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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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야, 민수 좀 불러줘~!"

 

시작부터 뭔 말인가 하고 생각할 것인가? 왜 말도 안되는 단어 놀음인가 하고 생각하겠는가? 이 문장은 내가 학교다닐 때 우리 반에서 자주 쓰였던 말이다. 물론 내가 말한 문장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문장이 나오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민수'라는 아이가 두 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 민수라는 이름이 사뭇 남자스럽지만 다행하게도 저 두명의 민수는 모두 여자였고 둘은 친구였으며 이 책에서와 같은 불상사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피해자는 궁금하다. 왜 저 아이는, 왜 저 무리는 나를 괴롭히는지 말이다.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냥 모든 것이 그냥 싫은 것이다. 딱히 뭐가 어떠해서 어떠하다라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작부터 그들 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강이 생겨버린 셈이다.

 

여기 이 둘의 관계도 그러하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둘이지만 그들은 내 친구들처럼 잘 지내지 못했다. 친구는 커녕 어느 한쪽이 한쪽을 지배하는 주종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속칭 말하는 삥을 뜯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물리적인 힘이 가해질 뿐이다. 누군가는 대들면 되지, 서로 맞서  싸우면 되지 왜 당하고만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일 대 다수의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대드는 것이 어렵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전부 등치가 있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어렵다. 대들어봐야 매만 늘 뿐이다. 그러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왜 교사나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반문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시도해봤다. 돌아온 것은 비난과 누명이었다. 그러니 같은 실수를 두번 하지는 않는다. 바보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자신이 가해자로 몰려서 그 장소를 벗어났을 때는 편했다. 이제야말로 저들의 마수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껬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 했을지 이해하기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너무 일렀다. 그들을 만나게 되지 않았던 것도 잠시, 또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된 둘. 운명의 신은 왜 항상 비켜가지를 않는 것인가.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저 아이를 죽이던가 내가 죽던가 둘중 하나다.

 

장르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학을 심도있게 분석해가면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독자들이라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읽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때 이 소설은 십점 만점에 십점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뒤쳐짐이 없다.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 날처럼 슥슥 바닥을 지치며 앞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약간의 느슨함을 허용했다 싶을 무렵 바로 치고 들어 그 탄성을 유지해준다. 그럼으로 더욱 탱탱해진 느낌으로 죽 끌고 나간다.

 

현실성과 사실성은 더욱 그 탄력을 뒷받침해준다. 허황된 조건들이나 사건들이 아니다. 지금 실제로도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고 현실들이다. 그것은 지금 이 현장에 작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면을 반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허구적인 인물의 캐릭터를 쌓고 사건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다시 사실적인 조건들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이야기는 탄탄할 수 밖에 없다. 기존에 펴낸 책과는 조금 다른 결의 이 책이 작가의 다음 작품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 줄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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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엄마 케이스릴러
이지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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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women, of the women, for the women.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 그것이 엄마의 힘이던가. 호연의 엄마인 영도.영도의 엄마인 청옥. 그렇게 삼대를 기준선으로 삼아서 이야기들을 더 넓은 우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호연의 생모인 준미. 그녀가 감옥에서 딸로 삼은 딸.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전문 킬러까지도 모조리 여자로 구성된 과히 여자들 특집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등장인물 군단이다.

 

한마디로 여자들의 세상이다. 3백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이 책에서 남자라고는 단 두명이 등장을 한다. 호연이 위급상황에서 도움을 청했던 전직기자 창성과 이준미가 일했던 곳의 주인인 민정원, 그 둘이 전부다.

 

 엄마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다고 한다면 엄마가 자신보다 일찍 돌아가셨거나 아니면 엄마가 아이를 버렸거나 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엄마가 많은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입양된 아이인 경우 아이를 낳은 생모와 아이를 키운 엄마, 그렇게 두명의 엄마가 존재할 것이다. 

 

여기 호연의 경우가 그러하다. 취직도 실패하고 남자친구와도 깨어진 그녀에게 전해진 편지 한통. 자신은 기억에도 없는 생모가 보낸 편지다. 그녀는 호연이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데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생모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 건가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의 엄마에게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서 이 상황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일단 등장인물이 적지 않다. 모두 여자라서 더 헷갈릴 법도 한데 우리나라 작품이니 그런 위험성을 덜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속에는 서로가 말하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야기의 긴장감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녀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점점 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독자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의도하는 결과는 무엇이 될지 뻔하지 않은가. 모두의 파멸로 이끌수도 있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케이스릴러 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 작품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데뷔작으로 여기지지 않을만큼 촘촘한, 내뱉지 못한 이야기들이 숨을 도사리게 만든다. 내쳐 달려 읽어야지만 그 맛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 이 책을 잡기 전, 주변 정리를 확실히 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시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느껴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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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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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주인이었던 농장에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을 내쫓고 자신들이 농장을 차지한다. 결국은 자신들도 인간들처럼 권력을 누리게 된다. 이 한 권의 책을 단 두문장으로 줄인다면 간단하다. 내가 읽은 동물농장은 그런 의미였다. 빨간색의 얇은 원서. 그 이후에 읽었던 책도 역시나 원서였다. 작품해설이 붙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문맥 그대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비채에서 나온 [동물농장]을 읽기 전 작품해설을 먼저 읽어본다. 내가 읽었던 동물농장이 아니다. 이것이 단순한 동물우화가 아닌 정치적 알레고리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알레고리는 겉으로 드러난 축어적 의미가 아닌 비유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문학형식을 말한다.(224p) 이 책이 정치적 사상을 그렇게 많이 띠고 있을 줄이야.

 

해설에서는 본문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작중인물들과 사건과 비유적 의미를 도표로 그려놓아서 아주 이해하기 쉽다. 장원농장의 주인이었던 존스는 실제로는 러시아 시대의 니콜라이 2세를 의미하고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실세인 나폴레온은 스탈린을 의미한다. 나는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을 정말 딱 반쪼가리만 이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자에서 온 말은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영어와 같고 앵글로- 색슨 말은 순수한 토박이 말과 같다. (263p)

 

번역자는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토박이 말을 살려 번역했다고 한다. 가령 milk를 우유 대신이라고 번역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단어를 여러 개의 한국말로 바꿀 수가 있다. 문맥에 맞게, 분위기에 맞게,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선택해서 바꾸는 것이 바로 번역자의 몫이다. 번역자는 원서에서 작가가 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화 시켜서 풀어낸 것이다. 많고 많은 동물농장 중에서 김욱동 번역의 비채의 동물농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을 몰아낸 농장에서 주인은 동물'들'인 것 처럼 보였다.적어도 초반기에는 그러했다.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며 열심히 일을 했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기뻐하며 성취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작가가 의미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북한을 연상했다. 단 한 사람의 독재자. 그를 위해서 일을 하는 모든 국민들. 공산주의 국가인 그들에게는 모두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라는 표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고위 지도자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모든 동물들이 일을 해서 개와 돼지들만 배불리 먹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폴레온은 정작 아무것도 한 것도 없지만 자신에게 훈장을 수여해서 메달을 두개나 목에 걸고 동물들 앞에 나타났으며(117p) 동물들이 어렵고 힘들게 완성한 풍차를 '나폴레온 풍차'라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정말 그가 동물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이름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름을 붙였어야만 했을 것이다.

 

농장은 번성하고 조직도 갖추어졌으나 동물들은 여전히 배고팠고 돼지들은 살이 쪘다. 그들은 절대 일하지 않았고 서류작업에만 충실했다. 아무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수는 없었다. (175p)

 

어떤 힘든 경우에도 돼지들은 힘들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로  매우 편안히 지내는 것처럼 보였고 몸무게가 늘어나 있었다(156p)고 한다. 북한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들이 말하는 인민들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한다. 한때는 기아에 굶주려서 죽은 사람들이 많을만큼 말이다. 그럴지라도 고위 간부급들은 결코 굶주리지 않는다. 그들은 국제 원조를 받은 것들을 자신들이 소유로 돌렸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인민들이 힘들게 일한 것들도 모조리 다 빼앗았던 것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지금 현재의 동물농장은 바로 북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동물들은 인간을 내쫓으면서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 인간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22p)고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권력을 잡은 자 모두가 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을지어다. 이것과 다른 바가 무엇인가 말이다. 그들은 모두가 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을수도 있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한번 들여놓은 권력의 맛은 손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는 자꾸 더 큰 사리사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중의 삶은 혁명 전의 제정 러시아 시대나 혁명을 일으킨 뒤 소비에트연방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234p)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지금의 수령이 아닌 그 반역자를 다시 수령으로 모시게 될까. 그렇다면 지금과 하등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온전히 바꿀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이다. 정말 권력에 욕심이 없고 민중을 위하는 사람 말이다. 과연 그러한 인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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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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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정보지를 보면서 일할 곳을 찾는 그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과 오버랩된다.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천사라는 타이틀을 잃고 지상에 떨어진 미하일의 모습에서 이름도 드러나지 않고 별로 짐도 없는 그를 본다. 미하일과 그는 둘다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의 집에 살면서 또는 회사의 컨테이너 숙소에 살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는 것도 닮았다.

 

하나 더, 천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던 미하일과 달리 그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전해준다. 말을 하지 않고 같은 자리, 비슷한 시간에 담배를 같이 피웠던 춘자가 그랬고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몰매를 맞던 마이클이 그랬고 나이 든 교수가 그러했고 폐지를 줍던 젊은 그녀가 그러했었다. 그가 결코 사람들에게 따뜻하다거나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말들로 그들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며 먼저 다가서지 않으려고 한다. 즉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지랖 넓게 누구에게나 마구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럴지라도 기본적으로는 따스함을 장착하고 있다. 담배를 달라던 춘자에게 아무말 없이 건네고 폐지를 줍던 그녀에게도 양갱을 건넨 것을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같이 있기를 권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기를 원하고 알아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가 하는 말이 전부가 아님을, 그 속에 무언가 정이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천사라는 정체를 숨기고 있던 미하일처럼 말이다.

 

그는 침입자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입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놓아주고 가는 침입자다. 그는 춘자가 가던 그 자리를 침입했고 그로 인해 유대관계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 인연을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침입자들이다. 동료기사들은 그의 일상이 녹아있는 공간에 침입한다. 한 순간의 여유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그들의 삶이 어긋나서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그들은 그의 컨테이너에 모여 술을 한잔 한다. 그것이 그들이 그를 침입하는 방식이며 그들의 일상에 생긴 침입자들인 여유를 누리는 방식이다.

 

그는 침입자다. 비록 노교수가 그를 초대하기는 했어도 노인과 딸만의 공간에 침입한 사람이다. 노교수는 경제를 가르쳐 주겠다고 그를 불렀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침입하고 그로 인한 관계가 또 다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임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에 누가 침입하는 것을 꺼린다. 싫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공간은 필요하다. 그 공간을 뚫고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를 받았다고 여기고 불쾌해한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자신의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을 즐기는 사람의 패턴 상 자신의 일상생활이 짜여진 계획에 맞게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일상에 브레이크를 주는 것이 바로 이 침입자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문밖에서, 때로는 현관에서,  때로는 집안으로 침입한다. 조용한 일상에 전화로, 문자로 침입한다. 이런 그들의 침입을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이한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택배기사님들이다.

 

이름보다는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명으로 불리는 그들, 행운동을 맡았기에 행운동이라 불리는 그를 통해서 작가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침입하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그려낸다.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행운동,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워낙 별난 사람들이어서 그들 자체가 특별한 사건들이 되어 버린다. 왜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아무리 봐도 그는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천사 미하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택배기사들의 삶 뿐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린 시절 놀이터에 존재하던 뺑뺑이와도 같다. 한번 돌리고 타면 그것이 멈출 때까지 그곳에서 계속 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밖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지만 떨어져서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그런 모험을 잘 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을 하러 나가고 일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잔다. 그리고는 계속 반복이다.

 

그런 일상속에서 침입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찮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유를 주는 존재들일수도 있다. 행운동, 그의 뺑뺑이는 이제 멈췄다. 천사 미하일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행운동이라는 이름은 떼어버린 그는 어디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침입자가 되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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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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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능력을 가진 쌍둥이의 모험

 

마리아비틀, 골든슬럼버, 사신의 7일,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모던타임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악스, 화이트래빗, 서브머린, 그래스호퍼까지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아마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몇권이 더 있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책은 조금 황당하거나 조금 감동적이거나 아니면 둘이 섞여 있거나 하는 작품들이 많다. (골든슬럼버는 이 기준에서 제외해야 할 것 같다.)

 

현실에서 있을법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약간은 허황된 sf같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장르소설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경계를 가뿐히 넘어버리는 작품을 만날 때도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찾게 되는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재미다. 공부나 일을 하기 위해서 보는 책이 아닌 취미로 읽은 독서의 경우 필수조건은 바로 재미인 것이다. 내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즐거움을 느끼려고 책을 읽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그 책의 직무유기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가의 책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고 잘 읽힌다.

 

이번 책을 읽어야지 해놓고 첫장을 넘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코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책을 들고 시작도 못한채로 왔다갔다만 한 것이다. 결국 하루 날을 잡고 첫장을 펴들고 바로 끝났다. 적당한 상상력에 적당한 현실이 섞여있는 이야기는 마치 믹스커피처럼 진한 맛을 남기다보니 달달함에 취해서 손에서 놓을수 없었던 탓이다. 자정 넘어 달리던 책은 새벽 두시에 정확히 끝이났고 마음 편히 잠이 들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생일날이면 몸이 바뀌는 체험을 하는 쌍둥이 유가와 후가. 그들의 가정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둘이서 똘똘 뭉쳐서 학교를 다녔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현실은 비록 지옥 끄트머리에 있었을지라도 일년에 하루만은 그들에게 마음이 붕 뜨는 설렘을 안겨다 준 것이다. 처음 겪었을때는 당황하고 이것이 무언가 싶었지만 나름대로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적응해갔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기도 했고 즐기기도 했다.

 

쌍둥이라는 전제조건은 현실에서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몸이 바뀐다는 조건은 불가능한 조건이다. 그런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교합해서 신종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바이러스라기보다는 몸에 좋은 균으로 작용해서 우리에게 침투해온다. 마스크로 가리고 소독제를 발라서 씻어내기보다는 두팔 벌려 환영하고 싶은 그런 변종이다.

 

제목에 얽힌 나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휴가는 우가라고 읽었다. 휴가와 우가. 전혀 말도 안되는 조합이지만 일본어의 유사어라던가 그런 식으로 말장난을 쳐놓은 트릭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휴가에 관련된 일인가 하는 생각도 했더했다. 후가와 유가라고 제대로 읽은 후에도 오해는 계속된다.

 

제대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저것이 사람이름이라고 짐작도 하지 못한 나머지 유가는 과자 이름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라면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글을 정독하지 않는 버릇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후가와 유가라는 친구들의 이름이 더욱 뇌리에서 계속 박혀있다. 이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도 말이다. 나에게 쌍둥이가 있다면,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몸이 바뀐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생각했을까.

 

후가와 유가가 어린 시절 주워 와서 읽곤 했던 권수가 중간중간 비는 만화책은 터치나 러프다라고 했다가 나중에 러프라고 알려준다. 이 두 작품은 1990년대 끝자락 내가 처음으로 만화책이라는 것에 빠져있을 무렵에 만났던 작품이다. 아다치 미스루의 작품. 고통과 공포로 가득찬 그들에게 따스함을 주었던 만화. 나 또한 그 작품에 매료되어서 그 작가가 그린 책을 시리즈로 한꺼번에 빌려놓고 읽을만큼 좋아했더랬다. 아는 작품을 책에서 만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마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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