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타짜’는 허영만의 동명의 만화로도 잘 알려져있듯 화투 도박을 소재로 삼고 있다. 끝에 가서는 결국 철저히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도박장에 모여든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자는 손목이 잘릴 때까지(혹은 스스로 자기 손가락을 자를 때까지)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이 무서운 세계의 법칙에서 주인공들도 결코 예외일 순 없다. ‘타짜’라 불리는 노름판의 속임수 고수들의 화려한 손놀림은 영화에서 마치 마술처럼 보여진다. 그들의 손놀림에는 어떤 죄의식도 없다. 단지 모든 걸 그 손놀림에 걸어버린 사람의 섬뜩한 쾌락만이 존재할 뿐이다. ‘타짜’에는 현란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의외로 클로즈업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타짜’를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처럼 찍어본다면 그의 어떤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까. 껍데기는 달라도 결국 똑같은 광기에 미쳐가는 인간들의 얼굴이 아닌, 누군지 구별이 불가능한 손의 움직임만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물론 답은 ‘소매치기’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소매치기’ 또한 ‘타짜’와 마찬가지로 유연한 손놀림을 업으로 살아가는 소매치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처음으로 소매치기에 나선 주인공 미셸의 모습이 보여진다. 경마장에서 한창 경마에 열중하는 한 중년 여인의 뒤에 선 미셸은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의 핸드백에 손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그냥 가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찰나의 순간 핸드백을 터는 데 성공한다. 이후 미셸은 세상의 도덕과 단절한다. 그가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소매치기의 기술 뿐이다. 영화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다양한 소매치기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오로지 손만으로 이루어진 클로즈업을 연속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유연한 손과 손이 맞부딪치고, 지갑은 어느새 흘러내려 소매치기의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 브레송은 이러한 신체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통해 배우의 연기가 아닌 무심한 움직임 자체로도 충분히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다. 오로지 손들로만 이루어진 이 클로즈업 숏들은 다이내믹하면서도 한편으로 에로틱하다. 인물의 얼굴은 시종일관 무표정하지만 오로지 손으로만 이루어진 드라마는 풍부한 뉘앙스를 전달하는것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 종종 이러한 파편화된 신체의 클로즈업이등장하는 것은 배우를 단지 실제의 ‘모델’로서 생각하는 브레송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모델’은 연기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 자신을 전시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소매치기’는 오로지 손의 클로즈업만 가지고도 충만한 세계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