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실패를 기회로 만드는 등산과 하산의 기술 아우름 10
엄홍길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인생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산을 올라가는 것을 등산이라고 한다. 오를 등, 뫼 산, 즉 산을 올라간다는 것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에 무엇이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 올라가는 것일까. 사실 소싯적에는 설악산도 한달음에, 태백산도 한달음에 올라갔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순간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든 것들은 친구들과 함께 힐 때 재미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동네 뒷산가는 것도 귀찮아서, 추워서, 바빠서,라는 핑계로 그냥 외면하고 만다.

 

엄홍길이라는 등산가는 사람들에게 꽤 유명하다. 히말라야처럼 높은 산들을 많이 올라 정복한 사람으로도 유명하고 각종 방송에서 나와서 유명하기도 하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등반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다른 등반가가 한 명 계신다. 박.영.석. 그분은 세계 최초로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분이시며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 나를 외국에 보내주신 목사님의 동생이신데 실제로 만나기도 했었고 그분 댁에 놀러도 갔었으며 그분이 쓰시던 차를 중고로 사서 잘 타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랬던 분이 어느날 실종되었다. 안나푸르나에서. 그리고 아무도 그 이후를 보지 못했다. 시신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사람들을 두 번이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에서는 장례식을 다 치뤘고 실종이 아닌 사망상태로 처리되었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산악인이 아직도 더 오랜시간 활동하실 수 있는 분이 그렇게 되어 아쉽지만 그분은 평생을 산을 오르면서 행복해하셨고 그러니 마지막도 그 속에서 행복하실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박영성 대장도 훌륭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엄홍길 대장 또한 멋진 산악인이다. 이 책에는 등반가라면 누구나 익히 할 수 있는 말들이 적혀있다. 엄홍길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비롯해서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산을 오르게 되었고 또한 산을 오르게 되면서 어떤 인연을 만났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 있다. 엄홍길 대장 또한 쉽게 모든 산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다. 처음 도전해서 산의 정상을 보았다면 오히려 그는 지금같은 등반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끊임없이 실패를 했기에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위험한 일이다. 높은 산을 오른다는 것은. 그 위에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위에 올라각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은 아니다. 다시 내려오는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도 더 힘들고 무섭고 어렵다. 그러므로 잘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올라가고 또 내려온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살아있는 한 자기자신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그리고 성취감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그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처음 안 사실이 있다. 나는 산을 그저 올라가는 줄 알았다. 산을 올라가기 위해서 사람들마다 일인당 돈이 책정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것도 꽤 많은 돈이 말이다. 하나의 입장료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산을 올라가면 산도 자연히 훼손될 것이고 그것을 복구할 돈이 필요할 것이다. 왜 산악인들이 돈이 그렇게 많이 들고 스폰서가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내 나이가 아직 산을 내려갈 나이는 되지 않은 듯 하다. 한창 올라가는 시점일까 아니면 정상에 다다라서 내려갈 준비를 해야할 시점일까. 그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려갈 그 시점을 위해서 지금부터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준비를 했을때 그 모든 여정은 훨씬 더 쉽게 느껴지는 법이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준비해서 나중에 내려오는 길을 쉽게 만들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굳이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90년대초에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그. 가수로써 또한 음악가, 연주자로써 그의 명성은 지금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그런 역량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태어난 때는 물론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때였고 그로 인해서 분명 그도 차별을 받았을 것이었지만 그 어떤 누구도 피부색때문에 그의 음악을 얕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번이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 음악가를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잡고 끌고 가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이 책에서는 전반적으로 진한 재즈의 향기가 넘쳐난다. 여러 주인공들 중에 한명이라서 극의 전체를 다 끌고 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만큼 부지런히 그는 움직이고 자신이 맡은바를 처리하려고 하고 친구를 도와주려고 하고 또한 자신의 일에 충실히 다하려고 한다.

 

여기 한 명의 연쇄살인범이 있다. 그는 당돌하게도 신문사에 편지를 보낸다. 자신을 잡아보라고 도전장을 내민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공지하기 위해서다. 모월 모시 밤, 재즈를 틀지 않는 집을 찾아가서 그 집의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복수를 하는 대상을 찾는 방법이 독특하다. 무엇때문에 그는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일까. 그리고 정말 그날 그는 재즈를 틀지않은 집을 찾아가서 사람을 죽일것인가.

 

문득 성경속의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모세가 자신의 백성들을 보내주지 않자 마지막으로 택했던 방법. 집의 입구에 양의 피를 바르라는 것. 그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의 첫째는 무조건 죽임을 당한다는 것. 재즈음악을 트는 것과 양의 피를 바르는 것,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으로 종류는 다르지만 둘다 사람들의 눈에,그리고 귀에 보이고 들리는 그런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조건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우라서 연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두껍고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답게 주인공들이 여러군데서 시시각각으로 좁혀온다. 범인은 액스맨 하나지만 조여오는 길은 저마다 다르다. 경찰인 마이클. 그는 신참인 케리와 함께 일을 처리한다. 자신의 직업 때문에라도 그를 꼭 잡아야 한다. 사람들의 평안과 도시의 치안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라고 위에서의 압박도 상당하다. 이제 막 감옥을 나온 루카. 그는 돈이 없다.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만 돈이 없다. 그러므로 인해서 마피아가 시킨 이 일을 꼭 해야한다. 누가 이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지만 그의 곁에는 사라라는 여자친구가 생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립탐정소에 일하는 아이다. 그녀는 흑인이지만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더욱 튀는 존재다. 사립탐정사무소에서 일을 하지만 탐정일은 없고 전부 서류작업 뿐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뛰어들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자신이 원해서이다. 그녀는 친구인 루이와 함께 뒤를 쫓는다. 세 팀으로 나누어져서 쫓아가는 상대는 액스맨. 이 연쇄살인의 끝는 누구의 승리로 귀결지어질까. 과연 신은 어느쪽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

 

시대상으로 과학수사가 발달하지 않은때라 요즘같은 최첨단 작업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경찰의 이로운 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총알받이만 되어 버린다. 일의 처리도 가장 느린듯 하다. 루카는 왠지 모르게 요네스뵈의 해리를 연상시킨다. 고독한 사냥꾼이라고나 할까. 혼자서 일을 처리하지만 전에 경찰로 일했던 만큼 전문가이며 발이 넓다. 그가 일을 마치고 어두운 과거를 이곳에 묻어버리고 떠날수 있을까. 제대로 된 탐정일을 해보고 싶어하던 아이다. 어딜가나 튀는 그녀의 모습은 이 일을 하는데 오히려 적합하지 못하다는생각이다.  세 그룹중 가장 비전문가이고 그래서 가장 손해도 많이 보고 가장 많이 다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녀의 의지 하나만큼은 정말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그녀의 모험으로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외전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뉴올리언스. 재즈의 향기가 가장 짙게 배어 있던 곳. 흑인들의 차별이 심했지만 그들끼리 모여사는 구역으로 인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차별을 당했던 곳. 재즈는 흑인음악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 도시를 선택한 것은 음악적인 배경을 가지고 가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기도 할 것이고 실제로 액스맨의 사건이 벌어진 곳이기 때문에 선택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그 위에 여러겹의 픽션을 덧씌워 만들어 낸 이야기. 한꺼풀씩 쌓인 패스츄리처럼 겹겹이 벗겨먹는 재미가 있는 한 권의 책이다. 후속작을 집필중이라고 하니 또한 기다려봐야겠다. 그다음 이야기는 어떤 묘한 접목이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한 아이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약간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보통 머리부터 나와야 하는 아이가 발부터 나왔다.고 한다면 누구나 위급한 순간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왼쪽발부터 살포시 내민 아이는 그 발을 집어 넣고 다시오른발을 내밀었다. 왠지 모를 전설속의 아이 탄생 장면같이 느껴지는 첫 단락이다.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표지를 가진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나의 입장으로 쓰여지고 있다. 내가 태어나서 그 가족의 분위기라던지 누나와의 관계라던지 또는 누나와 가족들간의 관계라던지에 대해서 말이다. 단지 집안에서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던 이야기는 그 반경을 점차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한 아이의 성장을 통해서 우리는 그 배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그 가족의 이야기들에 함께 하게 된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한 아이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남의 집 가정사를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이란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은 없다. 자신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만 알 뿐. 그리고 자신이 인식을 하고 있을때는 벌써 일본에 와 있었고 남들과는 다른 누나를 가진 아이였을 뿐이다. 총명한, 이라는 표현은 약간 잘못되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데 뛰어난 여자이이'였다. 하여튼 누나는 남에게 상처를 입혀온 것 이상으로 상처를 입어온 것이다.(123p) 똑똑하기는 하지만 여러가지로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누나.

 

그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열성유전자만 받았을까. 이뿌지도 귀엽지도 않았던 겉모습을 가진 그녀는 남들이 놀리는 이야기에 예민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 또한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철저하게 나는 그 누나의 입장이 되어버린다. 나 또한 그 누나 같았기 때문일까. 나는 오히려 그 누나와는 다르게 남들에게 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한 학창시절을 지내왔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데 뛰어난 여자아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나는 아버지의 회사생활에 따라 이번에는 이집트로 가게 된다. 해외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가는것이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같은 이유이다. 어린시절과는 달리 이제 어느 정도 큰  나는 새로운 생홣에 적응을 한다. 이곳의 친구들을 그리워 하면서도 그 곳에서의 생활 또한 빠르게 적응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쁜 말이라고 생각하는 '앗살람 알라이쿰'을 비롯해 여러 단어들을 배우고 그곳의 문화들을 익혀간다.

 

이집트에는 'IBM'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I는 '인살라', 즉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의미다. 예컨대 졸이 지각을 했다고 하자. 아버지가 왜 지각을 했느냐고 화를 내면 '인샬라', 즉 신이 그렇게 바란 것이라고 말한다. B는 '부쿠라', 즉 '내일'이라는 뜻이다. 졸에게 세차를 해두라고 명령하면 '부쿠라', 즉 내일 하겠다고 말한다. M은 '마레시', 즉 '걱정하지 마라'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잠간 화를 내지만 졸이 웃는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며 '마레시'라고 말하는 것을 계속 듣다보면 어느새 웃음이 나오고 만다.(193p)

 

더운 나라는 아무래도 느긋하기 마련이다. 단 하나의 단어를 통해서 나는 가보지 못했던 이집트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홧병이 나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그것은 어느새 적응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읽다보니 인도 사람들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샬라. 모든것이 신의 뜻일뿐. 약간은 느긋하게 살 필요도 있는 듯 하다.

 

어느덧 나는 야곱을 흉내내어 '사라바'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 '잘있어' '약속이야' '굿럭' '갓블레스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257p) 이집트에 와서 우연히 야곱을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된 나는 그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즐겁다. 일본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아이들과 어울리고 그 나라 아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연히 길에서 마난게 된 야곱을 쫓아가게 되고 그들은 그 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남자들만의 우정을 쌓게 된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써 소통을 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 '사라바'이다. 사실 사라바는 일본어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단어와 일본어를 섞은 제 3의 언어를 만들어 내지만 야곱을 사라바를 주장했고 나 또한 그와 함께 사라바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 한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가질수 있을가. 사라바는 그들에게는 만능언어나 다름없다. 그저 눈을 보고 '사라바'라고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해되는 마법의 언어 말이다. 잔잔하면서도 특별한것 같지 않은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아버지의 해외 업무가 끝나면 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텐데 그때, '사라바'라는 단어는 나와 야곱에게 또 어떤 의미로 들리게 될까. 사라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아우름 9
장석주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려서부터 우리집에서는 '책 읽어라'는 소리 대신 '읽지말라'는 소리를 더 자주 들을수 있었다. 화장실 갈 때 옷속에 책을 숨겨서 들어가는 동생을 잡아서 책을 뺏기도 했었고 밥먹을 때 책을 읽는 나에게서 책을 뺏기도 했었다 우리 엄마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가서 기다리는 시간에 연습을 하기보다는 거기 있는 셜록홈즈라던가 대도둑 호첸플론츠가 같은 책을 읽고 있는게 나였다. 결국 내동생은 고등학생이 되자 도서부에 들어가버렸고 나는 대학생이 되어 일본문학에 눈을 떠버렸다. 

 

늘 우리집에는 백과사전이나 위인전이 전집으로 있었고 세계문학전집도 있었고 내 생일에는 책을 전전집으로 사주시던 엄마였다. 하지만 그런 책들 말고도 집에는 엄마책들도 많았다. 박완서의 에세이라던가 한국문학전집이 있었다. 세계문학전집은 없었지만 여러 장르들이 섞인 책들을 보면서 어느틈엔가 어린이용보다는 어른용으로 발전해나가는 나를 보게 되기도 했다. 집에 책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래서 분위기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시간에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해 본 나도 물론 재미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게임과 책은 별개의 문제다. 게임을 하는 것만큼 책을 읽는다면 균형이 조금 맞아지는 것 아닐까. 나는 지금도 장르문학을 좋아한다. 스릴이 넘치고 누가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너무 그런것에만 고정되어버릴까봐 가끔씩은 분위기 전환및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 에세이라던가 잔잔한 소설들을 읽기도 하고 건강에 관련된 책이라던가 또는 다른 사람의 독서일기를 다룬 책들을 보기도 한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그것을 좋지 않은 일이다. 균형을 맞추어야 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년에 천 권이상의 책을 사고 지금 소장하고 있는 책도 상당하며 끊임없이 글쓰기를 하는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책읽는 것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임을 설명해주고 니있다. 책을 통해서 자신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을 떠나서 조금은 자연속으로 더 가까이 가서 노자와 장자를 여러번 읽었다고 했다. 아마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읽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틈틈히'라는게 있지 않은가. 짬짬이 읽으면 된다. 굳이 긴 호흡으로 갈 필요도 없다. 그냥 책이라는것을, 활자라는 것을 한 번 보는 것 뿐이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책에 대한 부담감없이 읽을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와 관련해 독서를 '젖니 수준의 독서'와 '영구치 수준의 독서'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50p) 저자는 전자를 흥미위주 그리고 후자를 수준높은 독서라고 분류했다. 그렇게 따진다면 내 독서는 철저히 전자의 흥미위주에 맞춰져 있다. 재미나고 박진감 넘치며 스릴이 있는 그런 책이 좋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흥미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리고 재미로 읽는 것이므로 나는 그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독서방법을 바꿀 생각은 없다.

 

어린아이는 꿈을 꾸지만,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습니다. 어른은 이미 쇠락하기 때문입니다.(63p) 저자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 아이들이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쓴 듯 하다. 자식도 있고 아마 손자도 있을것인데 그 아이들에게 한번이라도 물어보기는 한 것일까. 요즘의 아이들은 꿈이 없다. 아주 꼬마 아이들에게 물어본다면 무엇이 되고싶다고 말할지 몰라도 적어도 초등학생 고학년 이후로 부터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뭐하고 싶어그러면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전부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그렇게 살고있다. 현실이 그러하다.

 

우리는 버려야만 비울 수있습니다.(120p)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버려야 비울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비우고싶다면 일단은 버리는 것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비우고 살고 있는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저자는 이런 소리를 한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비워내는 작업. 그것이 채우는 작업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비우는 작업. 그리고 다시 채우는 작업이 모두가 독서로 인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까.

 

자신이 읽는 책의 넓이가 넓어질수록 자신이 경험해보는 수치는 높아지고 자신의 생각하는 반경은 넓어질 것이다. 그것을 이 책을 읽는 모든 아이들이 이해하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력은 외롭지 않아 - 때론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 아우름 8
마스다 에이지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만 들으면 대충 누구라도 알수있는 사람들과 달리 이번 시리즈의 작가는 일본사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소설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선수도 아닌 낯선 사람이어서 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변호사인 그는 사진작가도 활동하고 있으며 스포츠 사진을 주로 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냥 평범한 변호사가 왜 다른 나라의 인문교양 시리즈에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살아온 인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업으로 본다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온 것으로 보이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던가. 학창시절에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하여 공부를 할 수가 없는 지경에 놓이기도 했었고 그것을 잘 이겨내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변호사가 된 이후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그에게 태어난 아들이 3년을 조금 더 살고 죽은 것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냥 사고로 죽은 것도 아닌 태어날 때부터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그 아이. 누구나 다 부모가 잘못한 것이라 생각할 것이 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부부는 더욱 마음 아팠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아들이 죽은 이후에 갈라서게 되고 말지만 이 책을 쓰면서 원고를 보여줄만큼 친분이 있게 살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른 사랑을 만나 두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반갑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든다. 그 아이가 고작, 겨우, 그시간만 살고 죽을 운명이었다면 그의 부모인 저자의 노력도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주어진 인생이 3년이라면, 여기서 태어나서 3년후에 죽기로 결정이 되어 있었다면,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것은 혼자 오지 않는다. 그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아이가 와서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지 몰라도 병원에 있는 동안 그 아이를 보면서 누구가에게는 웃음을 줄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 아이가 태어난 순간 그 부모는 아무 영문도 모른채로 처음에는 일단 기뻤을 것이다. 또한 그 아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무언가 깨닫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결론이 내려져 있지 않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다면 그것이 설사 결론이 좋지 않다하더라도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사진을 많이 찍는 그답게 선수들의 말과 자신이 보았던 그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아사다마오의 예를 들고 있는데 굳이 그녀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김연아를 통해서 더 많이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쇼트 프로그램을를 망치고도 쿨하게 넘겨버리고 프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극복하는 그녀의 연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전부다. 노력은 외롭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니 누구라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단 그것이 잘되든 안되던 간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