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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얼마나 읽었을까. 읽어왔고 소장하고 있는 오십 여권이 넘는 책들 중에 어떤 작품을 가장 최고작으로 꼽을 수 있을까. 초기작이었던 가가형사 시리즈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유가와 시리즈도 독특하고 쉽고 재미나게 읽히니 설산 시리즈도 있지만 게이고의 최고는 그야말로 묵직한 정통 사회파 추리일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 [몽환화]를 꼽는데는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한 작가의 책이 개정판이 나올 경우 어떤 책을 소장하게 될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에는 개정판을 가지고 구판을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이 구판 몽환화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지였기 때문이다. 트레이싱지를 덧씌운 덕에 꿈을 꾸게 만드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만든 이 작품을 선뜻 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정판 표지는 원래 색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비채만의 히가시노 시리즈를 완성하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 또한 선뜻 내놓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당분간은 두 권 모두를 소장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책을 조금 정리하더라도 말이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출근하던 아빠와 배웅하던 엄마와 아이 앞에 날카로운 칼을 가진 채 피범벅이 되어 나타난 한 남자. 그는 그 칼을 치켜 들고 이 가족에게 달려드는데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과 정신으로 그 아침에 칼을 들고 설쳤던 걸까. 또 하나의 이야기는 소타라는 중학생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그의 가족은 해마다 나팔꽃 축제에 온 가족이 참석하여 시장을 둘러보고 외식을 하러 간다. 한창 사춘기인 소타는 가족과 어울려 다니는 건 별로지만 외식 가는 것이 좋아서 따라 나서기는 하는데 어느날 그곳에서 첫사랑에 빠지게 된다.
리노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목표인 수영을 그만 둔다. 그러고는 할아버지 댁에 드나들면서 할아버지가 키우던 꽃들을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고 자신이 목격함으로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게 된다. 그녀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단서는 노란색 꽃 사진 하나다. 한참 후에야 그 화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내지만 이미 늦었다. 경찰들은 그것을 중요한 단서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외면 당한 그녀는 할아버지가 블로그에 올리지 말라고 했던 것을 어기고 결국 그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게 된다. 그것으로 인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꽃이라는 하나의 사건과 증거를 놓고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과 리노 그리고 소타까지 이렇게 세 명의 이야기가 교대로 반복된다. 꽃이라는 평범한 소재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 중앙에 차지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려가면서 밝혀지는 비밀들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