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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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외관을 보고 우리도 많이 비슷해졌다, 자신감이 차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흠칫 움츠러들 때가 있다. 우리 소설 중 제법 인기몰이를 하던 일부 소설이 일본 소설가들의 문체를 그대로 답습해 감성 팔이에 제법 성공해 흥행한 것임을 알았거나, 이 소설처럼 우리의 근대가 일본의 결기로 유린될 때, 보란 듯이 성큼 커다란 사상적 진보를 이뤄낸 증거를 마주하고서 무참해질 때다. 


일제 시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떤 근대를 갖게 되었을까..조선의 숱한 천재들이 자율적으로 새로운 세상과 조우했더라면 어땠을까. 내부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를 성찰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근대의 인간 군상을 그려냈었더라면 말이다. 


그 누구보다  일찍이 서구 사회를 맛보아 알았던 나쓰메 소세키는 이름 없는 고양이를 빌어 일본 근대 사회의 신지식인을 실컷 풍자한다. 신문물을 익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일컫는 이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고양이를 통해 분석한다. 


주인공인 고양이는 중학교 영어 교사인 구샤미의 집에서 기거하는데, 이름도 없다. 구샤미는 나쓰메 소세키의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제법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침 자국 흘리면서 책상에 줄곧 엎드려 자면서도 고고한 체 하는 인물로, 수채화며, 일본 전통 시 등 수시로 관심이 바뀌어 도전하지만, 끝가지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위염으로 고생하면서 소화제를 달고 사는 위인으로, 스스로 짐짓 윤리적이고 고상하다는 자부심이 넘쳐나면서도 컥컥 소리를 내며 양치질을 하거나 목욕탕에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자칭 샌님이다. 


구샤미의 집에 수시로 드나드는 메이테이는 온갖 이야기를 끌어다가 허풍을 떨고 꾸며대는 인물로, 구샤미는 늘상 그에게 속아넘어간다. 넉살도 좋은데다 참견하기도 좋아하는 그는 미학원론을 쓰겠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쓰는 법이 없다. 온갖 허세를 부리다가도 말도 안되는 논리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언제든지 불리하면 자기 합리화로 무장해 어떤 사태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기 좋을대로 마무리하는 인물이다. 


간게쓰는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이라는 박사 논문을 쓰는 중으로, 가네다의 여식 도미코와의 혼담이 오가면서, 어느 정도 형평성을 맞추려면  빨리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권고를 듣는다. 박사 학위를 위하여, 완벽한 개구리 눈알의 구현을 목적으로 구체를 깎는 일에만 매진하는데 종국에는 시골의 어느 여자와 결혼한다. 


주인공 격인 이들의 일상 사에, 구샤미의 아내와 딸들의 삽화, 토란을 훔쳐간 도둑 이야기, 인근 중학교 학생들의 구샤미댁 마당 습격기,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의 평상 시 습관, 도미코의 연애 편지 전송에 이름을 빌려 주어 사단이 난 부에몬 등의 잘잘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진다. 


작가는, 근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젠체하며 살지만, 그들이 가진 우스꽝스러운 우월적 자부심의 이면을, 고양이를 통해 풍자와 해학으로 유감없이 그려낸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100여년 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모습에 대비시켜 읽어보아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데 있다. 


배우지 못한 아내나 여식 앞에서 낯선 영어 단어나 희랍의 역사를 들어 거들먹 거리거나 중학교 학생들 앞에서 고집에 가까운 권위를 내세우는 구샤미, 온갖 해괴한 논리로 그럴듯한 자기 이론을 만들어 증폭시키는 메이테이, 지적 허영에 가까운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간게쓰 등, 근대 사회의 지식인은 여전히 현대 사회의 지식인들의 모습과도 기묘하게 중복된다. 


이러한 문제 의식 외에 소설로서 주는 또 다른 재미는, 소세키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에서 비롯된다. 도무지 끊길 것 같지 않는 만연체의 문장은, 번역의 매끄러움과 결합해 눈에 쏙쏙, 귀에 콱콱 박히는 찰짐을 선사하는데, 독서만이 줄 수 있는 즐거운 매력이다. 

그는 성질이 고약한 굴조개처럼 서재에 달라붙은 채, 외계를 향하여 입을 연 적이 없다. 그러면서 자기만은 지극히 달관한 것 같은 상판때기를 하고 있는 꼴은 여간 우습지 않다. 달관을 못한 증거로는, 실제로 나의 초상이 눈 앞에 있는데도 조금도 알아채는 기색이 없을 뿐더러, 올해는 러일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째이므로 곰의 그림이 아니겠느냐며 무슨 생각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태연함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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