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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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볼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무엇일까? 표지? 작가? 제목? 아무래도 서점에서 한번에 보았을때는 가장 먼저 표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그래서 출판사들은 표지에 신경을 쓰고 때로는 자기네들도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다수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아닐까 하다. 하지만 그 책을 사기위해서는 아마도 집어 들고 작가이름이라던지 또는 제목을 보게되기 마련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번역서같은 경우에는 두가지로 제목을 정하게 된다.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쓰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제목을 만들던가. '허즈밴드 시크릿'이 아마도 전자일것이고 '곤충소년' 같은 것이 후자일 것이다. 참고로 곤충소년의 원제는 'The empty chair'이다. 텅빈의자. 그대로 번역을 해 놓았을 때 사람들이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재미도 없어보이는 제목이다. 그러므로 내용에 맞추어서 곤충소년이라는 제목을 새로 지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말인 경우에는 그냥 그 제목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책의 제목은 '선의 법칙'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점이 발생한다. 한국말은 한자어와 같이 쓴다. '선'이라는 것이 한자어이다 보니 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善일까 아니면 線일까. 아니면 그도 아니라면 先일까. 저마다 내포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보니 그 선이라는 한 글자에 의해서 이 제목은 완전히 뜻이 바뀌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도 든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선은 線이다. 줄, line.사람을 저마다 하나의 점으로 보고 그것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선.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도 선의 법칙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누군가는 구군가에게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법칙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과 부합하게도 이 두껍지도 않은 책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신기정, 윤세오, 이수호, 구기인, 신하정, 부이, 김우술, 신재형, 조미연. 셀 수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헷갈리는 것은 사실이다. 인물에 적응이 될만하면 다시 새로운 사람이 등장을 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관계를 머리속에 성립시켜야만 한다. 왠만한 추리소설 못지 않다.

 

중심인물은 단 두 명, 윤세오와 신기정이지만 그둘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 연결이 된다. 그리고 종내는 그 둘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 둘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앞에서 열거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점으로 등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연결이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평균 세사람정도만 넘어가면 아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이 경우는 조금 더 많이 넘어가기는 했어도 결국은 그들 둘은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얼마나 세상이 좁은 것인지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선의 법칙을 다루면서 또 작가는 이 세상의 현실을 다루고 싶었나보다. 대부업계라던지 다단계라던지 자살같은 문제를 다룸으로 인해서 이 책의 무게를 한층 더 무겁게 눌러 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가볍고 얇은 책이지만 속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없이 무겁다. 그리고 퍽퍽하다. 얼마나 퍽퍽한지 달걀로 비유한다면 너무 퍽퍽해서 가루가 다 날릴 지경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지도 모른다. 정통적인 하드보일드적인 느낌을 품고있는 그런 책이라 할수 있겠다.

 

백화점에서 아빠가 사놓은 옷을 찾아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윤세오.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검은 연기. 그녀의 집은 불탔고 아버지는 죽었으며 그녀는 갈 곳이 없다. 밖에도 나가지 않고 오직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경찰은 아빠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빠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문제는 역시 돈인 건가. 아빠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그녀. 그녀는 그 사람을 찾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녀가 원하는대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인데 자그마한 몸집의 그녀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내내 그 사람을 좇아다니기만 한다.

 

학교 선생인 그녀, 신기정.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친 학생을 혼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가 훔친것을 멋도 모르고 받은 그녀는 난감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그런 가운데 들린 동생의 죽음. 강에서 건져 낸 시신은 동생이 맞았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그녀의 동생. 동생은 무슨 이유로 강물속에서 시신으로 발견이 된 것일까.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있는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동생의 죽음이 궁금해진 그녀는 동생의 흔적을 좇아서 여기저기 다닌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죽음의 뒤를 좆는것은 윤세오나 신기정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은 왜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왜 현실에 순응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미심쩍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을까. 만약 그들이 그냥 모든 일을  잊었다면 그들 둘을 연결하는 선은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선의 법칙이라는 이름답게 법칙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니까 결국은 그 둘의 연결되고 말았을까.

 

예전에 어린이들이 하던 게임이 하나 생각났다. 돌멩이 하나와 넓은 땅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있는 그 게임. 돌을 가지고 자기만의 영역을 조그맣게 만든 다음 그 돌을 바깥으로 튕겨낸다. 세번만에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땅따먹기라고 했던가. 윤세오와 신기정은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나와서 돌아디닌다. 그리고 그 영역이 점점 넓어진다. 그리고 그 둘의 영역은 언젠가 교집합이 생기는 지점에 이른다. 책에서는 악과 선의 대립도 심심치않게 등장을 한다. 과연 線의 법칙은 善의 법칙이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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