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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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듯 말듯 이해할듯 말듯한 문장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의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로 모호한 경계선을 타 넘으면서 들어온다. 철학적인 문체가 계속되는 듯 하면서도 끊없이 새로운 인물들을 추가를 하면서 이야기를 끈질기게 이어나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문체가 복잡하다고, 어렵다고 해서, 그 글을 끊을수가 없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것이 이 책을 계속 읽게 하는 포인트다. '독'이라는 존재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독을 일으킨다. 아마도 작가가 이 책에 뿌려놓은 독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열개가 나빠도 나쁘고, 하나가 나빠도 나쁘다. 그러나 열 개가 나쁜 것과 하나가 나쁜 것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요는 그 나쁨이 얼마나 나쁘냐, 누구에게 대해서 나쁘냐일 뿐이다. 이 사람에게 선인것이 때때로 저 사람에게는 악이다. 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저 사람을 해롭게 해야 하는 것이 인생사다. 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기 위해 저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18p) 어려운 말의 중복인 듯 하면서도 자세히 읽어보면 그 말이 신통하게 알기 쉽게 들린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조차도 그러하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누군가를 편들어야 한다면 한사람에게는 이롭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해로운 것이다. 그렇고 그런 가벼운 말장난이 아니다.

 

'새처럼 자유롭다'라는 말을 설명하면서 이어지는 말에서는 위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호랑이나 사슴이 '우리 안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처럼, 새들도 역시 '우리 안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다. 차이는 어슬렁어슬렁 이거나 훨훨 정도이다. 새들은 호랑이나 사슴이 자유로운만큼 자유롭고, 그들이 부자유한 만큼 부자유하다. 그들의 자유는 '우리 안의' 자유이다. 새들이 자유롭다고? 무책임하게, 관습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마라.(51p) 갇혀진 새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문구들을 세세하게 꼬집고 있다.

 

맹인은 밝음을 잃은(失明)사람일  뿐, 어둠까지 잃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어둠을 '본다'. 그는 세상에 대해 '검다'고 느끼고 수용하고 응답한다. 세상은 고립된 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201p) 어찌보면 철학책에서나 볼수 있는 문구들 같지만 이 책은 엄연히 소설이다. 임순관이라는 사람의 일기를 통해서 벌어지는 일상들을 그리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엮는 그는 오늘도 사형수를 만나러 간다. 그는 사형수가 말한 '쥐새끼'라는 한단어에 꽂혀 꿈에서조차도 시달린다.

 

사형수와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할 무렵 또 다른 이야기를 의뢰한 여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그 스케일을 부풀려간다. 임순관과 그 여자 민초희, 그녀를 보좌하는 독일병정같이 생긴 한 남자, 그리고 사형수 손철희, 여기에 풀판사 사장 홍과 그의 처제, 더하여 임순관의 누나와 아버지 하다못해 동네 주민들까지도 적당한 위치에 놓여서 이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달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 때문에라도 절대 이야기를 읽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불면의 밤에 읽는 소설책과 삐익 삑 우는 전화벨과 검은 물속에 떠 있는 내 몸과 내 몸 위의 쥐 떼들과 내 손에 들린 가위와 그 가위에 잘려 나가는 어떤 여자의 긴 머리카락과 아기 울음 같은 고양이 소리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기차 소리......등이 한데 뒤섞여 뭉툭한, 하나의 무채색의 덩어리가 된다. 나의 의식은 예리하지 못해서 그것들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280p)

 

그저 형이상학적인 소리가 계속될무렵 마지막에 걸려넣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그의 입장에서 말하는 한 문장은 공기중 어딘가에서 모호하게 떠있던 의식을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만들어버린다. 공상속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이야기에 집중을 한다. 독. 작가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치명적인 독과 같다. 하지만 그 독으로 인해서 이 책의 매력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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