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공주들 - 동화책에는 없는 진짜 공주들 이야기
린다 로드리게스 맥로비 지음, 노지양 옮김, 클로이 그림 / 이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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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 제목에 마음이 끌린다. 무서운 공주들이라니. 자고로 '공주'라 하면 누구나 생각하듯 샤랄라 공주 옷을 입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더러운 것 곁에는 전혀 가지도 않을 것 같고 왕자님들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그런것이 공주 아니었던가. 그러니 당연 앞에 붙는 수식어도 예쁜, 아름다운, 우아한, 이런 수식어가 붙어야 함이 마땅하거늘 '무서운'이라니 이 무슨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이란 말인가. 하지만 목차를 보면 금세 왜 이 조합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공주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공주와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아주 멀다.

 

일단 전쟁을 이끈 공주들이 있는가 하면 음모를 꾸민 공주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공주인 왕위를 꿈꾸던 공주들도 있다. 그리고 공주와은 정말 어울리지 않지만 난잡한 공주와 더불어 쓸쓸하게도 미친 공주로 끝을 맺고 있다. 하나같이 다 '무서운' 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공주들이다. 우리가 앞에서 생각했던 공주들은 동화책에서나 보던 그런 공주들의 모습이고 이것이 진정한 현실의 공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자고로 현실이란 이렇게 잔인하고 잔혹한 법이거늘 '공주 옷 입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픽션일뿐인 것이다하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조금은 약간은 어렸을적 꿈꾸던 이야기가 비누거품이 되어 터져 버리는 것 같아서 아주 약간은 아쉽다.

 

일단 이 책에서 공주라고 정의하고 있는 범위는 넓다.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사이에서 태어나는 여자아이를 공주라고 규정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공주는 결혼을 통해서 공주의 칭호를 받게 된 사람이나 넓은 의미에서는 공작부인까지도 모두 공주라고 의미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라는 의문은 조금은 묻어두고 봐도 좋겠다. 역사속에서 등장하는 공주들은 실제의 이야기와 그리고 전설속의 이야기가 반반이다. 최근의 공주일수록 드러난 행적을 잘 알 수 있고 사실적인 기록이 많은 반면 아주 오래전 공주이거나 또는 아주 작은 나라의 공주 같은 경우에는 남겨진 역사적 기록이 별로 없어 그 나라에서 전해지는 전설로만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전설은 이렇고 실제는 어떠하다고 다시 설명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일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접어두어도 좋겠다.

 

공주라는 이름의 이미지답게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때로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고 때로는 자신을 지키려고 그리고 때로는 왕위를 뺏으려고 전장에 직접 뛰어든 공주들이 있다. 아버지가 가두다시피하여 키운 한 공주는 어느날 해적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운명이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해적으로써의 삶은 행복했을까. 그 생활에 잘 적응한 것으로 보아 그녀에게는 딱 맞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공주로 태어났지만 뱃사람으로써 더 행복했을 것이다. 이렇듯이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 공주들의 인생이 이 책 한권에 오롯이 녹아있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탓하며 내 운명은 이래서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주로 태어났어도 힘들게 살아온 인생들도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적인 즐거움과 전설속의 이야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 한 권. 때로는 오싹할만큼  끔찍한 이야기들도 있고 때로는 안됐다하는 마음이 들 만큼 슬픈 이야기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왕이 나이가 어리면 중전들이나 대비가 수렴첨정을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공주 이야기도 여기에 들어갔으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된다. 왕위를 얻으려고 노력한 공주편에 말이다. 아마 꽤 많은 공주들이 포함되지 않을까. 그 중에는 대표적으로는 장희빈도 포함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공주들도 꽤 무서운 공주들이 많은 듯 하다. 왕들에 묻혀서 빛을 발하지 못해서 그렇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무서운 공주들 편을 모아보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 되지 않을까.  한여름 뜨거운 햇살 만큼이나 뜨거운 공주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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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2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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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스포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궁금해져서 더 집중해서 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죽는지는 정말 궁금했다. 다른때와는 다르게 더욱 집중해서 한줄,한줄을 읽는것이 아니라 한글자,한글자를 더욱 열심히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사건을 아직까지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나라에서 저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단지 한 부부의 죽음이 미칠 파장이 그렇게 클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그냥 풀리지 않은 사건으로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이름은 알지만 찾지 못하는 범인. 그저 현상수배범으로 전단지에 이름과 변장했을 사진만 남긴 채 시간이 지나면 빛 바래듯이 그렇게 조용히 없어지지 않았을끼. 하지만 일본의 경찰은 아직가지도 도전하는 중이다. 새로운 정보를 찾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몽타주를 작성하고 방송을 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정보들을 모아서 다시 조사를 하고 그렇게 한발한발 범인에게 다가서고 있다.

 

꽤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이 책은 이제 서서히 그 범위를 좁혀 나간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게이의 동거남. 또 역시 배경을 알지 못하는 시장에서의 아르바이트 남자. 그리고 또 한명의 미궁에 쌓인 섬의 한 남자. 이 세 명 가운데서 경찰이 찾고 있는 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세명 다 범인의 조건에 맞는다. 그렇다면 한 사람씩 살펴보는 수 밖에 없다. 독자들은 세명을 동시에 알고 있지만 경찰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한명의 위치를 발견하고 접근하고 있다. 과연 범인이 밝혀지는 계기가 무엇이 될까.

 

분노와 의심. 누군가가 나를 의심하고 생각하고 있을때 사람들은 기분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내가 가장 믿고 잇고 사랑한다고 느꼈던 사람이 나를 의심한다고 생각한다면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이 아니고 새로운 사람이라면, 그것도 딱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쪽 입장에서는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거기서 갭이 생긴다. 서로간에 믿지 못하는 의심의 갭. 그 간격을 극복하고 사람들은 다시 사랑을 하고 잘 살아 갈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속시원히 하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 있다. 내가 말함으로 인해서 더 나쁜 결과가 나타날수도 있고 굳이 내가 그런 모든 것을 시시콜콜히 말하지 않아도 완전히 나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만 나를 보고 믿어주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그 의심이 커지면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멀어지는 마음은 누구도 잡을수가 없다. 한쪽은 마음이 멀어지고 의심을 더욱 하기 시작하고 한쪽은 그 의심을 받음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결국은 떠나게 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다.

 

세명 중에 범인은 단 한 명, 그 나머지 두 명은 절대 범인이 아닌 그저 닮은 사람일뿐인데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의심함으로 인해서 그들의 관계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한쪽이 의심을 받아서 떠난다면 그 의심이 풀린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다시 믿음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그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한번의 임심을 받은 사람은 그 상처로 인해서, 그리고 의심을 했던 사람은 처음에는 미안해서 잘 해줄지 몰라도 또 다른 일이 일어나면 또 의심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그 의심은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낸다. 그것이 작은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낸다면 병으로 규정이 되겠지만 누가 봐도 화를 낼 일에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 자신의 분노를 조절할 줄 아는 것 그런 대응이 필요한 때가 이닌가 싶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누가 한 일인가는 밝혀졌지만 무엇때문인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그럴것이다 하고 그때의 사정을 바탕으로 짐작을 할 뿐. 그렇지만 그도 아마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화를 참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뿐이다. 더운 여름 우리 모두 분노를 잘 조절할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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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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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입을 모아 말했다. '악인'을 뛰어넘는 대표작이라고. '원숭이와 게의 전쟁'이라는 요상한 제목을 가진 책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넘기고 말았는데 그 작품도 이 작가의 책이었다. 그리고 물론 나는 악인을 읽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게는 요시다슈이치라는 작가의 첫 작품인셈이다. 그런만큼 중요하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듯이 책과의 첫인상은 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을 것이냐 또는 그만둘 것이냐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분노. 즉' 화'라는 말이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생겨나는 일은 현대 들어서 더 많아진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점점 빠름을 추구하는 이 세대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저 모든 것을 느릿느릿하게 해도 이해가 되던 오래전과는 달리 모든 것이 빨리 돌아가는 이 시대에 자신만 늦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일에도 지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성격도 점점 빨라졌고 그런 것들이 점점 화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한 부부가 죽음을 당한다. 여자는 목이 졸려서 그리고 남자는  칼에 찔려서. 범인은 아마도 부부가 집으로 돌아오기 이전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하다. 누가 범인인지는 나왔다. 하지만 그가 왜 이 사람들을 죽였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 범인은 지금 일년째 잡히지 않았다. 사건은 미궁에 빠진 것이다. 다행이 경찰은 이 사건을 덮지 않고 범인을 찾으려고 전국적으로 수배명령을 내리고 일년을 맞이해서 범인의 달라진 모습이라던가 여자로 위장한 모습을 방송에 내보는데 제보전화는 빗발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사건을 뒤로 하고, 이 사건을 좇는 경찰도 일단 접어 두고 작가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든다.

 

집을 나갔다가 아버지에 의해서 돌아온 딸아이. 아버지와 딸로 이루어진 가족 그리고 사촌언니까지. 집으로 돌아온 이 딸은 과연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아버지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와 딸로 이루어진 가족. 항상 엄마가 사고를 치고 그 사고를 수습하지 못해서 아무도 모르게 도망을 다닌다. 딸이 엄마를 걱정하고 돌보는 것은 어찌보면 에쿠니 가오리의 '하나님의 보트'라는 책을 좀 닮기도 했다. 그녀들은 이번에는 오키나와로 간다. 섬으로 간 만큼 그 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여기에 또 다른 인물이 추가된다. 일이 필요할때마다 일을 하는 게이. 드러내놓고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그. 그는 우연히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서 남자를 만나고 무엇엔가 홀리듯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서는 그대로 그들은 같이 사는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아픈 엄마에게도 잘 하는 그를 보면서 다시 한번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그 남자. 그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계속 등장하는 인물들로 인해 헷갈릴만도 하고 지칠만도 하건만 꾸준히 이끌어 오는 힘이 내쳐 달려가면서 읽게 만들어 버린다. 정말 끝없이 나오는 화수분처럼 인물들이 추가되면 일단 관계도를 그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그만두어졌고 그 다음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기존의 인물들에게 연결되어 나오는 관계들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읽어도 이해가 될 만큼 잘 읽혀지는 글이다. 자, 이제 패는 던져졌다. 이 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설마 이 모든 사람들이 다 각기 자신의 일을 말하리라고는 생각할수 없다. 그것은 그냥 단편의 이야기일뿐 스토리상으로 이 모두는 연결되어야만 할 것이다. 분노라는 제목이 주어져 있으니 이야기는 분노를 소재로 해서 연결이 될까.그렇다면 각기 다른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하나로 엮이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더해가면서 읽힌다.

 

범죄가 저질러 지면 보통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범인을 숨긴다. 증거를 던져주고 힌트를 주지만  끝까지 사람들이 모르게 숨기는 것이 매력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누가 범인이지 알려주고 있다. 이름까도 초반에 알려준다. 하지만 그가 어디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독자들은 이름을 알고 있지만 이름을 모르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는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저 많은 사람들 속에서의 누군가는 범인과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된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힌트 세가지. 외꺼풀의 눈, 뺨의 점, 그리고 왼손잡이. 이 세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등장한 인물 중 수상한 사람인 그를  딱 찍어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는 우리가 생각한 대로 범인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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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다이어 1
미셸 호드킨 지음, 이혜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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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독서의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번역자가 쓴 후기라던가 또는 작가후기를 먼저 보는 편이다. 그 글을 읽고 나면 어떤 느낌으로 이 글을 썼는지를 알 수 있어서 더 책을 읽는데 빠져서 읽을 수 있달까 하는 그런 느낌 때문인데 간혹 가다 친절하게도 여기에는 스포일러가 있어요 하고 알려주시기도 하신다. 그런것을 무시하고 그냥 대충 읽어서 어떤 느낌이구나를 알고 가는 편이긴 한데 이번에는 그런 버릇때문에 당하고 말았다.

 

항상 뒷페이지를 펴서 '끝'이라는 한 글자를 확인하고 페이지 수를 확인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권에 계속'이라는 단어를 보고 말았다. 이 책이 끝이 아니었다. 그 소리는 이 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던지 마무리는 되지 않는다는 그런 소리다. 시리즈를 기다리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그 결론이 궁금해서 읽기전부터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되었다. 작가 소개편에 보면 이 책은 3부작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 중에 첫번째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결국 긴 거리, 오랜시간을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가야 하는 것이다. 삼부작이 한꺼번에 세권이 딱 나와 주면 좋지만 작가가 그렇게 미리 내는 경우는 없으니 일단 시작을 하고 중간중간에 쉬는 걸로 봐야 할듯 하다.

 

책표지를 보면 분명 어떤 한 여자가 나와 있다. 하지만 그녀의 두손은 앞으로 뻗어서 무언가를 잡으려 하는 듯 하고 그리고 얼굴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고개를 흔들던 찰나에 찍인 흔들린 사진이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물에  빠진 사진이라는 걸 알수 있다. 위쪽에 반사된 영상이 보인다. 하지만 얼굴은 드러나 있지 않다. 물속에 몸은 들어가 있고 물밖에 얼굴은 나와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물에 빠져 죽은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물속의 여자가 과연 마라일까.

 

이야기는 그 전과 그 후로 이동을 하면서 나누어지고 있다. 그전 이라는 것은 마라가 사고를 당하기 이전이고 당연히 그 이후는 사고 이후이다. 마라는 한밤중에 친구들과 낡은 건물에 들어갔다가 건물붕괴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친구 둘과 남자친구 그리고 자신까지 넷이 들어간 그곳에서 오로지 혼자만 살아 남는다. 자신이 가장 친했던 친구 레이첼과 남자친구였던 주드 그리고 주드의 동생이었던 클레어까까지 모두 그곳에서 죽었던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해 그녀는 다치지는 않았지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 죽은 친구들이 자꾸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분명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보았는데로 불구하고 그들은 때로는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했던 거울속에서 나타나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때로는 자신의 침대 옆에서 또는 창문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때로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마라는 자신이 환상을 겪고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꿈이야 하면서 깨려고 노력을 한다. 가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게 되고 먹고 싶지는 않지만 약도 먹게 된다. 그곳에 있으면 친구들 생각이 날 것 같아서 온 가족이 이사도 하고 전학도 간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녀를 따라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수 있겠지만 새로운 학교에 중간에 가서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전학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겪게 되는 것은 모두 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학기초와는 다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익숙해져 있고 자기의 자리를 찾아 있는 반면 자신은 이제 출발점에 서서 혼자 외로이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같이 겪어줄 친구가 있다면 좋으련만 다행히 마라에게도 제이미라는 친구가 나타났다. 여러가지로 똑똑한 그는 마라에게 수업을 도와주기도 하고 마라가 못 하는 과목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이 되는 노아. 제이미는 그가 너를 이용만 할거라고 경고를 하지만 마라에게 노아는 달랐다.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같았을지라도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대하던 것과 달랐던 것이다. 마라가 까칠하게 굴면 굴수록 더욱 그녀에게 가까이 하려고 하는 노아. 그들 둘의 운명은 무엇으로 엮여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죽은자들이 등장을 하니 호러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라가 계속 다른 느낌의 현실을 보니 판타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십대의 주인공들이 적극적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또 로맨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가지로 장르를 딱히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그런 느낌의 책 한권을 만났다. 마라는 자신이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 그리고 또 자신의 곁에 있는 노아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드디어 알아냈다. 그렇다면 그 능력으로 그들 둘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수를 하러 경찰서에 들른 마라는 그곳에서 자신이 주드라고 생각하는 그를 만나게 된다. 분명 죽었음에 분명한 주드가 왜 거기 나타나게 된 것일까. 정말로 주드는 죽은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살았던 동네도 아닌 이곳에서 왜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그도 어떠한 능력이 생긴걸까. 그 능력은 무엇이면 그것으로 마라와 대응을 하려는 것일까. 알고 싶은 것은 점점 늘어만 가는 가운데 어절수 없이 두번째 이야기를 기다려야 한다. 첫번째 이야기가 마라의 이야기라면 두번째 이야기는 또 누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또 마라는 어떤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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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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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볼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무엇일까? 표지? 작가? 제목? 아무래도 서점에서 한번에 보았을때는 가장 먼저 표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그래서 출판사들은 표지에 신경을 쓰고 때로는 자기네들도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다수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아닐까 하다. 하지만 그 책을 사기위해서는 아마도 집어 들고 작가이름이라던지 또는 제목을 보게되기 마련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번역서같은 경우에는 두가지로 제목을 정하게 된다.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쓰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제목을 만들던가. '허즈밴드 시크릿'이 아마도 전자일것이고 '곤충소년' 같은 것이 후자일 것이다. 참고로 곤충소년의 원제는 'The empty chair'이다. 텅빈의자. 그대로 번역을 해 놓았을 때 사람들이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재미도 없어보이는 제목이다. 그러므로 내용에 맞추어서 곤충소년이라는 제목을 새로 지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말인 경우에는 그냥 그 제목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책의 제목은 '선의 법칙'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점이 발생한다. 한국말은 한자어와 같이 쓴다. '선'이라는 것이 한자어이다 보니 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善일까 아니면 線일까. 아니면 그도 아니라면 先일까. 저마다 내포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보니 그 선이라는 한 글자에 의해서 이 제목은 완전히 뜻이 바뀌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도 든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선은 線이다. 줄, line.사람을 저마다 하나의 점으로 보고 그것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선.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도 선의 법칙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누군가는 구군가에게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법칙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과 부합하게도 이 두껍지도 않은 책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신기정, 윤세오, 이수호, 구기인, 신하정, 부이, 김우술, 신재형, 조미연. 셀 수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헷갈리는 것은 사실이다. 인물에 적응이 될만하면 다시 새로운 사람이 등장을 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관계를 머리속에 성립시켜야만 한다. 왠만한 추리소설 못지 않다.

 

중심인물은 단 두 명, 윤세오와 신기정이지만 그둘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 연결이 된다. 그리고 종내는 그 둘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 둘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앞에서 열거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점으로 등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연결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평균 세사람정도만 넘어가면 아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이 경우는 조금 더 많이 넘어가기는 했어도 결국은 그들 둘은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얼마나 세상이 좁은 것인지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선의 법칙을 다루면서 또 작가는 이 세상의 현실을 다루고 싶었나보다. 대부업계라던지 다단계라던지 자살같은 문제를 다룸으로 인해서 이 책의 무게를 한층 더 무겁게 눌러 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가볍고 얇은 책이지만 속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없이 무겁다. 그리고 퍽퍽하다. 얼마나 퍽퍽한지 달걀로 비유한다면 너무 퍽퍽해서 가루가 다 날릴 지경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지도 모른다. 정통적인 하드보일드적인 느낌을 품고있는 그런 책이라 할수 있겠다.

 

백화점에서 아빠가 사놓은 옷을 찾아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윤세오.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검은 연기. 그녀의 집은 불탔고 아버지는 죽었으며 그녀는 갈 곳이 없다. 밖에도 나가지 않고 오직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경찰은 아빠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빠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문제는 역시 돈인 건가. 아빠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그녀. 그녀는 그 사람을 찾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녀가 원하는대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인데 자그마한 몸집의 그녀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내내 그 사람을 좇아다니기만 한다.

 

학교 선생인 그녀, 신기정.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 학생을 혼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가 훔친것을 멋도 모르고 받은 그녀는 난감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그런 가운데 들린 동생의 죽음. 강에서 건져 낸 시신은 동생이 맞았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그녀의 동생. 동생은 무슨 이유로 강물속에서 시신으로 발견이 된 것일까.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있는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동생의 죽음이 궁금해진 그녀는 동생의 흔적을 좇아서 여기저기 다닌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죽음의 뒤를 좆는것은 윤세오나 신기정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은 왜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왜 현실에 순응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미심쩍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을까. 만약 그들이 그냥 모든 일을  잊었다면 그들 둘을 연결하는 선은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선의 법칙이라는 이름답게 법칙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니까 결국은 그 둘의 연결되고 말았을까.

 

예전에 어린이들이 하던 게임이 하나 생각났다. 돌멩이 하나와 넓은 땅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있는 그 게임. 돌을 가지고 자기만의 영역을 조그맣게 만든 다음 그 돌을 바깥으로 튕겨낸다. 세번만에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땅따먹기라고 했던가. 윤세오와 신기정은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나와서 돌아디닌다. 그리고 그 영역이 점점 넓어진다. 그리고 그 둘의 영역은 언젠가 교집합이 생기는 지점에 이른다. 책에서는 악과 선의 대립도 심심치않게 등장을 한다. 과연 線의 법칙은 善의 법칙이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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