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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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는 고전문학부터 지금 이시대를 그려내는 현대의 문제작까지 여러문학들을 모아서 펴내고 있는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 올해 읽었던 작품들 중에는 유난히 일인칭 시점으로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듯이 쓰여진 작품이 많았다. [푸줏간소년]도 그랬고 [스톤다어이어리]도 그랬고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집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심통이 난다는 김점선님의 작품소개에 이어지는 글은 역시 집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오래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자라고 그 집에서 살다가 그 집에서 죽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집이라는 개념 또한 약간은 변해오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은 그냥 정착해 있지만 학교 다닐때는 참 많이도 옮겨다녔었다. 어렸을때는 아빠가 회사때문에 가시면 온 가족이 따라서 왔다갔다를 반복했었고 외국에 나가서 살 때에는 당연히 남의 집에 얹혀 살았고 돈에 맞춰 살아야 했기 때문에 옮겨 다녀야만 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특별한 집이 있다. 자신의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았던 행복했던 그 때를 나타내는 그 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은 그집. 그 자신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그 집. 그러나 자신은 영원히 그 집을 기억하고 그 집을 추억한다. 자신의 유년시절의 즐거움이 행복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 책이 일종의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이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순간마다 그때 시절이 생각났고 기억을 되돌렸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했었다고 추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아련한 향수같은 것들이 묻어서 나온다. 소설 같으면서도 에세이같은 느낌이 곳곳에서 넘쳐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서 그럴까 자연스러움이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담담함도 느낄수가 있다. 최대한 자기자신의 감정을 누르면서 쓰려고 노력한듯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다. 전혀 객관적일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그속에서 혼자만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과 같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은 외롭지 않다. 작가가 혼자서 자기 멋대로 자신의 즐거움에만 빠져서 쓴 것같은 느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유년시절로 초대된듯한 느낌을 받을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어찌 즐거운 일만 있을까. 작가 또한 그랬다. 전쟁 중, 딱 한가운데 있던 집에서 포탄을 맞기도 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집을 떠나야 하기도 했었고 아버지로부터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많은 가족들때문에 자신은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물도 나오지 않고 아이들의 인원수에 비해서 방도 모자라고 난방도 되지 않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아무것 없이 단지 모여있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들 말이다. 서로 온기를 나주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면서 없는 것도 서로 보태가면서 살아가나가는 것. 그것이 가족과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일것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다는 작가. 두 편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첫번째 글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자신은 산 사람들, 죽은 사람들 그 모두와 평화롭게 니내고 싶었다는 그. 그는 과연 그 중간자 입장에서 행복함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앞의 이야기를 펴낸 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앞의 이야기가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기의 이야기였다면 뒤쪽의 이야기는 그 후 청년기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편의 이야기가 맞물려서 한편의 자서전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앞의 편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뒤의 이야기는 역시 어머니의 죽음과 맞물려있다. 두 이야기의 분위기상 큰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주인공의 나이가 든만큼 그만큼 격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러저리 방황하는 모습조차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자신이 추구하던 목표도 바뀌게 된다.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내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루하루 늙어가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즉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아있는 한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인지도 모르겠다. 왠지 울컥하는 감정이 드는 것을 참아낼 수 있을까. 최대한 담담한 필체로 쓰여진 한 사람의 일대기를 좇아가며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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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6.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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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별 다를게 없는 그 날이 그 날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고 결심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달이 바로 1월일 것이다. 해오름달. 해가 올라간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일 것임에 분명한 해오름달. 해가 올라가고 새로운 한해가 다시 시작되고 그 시작을 알리는 1월이다. 얼마만큼 1월을 잘 보냈느냐가 그 해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만 같다.

 

여러 이야기가 모여있다는 의미의 잡지라는 이름답게 샘터도 여러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때로는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으며 나와 별다를 거 없는 일반 사라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고 또 그런 삶의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글로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이 글을 읽는 매력이 아닐까.

 

발행인의 글에서는 '응답하라 1988'을 언급하고 있었다. 아마도 발행인도 그 시대인가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던 그 때. 사람들의 인심이 그나마 남아 있었던, 정이라는 것이 아직까지는 존재했었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들은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호의 특집은 나이 그 까짓것. 솔직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은 꺼리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짓을 하면 나이에 맞지 않는다던지 또는 해보고 싶어도 내가 지금 이걸 어떻게 할까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이번호의 주인공들은 중년의 나이에 꿋꿋이 노래방에서 랩을 부르고 노년의 나이에 연극을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무엇이든 늦음이란 없는 것이다가 정답이다. 자신이 하고 싶다면, 꿈이 있다면 Do it now!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달답게 새로운 코너들이 신설되어 더욱 눈을 즐겁게 해준다. '고고학이 살아있다'라는 코너를 통해서 고고학을 재마나게 공부할 수도 있고 재즈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나와서 유명해지신 후포리의 사위 남박사님이 들려주는 남서방의 처방전은 연말이나 새해면 반복되는 술문화를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신설되는 코너가 있는가하면 익히 보던 얼굴들인데 사라져서 아쉬운 코너들도 있다. 공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공항 24시'라던가 '예술로 다독다독', '사시사철 기차여행'등은 즐겨보던 코너라서 서운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그분들의 글들도 기대해본다. 즐겁게 읽었던 서민교수님의 '기생충에게 배우다' 코너는 없어졌지만 서민교수님의 글은 글쓰기 훈련으로 계속 볼수 있어 반가웠다. 한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새로운 글들이 보이고 익숙한 글들을 보이지 않게 되고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새로운 한 달. 이제 마지막 달도 한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달을 잘 보내고 새로운 달은 새롭게 또 다른 해를 향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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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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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방'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나온 책 한 권. 누군가 그 방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아주 센 스릴러 한편을 생각했다. 갇혀 있는 사람이 탈출하려고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주인공이 그 갇혀있는 인물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등의 스케일 큰 한편의 스펙타클한 영화를 생각했던 것이다. 오산이었다. 누군가 갇혀있다. 거기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와 탈출했다. 그 아이가 적응한다. 한편의 휴먼다큐멘터리가 이어진다.

 

전반부에는 엄마와 아이가 방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그곳에서 두렵지 않다. 즐겁다. 해야 할 놀이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언제 그런것을 생각해냈는지 이런 저런 놀잇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 좁은 방에서 심지어 체육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의 방과 화장실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그 곳에 전부인줄 알고 자란 아이에게는 그 방은 말할수 없이 안락한 곳이다. 엄마와 함께 있는 그 곳이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끌려와서 이유없이 그곳에 갇혀 지내야 하는 엄마에게는 감옥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있어서 그나마 버티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몇번이고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 이쯤에서 나는 범인의 입장으로 넘어가보기로 한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또한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잘 학교 다니던 여자애를 잡아다 그 곳에 가둔 그. 그는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래서 단지 그녀가 아니면 아니었던 것일까. 그래서 미리 철저하게 탈출할 수 없는 방을 준비해두고 그녀를 그곳에 가둔 것인가. 그렇다고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그녀를 매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단지 펫처럼 사육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통제하에 그녀를 두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만 삼았던 것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을뿐이라 더 깊은 이유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후반부는 엄마와 아이가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이야기다. 엄마는 그래도 사회에서 생활을 하던 사람이이니 다시 보는 모든 것을이 반갑고 좋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부모님들을 보는 것도, 오빠를 만나는 것도, 못 보았던 조카를 보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귀찮게 하고 들쑤신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각종 미디어에서 몰려든다. 사람들은 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꺼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하기야 진짜로 일어났던 실화가 가장 재미난 소재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조금은 더 그녀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해줄수는 없었을까.

 

겨우 방을 탈출한 그녀와 아이에게는 병원이라는 또 다른 방이 존재하고 또다시 그 방에 갇히게 된다. 물론 표면적으로야 자유를 얻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방속에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다섯살이지만 세상이라는 곳에 처음 나온 아이는 모든것이 다 낯설다. 엄마와 함께 한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는 익숙지 않다. 텔레비젼에서 본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자신만 보아주던 엄마가 이젠 자신만 보아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외로운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분명.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기 힘들다는 뜻이다. 누군가 두루 같이 있었을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분명 의견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분열이 될지라도 말이다. 한때 히키코모리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 그들도 주인공처럼 방에 갇힌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자신을 가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그 방 바깥으로 나올수 있다. 같은 방일지라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시간동안 가둬둔 사람과 은둔형 외톨이를 동시에 이 세상밖에 내놓는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더 빨리 적응을 할 것인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광고에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감동이 있는 책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한 편의 영화는 [디아더스] 였다. 엄마와 아이로 이루어진 구성이 똑같고 자신들만의 유대관계가 끈끈한 것도 닮았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자신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 한정된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같은 컨셉이다. 단지 주인공들의 존재 자체가 좀 달랐을뿐이긴 하지만 그런 공통점 때문에 더욱 연결시켜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태어나고 적응하고 사회에 속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접한 아이는 혼동스러울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니 실제로도 그 아이는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모든 아픈 기억들을 잊고 행복하고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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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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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죽고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문장을 쓰면서 전혀 그러지 않을 사람, 딱 한명이 생각났다. 지극히 밝고 긍정적이며 낙천적인데다가 친화력도 갑이어서 우주에서 온 이티까지도 단 몇분내로 친구먹을 여자, 오모양.) 난 사춘기시절 생각은 해본 적이 있다. 단지 그 모든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만으로도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너무 아프다는 이유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용기없음이 참 다행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든 결심과 실천에 이유와 이성적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유와 생각,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전적으로 "그래 지금 시작하자"고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48p)

 

여기 한 작가가 있다. 종합병동이라 해야 할 정도로 자잘한 병들을 가지고 있는 그는 불안한 마음을 가눌길 없어 정신과에 간다.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 책을 펴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불안증이나 우울증을 비롯해서 마음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이겨낼 더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기기 때문에 병원이 필요없는 것이다. 자신이 약하다면 그냥 동네병원 가듯이 상담을 받는것도 나쁜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글은 한없이 우울하고 불안하다. 그럴때마다 글을 썼기때문에 어쩔수 없겠지만 그 불안함과 그 우울함에 전면부에 깔려있다. 이건 이래서 우울하고 저건 저래서 우울하고. 끝없이 우울함의 연속이다. 남들은 다 봤는데 나만 못 본 영화라는 표현에서도 알수 있다. 사실 그 영화 나도 못 봤다. 누구나 다 봤다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본 사람은 본 사람대로 안 본 사람은 또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다른 것을 하느라 바빴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될 일 아닌가. 쉽게 생각하면 그뿐인데 작가적 머리는 다른가 끊임없이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혹 가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이상 딱 한번뿐인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야한다. 그렇다면 어떻게든지 행복하고 즐겁게 살려는 소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불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작가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다. 난 지금 우울하지만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이다. 가만히 다가가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글이다. 지금 나는 북유럽의 겨울날처럼 온종일 까만 밤이다. 난 행복해지고 싶다. 그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 그리고 소리내어 말해보고 싶다. '아......행복하다.'(133p)

 

내 인생에도 봄이 오길 고대했다. 길고 더뎠던 겨울 동안 이 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태어난 것 처럼 괜찮아질 줄 알았다. 봄은 왔지만 나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186p) 아무리 봄날을 고대한다하더라도 자신의 마인드가 달라진 것이 없다면 단지 계절이 날씨가 바뀐 것으로 자신에게 봄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날씨에 상관없이, 계절에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될 일인가. 오래도록 병을 앓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앓아온 시간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기운이 옅어질지도 모르겠다. 유럽을 좋아하면서도 북유럽의 겨울이 싫어서 겨울에는 따스한 곳으로 여행을 간다. 밝고 활기차고 따뜻한 곳 말이다. 작가에게도 그러한 곳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269p) 마음의 병을 앓는 작가와 그에게 충고의 말을 건네는 정신과 의사의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진 책. 전면적으로 어두운 가운데서도 빛같은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아무래도 딱 이 한구절. 누구나 다 불암함을 느끼면서 산다. 단지 그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도 감미롭게 말이다. 그 얼마나 실용적인 충고인지.

 

이 책을 컬러에 비유하자면 아주 짙은 검정에 가까운 네이비다. 영어의 blue에는 우울이라는 표현이 감추어져 있다. 누구라도 힘들고 어렵고 불행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왜그렇게 살아야하는가. 그러니 김작가. 힘을 내시오. 당신에게는 당신의 글을 아껴주는 팬들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앞으로 당신을 사랑해 줄 그 누군가도 만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작가의 밝음이 나타날 책이 보고싶어진다. 언젠가는 환한 노란빛으로 밝게 빛나는 그의 책을 볼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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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곳으로 가라 - 운명의 지도를 바꾸는 힘, 지리적 상상력 아우름 6
김이재 지음 / 샘터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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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 없이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 한 권의 책. 처음부터 멈칫거렸다. 누군가 어린 학생에게 말하듯이 '~했습니다', 또는 '~해보지 않을래요?' 하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제일 뒤의 닫는 글을 읽으면서도 전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었다. 다시 표지를 찾찬히 살펴본다. [아우름 6]이라고 적혀진 표시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 교양시리즈 아우름 여섯번째 책이었던 것이다.

 

1권 생명과학자인 최재천 박사의 책부터 시작해서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우치다 타츠루의 6번째 책까지 학생들의 목마른 부분을 가득 채워줄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여섯번째 책인 이 책은 문화지리학자인 김이재 저자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설명하듯이 조곤조곤 하는 이야기는 인문교양이라 할지라도 지루할 틈새 없이 자나간다. 한번은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곳에 있었나하면 또 다음번에 바로 대륙을 건너뛰어 다른 장소로 이동하니 텔레포터가 따로 필요없을 지경이다.

 

학교다닐때 지리과목이 있었는가? 공부를 잘했었는가? 우리 학교의 지리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서 '불타는 고구마'라는 별명을 가졌다다는 것 말고는 전혀 기억이 없는 지리다. 저자는 미국에서는 지리학을 잘 공부시키지 않고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독해 상에서는 geology 즉 지질학이나 geography 지리학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하는 편이다. 그들의 교과중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공부가 되어지는지는 미국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어느 특정나라를 정해서 그 나라는 이런게 유명하고 지리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으며 무엇이 중요합니다 하고 가르쳐 주는 학문적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유명한 사람을 예로 들어서 그 사람이 자신이 홈타운에 있지 않고 그 곳을 떠나 다르른곳으로 가서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떻게 성공을 했는지는 알려주고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람들 - 작가로부터 시작해서 운동선수에 이르기까지 - 여러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이 등장을 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아직 정하지 못한 친구라면 여러 직업을 생각해 볼 수 있게도 한다.

 

특히 저자는 자신이 말괄량이 삐삐의 팬이라고 밝히면서 그 작가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그 이야기도 즐겨서 인용을 한다. 그러다보니 그 드라마 나도 어렸을때 봤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어린 삐삐가 참 대단해보였는데 말이다. 어른들이 물으면 또박또박 다 대답을 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갔던 그 삐삐. 저자만큼 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의 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내가 행복한 곳으로 가라. 지금 당신의 장소에서 불행하다면 - 행복과 불행의 개인이 느끼기 나름이니 무엇이라 딱 정의할 수 없지만 - 그곳을 떠나 당신이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으며 환영하던 환영하지 않던, 자신이 그곳에 머물러서 환영을 받으면 되고 자신이 행복한 삶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또 누가 아는가? 오래오래 시간이 지난 후 이 책을 읽고 자신이 행복한 곳으로 간 누군가가 또 다른 책에 실릴 유명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청소년들에게 시간은 충분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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