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페셜]예술의 목적.

‘팔월의 일요일들’ 양은용과 함께 한 ‘구월의 셋째 주 수요일’
서서히 멜랑꼴리해지고 있는 준 가을의 어느 날, 배우 양은용을 만났다. 선선하고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밝은 그녀는, 맑으나 공허하지 않고 푸르지만 탁하지 않은 녹차의 색과 닮아 있었다. 로빈 윌리암스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말했다. ‘정의, 의학, 법률은 삶의 유지에 필요하지만 시와 로맨스는 삶의 목적이다’라고. 그녀는 일찌감치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예술을 택했다. 그것만이 그녀를 살게 했기 때문에.
양은용의 필모그래피는 독특하다. SBS 공채 탤런트 7기인 그녀는 ‘비단향꽃무’, ‘드라마시티’, ‘겨울 지나고 봄’에 출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의 8할을 채우는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다. ‘인터뷰’, ‘공공의 적’, ‘재밌는 영화’에 출연했고, 올 해만 그녀의 영화 세 편이 한 달이 멀다하고 개봉했다. 로카르노 영화제 2관왕에 빛나는 ‘내 청춘에게 고함’, ‘뚝방전설’ 조범구 감독의 ‘양아치어조’, 그리고 ‘팔월의 일요일들’. 유난히 독립영화와 인연이 깊어 보이는 그녀는 그래서 ‘탤런트’보다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팔월의 일요일들’을 찾아서
대학내일 ‘팔월의 일요일들’이 2005년도 작품인데 다시 보니 어떠셨어요?
양은용 작년 부산영화제 때 보고 1년 만에 보는 건데, 재밌더라구요. 전에 볼 때랑 느낌이 많이 달라서 만감이 교차되고. 감회가 새로웠죠. 오프닝 씬의 독특한 느낌은 다시 봐도 여전했어요.
대학내일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양은용 세 명의 주요 인물, 의식불명이 된 환자의 남편 호상(임형국)과 환자 담당 의사인 신애(양은용), 헌책방 주인 호국(오정세)이 나와요. 남편이 ‘팔월의 일요일들’이란 책을 찾으러 다니고 저도 따로 그 책을 찾아 나서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인데, 스토리 중심이라기보다 느낌을 따라가는 영화인 것 같아요. 딱히 ‘이 여자는 어떤 여자다’라는 분석은 많이 하지 않았어요. 그런 작업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흐르는 데로 갔거든요.
대학내일 외모나 연기가 워낙 차분하고 조신해서 실제 성격도 그럴 것 같아요. 실제 성격은 어떠신가요?
양은용 실제로는 신애 캐릭터와 많이 달라요. 제 성격을 저는 잘 모르겠는데, 친구들이 엉뚱하고 ‘깬다’라고 많이들 얘기하죠.(웃음) 신애의 모습도 분명 있을 거예요. 전에는 차갑단 말 많이 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 같아요. 너그러워지고 여유 있어지면서 밝아졌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대학내일 정말 나이가 들면 여유가 생기나 봐요. 나이 드는 게 좋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양은용 네.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뭔가 뜨거운 것이 휘돌아 머리까지 올라와서는…’
대학내일 양은용씨 하면 신비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표정도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요. 염세주의자, 무채색 청춘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예전의 그런 성향이 지금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양은용 네. 많이 있을 거예요. ‘신비적이다’라는 건 너무 과찬의 말씀이신 것 같고요. 분명하고 극단적인 표정, 표현들 보다는 여지를 줄 수 있는 표현이 좋아요.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거니까요.
대학내일 그래서인지 ‘진정성을 가진 배우다, 예술가 마인드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마음도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양은용 아직 갖고 있진 못하는데,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거죠. 러시아에서는 연기자가 예술가로 추앙을 받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가지고 있잖아요. 근데, 저는 모든 연기자는 예술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은 모자라지만 언젠가 예술작품 못지않은 좋은 작품을 통해서 다가갈 때, 보시는 분들께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대학내일 어두웠던 지난시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세상을 더 알차게 살고자 하는 원동력이 됐을 것 같아요.
양은용 그렇죠. 맞아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처음엔 연기를 하게 될지 전혀 몰랐고, 꿈도 아니었어요.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고, 화제가 되는 것도 불편하고. 근데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예요. 의미도 없고 꿈도 없고, 그래서 ‘뭔가 하나 제대로 하고 죽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죽어야겠다’기 보다, 뭔가 다른 게 있을 거 같은 거죠. 그게 뭘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축제 때 잠깐 연극을 하게 됐어요. 단역이라 잠깐 나올 뿐었는데 무대에 섰을 때 그 카타르시스가 엄청 난거에요.
대학내일 ‘살아있다’ 라는 느낌 같은 거요?
양은용 네! 가슴에서부터 뭔가 뜨거운 것이 휘돌아 머리까지 올라와서는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데,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그런 느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보다는 ‘연극무대에 있고 싶다’라는 생각 때문에 극단 ‘산울림’에 들어가서 기본기 배우고 연기를 하게 된 거죠.
대학내일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두루 맛보셨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양은용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다른 점은 없어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했기 때문에 다들 열정적이시고 치열한 건 비슷한데, 독립영화는 아무래도 실험정신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팔월의 일요일들’ 에는 정지된 화면이나 롱테이크, 낯선 유머 같은, 상업영화에서는 시도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단편은 다른 것 같은데, 장편은 많은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대학내일 이제는 아마 양은용씨를 독립영화를 통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양아치어조’ ‘내 청춘에게 고함’ ‘팔월의 일요일들’까지. 독립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요?
양은용 중간에 상업영화도 있었고, 특별히 독립영화를 고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님들과도 느낌이 잘 맞았던 것 같고, 여러모로 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대학내일 맡았던 캐릭터들이 대부분 일반적이지 않았었는데,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양은용 제 성격과 똑같았던 건 똑같은 거 대로, 다른 건 다른 거 대로 기억에 남죠. 성향이나 성격은 달라도 아픔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하고 싶어져요. 너무 달라서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고 너무 똑같아서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픔 없는 캐릭터는 매력이 없어서 그런 것만 빼면 다 하고 싶어요.
극단으로 돌아가다
대학내일 요즘엔 다시 극단에서 활동하신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세요?
양은용 연극으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연극을 일년에 한 편씩은 꼬박꼬박해야 한다고 생각이 돼서 극단에 다시 들어갔어요. 최근에는 부조리극으로 워크숍 공연 조연출을 했어요. 되도록이면 무대에서 배우로 설 계획이구요. 사이사이에 영화, 드라마도 해야죠.
대학내일 엔터테인먼트사 없이 혼자 일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들지는 않나요?
양은용 육체적으로 힘든 거 빼고 딱히 힘든 건 없어요. 출연 약속이 취소되는 것도 그런 일이 워낙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고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민감한 상황들만 빼면 오히려 좋을 때가 많아요. 예전 엔터테인먼트사에서도 그랬고, 지인들께서는 왜 그렇게 힘든 길로 돌아 가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저는 제 길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게 저라서 다른 길로 갈 수가 없어요.
대학내일 영화 연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양은용 네.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런 것 같은데, 이 분야에 욕심이 많아요. 단편 연출이 해보고 싶어서 전공도 연극이 아니라 영화로 선택했거든요. 이미 시나리오도 몇 편 써놨어요.(웃음)
대학내일 어떤 내용이에요?
양은용 가장 먼저 찍을 건 두 여자 얘기예요. 사랑이 목숨이고 전부인 정열적인 여자와 숨어다니면서 사는 소심한 여자 사이에 교차점이 생기고 두 사람이 변하는 내용인데, 저는 ‘사람이 사랑을 하면 반드시 변한다’고 생각해요. 정열적인었던 여자는 사랑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소심한 여자는 숨겨졌던 정열을 깨우게 되죠. 두 여자의 내면심리, 시점이 중요해요. 카메라 워크며 콘티도 다 써놨어요! (다같이 웃음)
대학내일 출연하신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양은용 ‘내 청춘에게 고함’은 개봉이 확정된 작품이었지만, ‘양아치어조’나 ‘팔월의 일요일들’은 확실치 않았거든요.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서 행복하다기 보다 뭔가 굉장히 이상해요. 네, 이상한 기분이에요.
대학내일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밝아진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으로 지금의 청춘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양은용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세상엔 아름다운 게 많아요. 동네 뒷산의 꽃들, 하늘을 둘러보고 사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일에 치여서 힘들수록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사람은 안 이뻐도 자연은 아름답거든요.(웃음)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naver.com · 사진 김재윤 Studio Zip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92&Sfield=&Sstr=&page=2&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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