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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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던 것은 몇년전이었다. 신경외과 의사가 암에 걸려서 죽기 전에 쓴 글이라고 했다. 설정 자체가 신파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있었다는 일이어어서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읽을까봐 그냥 애써 마음에서 지웠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백쇄다. 이 책이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저자의 진솔한 그리고 솔직한 그리고 실제로 있었다는 그런 점이 바로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제목에서 바람이라는 글자는 정말 바람이 되어 날아가듯이 표현했다. 저자도 지금쯤은 바람이 되어 훨훨 날아가고 있을테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마구 펑펑 눈물이 나거나 울음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야기의 앞부분은 자신이 의사가 되기 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집안이 어떠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비롯해서 영문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자신이 어떻게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영문학과 생물학 전혀 다른 문과와 이과적인 요소가 아니던가. 한 사람이 그 두 분야를 섭렵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그의 글은 막힘이 없이 읽힌다. 에세이라고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이 잘난 것만 드러내지도 않아서 깔끔하고 매끈하고 무리 없이 전개된다. 이런 부분이 아마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인생의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질병에 사로잡혀 버린다. 의사가 그것도 신경외과 의사가 되는 길을 혹독하다. 너무 힘들고 어려우서 우리나라에서는 티오가 매번 남는 그런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 전공을 선택해서 사람들을 살리고 앞으로 몇십년이나 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뛰어난 실력의 그가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본문에서 그가 담배를 피웠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정말 그가 암에 걸릴 위협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인다. 이렇게 저렇게 변명을 생각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그의 실력이 그의 의술이 그의 인성이 너무 아깝고 또 아까워서이다.

병에 걸렸다고 그가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받고 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약도 잘 들었다. 항암 대신 선택한 약이 효력이 있어서 나아지는 듯이 보였다. 다시 그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암환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전이와 재발아닐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 누구보다 바라고 또 바라지만 왜 나쁜 일은 결코 피해가는 일이 없는 것일까.

이 원고는 완전하지 못한 채로 남았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께 되어서 다행이다. 그의 원고가 끝난 후 그의 아내이자 동료 의사인 루시의 이야기가 에필로그로 실려있다. 떠난 사람보다 남아 있는 사람이 훨씬 더 고통스러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남아버린 사람이기에. 루시와 폴 사이에서 남은 사람이 루시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 장에 실린 세 명의 사진이 눈에 밟힌다. 그저 이렇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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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찾던 무서운 이야기
코비엣TV 엮음 / 북오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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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호러 무비나 소설을 읽더라도 결코 잠을 못자거나 하는 일이 없는 장점을 가진 나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냥 잠이 안 올 때가 많아서 불면증이 호러보다 더 무서운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섬득함을 남겨주었다. 괜히 한번씩 더 뒤척거리게 되는 거 말이다. 그것이 바로 실화가 주는 힘이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작가가 직접 겪었거나 또는 자신의 지인들로부터 듣거나 제보를 받은 것들이다. 즉 누군가는 이 일을 실제로 겪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은 현실성이 없더라도 실재했다는 느낌만으로 섬짓하다.

약간은 비급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려나.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결코 자신의 존재를 밝은 곳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저 바닥 깊은 곳에 가려있지도 않는다. 결코 죽지 않는 무언가처럼 계속해서 꾸물거리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 여기 있다 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귀신같은 존재랄까. 보이지도 않지만 누군가는 느낄 수 있다는 것. 흔히 귀신을 느낀다고 하면 무당이나 그런 사람들을 떠올릴 테지만 영에 예민한 기운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하니 무시하지 못 할 일이다.

총 8장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들은 그 속에서 또 짧은 에피소드로 나뉜다. 지금은 쓰지 않는 장례식장을 방문한 이야기도 섬짓하고 남들은 보지 못했다는데 자신들만 보았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들은 더욱 무서움을 자아낸다. 그것이 어떤 특정 상황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작가는 직접 유튜브를 운영한다고 했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 중에 직접 라이브로 방송을 한 것도 있고 유튜브에 남아있다고 하니 궁금한 사람은 영상을 참고로 해도 좋겠다. 단 그로 인해 어떤 피해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이 글을 쓰고 영상을 찍은 작가의 탓도 아니고 이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긴 내 탓도 아니라는 것을 미리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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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 호러 × 제주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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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는 알아도 고딕호러는 또 낯설기에 검색을 해본다. 고딕물이라고 통칭해서 죽음에 대한 주제와 낭만주의가 결합된 것이란다. 죽음과 낭만이라 참 어색한 조합일 수밖에 없는데 또 그걸 문학적으로 풀어내면 어째 또 멋지기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 그렇다면 제목에 의하면 여기의 이야기들은 제주를 배경으로 해서 죽음과 낭만이 포함된 이야기라는 결론이 나겠다.

처음부터 읽다가 중간쯤 박소해 작가의 글을 읽은 후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조금 더 명확한 이해가 되었다. 기획자라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제주색을 주기 위해서 제주의 전설을 넣고 사회 역사적인 이슈도 추가하고 새로운 공포물을 추구했다는 것. 그래서일까 몇번을 가도 몰랐던 제주의 새로운 모습들이 이야기 속에서 많이 보인다. 알뜨르 공항도 그러하고 빌레못 동굴이나 차귀도, 곶자왈 등 낯선 장소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다음에 제주를 혹시 또 가게 된다면 이 책에 나온 이 낯선 곳들을 탐험하듯이 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제주에 살고 있는 작가가 기획한 의도가 아닐까.

제주에 취재를 갔다가 역사 속 그 어느날로 넘어가 버린 주인공의 이야기, 시댁에 아기를 뺏겼다며 탐정에게 아이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는 이야기, 한달살이를 하러 왔다가 아예 집을 사버리는 누나의 이야기, 전쟁 당시 집성촌 사람들의 노역 이야기, 등대를 지키는 일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등대지기 이야기, 이단 종교 이야기, 지역 개발을 위해 일을 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야기까지 총 일곱개의 이야기들을 무지개보다도 더 현란한 색을 발하면서 자신만의 특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앤솔러지의 힘이다.

일곱 작가 중에 홍정기 작가와 전건우 작가의 작품은 전에 읽어본 적이 있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전혀 새롭다.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들이 있는데 아마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내 성향상 앤솔러지를 잘 읽지 않아서 그렇게 치우친 경향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박소해 작가의 이름은 조금 익숙했는데 [네메시스]라는 앤솔러지 작품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이단 종교의 이야기를 그린 <라하밈>은 구마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는 느낌도 들고. 한 작품만 꼽자면 홍정기 작가의 <등대지기>. 그저 불만 껐다 켜면 되는데 2년을 버텨야 한다는 조건이 아주 극적이었다. 누구라도 살짝 혹 할 수 밖에 없는 2억이라는 돈을 내 걸어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일으키고 있다. 독자들을 어떻게 꼬셔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영리한 플롯의 전개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좇아가듯 나 또한 작가의 뿌려놓은 그 과자조각들을 홀린듯 쫓아가다가 덜컥 덫에 걸려 버렸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이런 전개를 숨겨 두었구나 애초에 혹하는 조건일 때 의심을 했어야만 했다. [전래 미스터리]에서도 봤었지만 단편에 확실히 강한 작가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싶어지는 시점이다.

목차가 아주 신기한데 제주의 지도를 그려놓고 각 작가의 작품이 배경이 되는 장소에 작품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배치했다. 어디에서 일어난 일인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색다른 시도라 여겨진다. 신박한 접근 참 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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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의 민족: 범인은 여기요
박희종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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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작가의 책은 일단 재미있다. 그것으로 거의 반 이상 작가의 책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된다. 특히 나처럼 책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고 여가 생활로 독서를 하는 경우 그 재미라는 요소는 더욱 중요해진다. 처음 작가의 책을 읽고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탕로 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픽션을 쌓아 올릴 수 있다니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작가라고 느꼈었다. 그 느낌은 몇 권의 책을 읽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번에도 그 재미는 그대로 유효하며 현실성과 픽션도 여전하다. 아마도 현실성은 많은 조사를 거쳐서 이루어졌을 것이고 픽션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온종일. 배달 라이더다. 회사를 다니는 다정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그녀가 한 프로포즈에 싫다라는 답변으로 거하게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내버렸고 이후 이별통보를 받는다. 그러다 그녀의 집에서 온 배달콜을 보게 된다. 미친듯이 달려서 도착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고 어떤 남자의 손이 나와서 음식을 들고 들어가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자신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여러기지 정황으로 보아 이상함을 감지하고 그녀의 집 근처에서 잠복에 들어간다. 대체 그는 누구이고 다정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의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것은 친구 순경과 정석이다. 만년 고시생인 순경과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석은 워낙 그를 잘 알고 있고 다정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저런 의견을 내기도 하고 다정의 상황을 파악한 후 그녀의 행방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만약 종일이 혼자였다면 이런 대규모 작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석의 머리와 순경의 빠른 동작들이 있었기에 손발을 더 잘 맞출수 있지 않았을까.

그냥 단순하게 잘 읽히는가 하면 후반부 들어서는 분명 작가가 숨겨 놓은 사회적 이슈들이 부각되어 드러난다. 특히 [강남에 집을 샀어]라는 책을 떠올리게 하는 이슈도 포함되어 있어서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같은 이슈를 다르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엔딩은 분명 다르지만 말이다. 이렇게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도 서로 다른 책을 읽어가는 재미 중의 하나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뚜렷해서 이 멤버들 그대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봐도 좋을 듯 싶다. 종일과 정석 그리고 순경의 합은 그아말로 찰떡이 아니던가. 순경이 고시에 붙고 그 이후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좋을 것 같고 정석의 편의점에서 사건이 일어나도 그 또한 매력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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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색환시행
온다 리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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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작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책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들도 물론 존재하겠으나 비슷한 느낌으로 죽 이어지는 작가도 있다.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에쿠니 가오리와 온다 리쿠다. 어떤 이야기를 읽어도 처음 그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오리의 경우에는 네이비 컬러의 짙고 푸른 바탕이 늘 내려 앉았다. 표지의 색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느낌이 그러하다. 어떤 이야기를 읽어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온다 리쿠의 경우에는 마치 꿈같은 느낌이다. 글자로 되어 있는 것을 분명 읽고 있음애도 불구하고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 있는 느낌이랄까. 명확하게 주제가 제시되어 있고 소재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야기라도 그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온다 리쿠의 경우 더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면 좀체 시작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번 이야기는 제목부터 모호한 느낌을 준다. 둔색환시행. 발음도 어려운 이 단어가 주는 뜻은 무엇일까. 구글 번역기를 켜보니 환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둔색이라는 뜻이 환상이라는 것일까. 온다 리쿠를 나타내는 가장 적확한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제목에 비해 이야기는 비교적 명확하다. 2주간의 크루즈 여행을 통해서 그곳에 한데 모인 관계자들이 '밤이 끝나는 곳'이라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내용이다. 책의 내용은 세 명의 엄마를 둔 아이의 이야기다. 낳아준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고 키워준 엄마는 비뚤어져 있으며 표면상의 엄마는 체면 치레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신뢰할 수 없는 엄마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 주된 내용일 것이다.

이 소설이 뭐 그리 중요할까 하지만 그 소설이 가진 특성 때문에 특징이 생겨 버렸다. 영상화를 하려고 할 때마다 사건이 일어나서 엎어진 그런 소설이다. 소설이 영상화 되다 엎어지는 일이 한두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뭐 그리 대수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에서는 판권이 팔렸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지만 정작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다 떠나고 난 이후일 때도 많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는 소리다. 각색도 해야 하고 배우 캐스팅도 해야 하고 그 외 장소 섭외라던가 기타 등등 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한 두달에 뚝딱 하고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경우 이것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물론 생기기는 하지만.

이 '밤이 끝나는 곳'이라는 책의 경우는 조금은 더 특이하다. 그냥 엎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사고가 생겨서 찍은 필름들이 다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각색가가 자살을 하는가 하면 조연 배우들이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거기다 카메라 감독까지 죽었기에 더욱 미스터리한 책이 되어 버렸고 저주받은 소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것이다. 이제 작가 고즈에는 관계자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취재를 하려고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려는 것이다. 픽션이 될지 논픽션이 될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저 기회가 있었기에 그것을 잡고자 했을 뿐이다. 감독, 배우, 편집자, 프로듀서,평론가, 만화가 등 소설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이 기회는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운 법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언가 큰 사건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시종일관 잔잔히 흘러가는 이야기는 내가 이들과 함께 크루즈를 타고 2주간 여행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처음에는 단체로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 다음에는 개별 인터뷰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사건들의 뒷 이야기를 알아낸다. 그렇게 하면서 고즈에는 자신의 남편의 전처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밤이 끝나는 곳'의 이야기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아마 그녀는 이 여행을 통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아무리 깊은 어둠이 틈탄 밤이라 할 지라도 언젠가는 밤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온다. 2주간의 여행을 밤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 육지에 돌아온 것을 아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말도 많고 사건도 많았던 그 소설은 만화로 그리고 연극으로 다시 제작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역시도 저주받은 작품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낼 수 없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그리고 온다 리쿠의 작품은 여전히 내게 몽롱하다 꿈같고 환상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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