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온천 여행
다카기 나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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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장 하고 싶은 꼽으라면 아마도 여행일 것이다. 남들보다는 자유로운 직업인지라 일년에 적어도 한 두번은 해외로 나갔다 오곤 했었는데 그 숨쉴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렸다. 그나마도 내가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행이 아니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다니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떼를 지어 모이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버렸으니 그냥 간간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달까. 그래서인지 여행 관련 서적이 부쩍 인기가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여행이 고파서라는 이유 외에도 이 책을 보고 싶은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온천이다. 작가는 온천을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서일까 온천에서 나온 직후 또 다른 온천을 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온천만 목적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내가 갔던 것은 북큐슈 지역으로 구마모토와 후쿠오카, 유휴인 벳부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다케오나 사가 지역은 한국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이라서 그곳의 온천들도 좋았다.

사실 온천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려서 그렇지 그냥 목욕탕이라고 해도 좋다. 일본의 목욕탕은 진짜 다양하다. 나는 사박오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다 모두 다른 온천을 들렀었다. 물론 호텔도 온천호텔이서 그것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열 개가 조금 못 되는 온천을 다녀온 셈이다. 작가만큼은 아니어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온천을 다녀왔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혹시 내가 다녀온 온천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일본은 온천이 꽤 발달한 곳이다. 내가 다녔던 곳들도 역에 족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그곳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일상적인 것들이 그립다.


작가는 도쿄를 출발해서 니가타, 시즈오카, 도치,기 후쿠이 등 총 여덟지역을 다녀온다. 길게는 이박삼일이지만 대개는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이다. 그 짧은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사용했는지 그림 속에서 그 촘촘함이 엿보인다. 실제로 작가가 짠 일정이 사진 속에 나와있는데 꼼꼼함을 여실히 보여준달까. 그렇기 때문에 기차를 놓쳐서 절망하는 작가의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그래도 또 얻는 것은 있으니 너무 실망하진 않아도 좋으리.


이 여행의 목적은 온천이지만 이동수단이 대부분 기차여서 기차 여행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중간중간 일일이 기차선을 그려주어서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머리속으로 그리면서  따라가게 된다. 일본을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차도 지하철도 어마무지하게 복잡하다. 자유이용권이 있다고 해도 혼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노선이 바뀌게 되면 또 다른 표를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으로 그런 모든 경우를 다 대비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상상이 된다. 그 길을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란.


온천마다 특징이 모두 다르다. 그림 속에서 그 차이점이 드러난다. 노천온천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동네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도 있고 우리나라 찜질방처럼 되어 있는 곳도 있고 호텔이 같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역에 온천이 있는 경우도 있다. 아, 이 책의 즐거움 하나를 또 놓칠뻔 했다. 그것은 바로 먹거리다. 맥주를 좋아하는 작가는 어딜 가나 맥주와 함께 지역의 특산물을 먹는다. 그것을 보는 즐거움은 여행과 함께 놓쳐버린 즐거움을 되찾아준다.

[도쿄에 왔지만] 이라는 책을 통해서 작가의 그림의 재미를 알았다. 이번에도 그 재미는 여전하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딱 작가의 그림인 줄 알았다. 주인공은 단순화 되었지만 배경이나 그밖의 모든 것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둔 덕에 여행하는 맛이 절로 난다. 이 책을 들고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한 지역이 끝나고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과 여행 팁 그리고 자신이 갔던 곳의 정보들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정말 갈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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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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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있다.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아빠가 백화점에서 새로 사준 유카타를 곱게 차려 입고 나갔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친구들과는 지하철로 이동했고 역에서 내려서 한 십분 가량 걸으면 집이 나온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친구들과 놀러 간 즐거운 하루였을뿐 아무 문제 없는 행동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렇게 늦게 집에 들어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죽임을 당했다. 이 아이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하는가. 이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그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인가. 이 아이를 죽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2004년에 발매되었던 이 작품을 보다가 번역자는 다시 한번 서지 정보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같은 범죄는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것은 일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저질러지던 범죄가 현실화되었다는 소리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은 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다기보다는 익숙해져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면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았을까? 예전에는 단지 몇몇을 통해서만 퍼져나갔지만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된 이후로는 단 몇초만에도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가 있다. 그것이 범인들에게는 사람을 협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피해자들에게는 어쩔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약점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 (534p)


청소년 범죄문제와 성문제 그리고 왕따 문제와 복수와 마약까지 다양한 주제를 한데 넣고 잘 버무렸다. 너무 큰 이슈들이라서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그 모든 것을 넣고도 어울리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요리를 했을 때 정말 비싸고 좋지만 너무 많은 재료는 오히려 맛을 해칠수가 있지만 그런 튀는 요소들을 다 넣고 그런 해침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보지도 않고 산다는 소리가 나오는가 보다.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청소년 문제는 드러나고 있고 [몽환화]에서도 마약문제는 다루어지고 있다.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찢어져 있던 소재들을 한데 몰아 넣고 그것을 흥미롭게 이끌어가면서도 어떤 결론을 명확히 내리고 있지 않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당장 복수를 하러 나서고 싶을 것이고 거기에 계속적인 정보가 들어온다면 아내도 없이 딸과 함께 살던 아버지로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살 희망도 없으니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복수를 꿈꿀 것이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살인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말이다. 그 둘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사람마다 다 모든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참작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고 법으로는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상참작의 요소가 있는 것은 나중 일이다.



아무리 윤리적인 설명을 들어도 자기 자식이 죽임을 당할 만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267p)


누군가는 범죄자이면서 가해자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부모가 있다. 그런 자식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것도 자식이라고 감싸줘야 할까. 아니면 우리 자식이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법대로 심판해 달라고 다 드러내야 할까. 만약 그렇게 했을 때 남은 가족들이 받을 상처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살아온 동네에서 살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이 누리는 삶을 그대로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잘못 길렀으니 당연 부모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의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134p)


청소년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악화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법의 악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으니 청소년 범죄가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소리도 몇년째 반보되고 있는 소리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으니 그만이라고 귀닫고 외면할 것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저질러지고 있는 범죄들은 보이지 않는가? 제발 눈 열고 귀열고 보고 들으시길. 청소년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더이상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범죄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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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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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때까지 알고 있던 시인 정호승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시집을 들고 읽었어도 제목이 주는 그 느낌에 의지해서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만 받아왔고 다른 시들과 같이 편집된 작품에서는 오로지 그 시의 느낌만 몰입했다. 이 시선집은 다르다. 그야말로 총천연색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정적인 면을 보여주는가 싶으면 사회적인 단면을 거침없이 드러내서 보여주면서 잔잔한가 하면 날카롭다. 야누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시라는 것이 이렇게 다양했던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느낌으로 보인다. 프리즘에 투영된 색색의 무지개를 보는 느낌이다. 분명 아무것도 색이 보이지 않는 가시광선을 비췄는데 찬란하게 나오는 색들처럼 그저 단순하게 하얀색의 표지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다채로운 색으로 다가온다.

 

순아 오늘도 에미는 네가 보고 싶어

아픈 몸을 이끌고 역에 나갔다

와닿는 열차의 어느 칸에서고 네가

금방이라도 웃으면서 내릴 것 같아

차마 발길을 못 돌리고 에미는 또 울었다

(중략)

썰렁한 네 자취방 윗목에는

아직도 빈 라면 봉지가 나뒹구는데

순아 하늘에는 겨울에 무슨 꽃이 피더냐

이 겨울 하늘에도 눈물꽃이 피더냐

 

53쪽의 <마지막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울컥거린다. 단 두쪽의  짧은 싯구 속에는 소설보다도 더 장황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엄마는 순이를 데리러 가지만 순이는 오지 않는다. 아니 올수가 없다. 순이는 가스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아이를 그리워하면서 또다시 역으로 나간다.

 

아이가 떠난 그 방안에는 아껴서 살겠다고 먹었던 라면봉지만이 뒹군다. 울컥하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떠났으면 잘 살아야지. 왜 가스는 마시고 그랬냐. 뭐 순이라고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냐마는 기필코 기어서라도 나오지 못하고 연기에 허무하게 스러져버려 연기가 되어버린 그 영혼이 아깝다. 엄마의 절절한 심정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 있다.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은 201쪽의 <혀>라는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단지 주인공이 사람에서 개로 바뀌었을 뿐이다. 새끼가 죽은 것을 모르고 계속 핥아주던 혀. 그 혀가 닳아버린 정도로 핥아준 어미의 사랑이 단박에 드러나는 구절이다. 작가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도 제외할 수 없다. 257쪽 <못>이라는 작품에서는 아버지를 구부러진 못에 비유한다. 못도 처음에는 반듯했고 꼿꼿했고 날카로왔다. 수없이 박히면서 구부러졌고 시인은 그런 구부러진 못에 아버지를 비유하고 있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라는 구절을 보면서 누구라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라게 되지 않을까. 

 

당신 떠난 지 언제인데

아직 신발 정리를 못했구나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부모의 사랑이 느껴지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도 많이 보인다. 322쪽 <신발정리>와 365쪽의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라는 작품에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망자의 유품들을 정리한다. 신발이나 옷들을 태우고 버리고 정리를 한다. 누군가를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구 속에서는 아직도 신발 정리는 하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그리움을 드러낸다.

 

나는 동생이 떠난 후 그 아이의 신발을 오래도록 신었다. 신발이 자기를 부르는 것 같다면서 이 신발을 꼭 사야한다고 주장했던 그 신발이었다. 그 신발을 나는 누군가에게 주거나 태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구장창 신었다. 태백산에도 그 신발을 신고 올랐다. 산을 내려 오니 신발 바닥이 닳아서 나달나달해졌었다. 그제서야 그 신발을 버렸다. 시인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마음은 시간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도 계속 생각난다. 그것이 부모일수도 형제일수도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있겠지만.

 

시의 다채로움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와 주님에 관한 기독교적 사상을 그리는가 하면 불교적인 색채들이 가득한 작품도 있다. 그냥 본다면 시인의 종교는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그런 대목이다. 무엇이면 어떠한가.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다 시로 표현되는 하나의 소재일 텐데 말이다. 그런 고정관념에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시의 제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리운 부석사>이다. 부석사뿐 아니라 낙산사가 제목에 들어간 시도 있다. 301쪽의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라는 시에서는 독특한 비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을 담배에 비유하다니 시인은 담배를 피우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인가 아니면 떨어진 꽁초들을 보고 한 생각인가 궁금해진다. 같은 소재를 보더라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사람 뉘 있겠는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땅의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고

말할 때와 침묵할 때와

그 침묵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런가 하면 정호승 시인이 흠모하는 시인이 윤동주라는 것을 아주 잘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들도 보인다. 115쪽의 <작은 기도>가 바로 그렇다. 구절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이런 느낌을 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하는 묘한 데자뷔를 느끼게 된다. 바로 윤동주의 시다. 이런 식으로 그의 시의 느낌을 가져다 표현하다니 얼마만큼 애정해야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것인가 하고 다시 한번 이 구절을 가만가만 되뇌게 된다.  윤동주의 시를 찾아서 비교해보게 된다.

 

최루탄을 쏘자 낙엽들은 흩어졌다(중략)

최루탄을 쏘자

산새들은 또다시 피를 흘렸다

 

아무도 모른다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가

아침마다 꽃을 주워 먹고 산다는 것을

 

97쪽의 <산새와 낙엽>과  218쪽의 <장례식장 미화원 손씨 아주머니의 아침>이라는 이 두 시에서는 사회적인 면이 드러남을 보게 된다. 최루탄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그때를 떠올린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그때, 나는 멋도 모르고 최루탄이 매워서 눈물콧물을 흘리고 다녔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이땅의 자유를 위해서. 시인은 그들을 작은 산새를 표현한다. 낙엽으로 표현한다. 서정적이나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더없이 날카롭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환경미화원의 모습을 그린 작품도 돋보인다. 손씨 아주머니가 꽃을 먹고 산다니. 장례식장의 조화를 보고 이런 작품을 생각한 것일까. 시인이 이 작품을 무엇을 보고 쓴 것인지가 참으로 궁금해지는 그런 시점이다.  260쪽 <군고구마 굽는 청년>에서 시인은 청년이 기다림을 굽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기다림 그것은 곧 희망을 말하는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미래를 차지할 청년들이 기다림 후에 보여줄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시들을 통해서 사회성을 드러내고 있다.

 

서정성과 아름다움 사회성과 감동 그리고 날카로움이 벼려있는가 하면 종교적인 색채가 주는 느낌까지 모두를 어우르고 있는 정호승 시선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된다. 아니 그냥 책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시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사랑할, 영원히 내 마음속에 사랑으로 남아있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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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크라프트, 풍요실버타운의 사랑 - 여섯 가지 사랑 테라피 공식 한국추리문학선 10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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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가지의 맛이 골고루 잘 분포되어 있는 한 권의 책이다. 민트초코크런치,퍼플블루레모네이드, 레드 토마토, 블루샤베트, 진분홍 마카롱 그리고 더블샷 에스프레소까지 디저트들로만 이루어진 이 맛들은 이 책의 이야기를 잘 설명해준다. 민트초코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치약같다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타입슬립러브>라는 이야기가 그러하다. 빈둥지 증후군을 느끼던 한 여자의 실종.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찰들은 그녀의 빌라에 사는 세입자들을 조사해보지만 별다른 접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작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을 밑밥으로 깔아 놓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실종된 그녀의 이야기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직성이 풀렸나라는 이야기부터 이해할 수도 있겠다라는 이야기까지 민트초코만큼이나 호불호가 갈릴 이야기다.

퍼플블루레모네이드는 마셔본적 없다. 레모네이드의 상큼한 맛만 기억한다. 여름이면 카페에서 주문하는 것은 언제나 아이스티 아니면 레모네이드였으니. 하지만 블루레모네이드는 잘 모르겠다. 레모네이드란 언제나 레몬색이 아니었던가. 그것만으로도 낯선데 퍼플이라는 단어까지 붙었다. 이 레모네이드의 컬러는 무엇일까. <부처꽃 문신에 담긴 꽃말>은 작가의 다른 책에서 등장하는 프로파일러 감건호가 주인공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굿바이 마이 달링 독거미의 여인의 키스]에 실렸던 이야기라고 작가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그 책도 물론 읽었다. 감건호가 등장하는 것은 기억했지만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퍼플블루레모네이드의 맛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레모네이드의 상큼함보다는 목차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스라함이 남았다.

블루샤베트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맛이 아닐까. 시원함을 나타내는 블루와 샤베트의 차가움이 어우러져서 본격적인 더위에 지친 정신을 씻어내려준다. <공모전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지금 딱 읽기 좋다. 역시 여름, 더위, 휴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장르소설 아니던가. 본격적인 장르소설은 아닐지라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어서 충분히 즐거움을 준다. 약간의 아쉬움은 하나 남았다. 헬멧은 어디로 갔을까. 여러가지 맛을 가지고 있는 아이스크림 중에 '슈팅스타'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이 있다. 톡톡 튀는 느낌이 좋아서 애정하는 맛인데 그 톡톡 튀는 물질이 샤베트에 첨가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소리다. 시원함은 충분히 맛봤다.

진득한 맛의 마카롱이라고 표현했다. 마카롱 좋아한다. 달달함을 미치도록 좋아하니 마카롱을 빼놓을수 없다. 진득함보다는 찐득함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마카롱은 찐득함이 생명이니 말이다. <대쾌>라는 작품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현대가 아닌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화가 최북의 일대기를 단편으로 그려놓은 것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 [색,샤라쿠]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여기에 썼을까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드는 그런 작품이다. 최북이라는 주인공으로 색,샤라쿠 같은 작품을 또 한번 내주셔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이야기인 <풍요실커타운의 사랑>은 한때 이름을 날렸던 할머니 할아버지 주인공을 연상하게 만든다. 실버타운에서 할머니들을 친구로 삼아서 선동했던 메르타 할머니라던가 창문열고 도망친 100세 노인을 연상케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유쾌한 할머니들이 있다 하면서 내세우고 싶어진다. 가영, 나숙, 다정. 이름도 아주 정다운 세 명의 할머니들의 잠시동안의 일탈을 그린 이야기. 마지막이 슬퍼져서 조금 울적해진다. 이 할머니들의 활극을 그린 장편이 따로 나와도 좋지 않겠는가.

탐정 이상으로 한국 추리소설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는 [서점 탐정 유동인]으로 코지 미스터리에 도전했다. 역시나 탁월한 이야기였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들은 모아 낸 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이 책을 통해서 여려 권의 장편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낸다. 작가를 좋아한다면 이 색색가지 맛이 다른 단편도 충분히 좋아할 것이고 그로 인한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여름 더위에 지쳤다면 한편씩 골라 먹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만족할만한 시원함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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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 기억을 지우는 자
김다인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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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임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게임들이 다 그러하지 않을까. 처음에 맞닥뜨리는 상대는 대개 가뿐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물리칠 수 있다. 단계가 올라가고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상대방은 더욱 강해진다. 가장 마지막 단계 흔히 왕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이르게 되면 쉽사리 이기지 못한다.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 존재를 이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없이 내 자신이 작음을 느끼게 되는 그런 단계다. 여기 나오는 상대가 그러하다.



내면세계란 한 사람의 무의식, 과거의 흔적, 기억과 생각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유의 영역. 존재 여부마저 불명확한 이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자들을 사람들은 이런 단어로 칭한다. 호접자, 이른바 '나비'라고. (24p)


나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호접자라는 다른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 사람의 기억에 접근할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기억에 접근해서 그들에게 남겨진 좋지 않은 기억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를 지운다. 그리고 정보를 모아서 블랙박스에 저장한다. 그 모든 것들은 범죄의 경우에 증거로 채택되어서 사용될 수도 있다. 고유진은 나비다. 피해자의 치료를 돕고 돌아가는 길에 제의를 받는다. 지옥의 존재를 알려달라는 것,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하지만 주어진 돈의 액수가 크다. 아니 돈도 돈이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승낙을 한다.



끔찍한 기억이 더 크다면 네 내면세계의 배경은 지옥처럼 변해. 어디까지나 비율 문제인 거야. 좋은 기억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반쯤 무너진 건물 같은 게 되어 있겠지. (126p)


흥미롭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소재가 그러하다. 사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다 알려진 부분이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이런 부분의 접근은 언제나 흥미롭게 보인다. sf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판타지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 나비라는 존재가 그러하다. 영화속 아바타처럼 하지만 독재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는 사람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것은 12분의 1초다. 언젠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주어진 힌트가 5분의 1초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짧은 시간이었다. 눈도 깜빡이면 날아가버리는 그런 시간말이다. 그런게 그보다 두배이상 더 짧은 시간이다.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무엇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그런 시간인 셈이다. 그 사이에 인간의 기억속에서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고 아니 흥미롭지 않을수가 없다.

 


주인, 트라우마, 조력자, 그리고 나비. 내면을 구성하는 핵심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엮일 때마다 심리적인 변화를 겪고, 최종적으로는 기억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기억의 공유는 대부분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나비만 숙지하고 있던 것들을 다른 모두가 알게 되면서 위험한 상황으로 격변하게 되니 사실상 나비에게는 타임리미트가 생기는 셈이다. (334p)


하드보일드처럼 딱딱한 문체는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지 않는다. 막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게 만들어 버린다. 지옥을 찾아서 기억속에서 헤매는 고유진의 모습은 앞에서 언급한 게임을 닮았다. 미지의 존재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속에서 정보를 찾아서 처음에는 가뿐히 그들을 물리친다. 별다른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다. 주어진 것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 그 다음에는 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난다. 이제 슬슬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녀는 하나한 무기를 갖추고 싸워가며 다음 대결을 준비한다. 모든 것이 끝났나 싶어지는 찰나 숨겨졌던 대마왕이 등장을 한다. 그녀는 과연 이 싸움에서 우위를 접하고 자신만의 승리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모든 게임이 끝나고 윈이라는 한 단어가 뜨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소재 또 한명의 작가가 이렇게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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