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리지도 못하고, 좋은 일에 쓰지도 않으면서, 나는 왜 책들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는 것일까. 소유는 곧 집착이라는 말이 나한테는 참 지당한 말이다. 책마다 내 집착이 묻어있다. 책 한 권을 꺼내면 그 책의 내용은 가뭇해도 그 책을 소유하게 되었을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211p)

짧은 글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에세이 한편. 작가의 글은 [놀러 가자고요]라는 소설을 통해서 처음 접한 적이 있고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에세이로는 처음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1부 <가족에게 배우다>를 시작으로 <괴력난신과 더불어>라는 묘한 제목의 2부, 기념일들은 소재로 해서 글을 쓴 3부와 마지막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고>라는 주제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1부도 꽤 재미나게 읽히는 편이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3부였다. <무슨 날>이라는 제목이 일단 눈길을 끈다. 이게 무슨 뜻이람. 부담스러운 날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첫번째 글을 읽어보고 바로 알았다. 소위 말하는 ~날들에 관한 이야기다. 달력에 항상 표시되어 있는 공식적인 국경일이나 기념일도 소재로 잡고 자신의 생일이나 기타 개인적인 기념일도 소재로 잡았다. 

흔히들 쓸 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글을 쓰고 싶으나 무엇에 관해서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주제를 던져주면 어떨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수많은 날들 중에는 광복절이나 한글날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날들도 많지만 작가가 쓰고 있듯이 환경의 날이나 법의 날 같이 대중적이지 않은 날들도 있다. 
작가는 만우절이라는 명칭대신 <거짓의 날>이라는 제목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만우절이라는 명칭을 제목으로 그대로 잡았다면 훨씬 더 재미없고 딱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것을 한번 틀어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역시 이런 면에서 또 한번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워간다. 

소설의 작법은 일부러 책을 찾아서 배우고 또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에세이집에서 조금씩 배워갈 수 있는 것이다. 신변잡기적인 일들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곗지만 그래도 우리가 에세이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이야기들 중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비단 작가 뿐 아니라 다른 작가의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고민과 소설가] 중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그 책도 이 책도 한국 작가의 생각이라는 것인데 작가들의 주장처럼 한국 사람들은 정말 책을 많이 안 읽을까. 그렇다면 같은 고민을 다른 나라 작가들은 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일본사람들이야 워낙 책을 많이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들의 책을 보면 정말 작고 문고판들이 많다. 구태여 양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약간 책값이 싸지 않을까. 유럽이나 기타 나라들은 책이 비산 편이다. 거기서도 페이퍼북이 많이 팔리는 편인데 종이질은 좋지도 않으면서 비싸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의 책들은 상당히 잘 나오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안 읽을까. 한국 작가들의 책은 다 재미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작가에 이어서 나도 같이 하게 된다. 

예전에는 북페스티벌에서 싸게 나오는 책들을 사겠다고 일부러 캐리어를 끌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도정제가 실시되고 난 이후로 그런 재미나는 장면들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장에서 사나 온라인으로 사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무겁게 책을 사서 가는 사람들도 없다. 도정제는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국방부 불온서적>이라는 제목도 재미나다. 교도소에 살인을 소재로 한 스릴러들은 당연히 못 보낼테니 그런 곳에서 금지되는 것은 알겠지만 국방부들이 금지한 책은 어떤 책들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작가는 직접 어떤 책이라고 제목을 명시해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이 아주 살짝 드는 것은 사실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불온서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일까?

한 권의 책으로 인해서 한 편의 글로 인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가 되었다. 그렇지만 작가도 마지막에 자신의 표제작을 실어놓았듯이 웃어보자. 무슨 고민이 있든지,무슨 생각이 많아 있든지 일단 웃는 얼굴이 가장 이쁜 법이다. 제목부터 기분 좋아지는 한 권의 책, 웃어라 내얼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티커 페인팅북 : 세계여행 (랜드마크) - 안티 스트레스 액티비티 북 (한국판 정식 독점계약) 스티커 페인팅북
워크맨퍼블리싱컴퍼니 지음 / 베이직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베이직북스, 싸이프레스, 북센스. 지금 현재 스티커북으로 가장 유명한 세개의 출판사이고 각기 다른 <랜드마크> 편을 내어 놓았고 이번 책을 함으로써 나는 세 출판사의 랜드마크 편을 모조리 섭렵했다. 각 출판사별로 특징이 있다. 북센스는 스티커 컬러링이라고 표현하고 베이직북스는 스티커 페인팅북 그리고 싸이프레스는 스티커 아트북이라고 각기 명칭을 달리 하고 있다. 


갯수면에서는 베이직북스가 가장 획기적이다. 총 12개의 그림을 실어서 가장 많고 싸이프레스는 항상 10개의 그림을 실어 놓고 있으며 북센스는 가장 적은 7개의 그림이다. 스티커의 접착면에서 보자면 단연 베이직북스의 승리. 강력한 접착제로 인해서 본판에서도 잘  떼어지지 않음을 보이고 있다. 다른 스티커를 뜯는데 같이 뜯겨서 없어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지만 하나하나 쉽게 뜯기지 않아서 조금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종이질에서 보자면 북센스의 바탕이 약간 미끄러짐이 있는 편이라서 붙였다 떼어내기도 쉽다. 싸이프레스도 어느정도 이동이 가능하나 베이직북스의 경우 접착력도 강한데다 바탕지도 그냥 종이라서 일단 붙여버리면 끝. 아무리 살살 붙였다 하더라도 한번 붙인 후 이동을 하기 위해서 떼어내면 스티커를 붙였다 떼어낸 자국이 남고 접착면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낙장불입. 가장 신중을 기해서 붙여야 한다. 


여러개의 랜드마크들 중에서 그림이 겹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같은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가장 마지막에 나온 베이직북스의 경우 러시아나 인도 그리고 일본의 랜드마크들이 다른 책과 겹치는 것을 피할수는 없지만 구도나 배경이나 색감이 달라서 중복되어도 질리지 않게 구성했다. 세 책 중 한국의 랜드마크를 편집한 것은 싸이프레스가 유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 세가지의 책 모두 뛰어난 작품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아도 다 붙이면 멋진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티커를 잘 붙여야 하는데 가능하면 하얀 틈이 없게 붙이는 것이 좋다. 그럴려면 스티커의 크기가 제일 중요하다. 가능하면 딱 맞게 나오는 것도 좋지만 미묘하게 약간만 크게 컷팅을 해도 붙이는 입장에서는 아주 편해진다. 


작은 조각의 경우는 그나마 크게 좌우하지 않지만 큰 조각이 작게 잘라져서 제공될 경우 틈이 없게 붙이기란 상당히 어려워지고 하나를 잘못 붙여버리면 밀려가기의 여파로 옆의 조각들도 같이 밀려버린다. 결국 마지막에는 크게 하얀 틈이 생기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약간의 틈이 보이더라도 남겨 놓고 가는 것이 나중에 큰 틈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스티커북을 많이해 본 사람으로써 어떻게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고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하나도 하얀색이 보이지 않게 꼼꼼하게 붙여보겠다고 덤볐다가 오히려 계속 조각들이 밀려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나중에는 크게 빈 공간이 생겨버렸다. 발로 붙여도 이보다는 더 잘 붙였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주 한심한 폼이다. 


스티커의 특성을 잘 보고 이해한 후에 덥볐어야 했는데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지만 그래도 다른 책에서 보지 못했던 그림을 완성한 것에 만족을 표한다. 아직도 많은 작품이 남아있으니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다시, 만나다>,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 <마마>, <매듭>, <꼬리등>, <파란하늘>의 여섯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이야기.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낯선 얼굴을 보이면서 사람은 입체적이 된다. (39p)

일러스트레이터와 편집지로 만난 두사람. 일얘기만 하고 자신만의 벽을 쌓고 살던 나에게 편집자인 그는 그림을 보낼때마다 꼬박꼬박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다. 내게도 마찬가지로 그런 작업을 요했다. 그냥 편하게 메일로 주고 받으면 될 것을 굳이 왜 그런 일을 하나 했지만 연재가 계속되다보니 전화하는 횟수도 많아졌고 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와의 일이 마무리 된 후 파리로 떠났다. 승승장구하던 일을 그만두고서. 그렇게 그와의 연락도 끊겼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비단 남녀간의 연인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디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게 된다. 좋은 느낌으로 만나서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은 것이고 당장 그 자리에서 무슨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만날 인연은 시간이 흘러도 만나지는 법이다. 

신기한 일이다. 회자정리라는 사자성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헤어짐이 있으면 언젠가 또 다시 만남이 있는 법, 그렇게 사람과의 만남은 또 돌고 돌아 이루어진다. 이별이 슬프지 않은 것은 그런 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월도 있다. 사람은 산 시간만큼 과거에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155p)


이런 사람과의 인연도 어긋날때가 있다. 오해에서 불러 일으켜진 엇갈림들. 그 시기에 아무리 맞추려고 해봐야 서로간의 감정만 상하고 정리는 되지 않은다. 그럴 경우 조금의 시간을 주어보는 것은 어떠힌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시간이 흘러가고 더 누그러질수도 있는 법이다. 필요한 세얼이 지나고 나면 훨씬 더 편한 감정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시점에 무언가 결론을 내려고 조급해 하지 말기를. 

여러 이야기들중에서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았던 이야기는 두번째 이야기인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였다. 어찌보면 그저 단순하기만 한 이야기다. 백화점에서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를 샀지만 집에와 한입 맛을 보니 순무가 아니라 무더라.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지만 그쪽에서는 순무라고 하더라. 자, 이제 주인공이 어떻게 처신했겠는가. 

그쪽에서는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은 이에게 한번 그 상품을 먹어보라고 한다. 먹어보고 순무인지 무인지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정말 그 샐러드에는 순무가 들어간 걸까 무가 들어간 걸까. 한편의 미스터리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일수도 있고 단순하게 그저 일상생활을 그린 에세이라고도 보여지는 이야기는 설핏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백화점의 그들과 주인공은 다시 만나게 되고 마지막에 짧게 언급되는 다시 만나게 되는 불의의 일격까지 존재하고 있어서 어? 하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만남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흔하게 겪는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어느 순간엔가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을수 있는 것이다.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크게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늘 비슷해보이지만 그런 만남들 가운데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재미를 찾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삶이고 일상이고 만남인 것을. 그런 느낌이 그대로 한편의 책에 담겨있다. 한그릇 가득 꾹 눌러 담은 밥이 아닌 
자그마한 일본식 밥그릇 중앙에 적당한 높이로 오목하게 쌓여진 밥. 아무런 맛이 없는 듯 하지만 곡 필요한 그런 밥맛이 살아있는 이야기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리 수를 뿌리 뽑고 죽이기 위한 방법, 그것은 굼뜨고 호빵 같은 나라는 인간을 지우는 일이었다.(190p)

 

익히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도 역자후기나 작가 후기를 먼저 읽는 편이지만  - 스포일러가 있을때도 상관없이  - 이 책처럼 작가에 대해서 아예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을 때는 더욱 후기를 먼저 읽고 약간은 의지하게 되는 편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 작가가 자신의 필명을 바꾸어가며 작품을 썼다고 하니 그 점이 더욱 흥미롭다. 여러 명의 작가의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다양하게 보이는 장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장르마다 바귀는 작가의 이름. 특이하면서도 그만큼 작가의 능력을 확실히 드러내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번역자는 <염소자리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마지막 글자까지 결론을 읽고도 그것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 앞으로 찾아가서 이해를 아니 확인을 했던 작품이었다. 역자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설정의 이야기였다.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집이 서 있어서 온갖 것들이 다 들어오는 배란다를 가진 집. 그곳에서 발견한 신문의 일부분. 그저 일반 신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 기사로 담겨진 즉 미래 신문이다. 그 신문을 읽은 아이는 그 속의 내용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자신의 나름대로는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그 노력은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까. 판타지를 겸비한 이야기가 단편영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다 정해져 있어서 절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져 있는 것을 바꾸려고 할대 그 사건은 존재해야 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십대 학생들간의 학원폭력을 그리면서도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버리는 이야기.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서 더욱 읽는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약간은 소년탐정을 내세워서 범인을 찾는 것같은 분위기를 주면서도 학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내세우기도 해서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가 무언가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랄까. 정작 주인공이 그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때는 혹시라도 상대방이 실수를 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하면서 손을 벌벌 떨 정도로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방법 뿐이었겠다 하는 생각에 그를 더욱 응원하게 된다.

 

어찌보면 가장 간단한 사건 풀이이기는 해도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괜한 오해로 인해서 한 아이의 생활을 모조리 망쳐버리는 짓은 보고만 있어도 답답했을 것이다. 고작 만년필 하나를 훔쳐간 것이 무엇 그리 심오한 일이겠는가 하겠지만 선생의 입장에서도 그냥  지나가려는 사건을 멋지게, 그것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떳떳이 풀어낸 아이의 용기야말로 분명 멋지다는 것을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메리수를 죽이고>를 읽기 위해서는 일단 '메리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 이름인줄로만 알았던 이 존재는 '2차 창작 관련 용어 중의 하나로 작가의 소망이 불쾌할 정도로 투영된 오리지널 캐릭터를 가리킨다'(184p)고 한다. 동호회에 가입한 아이는 원래 기존에 있던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아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고 기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에 2차창작이라는 말이 붙었다.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닮은 아니 자신이 되고싶은 모습을 닮은 그런 주인공을 '메리 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찌보면 자신되고 싶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졵재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되고 싶은 모양, 자기가 하고싶은 모든 것을 거기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 메리수를 죽여야만 본래의 내 모습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떻게 메리 수를 죽일수 있을까.

 

일단 메리수라는 단언 자체가 생소했다. 2차창작이라는 단어도 생소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줄거리를 참고로 하면서 써나가는 것이 분명 도움은 될 것이고 처음 시작할 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겠다는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메리수는 분명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정작 자신의 진모습은 변할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단편들은 짧은 해설이 옆에 붙어있어서 그것을 먼저 읽음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단편들의 경우에는 명확히 결말을 내지 않아서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부분도 커버할 수 있고 작가가 어떤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서 더욱 집중을 해서 읽을수 있게 된다.

 

한 작가가 여러 장르마다 이름을 바꿔 가며 쓴 이야기들은 장르마다 정말 다른 작가가 쓴 이야기인 것 마냥 서로 다른 특징을 품고 있다. 이름에 대한 설명을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은 한 작가가 쓴 것이 아닌 다른 여러 작가의 작품이 모인 단편집인줄 알았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그런 것을 노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중 인격이 아니라 다중 인격의 존재. 작가는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드러내야 하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어떤 이름으로 다른 작품을 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USB] 빨강머리 앤 : 초록지붕 집 이야기 (오디오북) 오디오북 빨강머리 앤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엄진현 옮김, 이지혜 읽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누구나 한번쯤은 따라 불렀음직한 노래. 바로 빨강머리 앤 되시겠다. 너무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의 앤을 이제와서 다시 읽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이것이 제목에도 들어있듯이 '오디오북'이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시대가 아닌 듣기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런닝머신을 걸으면서 책을 읽을수는 있지만 뛰면서 읽기란 불가능하다. 산책을 하거나 달리면서 읽는 것이란 더욱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걷거나 달린다. 감성은 자극되겠지만 그 시간을 조금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볼 수는 없을까. 그것이 바로 읽는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일 것이다. 

책을 듣는다는 것은 본래 시각장애처럼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활성되던 시장이었다. 그런 시장이 본격적으로 넒어지고 있다는 것은 멀티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만큼 또 사람들이 귀찮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오디오 클립으로 존재하던 것이 이제는 usb에 담겨서 책과 함께 출판되었다. 책의 표지에 꽂혀있는 usb를 컴에 연결해서 들으면 된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고 파일들을 옮겨서 운동하면서도 들어도 좋고 차에서 운전하면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책과 함께 보아도 좋고 따로 음성 파일로만 들어도 좋다.  

책표지에 삽입되어 있는 usb를 첨에 연결하면 여러개의 파일이 뜬다. 0부터 시작되어서 41번으로 끝나는 총 42개의 클립들. 서문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지은이 소개까지 여러개의 파일들을 차레대로 선택해서 들으면 된다. 물론 본문부터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서문을 건너뛰어도 좋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서문을 건너뛰고 1번 파일인 <레이첼 린드의 놀람>부터 들었으니 말이다. 

 

각 파일은 대략 25-30분 정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책의 구성에 따라서 8분 정도의 짧은 파일도 존재한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35분 정도의 길이로 구성되어 있어 너무 길지 않아서 한번에 딱 듣기 좋은 분량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1번 파일부터 들어본다. 연극배우가 이지혜의 목소리로 담긴 본문.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평균정도의 빠르기에 메조 소프라노 정도의 톤을 가진 목소리가 듣기 편하게 만든다. 너무 높은 하이톤의 음색은 오래 듣기 피곤하고 너무 낮은 톤은 질려버리는데 반해서 적당한 톤과 빠르기여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가 정확한 딕션까지. 뭉개지는 발음이 아니고 또박또박 읽어주어 단어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백번 듣느니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고 했던가. 백번 듣고 눈으로 한번 보는 것을 둘다 하면 훨신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책과 usb가 세트인 이유다. 물론 듣기만 하겠다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음원만 따로 구입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 책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해두기도 했는데 그런 세심함이 책을 더욱 원본의 의미대로 읽을수가 있어서 더욱 좋다. 어떤 번역들은 너무 원문의 의미를 바꿔 놓아서 읽기에는 편할지도 모르겠으나 원서와 비교했을 때 새로운 책인가 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작의 의미를 잘 살리면서도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읽기 편한 번역이어서 더욱 만족스럽다.

총 619페이지의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 그중 518페이지가 <초록지붕 집 이야기>이다. 그 뒤로는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루시 몽고메리의 일기가 더해진다. 작가의 일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어떻게 앤이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저자와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없던 초록지붕 집에 앤이 도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사실 앤이이 집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 일할 남자아이를 찾고 있었으므로 -  매슈와 마릴라의 만남이 필연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아니었다면 앤은 어디서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날수 있었을까. 그들이었기에 이 천방지축같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내년에 에이번리 이야기를 시작으로 계속 시리즈가 연결되고 2020년까지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당분간 읽는 즐거움 뿐 아니라 듣는 즐거움을 만낄할 수 있을 것이다. 앤이 초록지붕에서 성장을 한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하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