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반 만에 남친이 생겼습니다
시모다 아사미 지음, 하지혜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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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에 첫사람과 헤어지고 자그마치 6년반 만에, 그러니까 여자나이 서른에 찾아온 사랑. 그 사랑은 미야타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출근하는 길에 사람 많은 지하철에 타고 있어도 히죽히죽 웃음이 지어지고 만난지 얼마 안되어 키스를 하고 난 후에는 바로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속옷을 사러 가고, 물론 그 김에 겸사겸사 다른 것들도 충동적으로 구매를 하고, 처음으로 그와 함께 밤을 보낸후에는 응큼한 혼잣말까지 하며 돌아오는 내내 그를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철저하게 여자 입장에서 쓰여졌다. 미야타 입장에서만 사랑을 바라볼 뿐 아니라 남친은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간혹 등장을 한다고 해도 남친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거나 드라마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풀샷으로 잡아서 인물이 아주 작게 보이거나 또는 뒷모습으로 등장해서 어깨만 프레임에 걸리거나 하는 식이다. 그나마 목소리로 등장을 하는 것이 미야타가 아팠을 때다.

 

아픈 그녀에게 찾아와서 이것저것 해주는 것을 보면 진정 자상한 남자임에는 틀림없다. 그 이전에 일때문에 미야타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기는 했어도 말이다. 오랫동안 남자를 못 만나왔던 그녀가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난 것이 아닐까. 다만 나이가 있는지라 남친이 있다고 하자 엄마는 바로 아이 키울 생각에 적극적이 되시고 결혼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어쩔수 없지만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연애를 오래오래 해보고 결혼을 하라고 하고 싶지만 미야타의 친구가 8년씩이나 연애를 하고도 결국은 헤어진 것을 보면 짧게 만나도 결혼할 인연은 따로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지만 결혼 또한 타이밍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 남자와 만나서 연애를 했고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할 타이밍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타이밍은 좋았으나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결혼을 한 채 나중에 후회를 하고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결혼이 아니라면 이혼도 틀린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그 또한 아이가 있다면 또 달라지는 생각일테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다.

 

결혼을 한 여자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그 속에서 달달함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현실의 남편이 있다고는 하지만 살다보면 현실에 치여서 달달함은 잊은지 오래, 그것을 대리만족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랬다. 조금은 연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남자친구가 연락오길 기다리고 만날 약속을 잡고 스킨십이 주는 떨림을 즐기고. 그런 즐거움을 아무나하고 해서 느낄수 없으니 책으로 대신 느끼고 싶었다. 충분했다. 가볍고 달달하고 여자의 입장에서 느낄수 있는 처음 초반기의 감정을 아주 속도감있게 몰아서 서머리하듯이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르테팝. 재미주의 엔터테인먼트 브랜드로 아르테에서 분리되어 있는 브랜드. 그 이름에 딱 맞는 한권의 책이 이 책일 것이다. 재미지다. 달달하다. 그러면 그것으로 이 책의 소명은 다한 것이다. 파릇파릇한 초창기 연애의 자릿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현실의 건조함에 약간의 달달함을 추가하고 싶다면, 남의 염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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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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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으로 발행되는 잡지를 본다는 것은 무언가를 꾸준하게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시간맞춰 발행되는 책들은 날아오기 마련이니 이번호를 읽지 않으면 그대로 쌓이게 된다. 마치 어렸을때 하던 문제은행이나 아이템풀 학습지 같은 느낌이다. 우리집에는 엄마가 두고 읽으시는 '생명의 삶'라는 성경큐티책이 매달 날아온다. 지난번 일년구독이 끝나고 그 다음 책이 없었을때 내가 다시 일년동안 신청해 준 책. 책이 매달 날아올때마다 괜스리 뿌듯하다.

 

여전한 샘터의 이야기다. 항상 보는 이해인 수녀님의 글도 반갑고 기생충학자 서민교수의 이야기도 이번호에는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나 싶어 자세히 읽게된다. 성석제 작가의 이야기도 즐겁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샘터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마도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실린다는 것이다. 나와 별달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하면서 웃기도 하고 가끔은 그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공감을 하게도 된다.

 

이번호 특집 이야기는 '우리곁에, 산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가 실려있다. 산타가 주고 간 선물.. 그 선물에 관련된 이야기들. 다들 훈훈한 이야기들이었다. 산타와 관련된 이야기로 하자면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산타를 믿었다. 그게 다 전부 철저한 엄마 덕분이었는데 당시 2층에 살던 우리집 베란다로 코트가 '툭'소리를 내면서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아니 믿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당연히 눈치빠른 두 동생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나름 순진한 나만 오래도록 속은 것이다. 그래도 그 기억덕분에 오래도록 즐거웠고 행복했다. 지금도 가끔은 산타를 믿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스트하우스 소개편에서는 나도 그곳을 나중에 꼭 방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가수 최백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졌고 역시 인기있는 조선왕조실톡 이야기를 보면서 이 책이 아직까지도 이슈가 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의미라는 뜻으로 붙여진 잡지. 그 말 그대로 샘터에는 온갑 잡스러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단지 혼동속에서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모두 읽는 사람들에게 정겨움과 도움을 주는 그런 잡스러움이라면 계속되어도 좋지 않을까. 내년에도 샘터와 함께 하는 나날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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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서양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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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ould save the Earth. 초등학교 6학년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제목 중에 하나다. 그만큼 우리는 지구가 아프고 있음을 우리가 지구를 구해주고 보살펴줘야 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모르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아주 많이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밀림에서는 수백년 자란 나무들이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잘려나가고 있고 그만큼 또 지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살았던 아주 예전 초창기는 어땠을까. 공장도 없고 차도 없었던 그 시절 지구는 살기 좋았을까. 아무도 기억할수 없었던 그 시절의 일들이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환경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생태문학을 연구한다. 생태문학이라고 하니 무언가 어려운 듯 하지만 여러 작품 속에서 환경과 관련있는 문학작품을 연구한다고 하면 쉽게 받아들일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포함한 녹색고전은 세권이 한 세트이다. 각기 한국편과 서양편 그리고 동양편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동일할 것이다. 지구를 구하자는 것, 그리고 환경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각기 다른 문학작품들 속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을 찾아내어서 연결하고 연구한다. 서양편인 이 책에서도 성경을 비롯한 꽤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다.

 

유대인의 기도문에서 연결된 이야기는 영화 설국열차에까지 연결된다. 이 글을 읽고 있자니 그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꼭 봐야 할 목록에 적어 두게 된다. 인간이 계속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다가는 그런 사태가 현실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같다. 지구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들을 볼때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곤한다.

 

어떤 식물에게는 하루에 세 시간씩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 만에 옥수수는 줄기가 휘어졌고, 석 달 만에 호박잎에는 깊이 주름이 생겼으며 꽃잎은 색깔을 잃은 채 시들어버렸습니다. 한편 하루에 세 시간씩 클래식 음악과 찬송가를 들려준 식물들은 싱싱하게 자랐습니다.(229p)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물에도 결정체가 있어서 좋은 말을 하고 사랑해라고 말해주면 이쁜 모양의 물이 생기고 욕을 하면 물 조차도 악마의 형상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물며 살아있는 식물이야 더욱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서 알아낸 사실이니 더욱 신빙성이 있다. 식물이 있어야 지국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주위의 모든 자연에게 늘 감사하고 좋은 말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들이 있기에 인류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앨런 긴즈버그의 루르-게비트라는 작품이었다. '너무나 많은' 이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각 행마다 '너무나 많은'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그런 시이다. [너무나 많은 공장들/너무나 많은 음식/너무나 많은 맥주/너무나 많은 담배]로 시작되는 1연부터 계속해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이라는 단어가.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 너무나 많은 세상 말이다. 성인병이라는 것 또한 너무나 많은 것을 먹어댔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공해라는 것도 너무나 많은 교통수단들과 공장때문에 생긴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인간들이 이 지구에게 너무나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이성에 호소하는 추상적인 이론은 색깔로 치자면 회색에 속할 것입니다. 한편 감성에 호소하는 구체적이고 극적인 예술과 생명의 색깔은 다름 아닌 녹색일 것입니다. 죽음의 색깔이 회색인 반면 생명을 살리는 환경운동을 상징하는 색깔은 바로 녹색입니다.(184p)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푸른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에 살고있는 우리는 회색을 훨씬 더 많이 볼때가 많다. 건물들 건물들건물들. 지구가 푸른빛을 잃으면 죽어가는 것이다. 지구를 푸르게푸르게 녹색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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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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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요즘 특히 동화를 이용해서 변형된 이야기들이 눈에 많이 띄인다. 스토리콜렉터의 '신더' 시리즈도 신데렐라를 비롯한 여자아이 이야기들을 변형한 작품이고 최근에 읽었던 '빨간구두당'도 여러 동화들을 작가의 뜻대로 변형시킨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르테에서 새로 나오고 있는 시리즈인 '딥블루'도 인어공주를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 이야기 또한 그러하다. 백설공주를 포인트로 해서 구성된 삼부작 이야기. 백설공주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주인공. 물론 그 아이는 백설공주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공주이미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를 가져다 쓴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의 제목이 주는 이미지 같다. 첫번째 책으로 나온 이 책의 제목은 '피처럼 붉다, as red as blood'. 두번째 책으로 나올 이야기는 '눈처럼 하얗다, as white as snow'이 준비되어 있다. 아마도 세번째 책은 '흑단창틀처럼 검다'가 될지도 모르겠다.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지고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그리고 까만 눈썹을 가진 그런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백설공주이다. 이 책에서 '피처럼 붉은'을 강조한 이유는 당연히 첫 장면 아닐까. 하얀 눈위에 쓰러진 여자에게서 나온 붉은 피. 하얀 바탕에 빨간색.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가지 색. 그것이 피일지라도, 피가 아닐지라도 그것을 직접 본 사람은 죽을때까지 잊히지 않을 하나의 장면이 뇌속에 새겨졌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몸을 숨기는 능력이 있는 루미키. 자기자신을 보호할줄 알고 웬만한 사람들의 미행도 할줄 아는 그녀는 그저 남에게 튀고 싶지 않은 여고생일뿐이다. 집에서 나와서 독립해서 혼자 학교를 다니는 한 여학생.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독립을 하는 유럽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튀고 싶지 않아 하는 그녀. 어느날 아침 수업시작 전 들르곤 하는 암실에 들렀다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한가지를 보게 된다. 피에 젖어 물에 헹구어진 돈들이 널려 있는 광경이다. 수많은 돈이 널려 있는 것을 본 그녀. 슬며시 빠져 나와서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시 들른 그곳에서는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방금 마주쳤던 아이의 평상시 모습과 대조해 본 그녀는 다른점을 발견하고 그를 미행하기에 이른다. 과연 그 아이는 그 돈이 어디에서 난 것일까.

 

자신의 마당앞에 떨어져 있었다고 주장한 앨리스. 그녀는 경찰의 딸이다. 그녀와 친한 친구 세명이 공평하게 나눠가진 그 돈. 과연 그 돈을 누구에게 보내진 것일까. 엘리스의 집에 들러서 추리를 하고 나오던 그녀는 괴한에게 납치될뻔한 기회를 무사히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왜, 무슨 이유로, 그녀를 납치하려 한 것일까. 자신이 아닌 앨리스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알고 앨리스에게 긴급히 전화를 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앨리스를 비롯한 삼총사와 더불어 루미키의 활약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저 흔한 고등학생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이 이야기는 뻔한 스릴러물이 아니라 훨씬 박진감 넘치면서도 조금은 산뜻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루미키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결해 나가는 일들이 하나씩 쌓일때마다 그녀의 경험치는 점점 높아간다. 추적을 하고, 미행을 하고, 변장을 해서 잠입을 하고. 모든 것이 전혀 고등학생과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루미키라면,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한 이야기다.

 

이미 삼부작으로 구성이 되어서 맛보기로 보여준 것 같은  첫 이야기가 지났다. 이제 시작일뿐이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루미키의 옛이야기.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편을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이 스릴러는 밀레니엄 시리즈에 비교될만큼 재미나다고 소문나 있다. 이렇게 보니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비슷하고 특출나다는 것도 비슷해 보이기는 하다. 단지 밀레니엄이 조금은 하드하고 조금은 더 꼬여진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꼬여있지는 않다. 피처럼 붉은 이야기를 한단 쌓아놓고 어서 눈처럼 하얀 다른 이야기가 이 위에 쌓이길 기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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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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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듯 말듯 이해할듯 말듯한 문장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로 모호한 경계선을 타 넘으면서 들어온다. 철학적인 문체가 계속되는 듯 하면서도 끊없이 새로운 인물들을 추가를 하면서 이야기를 끈질기게 이어나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문체가 복잡하다고, 어렵다고 해서, 그 글을 끊을수가 없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것이 이 책을 계속 읽게 하는 포인트다. '독'이라는 존재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독을 일으킨다. 아마도 작가가 이 책에 뿌려놓은 독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열개가 나빠도 나쁘고, 하나가 나빠도 나쁘다. 그러나 열 개가 나쁜 것과 하나가 나쁜 것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요는 그 나쁨이 얼마나 나쁘냐, 누구에게 대해서 나쁘냐일 뿐이다. 이 사람에게 선인것이 때때로 저 사람에게는 악이다. 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저 사람을 해롭게 해야 하는 것이 인생사다. 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기 위해 저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18p) 어려운 말의 중복인 듯 하면서도 자세히 읽어보면 그 말이 신통하게 알기 쉽게 들린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조차도 그러하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누군가를 편들어야 한다면 한사람에게는 이롭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해로운 것이다. 그렇고 그런 가벼운 말장난이 아니다.

 

'새처럼 자유롭다'라는 말을 설명하면서 이어지는 말에서는 위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호랑이나 사슴이 '우리 안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처럼, 새들도 역시 '우리 안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다. 차이는 어슬렁어슬렁 이거나 훨훨 정도이다. 새들은 호랑이나 사슴이 자유로운만큼 자유롭고, 그들이 부자유한 만큼 부자유하다. 그들의 자유는 '우리 안의' 자유이다. 새들이 자유롭다고? 무책임하게, 관습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마라.(51p) 갇혀진 새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문구들을 세세하게 꼬집고 있다.

 

맹인은 밝음을 잃은(失明)사람일  뿐, 어둠까지 잃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어둠을 '본다'. 그는 세상에 대해 '검다'고 느끼고 수용하고 응답한다. 세상은 고립된 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201p) 어찌보면 철학책에서나 볼수 있는 문구들 같지만 이 책은 엄연히 소설이다. 임순관이라는 사람의 일기를 통해서 벌어지는 일상들을 그리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엮는 그는 오늘도 사형수를 만나러 간다. 그는 사형수가 말한 '쥐새끼'라는 한단어에 꽂혀 꿈에서조차도 시달린다.

 

사형수와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할 무렵 또 다른 이야기를 의뢰한 여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그 스케일을 부풀려간다. 임순관과 그 여자 민초희, 그녀를 보좌하는 독일병정같이 생긴 한 남자, 그리고 사형수 손철희, 여기에 풀판사 사장 홍과 그의 처제, 더하여 임순관의 누나와 아버지 하다못해 동네 주민들까지도 적당한 위치에 놓여서 이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달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 때문에라도 절대 이야기를 읽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불면의 밤에 읽는 소설책과 삐익 삑 우는 전화벨과 검은 물속에 떠 있는 내 몸과 내 몸 위의 쥐 떼들과 내 손에 들린 가위와 그 가위에 잘려 나가는 어떤 여자의 긴 머리카락과 아기 울음 같은 고양이 소리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기차 소리......등이 한데 뒤섞여 뭉툭한, 하나의 무채색의 덩어리가 된다. 나의 의식은 예리하지 못해서 그것들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280p)

 

그저 형이상학적인 소리가 계속될무렵 마지막에 걸려넣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그의 입장에서 말하는 한 문장은 공기중 어딘가에서 모호하게 떠있던 의식을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만들어버린다. 공상속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이야기에 집중을 한다. 독. 작가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치명적인 독과 같다. 하지만 그 독으로 인해서 이 책의 매력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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