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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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발달하면서 건강과 건강하지 않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만성질환의 경우, 과거에는 병의 이환과 동시에 거의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적절한 치료 과정을 통해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이 가능하기에, 건강하지 않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대척점에 서 있는 질환과 건강의 사이, 완치된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하면서 아픈(illness) 몸과 마음으로 사는 구간이 새롭게 생긴 셈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질환(disease)와 질병(illness)의 개념이 구분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가치는 학술적으로도, 또 질병의 상태로 사는 현대인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수많은 만성 질병의 상태로 살아가면서도 건강과 질환의 두 지점에 대해 관심을 둘 뿐, 실제로 아픔의 상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니까.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건강의 변화를 겪는다. 달리기를 하다가 심장마비에 걸려 잘 치료 받은 후, 15개월 후에 암을 선고 받는다. 


어떤 사고처럼 마주한 심장마비는 급성 질환이기에 의학적 조치로 바로 수습이 가능했지만, 암은 만성 질환으로 의학적 조치를 하면서도 동시에 유병 기간 동안 환자는 살아내야하는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 즉. 질환을 넘어서서 질병의 구간으로, 그것도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극단적인 위험으로 인식하는 암 환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그 기간 동안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측면에서 살아낸 경험과 성찰의 과정을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통증은 고립과 외로움을 가져오지만, 한 밤의 통증 사이, 창문으로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보면서 자신이 몸 밖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끼자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기도 한다. 돌봄은 아픈 사람의 고유함을 아는 것이지만, 현대 의학의 표준 치료에서는 용이치 않으며, 자신의 몸이지만 어느 순간 의학의 식민지가 되는 몸을 목도한다. 


또 사회에서 병을 통제의 실패로 바라보기에, 효과적인 통제 전략으로 인식된 의학의 권위 앞에서, 환자는 수동적인 역할로 제한받지만, 실제로는 아픈 몸으로 운동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몸 이상으로 존재하는 몸의 경이로움도 묘사한다. 


환자 역할과 긍정 기대, 낙인과 도덕적 평가, 질병 각본에 맞서 자신만의 질병 서사를 이야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보험 제도 탓에 질병에 가치가 매겨지고, 자본과 질병의 치료가 연계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아픈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단순한 의학적 처치나 예후 관리를 넘어서서 영적인 부분까지 포괄하는 적절한 회복 의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저자는 학자답게 객관적인 관찰과 추론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면서, 동시에 영적인 관점에서 아픔의 의미를 재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암과 관련하여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 문제가 아니라 암과 더불어 사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저자는 암에 걸려 살든지, 죽든지 질병의 기간을 잘 살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이긴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욥이 왜 불행이 닥쳤는지 하나님께 물었을 때, 인간은 먼지일 뿐이라는 답변을 듣고 침묵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인간이기에 맞서지만, 인간이기에 죽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돌봄자와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개인적, 관계적 의미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단순한 의학적 대처에 한정하거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설명하는 대신 사회적, 철학적, 영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하면서 건강과 질병의 개념 재구성, 가족과 의료, 사회적 돌봄과 제도 변화, 나아가 의료인 교육에 대한 시사점까지 짧은 지면에 밀도 있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아픈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묵상과 경험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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