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도 못하고, 좋은 일에 쓰지도 않으면서, 나는 왜 책들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는 것일까. 소유는 곧 집착이라는 말이 나한테는 참 지당한 말이다. 책마다 내 집착이 묻어있다. 책 한 권을 꺼내면 그 책의 내용은 가뭇해도 그 책을 소유하게 되었을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211p)
짧은 글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에세이 한편. 작가의 글은 [놀러 가자고요]라는 소설을 통해서 처음 접한 적이 있고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에세이로는 처음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1부 <가족에게 배우다>를 시작으로 <괴력난신과 더불어>라는 묘한 제목의 2부, 기념일들은 소재로 해서 글을 쓴 3부와 마지막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고>라는 주제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1부도 꽤 재미나게 읽히는 편이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3부였다. <무슨 날>이라는 제목이 일단 눈길을 끈다. 이게 무슨 뜻이람. 부담스러운 날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첫번째 글을 읽어보고 바로 알았다. 소위 말하는 ~날들에 관한 이야기다. 달력에 항상 표시되어 있는 공식적인 국경일이나 기념일도 소재로 잡고 자신의 생일이나 기타 개인적인 기념일도 소재로 잡았다.
흔히들 쓸 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글을 쓰고 싶으나 무엇에 관해서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주제를 던져주면 어떨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수많은 날들 중에는 광복절이나 한글날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날들도 많지만 작가가 쓰고 있듯이 환경의 날이나 법의 날 같이 대중적이지 않은 날들도 있다.
작가는 만우절이라는 명칭대신 <거짓의 날>이라는 제목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만우절이라는 명칭을 제목으로 그대로 잡았다면 훨씬 더 재미없고 딱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것을 한번 틀어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역시 이런 면에서 또 한번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워간다.
소설의 작법은 일부러 책을 찾아서 배우고 또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에세이집에서 조금씩 배워갈 수 있는 것이다. 신변잡기적인 일들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곗지만 그래도 우리가 에세이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