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단편선 소담 클래식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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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항상 이들의 작품이 헷갈린다. 러시아 문학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러한가 보다.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로 대표되는 톨스토이. 그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표제작을 포함해서 일곱 편의 이야기다. 표제작은 워낙 유명해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고 <바보 이반>도 언젠가 한번쯤은 정확하게 읽은 적이 있다.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하는 이야기도 잘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어느 책인가에서 읽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새롭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표제작에서는 미하일이라는 천사가 등장을 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의 내용은 성경상에서 차곡차곡 알곡을 모아 쌓았지만 다음날 하나님이 그 생을 가져가버리시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여기의 단편들은 종교적인 색채가 좀 진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해설에 따르면 복음서의 내용을 일반 대중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민화를 많이 썼다고 한다. 여기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 그런 장르에 속한다고 본다면 그가 이런 형식의 이야기를 왜 썼는지가 이해된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 교육을 받지 못한 그들을 위해 학교를 지었던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게 이야기를 풀어봐야 뭐하는가. 읽을 사람이 읽지 못하면 그뿐인 걸.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런 이야기를 적은 것이 아닐까 한다.

<촛불>의 내용은 그저 일만 하는 선량한 농부와 관리인의 힘겨루기가 등장을 하는데 그는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았으니 일방적인 견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너가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눈깜빡이라도 하나보자라는 듯이 묵묵하게 일만 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방송중인 드라마의 무쇠라 불리는 캐릭터를 닮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복이 내리고 그를 괴롭히는 관리인에게는 벌이 내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무엇 때문에>라는 다소 통속적으로 보이는 제목에서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딸만 둘인 집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큰 딸은 당연히 자신에게 청혼을 할 것이라 여기며 머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는 아무런 말 없이 떠나버렸다. 알고 보니 그는 큰 딸인 아닌 작은 딸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설정을 보니 지금 미성년자와 사귀었네 마네로 연일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한 배우가 생각이 났다. 그 옛날 소설 속에서도 이럴진대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가 의문이 든다. 후반부로 가면서 추방되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를 찾아서 떠난 그녀의 이야기가 부각이 된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 했으나 아이들이 병에 걸려 죽고 결국 남편을 탈출시키기로 한 그녀. 그녀의 계획은 성공을 할까. 그녀는 왜 무엇 때문에?라는 문장을 외치게 되었던 것일까. 이미 알고 있던 표제작보다도 처음 보았기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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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크라임 이판사판
덴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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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갈 때마다 일본 소설 코너에서 보이는 두꺼운 책이 있었다. 그것도 두 권으로 구성된 책. 몇번이나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들던 그런 책이었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이 텐도 아라타이다. 텐도 아라타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 것은 아닌데 이 책은 내가 걱정하던 그런 류의 근심을 싹 씻어준다.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눌러주는 것으로 유명해서 분명 알고는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내가 읽은 책은 [영원의 아이]와 [애도하는 사람]이었고 후자가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은 다르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인해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끝났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만큼 몰입감이 대단한 그런 소설이다.

한 구의 시체가 발견이 된다. 남자다. 알몸이다. 묶였다. 검시를 행한다. 별게 없다. 단지 사인만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스톱. 그 피해자를 보던 형사 시바가 이야기를 한다. 왜 강간검시는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만약 시체가 여자인 경우에 더군다나 알몸으로 발견이 되었다면 필히 행해졌을 검사였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실제로 검사한 결과 항문에서 보지 못했던 증거를 찾아낸다. 눈에는 눈. 이 글귀를 본 피해자의 아내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절했다.

이 책을 읽었던 읽지 않았던 잘못된 일이라면, 잘못한 일이라면 그냥 사과 좀 하자. 그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사죄하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듣지 않는가. 만약 처음 사건이 발생을 하고 그들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진정어린 사죄를 했더라면 이 모든 일은 필히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해자들은 사과는 커녕 뉘우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부모가 감싸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일을 빨리 끝내놓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들의 머리 속에는 대체 뭐가 든 것일까.

예전에는(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성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아들의 부모들은 딸의 부모들에게 큰소리친다고 한다. 우리 아들도 잘못이 있지만 당신에 딸이 꼬드겨서 그렇게 된거라고 말이다. 옛말에는 딸가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분명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왜 여자라는 이유로 숨어서 살아야 하고 당당하지 못해야 하는가. 가해자들인 남자들은(요즘은 역으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도 모르고 당당하게 구는데 말이다. 본문에서는 남편을 부르는 단어를 고치라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서 남편을 주인이라고 칭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왜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는가. 아내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말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단어가 자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굵직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시바와 구라오카라는 특징적인 캐릭터로 인해서 확 재미가 붙는다. 서로 다른 캐릭터가 주는 케미다. 거기다 요다까지 더해지니 삼합이 아주 짝짝 들어맞는다. 이 캐릭터들 여기서 한번만 써먹기는 너어무 아깝다. 다른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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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오마카세 한국추리문학선 20
황정은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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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추리가 읽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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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오마카세 한국추리문학선 20
황정은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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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참 끌리는 제목이다. 나처럼 이런 장르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제목만으로도 한번쯤은 손에 집어들만한 그런 책이 아니던가. 이 책의 제목이 무송빌딩 살인사건이었다면 나는 그냥 보지도 않고 패스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전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작가의 제목 짓는 센스는 탁월하다 할 수 있겠다. 제목이 작가의 작품인지 편집자의 작품인지 출판사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가 지어놓은 제목이 있다 해도 마지막에 바뀌는 경우도 많아서.

무송빌딩의 건물주가 일년 전에 뺑소니를 당해 죽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받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해 놓은 계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임대료가 너무 낮게 책정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는 법. 그는 자신의 건물에 임대해 있는 가게들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진료를 받고 약을 타는 등의 행위를 무단으로 행한다. 주인들은 건물에서 나가라고 할까봐 그런 횡포에도 불구하고 반격을 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처음부터 내내 이 건물주의 횡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 아버지가 착한 마음으로 해 놓았으면 그냥 나오는 임대료나 받아서 마음 편히 살 것이지 어디서 갑질이냐고. 거기다 여자들을 희롱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그가 너무 꼴사나와서 말뽄새를 고쳐주기 위해서 그 입을 그냥 확 쥐어 비틀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작가가 어찌나 적확하게 밉상을 표현해 놓았는지 읽는 내내 에라 이 나쁜 넘아를 외치게 된다.

그러던 그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고? 어라? 이 넘을 죽인 것은 누구인고? 워낙 여러 군데서 손가락질을 받아와서 죽은 게 불쌍하지도 않다만 이제 와서 자살일리는 없을 것 같고 타살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가 궁금해지는데. 전작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과 같은 제목이라 이 작품도 혹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오마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다. 그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범인들의 트릭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적중할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지만 작가는 그렇게까지는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냥 가만히 있으면 경찰들이 증거도 없고 사건해결의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그렇게 툭 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그냥 던져주면 너무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그 이후로 술술술 풀려 버리는 이야기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그렇게 던져 줬다면 그러려니 하지만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단 말이지. 약간은 연결점이 뒤틀려 버린 느낌이랄까.

그런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력적인 한국장르 작가 한 명을 또 리스트에 올리게 된다. 전작을 읽고 나서 한 권쯤은 더 읽어보고 싶다던 작가였다. 이번 작품을 읽고 나니 이런 정도의 느낌이라면 충분히 애정하는 작가가 될 것 같고 다음 작품도 역시나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엔 어떤 매혹적인 제목으로 나를 유혹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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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
정명섭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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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거였다. 내가 정명섭 작가라는 이름으로 원하는 작품은 말이다. 정통적인 역사 소설 같으면서도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그런 형태의 글이 가장 정명섭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이미지는 그러하다. 여타의 다른 작품들을 떠나서 말이다. [조선의 형사들] 이후로 이런 느낌은 또 오랜만이다. 이 주인공들이 그대로 다음 작품에서 나와서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무언가 이 이야기가 끝이 아닐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분명 다음 이야기가 나와주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다.

분명 살아서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화살을 맞으면 그 자리가 금세 아문다. 이것은 판타지인가. 자고 일어나니 아내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죽임을 당했다. 칼을 들고 있던 그는 피해자 가족에서 용의자가 되어 있다. 이것은 추리스릴러인가. 아버지의 고향을 따라서 내려가는 길에 탐관오리들을 처단하고 백성의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히스토리물인가. 무언가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온갖 요소들이 다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혼란스럽거나 지지부진하지 않고 모든 것이 잘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느낌뿐이다. 잘 비벼진 한 그릇의 비빔밥같다나 할까.

암행이라 함은 암행어사가 지역을 순찰할 때 몰래 자신을 숨기고 돌아다님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던가. 여기 졸지에 모든 가족을 다 잃고 혼자가 되어 버린 송현우가 가장 암행에 걸맞은 사람이지 싶다. 암행어사로 임명이 되었고 혼인을 했고 앞으로 유망하기만 할 미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신혼 첫날밤에 아내는 피칠갑을 한 채 죽었고 어머니를 찾았으나 종과 함께 죽어 있었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아버지를 찾았으나 그 역시도 옷을 단정히 입은 채 머리가 날아갔다. 이 가족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친구 이명헌의 동생을 아내로 맞았다. 이명헌은 송현우와 절친이었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되고 나니 절친이 아니라 반드시 처단해야 할 원수가 되어 버렸다. 그는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를 쫓는다. 이제는 가짜 암행어사가 도망을 가고 진짜 암행어사가 뒤쫓는 형국이다. 한편 그를 좇는 것은 이명헌이 전부가 아니었다. 임금은 자신의 사위를 시켜서 가족몰살 사건을 조사하게 시킨다. 그는 어떤 결론을 내어 놓을까.

처음에는 평범한 옛시대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쯤으로 생각하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유명했던 [퇴마록]을 떠올리게 된다. 한때 그 재미에 빠져서 밤새는줄 모르고 읽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그 뒤를 이을수 있지 않을가. 퇴마록에 월향이 있었다면 암행에는 낙죽장도가 있다. 퇴마록에 김신부가 있었다면 암행에는 진운과 검은개 어둠이 있다. 이 이야기도 퇴마록처럼 시리즈로 이어져야만 한다. 송현우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어야 한다. 자신은 복수를 했을지 몰라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있지 않은가. 확실한 결말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작가의 머리속에만 존재할뿐 말이다. 작가를 어디다 꽁꽁 가둬두고 어서 다음 이야기를 내놓으라고 요청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현대판 미저리가 따로 없구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몰아치지만 허물지는 못하는 파도요 분노를 다스린다면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는 폭풍이라던 문구가 머리 속에 잔상처럼 남았다. 가족을 모두 잃은 현우에게는 분노가 그대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그는 분노를 다스릴까 다스릴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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