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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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타워 건물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꼭대기 전광판에도 전기가 들어와 네온 글자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미국의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그 꿈입니다........(57p)

아마도 내 또래가 어릴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 한창 이민을 많이들 가던 그 시기였다. 알고 보면 우리 엄마도 아빠가 미국으로 가려해서 결혼을 하셨다던가. 그때 그 꿈이 이루어졌더라면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적어도 어린 시절에 이민을 가서 1.5세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씩은 그때 갔어야 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사람들은 미국을 '꿈의 나라'라고 한다. 이민도 많이들 간다. 대체 미국이라는 나라에 무엇이 있길래 그리들 많이 가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대로 미국은 정말 꿈의 나라일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일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제 나라를 떠나 다른나라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 일이 많고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나라의 시민이 아니거나 영주권자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비자를 받아야 하고 그 기한이 다 되어가면 다시 이민국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일정기간 살겠노라고 허락을 받고 새로운 비자를 받아야 한다.

 

주기적으로 비자를 갱신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지만 말도 설고 환경도 다른 곳에서 살아가기란 과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이나타운처럼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지역을 형성하고 특히 한국 사회는 어디에나 있는 한인교회를 주축으로 해서 모이게 된다. 딱히 신앙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모든 것들이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싼 렌트를 찾는다거나 가격은 비싸지 않으면서 성능은 괜찮은 차를 산다거나 다른 사람나라 사람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들끼리 모이게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다. 그저 공부만 몇년하고 돌아갈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남의 나라 살이가 벌써 34년이라고 한다. 유학이 직장생활로 바뀐 셈이다. 자신의 신분이 유학생에서 이민자로 바뀌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이민자들의 삶에 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기게 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책에 나오는 이민자들의 삶은 하나같이 조금씩은 어렵고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이민자들의 삶이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라. 정작 저자 또한 그들의 삶과는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지 이 글에 나온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꿈을 쫓아서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꿈을 쫓아서 온 경우도 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피해서 간 경우도 있고 저마다의 경우는 다르지만 모두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들의 꿈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책의 제목과 같은 [드림랜드]를 비롯해서 폭우, 선택, 살아나는 박제, 그리고 나바호의 노래까지 총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읽다보면 묘한 데자뷰같은 느낌에 빠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아까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연결시켜 생각해도 맞을 정도로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작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작소설같은 느낌을 주는 그것이 바로 그 이유다.

 

딸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가 나온 그녀, 한,혜,주. 감옥을 나온 직후 그녀는 엄마가 보내준 마지막 유산을 가지고 신문에서 나온 도넛가게를 산다. 엄마가 남겨주신 돈과 딱 맞아 떨어지는 가격. 그곳은 본래 강도가 많이 들기로 소문난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곳을 샀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녀는 그것을 사야만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도넛가게를 운영하는 그녀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 그녀가 미국땅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American dream is not just dream. It is a way of life. 미국의 꿈은 단지 꿈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라는 가사처럼 그들의 꿈들은 삶의 한 방식으로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은 곧 그들의 꿈이고 그들의 꿈이 곧 그들의 삶인 셈이다. 한때 이민을 꿈꾸었던 적이 있다. 그 누구도 같이 가지 않는 단독이민. 그 꿈을 이루었더라면 나는 또 어떤 곳에서 이 책을 읽으면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을 꿈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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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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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하자. 나 이 저자를 모른다.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인 듯 한데 난 처음 보는 사람이고 당연히 그녀의 책도 처음이다. 일년에 한권꼴로 책을 쓴다는 그녀. 낸 책만 해도 많다. 소설을 주로 읽는 나의 편독상 한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작가소개만 봐도 대단한 사람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800명중 유일한 여학생으로 서울대 공대를 나왔단다. MIT에서 석사를 공부하고 미국 타임지 선정에서 리더 중유일한 한국인으로 뽑혔고 국회의원까지 거친 그녀.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딸 많은 집에 태어나 아들처럼 살아온 그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페미니스트이다. 여자를 위한 여자들의 책을 내고 싶었다는 그녀답게 이 책은 제목부터 여자들을 위한 책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제목에 속으면 아니될 것이다. 이 책은 전적으로 여자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남자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기도 하다. 여자 작가들의 책,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남자들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자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어떤 느낌으로 여자들을 위한 글들이 적혀져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딸을 낳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숨부터 내쉴만큼 편견도 심한 그런 사회였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였다. 여자들은 투표권도 없었고 실제로 권력을 내세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쓰지도 못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도 내지 못했던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부지런히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애썼다. 그런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 여자들이 누리고 있는 이 세계이다.

 

같이 마음 아파하고, 같이 마음 고파하고, 같이 걱정해주고, 같이 분석해주고, 같이 화내주고, 같이 궁리해주고, 같이 웃어주고, 때로는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문제로 아파본 사람이라야 나의 아픔, 괴로움, 불안, 갈등 , 그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온갖 걱정까지도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이다. (193p)

'자존감을 찾아서'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자신이 읽었던 여러가지의 책을 통해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자존감을 찾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숨어 있다. 이름도 없이 불리던 여성에서 탈피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성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자존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일련의 가르침이랄까.

 

책에서는 자신이 감동받았던 책과 함께 자신이 좋아했던 책들도 꽤 많이 나온다. 박경리의 '토지'는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지금 불고있는 토지의 열풍에 또 한번 보탬을 주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인기가 있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데는 분명 무언가 있는 법이다.

 

저자의 대단한 약력으로 말미암아 어렵고 재미없는 책만 소개되어 있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추리소설 매니아였다. [나를 찾아줘]나 [7년의 밤] 같은 책이 소개될때 더욱 집중하게 되고 또한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나 [작은 아씨들]처럼 내가 읽었던 책이 나올때는 더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서, 이 책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보여주고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작가들의 책이 줄줄이 나열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들이 읽지 못했던 책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서 책이 또 책이 부른다는 말과 같이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여자라면 한번쯤은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책읽기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누구라도 책을 읽는 사람은 섹시하다. 남자, 여자, 또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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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령 궁주의 신랑
임지영 지음 / 청어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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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절묘한 판타지 로맨스라니. 읽는 내내 두근거림을 멈출수가 없는 책이다. 퇴마록과 해리포터 이후로 판타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싶었는데 이 책에서는 묘하게 로맨스와 혼합된 판타지물을 만들어 놓고 있다. 등장인물은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산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 존재가 사람과 사랑에 빠짐으로 인해서 묘하게 자극적인 만남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므로 독자들은 더욱 즐거움으로 환호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여자라고 인해서 할수 없는 일이란 거의 없다. 군대에서도 더 큰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전투기 조종사까지 여자들의 활약이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지만 우리네 조상들은 그렇지 못했다. 여자들은 단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존재였고 섣불리 관직도 얻을수가 없었고 그저 집을 지키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만 만족을 해야 했다.

 

신라를 비경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는 다르다. 실제로 역사속에서 여자들의 활약이 어디까지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속에서는 '태령'이라는 여 주인공에게 장군이라는 직위를 부여했다. 여자이지만 남자들을 거느릴 수 있는 위치.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더욱 완벽한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남자들보다도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남자들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뛰어나게 이쁘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단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만 기술될 뿐. 나중에 어떻게 꾸며놓아도 이건 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로만 보일 뿐이니. 그래도 그녀도 여자인지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 앞에서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눈에만 이쁘면 되었다.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었다.

 

이제 막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그녀를 왕이 부른다. 자신보다도 한참 어린 왕. 그녀는 왕이 또 자신과 결혼을 하자고 조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와는 다른 이야기다. 신령한 산이라는 태한산의 계곡에서 흰 개구리들이 떼를 지어 죽었다는 전령이 날아왔으니 자신이 어떻게 된 사실인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국운에 불길한 징조라는데, 왕이 시키는데,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장군이 무에 그리 하찮은 일까지 가야 하나 싶지만 명령이라는데 장군이 명령을 어길수는 없는 일 아닌가. 태령은 자신의 소수정예만 이끌고 태한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너의 나라는 네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했다. 너의 백성이 남을 가여워하는 마음이. 그 염원이.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그 도둑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구한 것이야. 그것이 하늘의 뜻이다. 그래서 내가 소멸의 위기에서 용서를 받은 것이고 그래서 비가 내린 것이다." (348p)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단지 그 뿐 역사적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이 주가 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주인공의 태령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여자이면서도 남자 못지 않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던 장군인 그녀가 어떠한 사랑을 하게 될지 태령궁주의 신랑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참고로 제목의 신랑은 新郞 이 아니라 神狼이다. 제목에 나타난 한자의 뜻을 안다면 이 책의 내용을 좀더 빨리 알아차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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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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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미국과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위치한 나라.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우리는 그곳에 가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아바나라고 하면 낯설수도 있겠다. 하바나라고 약간만 억양을 바꿔보면 감탄사를 짧게 내뱉으며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바로 그 하바나이다.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시민들은 그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도 자유롭다. 그것은 이 책이 아닌 그 곳을 다녀온 누군가의 사진을 보아도 그렇다.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자유롭게 느슨함에 취해있다. 더운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특수함이라고도 볼수 있겠지만 그곳의 느슨함은 동남아시아나 여타 다른 더운 나라의 것들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이다.

 

책을 펼치자 마자 한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약간은 수줍어 하는, 약간은 한발짝 물러서 있는 듯한, 그러면서도 약간의 당당함이 엿보이는 커플. 그들의 사랑은 숨김이 없고 누가 보아도 느낄 수 있을만큼 아름답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길 원했다. 이제부터 책속에 등장하는 '당신'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이다.

 

당신은 카메라를 하나 덜렁메고 쿠바 아바나를 다니고 있다. 짧게 왔다 가는 그러한 여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여행이다. 그렇다고 머물러 사는 것과는 또 다르다. 여행자라는 신분으로 거리 곳곳을 누비며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거주민들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어느 한 장소에 안착을 하고 오래동안 살아갈 때 눈여겨 보는 것과 여행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책은 철저히 당신 여행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는 방법이다.

 

작가는 분명 쿠바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고 글을 썼다. 그러나 여타의 에세이와는 전혀 다르다. 물론 여행지를 소개해주지도 않는다.(자시닝 다녔던 곳의 지도를 뒤쪽에 첨부해두기는 했다.) 그저 어느 장소를 갔고 그곳에서 본 사람은 누구고 자연은 어땠고 어떤 것을 느꼈고 그것을 당신이라는 제3자에 투영시켜서 글을 쓴 셈이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은 방법이 살짝 낯설게 느껴지지만 직접 작가 자신이 되어 곳곳을 누빈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보다 더 색다르게 쿠바를 여행하는 법은 없는 법이다.

 

시간 순대로 배열되어 있지도 않다. 장소 순대로 배열되어 있지도 않다. 그저 모든 사진을 섞어 놓고 제비뽑기를 하듯이 하나씩 뽑아내어 그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을 널어두는 방식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왠지 모르게 쿠바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 살아간다면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하루일 뿐이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신기하고 재미나고 독특해보인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질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에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인식라고 하듯이 말이다.

 

당신은 가이드북에도 없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아 결코 알 수 없는 이 지역을 벌써 여러 차례 탐사했다. 차도 들어올 수  없는 길을 2킬로미터쯤 걸어서, 선창이 있는 비좁은 하구 위에 설치된 도개교를 건너면 열대우림과 아파트촌을 버무려 놓은 듯한 풍광의 마을이 나온다.

(256p)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장소. 단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는 장소. 작가는 그런 곳을 수십번 반복해서 다니면서 그곳에 대한 감성을 사진과 함께 잘 버무려 놓았다. 제일 앞장이 살짝 덜익은 사각거리는 형태의 깍두기 같은 느낌이라면 뒤로 갈수록 그 익음은 진해져서 마지막 장에 이를때쯤이면 진하게 익은 무우김치의 맛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시간이 날때마다 어딘가에 가는 것을 좋아하해서 주위의 나라들은 가 본 곳이 많다. 몇번씩 도시만 바꿔가면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쿠바는 그렇게 한번 갔다오자 하고 금세 떠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거리상으로 멀고 시간상으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시간이 생긴다면 그들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다녀오고 싶은 곳이다. 왠지 모르게 이 책을 가지고 떠난다면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단 쿠바 아바나의 자유로움을 좀 더 자세히 느끼게 되지 않을까. 당신, 바로 '당신'이 말이다.

<사진-작가정신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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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윤진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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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경보가 연일 내리고 있는 요즘 같은 날씨에 딱 일기 좋은 책이 등장했다. 프랑스 장르소설인 [눈의 살인]이다. 데뷔작으로 추리소설대상을 받을만큼 뛰어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배경마저도 추운 살을 에이는 날씨의 겨울이어서 더욱더 여름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여름에 하얀 눈과 시린 겨울바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돈 들지 않는 피서가 따로 없지 않은가.

 

목차프롤로그제1부 말을 사랑한 남자, 제2부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에서도 보듯이 1부에서는 말을 중심으로 한 사건이 펼쳐지고 2부에서는 치료감호소의 사건이 전개된다. 단 두 가지의 사건이지만 사건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양다리를 걸친것 마냥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이 흥미롭게 볼 수 밖에 없는 두개의 사건.

 

누구도 쉽게 접근할수 없는 곳. 케이블카로만 출입할 수 있는 승강장에서 시체 한구가 발견된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시체는 사람이 아닌 말이다.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어 두고 말의 머리를 자른 형태의 시체. 범인은 누구이며 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말의 주인은 수력발전소의 주인이자 세계적인 기업가인 에릭이다. 그는 자신이 아끼던 말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분개하며 어떤 수단을 강행해서라도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진들을 조여온다.

 

2부에서는 또 다른 하나의 시건이 생긴다. 아침 일찍 산책을 하러 갔다가 만나게 된 시체 한구. 이번에는 말이 아닌 사람이다. 신원을 조사해보니 약사인 그는 전날밤 친구들과 함께 카드 놀이를 한 후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감은 한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약사를 비롯해서 친하게 지내던 다른 세명에게 집중하게 되는데 비슷한 수법으로 저질러진 말과 약사 사건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친하게 지내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할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말을 죽이고 목을 자르고 전혀 눈에 띄지 않게 차에 싣고 떠날 수 있었을까? 무슨 방법을 동원했기에 경보장치를 무력화시키고, 직원들의 잠을 깨우지 않고, 경비견들을 침묵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150p) 

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히어로 스타일은 아닌 셈이다. 모든 증거들이 다 갖추어져 있고 자신들만이 알수 있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짠 하고 해결된다며 풀어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왜 이렇게 된거지? 누가 이렇게 만든거지?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하면서 말이다.

 

"크레도 쿠이아 압수르둠."

"라틴어군요. 무슨 뜻이죠?"

"나는 그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믿는다."

(214p) 

툭하면 내뱉는 라틴어 문장들은 왠지 모르게 크리스티 여사의 주인공 포와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번씩 프랑스 문장을 말하던 그의 시니컬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형사의 이미지에 덧붙여서 보여지는 듯한 모습이 든달까. 그러므로 인해서 너무 무기력한 형사의 모습을 보완하려는 면이 엿보인다.

 

사건 현장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유전자가 검출된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감호소라는 곳에 수감된 한 사람. 그의 유전자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요새에서 그는 정말로 빠져 나와서 이 모든 사건을 저지르고 다시 돌아간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말과 약사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사건 모두 같은 사람이 저지른 것일까. 하나의 사건에 숨겨진 배후, 그 모든 사건들이 연이어 맞물림으로써 읽어가는 재미를 더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반드시 읽어주어야 할 단 하나의 소설임에 틀림없다.

-추리소설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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