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구트 꿈 백화점 0 - 달러구트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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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잘 시간을 놓쳤다. 본능적으로 안다. 이런 경우 계속 누워 있어봤자 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빈도수는 적어졌지만 오래전부터 불면증으로 고생을 한 경험상 학습된 결과이다. 방향을 바꿔서 누워 보고 장소를 바꿔 본다. 그래도 안 되면 일어나서 책을 보던가 필사를 하던가 해서 시간을 때운 후 다시 자야 한다. 불면증으로 하루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열어홉살의 달러구트를 그렇게 잠이 오지 않는 밤 만나서 마무리를 지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0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프리퀄이다. 지금의 그 백화점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그 이전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다. 전작들을 모두 읽은 나로서는 이 앞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달러구트의 엄마 찾아 삼만리 아니 파란만장 여행기라고 볼 수 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엄마. 아니 전조 증상이 있긴 했지만 그가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다. 거기다 빌딩을 담보로 빚까지 지고 사라졌다. 달러구트는 나처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면증을 치료하고 코리 할멈을 만나서 돈을 벌어 빚을 갚고자 하지만 본인이 안 오면 안 된단다. 뭐 이런 일이. 그래서 달러구트의 사라진 엄마를 찾아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의 행방을 묻고 산타클로스를 찾고 장례식에 참여도 하고 곰을 만나기도 하고 별별 일을 다 겪는 달러구트로 인해서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만한 정도의 난이도라서 쉽게 접할 수도 있다. 업은 아이 삼년 찾는다는말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딱 이 경우에 맞으려나. 모든 갈등은 해소가 되었고 사건들로 인해서 만난 인연으로 달러구트는 오히려 전보다 더 승승장구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달러구트 꿈백화점이 기반이 되었음은 말하면 잔소리다.

전작에서 보았던 웨더도 말미에 등장해서 반가왔다. 아는 이름들을 다른 책에서 만나면 괜히 반갑다. 야 나 너 알아 라는 식으로 아는 척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작가들은 그런 마음을 알기에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 아닐까. 프리퀄을 끝으로 꿈 백화점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나는 프리퀄을 시작으로 다음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어렵고 힘들었던 꿈 백화점의 시초를 알았으니 북적북적 손님들이 많은 그곳이 다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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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신 신 게임
마야 유타카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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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이었다면 비록 초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전작을 읽어볼 걸 그랬다. 그렇다고 전작을 안 읽어서 이 작품의 매력이 떨어지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스릴 넘치지만 전작을 읽으면 이 주인공들의 관계라던가 신이라고 불리는 스즈키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주로 살인 사건들이 등장을 하는데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이래도 돼? 라고 느껴질만큼 그들 주위에서는 살인 사건이 자주 벌어진다. 그것도 범인은 꼭 그들 주위에 있거나 아니면 저절로 그들 주위에 나타난다. 준은 범인을 신에게 묻는다. 신은 단 한 마디만 해준다. 범인은 누구라고. 한번에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그게 누군데? 하고 되물어 볼 때도 있다. 신은 더이상은 알려주지 않는다. 탐정단원인 준과 탐정단이 알아내야 할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사건은 분명 묵직하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한계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 사건과 탐정 간의 괴리감이 꽤 크다. 거기다 분명 범인이 누구라고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첫번째 사건을 제외하면 그가 말한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이렇게 넘어가도 되나 싶을만큼 수사가 멈춰버린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부모를 두었따 하더라도 초등학생이라는 입지가 그런 것이다. 오히려 이 친구들이 증거도 척척 내밀고 모든 것을 다 깔끔하게 해치웠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이상할 일이니 말이다.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제 신은 떠났다. 신이 떠난 세상에는 누가 남았을까. 악마일까 인간일까 아니면 그 둘의 공존일까. 또 다른 신은 없으려나. 신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고 싶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탐정단을 비롯한 준의 활약만이 눈에 뜨인다. 신이 어떻게 해서 범인을 특정지었는지 그가 셜록홈즈처럼 추론을 거듭한 것인지 아니면 그도 증거를 모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그 모든 것이 궁금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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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로데시벨 - The Last Zero Decibel
최설도 지음 / 잉크한방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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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서는 이상한 놈 대 나쁜 놈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미친 놈 대 이상한 놈. 이렇게 생각했다. 이 기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까. 처음에는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가 생각했더랬다. 308호와 408호. 각기 혼자 사는 남자. 차이가 있다면 잘 나가는 남자와 못 나가는 남자 정도일까. 그것도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윗집 남자 준태는 아랫집 남자 재현의 소리를 듣는다. 그가 들어오고 씻고 마시는 일상의 소리들. 그가 왜 이 집의 소리를 듣는지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그저 단순하게 재미로 시작한 것인데 점점 사건이 커지고 말았는지 아니면 무언가 의심을 해서 듣기 시작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꼬투리를 잡아보고자 함이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사실 윗집 소리는 잘 들리지만 아랫집 소리는 잘 듣기 어렵다. 준태처럼 청진기를 가지고 일부러 찾아서 듣지 않는다면야.

준태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지만 그리고 그 후로도 사건이라고 생각할만한 소리를 분명 듣고 녹음도 했지만 재현을 신고하지 못한다. 자신이 잘못해서 꼬리를 잡힌 것도 있거니와 확실한 증거를 내밀지 못함이다. 사실 그가 죽을만큼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저럴 거면 차라리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될 작정을 하고 재현을 신고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다. 준태의 고민이 반복될수록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슬며시 짜증이 스민다.

이야기를 만들 때 작가들은 자신이 자신이 있는 분야를 끌어다 쓰기 마련이다. 만약 전혀 모르는 분야라면 그 분야에 대한 조사는 필수일 것이다. 꼼꼼할수록 그 이야기는 더욱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너무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또 독자들이 읽디가 질려 버릴 수도 있으니 그 적정선을 지켜야 하는 것도 맞다. 이 이야기는 사실 흥미롭게는 읽혔으나 몇몇 부분들이 계속 거슬렸다. 개연성의 부분이랄까. 이야기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태가 외시경으로 밖을 확인하는 경우가 거슬림의 시작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고급빌라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요즘 추세로 본다면 외시경이 없고 전부 인터폰 화면으로 되어 있는 것이 대세다. 오래된 주택이 아니고서야 그러하다. 거기다 두 주인공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눌려 있는 일층 버튼을 한번 더 누르는 장면도 그렇다. 이야기 속에서는 확인을 위해서라 했지만 그렇게 두번 눌렀을 경우 설정이 풀려서 오히려 버튼의 불이 꺼지고 엘리베이터는 운행은 멈추는 경우가 더 많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신기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두번 누르면 취손된다는 것이기도 했다. 이들이 사는 곳은 고급이긴 하지만 오래된 구축 빌라였을까.

거기다 인터폰 화면으로 준태가 재현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인터폰도 자신의 집 앞이 아닌 아랫집 문앞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니 이 빌라는 층마다 카메라가 있나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윗집이 아랫집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리고 아랫집에서 비닐 끄는 소리가 윗집에 들릴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차라리 두 집이 바뀌었다면 몰라도. 윗집에서 비닐을 끄는 소리는 아랫집에서 들릴 것이다. 그 또한 방음이 완벽한 빌라라는 걸 전제로 한 이 이야기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준태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장면도 개연성 부족을 들 수 밖에 없다. 그가 끌려가는데 아래층에서 재현이 나와서 본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해도 3충에 서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니 보일 리가 없고 계단으로 간다 해도 윗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를 알고 준비해서 나오지 않는 이상은 보일 리가 없다. 일부러 준태를 보려고 나온 것일까. 나만 어색하게 느낀 것일까.

그들의 기싸움이 절정에 이르러 증거품을 숨기는 장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분명 준태는 박스를 칼로 열었다. 그리고는 다시 붙여서 숨겼단다. 갑자기 테이프는 어디서 나왔을까? 거기에 자신의 지문은 묻지 않았을까? 옛날에 옥의 티를 찾아라라고 엔지 화면을 모아 둔 프로그램이 있었더럈다. 내가 생각한 장면들 중 몇몇 장면은 그런 엔지 장면을 연상케 한다. 뜬금없이 나와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그런 설정들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이다.

준태와 재현의 기싸움은 끝이 났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즌1이 끝났을 뿐이다. 이야기는 다음 408호인 컨테이너로 이어진다. 시즌2의 시작이다. 작가는 어느 정도 스케일의 이야기를 구상해 두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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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루팡
박상민 지음 / 서랍의날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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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앤솔러지 속에서 작가의 작품을 읽었더랬다. 장편은 [위험한 장난감] 이후 오랜만인다. 현직에 있는 작가라서 자주 작품을 볼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긴 하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아주 약간은 뭐라고 해야 할까 문장이 세련되어졌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꼈다는 소리다. 무언가 투박한 느낌이 없고 잘 다듬어졌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초반 별반 크게 두드러지는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묵직하게 깔렸다. 아니 이야기 자체가 묵직하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승재 혼자였다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가 작심하고 심어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인 동생 승아로 인해서 오히려 분위기는 더욱 밝고 명랑하고 때로는 가볍다. 그 조화로움이 적당해서 읽기가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승재는 브로커다. 처음에는 불법적으로 일을 하는 장기 매매나 뭐 그런 걸 생각했었는데 의료 사고를 캐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돈을 받는 그런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의료 사고라는 것이 상당히 밝히기가 어렵다. 아무리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전문가들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조작이 된 경우도 먾으며 아는 사람만 아는 자기들만의 커넥션이 따로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일반 사람으로서는 그저 살아 있게 해줬으니 고맙고 죽었다 할지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그것 또한 남아 있는 가족들이 있을 때나 가능한 법이다. 요즘처럼 일인 세대가 대세라면 무연고 환자들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본다. 그들이 돈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가족도 없고 이웃도 없고 돈도 없다면 병원은 누구를 상대로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으랴. 그것도 참 문제이긴 할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 사이트였다. 누군가 사이트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올렸고 그것에 댓글이 달렸지만 사람들이 캐내는 것이 무서워진 작성자가 글을 삭제한 것. 경찰은 특정인을 파악해서 글 쓴 사람을 찾아내지만 정작 당사자는 발을 빼고 부인한다. 결국 승재에게 돌아온 사건. 승재는 이것이 사건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병원에 투입한다. 물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코인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오빠의 아지트로 들어온 동생과 함께다. 이인 일조로 투입된 그들은 어떤 진상을 마주할 것인가.

그나저나 아픈 건 참 별로다. 죽을 때도 온갖 바늘을 찔러 줄을 달고 침습적인 처치를 하지 않던가. 이러다가 나중에는 캐모포트를 안 달고 죽은 환자는 사고로 죽은 사람들 말고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냥 조용히 죽고 싶은 것이 바람이 된다. 주사고 약이고 뭐고 아무 것도 싫다. 그저 바람 가는 대로 조용히 시간이 흐르는 대로 조용히 그렇게 있다가 내 생긴 모양 그대로 조용히 그렇게 눈을 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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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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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일을 딱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다. 전문적으로 돈을 받고 하는 것은 아니었고 국제 스포츠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를 했더랬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선수들 길안내 같은 그런 자질구레한 일이긴 했지만 인터프리터란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 동안은 괜히 뿌듯했다. 지금은 알아듣기라도 하면 땡큐랄까.

이 책은 독특하게 희곡도 아니면서 그런 비슷한 구조로 편집되어 있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라는 문장이 번갈아가면서 나오고 그 사람들이 한 말이 뒤에 따라붙는 방식이다. 물론 화자가 바뀌면 앞에 나오는 주어가 바뀐다. 그런데 중간중간 나는 생각한다라는 문장도 있어서 전부가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생각한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진짜 사람이 속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진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간혹 웃음이 나기도 한달까. 가족이긴 해도 다 말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는 법이다.

덴마크로 입양된 나는 간간히 한국에 와서 진짜 가족들을 만난다. 엄마와 언니들 때로는 아빠와 조카들까지.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통역사를 대동해서 가족들을 만난다.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화로 미뤄 보아 통역사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 한국 가정의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덴마크어와 영어는 할 줄 알지만 한국어는 단어나 인사말 정도만 아는 듯 하다. 눈치로 때려 맞추는 것도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어를 조금 배우는 것 같기는 하나 전면적에 나서서 사용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마도 어색할까봐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아니 가족들이 알아듣지 못할까봐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이미 몇번 만난 상태에서 시작된 이 책의 이야기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어느 순간 그렇게 끝났다. 통역사와의 관계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디 영원한 것이 있으랴.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동일하다. 본문 속에서 등장하는 책 제목도 작가가 쓴 책과 동일하고 입양갔다 진짜 가족을 만나는 것도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담았다. 만나는 작가와 번역하는 작품의 제목 또한 현실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작품 분류에도 엄연히 소설로 되어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런 설정은 성소수자로 설정이 되어 있는 나라는 주인공과 작가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구분해 주는 기준일까.

가족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무음으로만 이해한다. 책에는 그래서 공간이 많다. 단순하게 마침표만 찍혀 있는 문장들. 그 문장들을 나는 통역사가 이야기가 해주기까지 기다린다. 남의 말을 전달한다는 것. 가장 가까우면서도 내면적인 작업이라 생각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의 말을 말한 사람의 생각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2023년에 다른 통역사를 데리고 서울에 와서 가족들을 만났던 나. 조카들이 성장을 해서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한국어를 좀 배워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고도 그대로 다 말할 수 있었을까. 통역사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긴 했을까. 왠지 모르게 그 다음의 이야기가 계속 상상이 되어진다. 작가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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