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한 아이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약간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보통 머리부터 나와야 하는 아이가 발부터 나왔다.고 한다면 누구나 위급한 순간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왼쪽발부터 살포시 내민 아이는 그 발을 집어 넣고 다시오른발을 내밀었다. 왠지 모를 전설속의 아이 탄생 장면같이 느껴지는 첫 단락이다.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표지를 가진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나의 입장으로 쓰여지고 있다. 내가 태어나서 그 가족의 분위기라던지 누나와의 관계라던지 또는 누나와 가족들간의 관계라던지에 대해서 말이다. 단지 집안에서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던 이야기는 그 반경을 점차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한 아이의 성장을 통해서 우리는 그 배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그 가족의 이야기들에 함께 하게 된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한 아이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남의 집 가정사를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이란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은 없다. 자신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만 알 뿐. 그리고 자신이 인식을 하고 있을때는 벌써 일본에 와 있었고 남들과는 다른 누나를 가진 아이였을 뿐이다. 총명한, 이라는 표현은 약간 잘못되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데 뛰어난 여자이이'였다. 하여튼 누나는 남에게 상처를 입혀온 것 이상으로 상처를 입어온 것이다.(123p) 똑똑하기는 하지만 여러가지로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누나.

 

그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열성유전자만 받았을까. 이뿌지도 귀엽지도 않았던 겉모습을 가진 그녀는 남들이 놀리는 이야기에 예민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 또한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철저하게 나는 그 누나의 입장이 되어버린다. 나 또한 그 누나 같았기 때문일까. 나는 오히려 그 누나와는 다르게 남들에게 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한 학창시절을 지내왔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데 뛰어난 여자아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나는 아버지의 회사생활에 따라 이번에는 이집트로 가게 된다. 해외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가는것이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같은 이유이다. 어린시절과는 달리 이제 어느 정도 큰  나는 새로운 생홣에 적응을 한다. 이곳의 친구들을 그리워 하면서도 그 곳에서의 생활 또한 빠르게 적응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쁜 말이라고 생각하는 '앗살람 알라이쿰'을 비롯해 여러 단어들을 배우고 그곳의 문화들을 익혀간다.

 

이집트에는 'IBM'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I는 '인살라', 즉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의미다. 예컨대 졸이 지각을 했다고 하자. 아버지가 왜 지각을 했느냐고 화를 내면 '인샬라', 즉 신이 그렇게 바란 것이라고 말한다. B는 '부쿠라', 즉 '내일'이라는 뜻이다. 졸에게 세차를 해두라고 명령하면 '부쿠라', 즉 내일 하겠다고 말한다. M은 '마레시', 즉 '걱정하지 마라'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잠간 화를 내지만 졸이 웃는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며 '마레시'라고 말하는 것을 계속 듣다보면 어느새 웃음이 나오고 만다.(193p)

 

더운 나라는 아무래도 느긋하기 마련이다. 단 하나의 단어를 통해서 나는 가보지 못했던 이집트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홧병이 나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그것은 어느새 적응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읽다보니 인도 사람들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샬라. 모든것이 신의 뜻일뿐. 약간은 느긋하게 살 필요도 있는 듯 하다.

 

어느덧 나는 야곱을 흉내내어 '사라바'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 '잘있어' '약속이야' '굿럭' '갓블레스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257p) 이집트에 와서 우연히 야곱을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된 나는 그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즐겁다. 일본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아이들과 어울리고 그 나라 아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연히 길에서 마난게 된 야곱을 쫓아가게 되고 그들은 그 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남자들만의 우정을 쌓게 된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써 소통을 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 '사라바'이다. 사실 사라바는 일본어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단어와 일본어를 섞은 제 3의 언어를 만들어 내지만 야곱을 사라바를 주장했고 나 또한 그와 함께 사라바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 한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가질수 있을가. 사라바는 그들에게는 만능언어나 다름없다. 그저 눈을 보고 '사라바'라고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해되는 마법의 언어 말이다. 잔잔하면서도 특별한것 같지 않은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아버지의 해외 업무가 끝나면 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텐데 그때, '사라바'라는 단어는 나와 야곱에게 또 어떤 의미로 들리게 될까. 사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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