영화의 주제가격인 ‘어 러브 댓 윌 네버 그로우 올드(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를 부르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가녀리게 떨리는 목소리는 ‘결코 늙지 않을 사랑’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의(혹은 철판 깔고 자리에서 버티기의) 진가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그 순간 만날 수 있습니다. 윌리 넬슨(Willie Nelson)이 부르는 ‘히 워즈 어 프렌드 오브 마인(He Was A Friend of Mine)’이 흐르기 시작하는 바로 그 때 말입니다. 밥 딜런(Bob Dylan)의 원곡을 윌리 넬슨이 노래한 이 곡은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난 눈물이 흐르네. 그는 내 친구였기 때문에”라고 말합니다. 끝내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친구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에니스의 마음이 느껴지니 기타 음 하나하나에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곡,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의 ‘더 메이커 메이크스(The Maker Makes)’가 낮은 피아노 소리로 터벅터벅 다가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여, 저는 압니다. 당신만이 제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 하지만 그것이 제게는 또한 굴레라는 걸.” 이 노랫말을 듣는 순간, 텅빈 극장에서 눈물도 모자라 콧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엔딩 크레디트를 응시하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지도 모르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주책이라고요? 하지만 뭐 별 수 있나요. 영화와 음악이 이다지도 아름다운데.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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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뉴스]국내 유일 독립영화 프로그램 없어지나 外

국내 유일 독립영화 프로그램 없어지나 ●

매주 토요일 새벽 1시 10분, 일반 극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독립영화를 시청자에게 소개해 온 KBS ‘독립영화관’이 내부적인 폐지 결정을 받은 상태다. KBS가 가을개편을 앞두고 내린 이번 결정에 대해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의 독립영화단체와 영화, 문화예술단체가 모여 성명서 ‘KBS 독립영화관은 계속 방영되어야 한다’를 발표, ‘독립영화관’ 폐지 계획에 대한 입장과 요구를 밝혔다. ‘독립영화관’은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감독의 초기작 등을 포함한 국내 단편영화 299편 비롯해 국내 중 ?장편 및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61편을 방영했다. 또한, 기획특집 형식을 빌어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 등의 해외 장편영화와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칸, 베를린국제 영화제 단편부문 수상작 등 92편의 해외작품을 편성했고, 이외에도 독립영화 서적 및 DVD를 내놓는 등 지난 5년간 영상문화 다양성에 힘썼다.

거칠고, 또 거칠도다!●

‘여고괴담’ ‘아카시아’로 애잔한 공포를 선보였던 박기형 감독의 신작 ‘폭력써클’이 제작보고회를 가졌다. “호러 이외의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는 박기형 감독은 “남자들이 그리워졌고,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며 영화의 제작동기를 설명했다. ‘폭력써클’의 주연을 맡은 정경호와 이태성은 ‘길거리 싸움 같은 ‘리얼액션’을 선보이기위해 두세 달 간의 트레이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부러지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으며, 여고 ‘짱’역을 연기한 장희진은 ‘영화에서 유일한게 웃는 데이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확실한 색깔이나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신인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짜릿한 쾌감을 맛봤다는 박기형 감독의 이번 작품은 10월 개봉예정이다.

미술과 영화의 만남, 그리고 스캔들 ●
영화를 모티프 삼아 창작된 현대미술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 ‘미술과 영화의 스캔들’이 오는 27일 오후 6시 오프닝을 갖고 10월 26일까지 중앙시네마에서 계속된다. 16명의 작가가 참여해 영화에 담겨있는 사랑의 정서를 다양하게 해석, 표현한 이번 전시에서는 ‘American Beauty & Korean Beauty(사진)’ ‘메종 드 히미코-로비의 피키피키’ ‘바람난 가족-가자, 장미여관으로’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영화를 이용해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기획된 이번 행사는 영화와 미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인디영화에 빠져볼까 ●
아시아의 대단한 인디영화 16편의 축제 ‘CJ인디 컬렉션-인디, 세상을 만나다’가 오는 10월 18일까지 CGV상암과 CGV명동에서 차례로 이어진다.
‘여자, 정혜’ ‘피터팬의 공식’ 등 호평을 이끌어냈던 국내작품을 비롯해, 몽골 인디의 맛을 보여줄 ‘몽골리안 핑퐁’, 이란에서 온 시인을 꿈꾸는 청소부 이야기 ‘쓰레기 시인(사진 아래)’, 사진작가 출신 감독의 감각적이고 거친 다큐멘터리 ‘라이즈(사진 위)’ 등 국내 미개봉작 4편이 상영될 예정. 이 작품들은 ‘나는 성장한다’ ‘내 삶의 기적’ ‘희망 그리고 소통’ 등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관객을 맞이한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cafe.naver.com/cjartho use.cafe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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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페셜]예술의 목적.

‘팔월의 일요일들’ 양은용과 함께 한 ‘구월의 셋째 주 수요일’
서서히 멜랑꼴리해지고 있는 준 가을의 어느 날, 배우 양은용을 만났다. 선선하고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밝은 그녀는, 맑으나 공허하지 않고 푸르지만 탁하지 않은 녹차의 색과 닮아 있었다. 로빈 윌리암스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말했다. ‘정의, 의학, 법률은 삶의 유지에 필요하지만 시와 로맨스는 삶의 목적이다’라고. 그녀는 일찌감치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예술을 택했다. 그것만이 그녀를 살게 했기 때문에.
양은용의 필모그래피는 독특하다. SBS 공채 탤런트 7기인 그녀는 ‘비단향꽃무’, ‘드라마시티’, ‘겨울 지나고 봄’에 출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의 8할을 채우는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다. ‘인터뷰’, ‘공공의 적’, ‘재밌는 영화’에 출연했고, 올 해만 그녀의 영화 세 편이 한 달이 멀다하고 개봉했다. 로카르노 영화제 2관왕에 빛나는 ‘내 청춘에게 고함’, ‘뚝방전설’ 조범구 감독의 ‘양아치어조’, 그리고 ‘팔월의 일요일들’. 유난히 독립영화와 인연이 깊어 보이는 그녀는 그래서 ‘탤런트’보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팔월의 일요일들’을 찾아서
대학내일 ‘팔월의 일요일들’이 2005년도 작품인데 다시 보니 어떠셨어요?
양은용 작년 부산영화제 때 보고 1년 만에 보는 건데, 재밌더라구요. 전에 볼 때랑 느낌이 많이 달라서 만감이 교차되고. 감회가 새로웠죠. 오프닝 씬의 독특한 느낌은 다시 봐도 여전했어요.
대학내일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양은용 세 명의 주요 인물, 의식불명이 된 환자의 남편 호상(임형국)과 환자 담당 의사인 신애(양은용), 헌책방 주인 호국(오정세)이 나와요. 남편이 ‘팔월의 일요일들’이란 책을 찾으러 다니고 저도 따로 그 책을 찾아 나서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인데, 스토리 중심이라기보다 느낌을 따라가는 영화인 것 같아요. 딱히 ‘이 여자는 어떤 여자다’라는 분석은 많이 하지 않았어요. 그런 작업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흐르는 데로 갔거든요.
대학내일 외모나 연기가 워낙 차분하고 조신해서 실제 성격도 그럴 것 같아요. 실제 성격은 어떠신가요?
양은용 실제로는 신애 캐릭터와 많이 달라요. 제 성격을 저는 잘 모르겠는데, 친구들이 엉뚱하고 ‘깬다’라고 많이들 얘기하죠.(웃음) 신애의 모습도 분명 있을 거예요. 전에는 차갑단 말 많이 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 같아요. 너그러워지고 여유 있어지면서 밝아졌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대학내일 정말 나이가 들면 여유가 생기나 봐요. 나이 드는 게 좋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양은용 네.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뭔가 뜨거운 것이 휘돌아 머리까지 올라와서는…’
대학내일 양은용씨 하면 신비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표정도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요. 염세주의자, 무채색 청춘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예전의 그런 성향이 지금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양은용 네. 많이 있을 거예요. ‘신비적이다’라는 건 너무 과찬의 말씀이신 것 같고요. 분명하고 극단적인 표정, 표현들 보다는 여지를 줄 수 있는 표현이 좋아요.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거니까요.
대학내일 그래서인지 ‘진정성을 가진 배우다, 예술가 마인드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마음도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양은용 아직 갖고 있진 못하는데,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거죠. 러시아에서는 연기자가 예술가로 추앙을 받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가지고 있잖아요. 근데, 저는 모든 연기자는 예술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은 모자라지만 언젠가 예술작품 못지않은 좋은 작품을 통해서 다가갈 때, 보시는 분들께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대학내일 어두웠던 지난시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세상을 더 알차게 살고자 하는 원동력이 됐을 것 같아요.
양은용 그렇죠. 맞아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처음엔 연기를 하게 될지 전혀 몰랐고, 꿈도 아니었어요.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고, 화제가 되는 것도 불편하고. 근데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예요. 의미도 없고 꿈도 없고, 그래서 ‘뭔가 하나 제대로 하고 죽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죽어야겠다’기 보다, 뭔가 다른 게 있을 거 같은 거죠. 그게 뭘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축제 때 잠깐 연극을 하게 됐어요. 단역이라 잠깐 나올 뿐었는데 무대에 섰을 때 그 카타르시스가 엄청 난거에요.
대학내일 ‘살아있다’ 라는 느낌 같은 거요?
양은용 네! 가슴에서부터 뭔가 뜨거운 것이 휘돌아 머리까지 올라와서는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데,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그런 느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보다는 ‘연극무대에 있고 싶다’라는 생각 때문에 극단 ‘산울림’에 들어가서 기본기 배우고 연기를 하게 된 거죠.
대학내일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두루 맛보셨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양은용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다른 점은 없어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했기 때문에 다들 열정적이시고 치열한 건 비슷한데, 독립영화는 아무래도 실험정신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팔월의 일요일들’ 에는 정지된 화면이나 롱테이크, 낯선 유머 같은, 상업영화에서는 시도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단편은 다른 것 같은데, 장편은 많은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대학내일 이제는 아마 양은용씨를 독립영화를 통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양아치어조’ ‘내 청춘에게 고함’ ‘팔월의 일요일들’까지. 독립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요?
양은용 중간에 상업영화도 있었고, 특별히 독립영화를 고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님들과도 느낌이 잘 맞았던 것 같고, 여러모로 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대학내일 맡았던 캐릭터들이 대부분 일반적이지 않았었는데,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양은용 제 성격과 똑같았던 건 똑같은 거 대로, 다른 건 다른 거 대로 기억에 남죠. 성향이나 성격은 달라도 아픔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하고 싶어져요. 너무 달라서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고 너무 똑같아서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픔 없는 캐릭터는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것만 빼면 다 하고 싶어요.
극단으로 돌아가다
대학내일 요즘엔 다시 극단에서 활동하신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세요?
양은용 연극으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연극을 일년에 한 편씩은 꼬박꼬박해야 한다고 생각이 돼서 극단에 다시 들어갔어요. 최근에는 부조리극으로 워크숍 공연 조연출을 했어요. 되도록이면 무대에서 배우로 설 계획이구요. 사이사이에 영화, 드라마도 해야죠.
대학내일 엔터테인먼트사 없이 혼자 일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들지는 않나요?
양은용 육체적으로 힘든 거 빼고 딱히 힘든 건 없어요. 출연 약속이 취소되는 것도 그런 일이 워낙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고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민감한 상황들만 빼면 오히려 좋을 때가 많아요. 예전 엔터테인먼트사에서도 그랬고, 지인들께서는 왜 그렇게 힘든 길로 돌아 가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저는 제 길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게 저라서 다른 길로 갈 수가 없어요.
대학내일 영화 연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양은용 네.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런 것 같은데, 이 분야에 욕심이 많아요. 단편 연출이 해보고 싶어서 전공도 연극이 아니라 영화로 선택했거든요. 이미 시나리오도 몇 편 써놨어요.(웃음)
대학내일 어떤 내용이에요?
양은용 가장 먼저 찍을 건 두 여자 얘기예요. 사랑이 목숨이고 전부인 정열적인 여자와 숨어다니면서 사는 소심한 여자 사이에 교차점이 생기고 두 사람이 변하는 내용인데, 저는 ‘사람이 사랑을 하면 반드시 변한다’고 생각해요. 정열적인었던 여자는 사랑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소심한 여자는 숨겨졌던 정열을 깨우게 되죠. 두 여자의 내면심리, 시점이 중요해요. 카메라 워크며 콘티도 다 써놨어요! (다같이 웃음)
대학내일 출연하신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양은용 ‘내 청춘에게 고함’은 개봉이 확정된 작품이었지만, ‘양아치어조’나 ‘팔월의 일요일들’은 확실치 않았거든요.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서 행복하다기 보다 뭔가 굉장히 이상해요. 네, 이상한 기분이에요.
대학내일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밝아진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으로 지금의 청춘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양은용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세상엔 아름다운 게 많아요. 동네 뒷산의 꽃들, 하늘을 둘러보고 사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일에 치여서 힘들수록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사람은 안 이뻐도 자연은 아름답거든요.(웃음)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naver.com · 사진 김재윤 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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