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 하나. 작가의
이름은 윤일까 정일까. 아니면 성은 따로 있고 정윤이라는 이름만 필명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자란 작가는 한국의
이름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작가의 이름은 외 자로 본다면 자신의 이름을 따라서 지은 것일지 몰라도 본문에서는 '경'과 '매'라는 외
자 이름이 등장을 한다. 경이라는 이름은 무난하게 쓰일 수 있지만 매라는 이름은 사뭇 낯설다. 작가는 이 이름에 어떤 의미를 두려 한
것일까.
궁금증 둘. 작가는 종교를 가지고 있을까. 이민사회는 생각보다 좁다.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둥지를
만들고 그들의 사회에 속하려 하지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때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도 이민을 가서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정보를 얻고 그곳에 미리 자리잡은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가장 빠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것은 바로 한인교회다.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성목사의 기도를 작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마치고 있는데
영어적인 표현으로도 Jesus라는 표현을 쓰고 보통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 그 표현이 사뭇 생경했다.
원서에서는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
Home sweet home. 집이라는 공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작가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그 표현을 그대로 제목에 붙였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이 제목은 역설적이라는 표현인 것을
말이다. 어린 경에게 집은 전혀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집을 고수한
그의 의지가 놀랍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벌써 집을 뛰쳐 나가지 않았을까.
최근 웹툰 하나를 보다가 관심이 생겨서 1화부터 다 찾아서 읽어보았다. 가정내 폭력이 존재하는
주인공의 집. 그곳에서 주인공의 오빠는 진작에 집을 나가버렸고 오빠를 찾는 엄마를 보던 주인공은 자기라도 집에 붙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려냈다. 경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경의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보자.7 0년대 동양인이 미국에 와서 교수 자리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가 아닌 곳에서 자리를 잡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차별이 없다고 해도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때는 훨씬 더 심했을 것이라고 추측할수 있다.
거기다 부부 모임이 많은 그들의 사회. 다른 사람보다 나아보이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내는 실수만 하고 웃음거리만 되니 그것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그래도 나았을지도 모른다. 돈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린 경의 아버지는 남들이 보면 성공한듯이 보일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참을수가 없었고 그것이 폭력의 형태로 드러났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성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힘이 세다고,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있어서도 안되며 허락할수도 없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법에 정해져 있을뿐만 아니라 가정적인 사적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라도 맞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