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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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있다.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아빠가 백화점에서 새로 사준 유카타를 곱게 차려 입고 나갔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친구들과는 지하철로 이동했고 역에서 내려서 한 십분 가량 걸으면 집이 나온다. 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친구들과 놀러 간 즐거운 하루였을뿐 아무 문제 없는 행동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렇게 늦게 집에 들어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죽임을 당했다. 이 아이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하는가. 이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그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 것인가. 이 아이를 죽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2004년에 발매되었던 이 작품을 보다가 번역자는 다시 한번 서지 정보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같은 범죄는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것은 일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저질러지던 범죄가 현실화되었다는 소리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은 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다기보다는 익숙해져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면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았을까? 예전에는 단지 몇몇을 통해서만 퍼져나갔지만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된 이후로는 단 몇초만에도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가 있다. 그것이 범인들에게는 사람을 협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피해자들에게는 어쩔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약점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 (534p)


청소년 범죄문제와 성문제 그리고 왕따 문제와 복수와 마약까지 다양한 주제를 한데 넣고 잘 버무렸다. 너무 큰 이슈들이라서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그 모든 것을 넣고도 어울리게 만드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요리를 했을 때 정말 비싸고 좋지만 너무 많은 재료는 오히려 맛을 해칠수가 있지만 그런 튀는 요소들을 다 넣고 그런 해침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보지도 않고 산다는 소리가 나오는가 보다.


[공허한 십자가]에서도 청소년 문제는 드러나고 있고 [몽환화]에서도 마약문제는 다루어지고 있다.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찢어져 있던 소재들을 한데 몰아 넣고 그것을 흥미롭게 이끌어가면서도 어떤 결론을 명확히 내리고 있지 않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당장 복수를 하러 나서고 싶을 것이고 거기에 계속적인 정보가 들어온다면 아내도 없이 딸과 함께 살던 아버지로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살 희망도 없으니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복수를 꿈꿀 것이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살인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말이다. 그 둘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사람마다 다 모든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참작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고 법으로는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상참작의 요소가 있는 것은 나중 일이다.



아무리 윤리적인 설명을 들어도 자기 자식이 죽임을 당할 만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267p)


누군가는 범죄자이면서 가해자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부모가 있다. 그런 자식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것도 자식이라고 감싸줘야 할까. 아니면 우리 자식이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 법대로 심판해 달라고 다 드러내야 할까. 만약 그렇게 했을 때 남은 가족들이 받을 상처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살아온 동네에서 살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이 누리는 삶을 그대로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잘못 길렀으니 당연 부모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의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134p)


청소년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악화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법의 악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으니 청소년 범죄가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소리도 몇년째 반보되고 있는 소리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으니 그만이라고 귀닫고 외면할 것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저질러지고 있는 범죄들은 보이지 않는가? 제발 눈 열고 귀열고 보고 들으시길. 청소년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더이상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범죄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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