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말하자. '방'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나온 책 한 권. 누군가 그 방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아주 센 스릴러 한편을 생각했다. 갇혀 있는 사람이 탈출하려고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주인공이 그 갇혀있는 인물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등의 스케일 큰 한편의 스펙타클한 영화를 생각했던 것이다. 오산이었다. 누군가 갇혀있다. 거기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와 탈출했다. 그 아이가 적응한다. 한편의 휴먼다큐멘터리가 이어진다.

 

전반부에는 엄마와 아이가 방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그곳에서 두렵지 않다. 즐겁다. 해야 할 놀이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언제 그런것을 생각해냈는지 이런 저런 놀잇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 좁은 방에서 심지어 체육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나의 방과 화장실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그 곳에 전부인줄 알고 자란 아이에게는 그 방은 말할수 없이 안락한 곳이다. 엄마와 함께 있는 그 곳이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끌려와서 이유없이 그곳에 갇혀 지내야 하는 엄마에게는 감옥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있어서 그나마 버티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몇번이고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 이쯤에서 나는 범인의 입장으로 넘어가보기로 한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또한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잘 학교 다니던 여자애를 잡아다 그 곳에 가둔 그. 그는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래서 단지 그녀가 아니면 아니었던 것일까. 그래서 미리 철저하게 탈출할 수 없는 방을 준비해두고 그녀를 그곳에 가둔 것인가. 그렇다고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그녀를 매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단지 펫처럼 사육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통제하에 그녀를 두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만 삼았던 것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을뿐이라 더 깊은 이유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후반부는 엄마와 아이가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이야기다. 엄마는 그래도 사회에서 생활을 하던 사람이이니 다시 보는 모든 것을이 반갑고 좋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부모님들을 보는 것도, 오빠를 만나는 것도, 못 보았던 조카를 보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귀찮게 하고 들쑤신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각종 미디어에서 몰려든다. 사람들은 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꺼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하기야 진짜로 일어났던 실화가 가장 재미난 소재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조금은 더 그녀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해줄수는 없었을까.

 

겨우 방을 탈출한 그녀와 아이에게는 병원이라는 또 다른 방이 존재하고 또다시 그 방에 갇히게 된다. 물론 표면적으로야 자유를 얻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방속에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다섯살이지만 세상이라는 곳에 처음 나온 아이는 모든것이 다 낯설다. 엄마와 함께 한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는 익숙지 않다. 텔레비젼에서 본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자신만 보아주던 엄마가 이젠 자신만 보아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외로운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분명.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기 힘들다는 뜻이다. 누군가 두루 같이 있었을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분명 의견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분열이 될지라도 말이다. 한때 히키코모리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 그들도 주인공처럼 방에 갇힌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자신을 가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그 방 바깥으로 나올수 있다. 같은 방일지라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시간동안 가둬둔 사람과 은둔형 외톨이를 동시에 이 세상밖에 내놓는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더 빨리 적응을 할 것인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광고에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감동이 있는 책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한 편의 영화는 [디아더스] 였다. 엄마와 아이로 이루어진 구성이 똑같고 자신들만의 유대관계가 끈끈한 것도 닮았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자신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 한정된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같은 컨셉이다. 단지 주인공들의 존재 자체가 좀 달랐을뿐이긴 하지만 그런 공통점 때문에 더욱 연결시켜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태어나고 적응하고 사회에 속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접한 아이는 혼동스러울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니 실제로도 그 아이는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모든 아픈 기억들을 잊고 행복하고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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