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기억을 지우는 자
김다인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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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임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게임들이 다 그러하지 않을까. 처음에 맞닥뜨리는 상대는 대개 가뿐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물리칠 수 있다. 단계가 올라가고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상대방은 더욱 강해진다. 가장 마지막 단계 흔히 왕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이르게 되면 쉽사리 이기지 못한다.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 존재를 이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없이 내 자신이 작음을 느끼게 되는 그런 단계다. 여기 나오는 상대가 그러하다.



내면세계란 한 사람의 무의식, 과거의 흔적, 기억과 생각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유의 영역. 존재 여부마저 불명확한 이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자들을 사람들은 이런 단어로 칭한다. 호접자, 이른바 '나비'라고. (24p)


나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나비가 아니다. 호접자라는 다른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 사람의 기억에 접근할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기억에 접근해서 그들에게 남겨진 좋지 않은 기억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를 지운다. 그리고 정보를 모아서 블랙박스에 저장한다. 그 모든 것들은 범죄의 경우에 증거로 채택되어서 사용될 수도 있다. 고유진은 나비다. 피해자의 치료를 돕고 돌아가는 길에 제의를 받는다. 지옥의 존재를 알려달라는 것,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하지만 주어진 돈의 액수가 크다. 아니 돈도 돈이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승낙을 한다.



끔찍한 기억이 더 크다면 네 내면세계의 배경은 지옥처럼 변해. 어디까지나 비율 문제인 거야. 좋은 기억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반쯤 무너진 건물 같은 게 되어 있겠지. (126p)


흥미롭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소재가 그러하다. 사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다 알려진 부분이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이런 부분의 접근은 언제나 흥미롭게 보인다. sf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판타지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 나비라는 존재가 그러하다. 영화속 아바타처럼 하지만 독재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는 사람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것은 12분의 1초다. 언젠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주어진 힌트가 5분의 1초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짧은 시간이었다. 눈도 깜빡이면 날아가버리는 그런 시간말이다. 그런게 그보다 두배이상 더 짧은 시간이다.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무엇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그런 시간인 셈이다. 그 사이에 인간의 기억속에서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고 아니 흥미롭지 않을수가 없다.

 


주인, 트라우마, 조력자, 그리고 나비. 내면을 구성하는 핵심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엮일 때마다 심리적인 변화를 겪고, 최종적으로는 기억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기억의 공유는 대부분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나비만 숙지하고 있던 것들을 다른 모두가 알게 되면서 위험한 상황으로 격변하게 되니 사실상 나비에게는 타임리미트가 생기는 셈이다. (334p)


하드보일드처럼 딱딱한 문체는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지 않는다. 막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게 만들어 버린다. 지옥을 찾아서 기억속에서 헤매는 고유진의 모습은 앞에서 언급한 게임을 닮았다. 미지의 존재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속에서 정보를 찾아서 처음에는 가뿐히 그들을 물리친다. 별다른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다. 주어진 것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 그 다음에는 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난다. 이제 슬슬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녀는 하나한 무기를 갖추고 싸워가며 다음 대결을 준비한다. 모든 것이 끝났나 싶어지는 찰나 숨겨졌던 대마왕이 등장을 한다. 그녀는 과연 이 싸움에서 우위를 접하고 자신만의 승리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모든 게임이 끝나고 윈이라는 한 단어가 뜨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소재 또 한명의 작가가 이렇게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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