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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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어령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감성충만한 딸에 대한 사랑을 그린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 수필과는 다르게 이 책은 이어령의 서원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시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저자가 가진 생각을 알아보는 시간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총 열 세개로 나누어진 think들은 크게 공감을 하거나 또는 저자의 생각은 반박을 하거나 하는 그런 나만의 토론 시간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think 둘에서는 종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여행을 하며 사진 대신 녹음을 하고자 녹음기까지 구해서 녹음을 했지만 돌아와 들으니 직접 들었던 그 소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럴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이걸 나중에도 또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지만 돌아와서 확인해보면 그때 그 멋진 그 분위기 그대로 담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알기에 소리 역시 그럴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카르페디엠 즉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그 시간에 감상하고 만족하고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think셋에서는 우물에 빠진 당나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묻힐뻔한 당나귀가 그 상황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살아난 것처럼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더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악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지금이다. 그것마저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로 이용한다면 어떨까.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인에게는 무플이 악플보다 무서운 법이기도 하다.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벽을 넘는다. 74p


think 여섯에서 저자는 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미키마우스에서부터 지금도 내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 마우스까지 정말 많은 쥐들이 우리 주위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지 않는가. 원래 쥐라는 동물을 페스트 균을 퍼뜨리던 해충이었다. 그 또한 생각의 전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워서 피하는 3D직업이 새로운 디지털과 디엔에이 그리고 디자인의 새로운 3D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생각의 전환이 이토록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think 열하나에서는 전통 물건을 이야기 하면서 한복을 이야기 한다. 서양에서 만드는 옷과 우리나라 한복의 차이를 예로 들면서 한복의 이로운 점을 사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치수를 딱 맞춰서 입는 옷들과 달리 품이 넉넉한 것이 한복의 장점이다. 조금 배가 불러도 조금 키가 커져도 언제나 그 상황에 맞춰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조상들의 지혜로움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우리의 것을 잘 보존하고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다른 이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기 전에 말이다.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빨갛고 파랗고 노란 바람개비 모양의 삼태극을 먹는 것이며, 삼태극을 먹는다는 것은 우주를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우주가 되고 우주는 내가 된다. 191p


저자의 한국 전통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think 열둘에서도 이어진다. 김치를 맛의 교향곡으로 비유하며 김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라던가 김치의 효능 또한 맛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딱히 저자가 그리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김치의 효능은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연구를 통해서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는 오늘도 우주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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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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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얼마나 읽었을까. 읽어왔고 소장하고 있는 오십 여권이 넘는 책들 중에 어떤 작품을 가장 최고작으로 꼽을 수 있을까. 초기작이었던 가가형사 시리즈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유가와 시리즈도 독특하고 쉽고 재미나게 읽히니 설산 시리즈도 있지만 게이고의 최고는 그야말로 묵직한 정통 사회파 추리일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 [몽환화]를 꼽는데는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한 작가의 책이 개정판이 나올 경우 어떤 책을 소장하게 될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에는 개정판을 가지고 구판을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이 구판 몽환화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지였기 때문이다. 트레이싱지를 덧씌운 덕에 꿈을 꾸게 만드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만든 이 작품을 선뜻 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정판 표지는 원래 색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비채만의 히가시노 시리즈를 완성하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 또한 선뜻 내놓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당분간은 두 권 모두를 소장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책을 조금 정리하더라도 말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출근하던 아빠와 배웅하던 엄마와 아이 앞에 날카로운 칼을 가진 채 피범벅이 되어 나타난 한 남자. 그는 그 칼을 치켜 들고 이 가족에게 달려드는데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과 정신으로 그 아침에 칼을 들고 설쳤던 걸까. 또 하나의 이야기는 소타라는 중학생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그의 가족은 해마다 나팔꽃 축제에 온 가족이 참석하여 시장을 둘러보고 외식을 하러 간다. 한창 사춘기인 소타는 가족과 어울려 다니는 건 별로지만 외식 가는 것이 좋아서 따라 나서기는 하는데  어느날 그곳에서 첫사랑에 빠지게 된다.

 

리노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목표인 수영을 그만 둔다. 그러고는 할아버지 댁에 드나들면서 할아버지가 키우던 꽃들을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고 자신이 목격함으로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게 된다. 그녀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단서는 노란색 꽃 사진 하나다. 한참 후에야 그 화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내지만 이미 늦었다. 경찰들은 그것을 중요한 단서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외면 당한 그녀는 할아버지가 블로그에 올리지 말라고 했던 것을 어기고 결국 그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게 된다. 그것으로 인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꽃이라는 하나의 사건과 증거를 놓고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과 리노 그리고 소타까지 이렇게 세 명의 이야기가 교대로 반복된다. 꽃이라는 평범한 소재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 중앙에 차지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려가면서 밝혀지는 비밀들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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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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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으면 나는 네! 라고 바로 즉각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리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단칼에 아니오! 라고 대답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상실의 시대]라던가 [잡문집]이라던가 [시드니]를 비롯해서 그의 많은 책을 읽어왔고 그 책들은 또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그렇게 외면했던가.


이 책은 얇다. 마음만 먹으면 한 두 시간 내에 금방 다 읽어버린다. 거기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다. 그냥 누군가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고 얘기해주는 그런 식으로 읽다보면 어느새인가 끝나있다. 기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맞다. 딱 사전적 의미 그대로다. 이 책은 무라마키 하루키의 어디선가 들어보았음직한 이상야릇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그런 이야기가 <우연 여행자>다. 내가 누군가를 생각했는데 마침 그에게서 연락이 온다던가 내가 듣고 싶던 노래가 버스 라디오에서 나온다던가 하는 그런 식. 바로 마침 그때 딱 이런 식의 우연인 거 말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닐지라도 다들 한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을까. <하나레이 해변>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기담이라기 보다는 괴담에 가깝기도 하다. 유령이라는 실체가 등장을 한다는 면에서는그러하지만 또 그 이면에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다. 상어의 공격으로 서핑하던 중 죽음을 맞이한 아들. 엄마는 아들을 데리러 하와이로 향한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들이 그렇게라도 엄마의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라는 다소 긴 제목은 남편의 실종이 주 소재다. 자신에게 들어온 의뢰. 엄마에게 갔다가 집에 온다고 연락이 온 남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엄마의 집과 자신의 집과는 고장 몇 층 차이인데 그 동안에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단편이라 그런지 끝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졌던 그런 이야기. 다음 제목도 역시나 길다.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여기에서는 돌이 나온다. 콩팥 모양을 닮은 돌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니 실제로 별별 모양의 돌들을 모으는 사람이 있었던 기억이 났고 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돌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이야기는 <시나가와 원숭이>다. 원숭이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그런 그야말로 기담. 짧은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긴 이야기는 부담스럽다거나 하루키는 난해해서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그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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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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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날 때 첫인상이 중요하듯 책에서도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다. 아니 책이라기 보다는 작가에 대한 첫인상이라고 해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를 알게 되는 첫 번째 작품 그 작품에 따라서 그 작가의 책을 계속 읽을 팬이 될지 아니면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그런 작가가 될지 결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무엇이든 단칼에 끊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이 책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면 나는 조금은 후회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며 거기다 묘한 판타지스러움으로 인해서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었으니 말이다. 이 작가 독특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고 나서 그 맛을 알아버렸다. 그래서였을까 [펭귄 하이웨이]도 읽었고 [야행]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랬으니 이 작풍이 익숙하다 싶었으면서도 초기작에 속하는 이 작품이 또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십 대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나는 언제나 강조한다. 연애든 공부든 일이든 뭐 하나는 진짜 미친듯이 해보라고 말이다. 그때가 아니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세상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앞날을 고민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절대 어느 하나에 미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 이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3학년까지 연애도 공부도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 주인공은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으니 무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가 하는 뭐 그런 거 말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돌릴 수도 없고 무를 수도 없고 다시 살아볼 수도 없으니 약간의 후회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자신이 다른 삶을 선택하면 어떻게 되었다는 형식의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나오고 같은 삶을 다시 살아보는 그런 내용의 영화들도 있다. 여기 이 이야기도 그러하다. 자신이 만약 그때 그 동아리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인생이 달라졌을까.



했을 리가 있습니까, 이런 얼간이 같은 짓. 기시감이에요, 기시감. 214p


그들은 본문 속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등 자기 자신도 이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한 암시를 남겨 놓고 있다. 어떤 상황을 거쳐서 반복되어도 같은 상황이 되는 일은 항상 생겨나고 그때마다 내뱉는 대사도 동일하다. 아까 이 문장을 읽었는데 하는 기시감은 나만 가지는 것은 아니리라. 거기다 이 작가 특유의 표현들이나 의태어들이 쓰임으로 인해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 맛은 무류하다.(167p)거나 하는 표현들은 자주 쓰이는 표현들이 아니라서 낯설다. 번역자의 말에 의하면 일부러 작가가 그렇게 쓴 것이라며 정 궁금하면 찾아보라고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 단어들이 낯설기도 하지만 무냐무냐, 뽀롱뽀롱, 홍야홍야, 후냐후냐하는 표현들은 말이 재미나서 반복해서 따라 읽어보게 된다. 이 표현을 어디선가 써먹을 곳이 없나 생각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운명의 검은 실로 맺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349p


어떤 인생을 선택해도 오즈라는 친구는 따라 붙는다. 정말 그들에게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참. 어떤 인생을 선택해도 오즈가 다리가 부러지는 설정도 동일히다. 세팅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일도 있는 법이다. 이런 판타지스러움은 마지막 장에 들어가서 폭발해버리고 만다. 어디를 가도 계속 나오는 다다미라니. 이러니 세계일주라는 말이 나오는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방이 존재한다면 나 또한 그를 쫓아다니면서 돈을 벌고 싶어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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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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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역사는 조각조각 나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웠건만 그때는 아무런 기억도 없었고 성적도 좋지 않아서 버려두었던 역사를 팩션이라는 소설 장르로 하나씩 맞춰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소설이라서 역사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고 더구나 나처럼 역사에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재미도 붙일 수가 있다. 지금은 같이 읽기로 [아리랑]을 읽고 있는데 우리네 역사는 어찌 그리도 아픈지 읽어도 읽어도 그 시절에는 참 암담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일보본의 침략을 받은 것은 일제강점기인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임진왜란때도 당했었다. 그나마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선조 이후도 평안한 나날은 아니다. 이제는 중국의 침입이다. 그때 당시는 명나라 청나라였다. 우리는 그들 강대국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그들의 황제를 우리의 황제로 모시며 우리의 임금은 그들의 임금에게 복종을 맹세해야 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치욕적인 과거를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이신은 황제의 칙사다. 서얼 출신이었던 그는 중국 황제의 칙사가 되어 이곳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를 받들어 모셔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찾고 있다. 중국으로 끌려갈 때 강에 빠졌던 그녀.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는 그녀를 찾고 있다. 어디에선가 분명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 다. 잠을 자도 눈을 떠도 그의 눈 속에는 오직 그녀 뿐이다.



진정 알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였다. 서출로 태어난 이신은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84p


조선시대 양반들은 자신의 처 외에도 첩을 둘 수가 있었다. 그렇게 둘 수 있었으면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도 똑같이 인정해 줘야했건만 그들은 서출이라고 손가락질 받았고 인정받지 못했고 관직에도 제한을 받았다. 그것은 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궁이 아닌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세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신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은 아버지가 가장 잘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아버지 또한 얼자로 태어났으니. 그래도 임금을 보았고 관직에 있었던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 것으로 낙관적으로 보았던 것일까.



참으로 질긴 목숨이다. 반정에서도, 조선의 의병과 싸우던 골짜기에서도, 압록강에서도, 그리고 청에서 그 수많은 전쟁터와 병자년 조선에서도 살아남았다. 195p


이신. 그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조선의 신하로 살라고 했고 그럴 수 없었던 그의 세상은 자신에게 다른 왕을 섬기라 한다고 했다. 그의 태생은 변변치 않았지만 이제는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다. 힘든 인생이었다. 어떻게 해서도 살아남았던 그런 운명이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중국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그들을 속국시키려는 노력은 또 얼마였던가. 물론 그곳에서 죽었던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제 살아남은 그가 할 일이 있다.



죽지 않을 것이다. 숨지도 않을 것이다. 고개를 쳐들고 다닐 것이다. 277p


전쟁은 또 하나의 피해를 낳았다. 우리가 흔히 화냥년이라고 부르는 그 단어는 환황년이라는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으로 잡혀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해야 할 터인데 그들은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절을 잃은 몸이라고 말이다. 돌아온 그들을 사람들은 외면했고 가족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살아온 목숨인데 이런 천대를 받고 살 수 없었던 그들은 많은 수가 자결을 함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왜 죽어야만 했는가. 이야기 속의 그녀처럼 당당하게 살아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어야 함이 아닌가. 비록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더욱 당당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임금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훈신들을 죽이고, 역모를 방조하여 그 안에 칙사를 옭아넣고, 칙사의 수족을 역모로 엮어 고신을 해 죽게 만들었다. 음모는 치밀했고, 실행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꼼꼼했다. 380p


임금이라는 자리는 늘 위태로웠다. 평안한 것 같으면서 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불안한 자리가 그 자리였다. 그 자리는 마치 오리가 미친듯이 수면 아래서 발을 놀리고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왕을 중심으로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그들의 이중성을 알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이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없는 일을 만들었고 그래서 무죄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처단했고 그렇게 함으로 자신들의 안녕을 누리고자 했다. 여기 왕과 그를 섬겼던 신하. 이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황제의 칙사. 그들의 대면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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