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궁금증 하나. 작가의 이름은 윤일까 정일까. 아니면 성은 따로 있고 정윤이라는 이름만 필명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자란 작가는 한국의 이름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작가의 이름은 외 자로 본다면 자신의 이름을 따라서 지은 것일지 몰라도 본문에서는 '경'과 '매'라는 외 자 이름이 등장을 한다. 경이라는 이름은 무난하게  쓰일 수 있지만 매라는 이름은 사뭇 낯설다. 작가는 이 이름에 어떤 의미를 두려 한 것일까.

 

궁금증 둘. 작가는 종교를 가지고 있을까. 이민사회는 생각보다 좁다.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둥지를 만들고 그들의 사회에 속하려 하지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때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도 이민을 가서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정보를 얻고 그곳에 미리 자리잡은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가장 빠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것은 바로 한인교회다.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성목사의 기도를 작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마치고 있는데 영어적인 표현으로도 Jesus라는 표현을 쓰고 보통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 그 표현이 사뭇 생경했다. 원서에서는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

 

Home sweet home. 집이라는 공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작가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그 표현을 그대로 제목에 붙였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이 제목은 역설적이라는 표현인 것을 말이다. 어린 경에게 집은 전혀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집을 고수한 그의 의지가 놀랍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벌써 집을 뛰쳐 나가지 않았을까.

 

최근 웹툰 하나를 보다가 관심이 생겨서 1화부터 다 찾아서 읽어보았다. 가정내 폭력이 존재하는 주인공의 집. 그곳에서 주인공의 오빠는 진작에 집을 나가버렸고 오빠를 찾는 엄마를 보던 주인공은 자기라도 집에 붙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려냈다. 경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경의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보자.7 0년대 동양인이 미국에 와서 교수 자리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가 아닌 곳에서 자리를 잡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차별이 없다고 해도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때는 훨씬 더 심했을 것이라고 추측할수 있다.

 

거기다 부부 모임이 많은 그들의 사회. 다른 사람보다 나아보이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내는 실수만 하고 웃음거리만 되니 그것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그래도 나았을지도 모른다. 돈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린 경의 아버지는 남들이 보면 성공한듯이 보일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참을수가 없었고 그것이 폭력의 형태로 드러났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성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힘이 세다고,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있어서도 안되며 허락할수도 없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법에 정해져 있을뿐만 아니라 가정적인 사적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라도 맞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속으로 울적해지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라앉았던 마음을 끌어올려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마스다 미리의 오사카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린 이 작품이 딱이었다. 더군다나 오사카 사투리를 설명하면서 글로 표현하기 힘드니 계이름을 사용해서 알려주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따라 발음해보노라니 시간 가느 줄 모르고 낄낄거리게 된다.

 

가령 마리짱 노올자~를 솔파솔 파파솔~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에 미리 '무모함'이라고 적어 두었다. 하지만 그런 무모함일지라도 이게 맞나? 하면서 따라해보게 된다. 

 

사실 일본어를 한자로 보고 대충 의미파악을 하고 히라가나를 소리내어 읽을줄만 알지 들어도 모를 때가 많다. 한자어랑 비슷한 발음이 있으면 그건가? 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사투리라 한들 구분하기 힘들다. 문학에서 그려지는 오사카 사투리는 보통 한국의 경상도 사투리쯤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큰 약간은 크고 억센 발음일때가 많다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만 해본다.

 

오사카 출신의 출신의 아버지와 결혼해서 오사카에서 살아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스다 미리는 오사카 출신이다. 태생부터 오사카 사람임을 밝히는 그녀가 도쿄에 오면서는 오히려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살았다고 하지만 오사카에 대한 사랑은 꼭 드러내고 싶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도쿄사람이 어떤지 오사카 사람이 어떤지 나는 모르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을수 있다. 혹시 아는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일본 문학이나 드라마를 본다면 또 다른 점을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이 느끼고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도 있지만 오사카 출신의 아버지는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이야기가 다른 책보다도 많다는 느낌도 든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것은 <오사카 사람과 장켄>이라는 제목이 이야기였다. 오사카에서 부르는 가위바위보의 명칭이 도쿄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 이야기지만 그것보다도 공감을 했던 것은 일본어로 '굿파'라고 하는 이른바 데덴치였다. (123p)

 

이건 우리나라도 같지 않은가?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이를 하기 위해서 편을 나눌 때 손을 펼치고 앞으로 모아서 손등을 내밀거나 손바닥을 내밀거나 하는 것 말이다. 데덴치라고 하기도 하고 데덴찌라고 하기도 하고 뒤집어라 엎어라 하기도 하고 지역마다 동네마다 다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었던 바로 그것. 일본에서도 지역마다 다르다고 하니 우리도 우리도 하면서 마구 맞장구를 치고 싶어졌다.

 

엄마와 여탕과 오사카에 관해서 책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 책을 내면서 이응 시리즈를 완성했다. 덕분에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써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즐기며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나가카와 나루키 지음, 문승준 옮김, 신카이 마코토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비, 미미, 쿠키, 구로.

 

고양이들도 자신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들끼리 통하는 언어가 있다면 아마도 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단지 픽션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어떻게 지금의 주인들과 살게 되었는지, 자신의 엄마는 어디 있는지, 자신들과 이웃하는 동물들은 누구이며 주인들의 문제점들을 무엇인지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 고양이들.

 

흔히 고양이는 영물이라고 했던가. 그 이미지를 그대로 투영시켜서 작가는 고양이들과 그녀들의 세계를 그려내었다. 한편의 애니메이션과도 같은 이야기들. 따스한 파스텔 색감으로 그려진 배경에 하얀 고양이들을 얹어 놓은 그런 이미지. 한없이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그런 행복한 이미지가 처음부터 끝가까 이어진다.

 

그녀가 초비를 만난 것은 그날이었다. 이 세상에 단지 나혼자 뿐인 것 같은 그때. 그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그때 말이다. 친구도 잃고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던 그 인간도 잃은 그때, 그렇게 운명적으로 초비를 만났다. 그날 초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땠을까. 아니 초비는 어땠을까.

 

각각의 고양이들이 저마다 연결이 되어 있듯이 그들의 주인들도 서로 연관이 있다.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그녀들의 삶은 흡사 우리 동네를 보는 것 같이 정겹다. 저마다 고민이 있고 사연이 있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라도 고양이에게는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다.

 

고양이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들은 열심히 듣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사람에게는 그들의 몸짓 하나가 그렇게 큰 위안이 된다. 아니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존재에게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다고 느껴질까. 아니 그것은 오히려 잘못된 생각이다. 말을 하고 싶어도 상대방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가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이라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더 많다. 우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데는 그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말이 같지는 않아도 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것.

 

일일이 산책을 시켜줘야 하고 놀아주어야 하는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물이다. 혼자서도 잘 논다. 산책이 필요하지는 않다. 소설 속의 고양이들은 누군가에게 의해서 키워진 고양이들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밖에서 사는 고양이들이었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기도 하고 독립적으로 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느새인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가 된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사람과 살아가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모두에게 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이런 상황을 꿈꿔보게 된다. 비록 현실은 다를지라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구벌레'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쓰인다. 이 벌레는 피부 안쪽에서도 존재하며 온 몸 구석구석에서 숨어있다가 결정적인 때가 이르면 부글부글 한 무리를 지어 나를 공격한다. 장구벌레가 꾸물꾸물거리며 몸 안쪽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흔히 쓰는 영어 표현으로 긴장할때 '위속에 나비가 있다 (butterfly in the stomach)'라는 표현을 쓴다. 뱃속에서 나비가 퍼덕거린다는 생각만 해도 왠지 속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과도 비슷할까.  

 

 

시설에서 자란 조야.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이 시설에서 자란 누나가 알려줬다. 남들보다 심박수가 느리고  땀도 거의 흘리지 않는 체질. 무서움을 모르며 감정도 없는 그런 인간. 조야는 어쩌다가 이런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 태어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엄마가 죽고 시설에서 자라게 되면서 그렇게 변한 것일까. 그렇다면 같은 시설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왜 그렇지 않은 것일까.

 

 

사회적으로 강력한 범죄들이 저질러지면서 어느 새인가 우리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사전적인 뜻으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두산대백과 검색)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반대적인 성향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랄까. 흔히 말하는 히키코모리도 일종의 사이코패스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무조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모두는 아닌 것이다.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오히려 그런 성향을 가지고 외골수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구나 학문에 정진하면 괴짜 소리를 듣는 천재적인 학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만 보고 전부를 예단하는 일종의 범죄 아닌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설에서 같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 우동. 시설을 나와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있다가 이제야 나온 그는 누군가를 죽였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었을때만 해도 그런가보다 남의 일처럼 흘려들었다. 우동과 내가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누구보다 친한 형제처럼 지냈던 그와 나였는데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인연으로 얽혀 버린걸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단지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아서 단순히 범행을 저지르는 것에서 탈피해서 작가는 교묘한 한 수를 감춰두었다. 고양이가 발톱을 숨기고 있듯이, 오통통한 발 속에 잔뜩 숨기고 있다 결정적인 찰나에 확 튀어올라 강하게 날카롭게 할퀸다. 아니 이야기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캐치하지 못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다 단서가 된다.

 

[투명카멜레온]에서 잔잔하고 따스함 속에 미스터리를 숨겨놓았다면 이번에는 선혈이 가득하고 두근거리는 심장박동 속에 광기를 숨겨놓았다. 전작에서 느낀 따스함도 마지막에 한스푼 살짝 첨가. 약간의 차이점은 있을지라도 '광기', 이것이 이 작가를 표현할 단 하나의 단어일 것이다. 이 미침의 끝이 어디일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벚꽃 같은 나의 연인
우야마 게이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오열을 하고 말았다. 한방중에 꺼이꺼이 숨을 참으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그것은 나의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가시고기]에 있어서 2연타로 직격으로 얻어맞아 버렸다. 그나마 가시고기는 내용을 알고 있었으니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었지 이 책은 아무런 정보없이 그저 표지만으로 집어든 것이였기 때문에 아무런 인식 못하고 얻어 맞은 것이 더 아픈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름다운 분홍빛의 벚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그야말로 꽃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풍경의 표지. 파란색의 하늘과 그 사이로 살포시 내리쬐는 햇살 그리고 그 꽃비를 맞으며 서 있는 한 여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색감 고운 스웨터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절묘하게 꽃잎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표지를 그린 작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일부러 그렇게 딱 맞춘듯이 얼굴의 정면에 꽃잎를 찍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이십대의 한창 이뻐보이고 싶어할 나이의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서 말이다. 부디 그래주었기를. 그것이 그녀에 대한 작가만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그저 단순하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일 줄만 알았다. 연인을 벚꽃에 비유한 제목을 보면서도 워낙 벚꽃이 아름다우니까 그렇게 표현했겠지 뭐 라는 단순한 생각 뿐이었다. 생각지 못한 이야기 전개에 조금은 안절부절해버렸다. 그렇게 나가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주인공의 선택에 그러면 안돼 라고 애써 손을 내밀어 막아보려 해도 그녀의 선택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 하더라도 아마 그녀와 같은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떠날 내가 아닌 남을 그 사람을 위해서.

 

머리를 자르려는 손님과 헤어디자이너로 만난 두 사람. 하루토는 미사키를 보고 첫눈에 반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선뜻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다. 어쩌다 생긴 사고로 인해서 계기가 만들어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하루토. 결국은 연인으로 맺어진 그들에게는 앞으로 화창한 봄날처럼 좋은 일만 가득할 줄 알았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감기도 아닌데 변덕스럽게 끓어오르는 열과 자꾸 늘어가는 흰머리를 보면서 속상해하는 미사키의 모습을 그려놓은 구절을 읽었을 때 깨달았어야 한다. 뒤늦은 후회. 안타까움이 배로 스민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미사키. 이들의 사랑이 벚꽃처럼 화려하지만 너무 짧았음을 되새기면서 지나간 추억의 한편으로 고이 잘 접어둔다. 철지난 이불을 접어두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