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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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역사는 조각조각 나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웠건만 그때는 아무런 기억도 없었고 성적도 좋지 않아서 버려두었던 역사를 팩션이라는 소설 장르로 하나씩 맞춰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소설이라서 역사와 똑같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고 더구나 나처럼 역사에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재미도 붙일 수가 있다. 지금은 같이 읽기로 [아리랑]을 읽고 있는데 우리네 역사는 어찌 그리도 아픈지 읽어도 읽어도 그 시절에는 참 암담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일보본의 침략을 받은 것은 일제강점기인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임진왜란때도 당했었다. 그나마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선조 이후도 평안한 나날은 아니다. 이제는 중국의 침입이다. 그때 당시는 명나라 청나라였다. 우리는 그들 강대국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그들의 황제를 우리의 황제로 모시며 우리의 임금은 그들의 임금에게 복종을 맹세해야 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치욕적인 과거를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이신은 황제의 칙사다. 서얼 출신이었던 그는 중국 황제의 칙사가 되어 이곳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를 받들어 모셔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찾고 있다. 중국으로 끌려갈 때 강에 빠졌던 그녀.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는 그녀를 찾고 있다. 어디에선가 분명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 다. 잠을 자도 눈을 떠도 그의 눈 속에는 오직 그녀 뿐이다.



진정 알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였다. 서출로 태어난 이신은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84p


조선시대 양반들은 자신의 처 외에도 첩을 둘 수가 있었다. 그렇게 둘 수 있었으면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도 똑같이 인정해 줘야했건만 그들은 서출이라고 손가락질 받았고 인정받지 못했고 관직에도 제한을 받았다. 그것은 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궁이 아닌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는 세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신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은 아버지가 가장 잘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아버지 또한 얼자로 태어났으니. 그래도 임금을 보았고 관직에 있었던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 것으로 낙관적으로 보았던 것일까.



참으로 질긴 목숨이다. 반정에서도, 조선의 의병과 싸우던 골짜기에서도, 압록강에서도, 그리고 청에서 그 수많은 전쟁터와 병자년 조선에서도 살아남았다. 195p


이신. 그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조선의 신하로 살라고 했고 그럴 수 없었던 그의 세상은 자신에게 다른 왕을 섬기라 한다고 했다. 그의 태생은 변변치 않았지만 이제는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다. 힘든 인생이었다. 어떻게 해서도 살아남았던 그런 운명이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중국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그들을 속국시키려는 노력은 또 얼마였던가. 물론 그곳에서 죽었던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제 살아남은 그가 할 일이 있다.



죽지 않을 것이다. 숨지도 않을 것이다. 고개를 쳐들고 다닐 것이다. 277p


전쟁은 또 하나의 피해를 낳았다. 우리가 흔히 화냥년이라고 부르는 그 단어는 환황년이라는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으로 잡혀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해야 할 터인데 그들은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절을 잃은 몸이라고 말이다. 돌아온 그들을 사람들은 외면했고 가족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살아온 목숨인데 이런 천대를 받고 살 수 없었던 그들은 많은 수가 자결을 함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왜 죽어야만 했는가. 이야기 속의 그녀처럼 당당하게 살아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어야 함이 아닌가. 비록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더욱 당당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임금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훈신들을 죽이고, 역모를 방조하여 그 안에 칙사를 옭아넣고, 칙사의 수족을 역모로 엮어 고신을 해 죽게 만들었다. 음모는 치밀했고, 실행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꼼꼼했다. 380p


임금이라는 자리는 늘 위태로웠다. 평안한 것 같으면서 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불안한 자리가 그 자리였다. 그 자리는 마치 오리가 미친듯이 수면 아래서 발을 놀리고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왕을 중심으로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그들의 이중성을 알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이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없는 일을 만들었고 그래서 무죄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처단했고 그렇게 함으로 자신들의 안녕을 누리고자 했다. 여기 왕과 그를 섬겼던 신하. 이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황제의 칙사. 그들의 대면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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