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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특별한 능력을 가진 쌍둥이의 모험
마리아비틀, 골든슬럼버, 사신의 7일,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모던타임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악스, 화이트래빗, 서브머린, 그래스호퍼까지 이사카 코타로의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아마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몇권이 더 있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책은 조금 황당하거나 조금 감동적이거나 아니면 둘이 섞여 있거나 하는 작품들이 많다. (골든슬럼버는 이 기준에서 제외해야 할 것 같다.)
현실에서 있을법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약간은 허황된 sf같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장르소설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 경계를 가뿐히 넘어버리는 작품을 만날 때도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찾게 되는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재미다. 공부나 일을 하기 위해서 보는 책이 아닌 취미로 읽은 독서의 경우 필수조건은 바로 재미인 것이다. 내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즐거움을 느끼려고 책을 읽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그 책의 직무유기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가의 책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고 잘 읽힌다.
이번 책을 읽어야지 해놓고 첫장을 넘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코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책을 들고 시작도 못한채로 왔다갔다만 한 것이다. 결국 하루 날을 잡고 첫장을 펴들고 바로 끝났다. 적당한 상상력에 적당한 현실이 섞여있는 이야기는 마치 믹스커피처럼 진한 맛을 남기다보니 달달함에 취해서 손에서 놓을수 없었던 탓이다. 자정 넘어 달리던 책은 새벽 두시에 정확히 끝이났고 마음 편히 잠이 들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생일날이면 몸이 바뀌는 체험을 하는 쌍둥이 유가와 후가. 그들의 가정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둘이서 똘똘 뭉쳐서 학교를 다녔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현실은 비록 지옥 끄트머리에 있었을지라도 일년에 하루만은 그들에게 마음이 붕 뜨는 설렘을 안겨다 준 것이다. 처음 겪었을때는 당황하고 이것이 무언가 싶었지만 나름대로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적응해갔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기도 했고 즐기기도 했다.
쌍둥이라는 전제조건은 현실에서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몸이 바뀐다는 조건은 불가능한 조건이다. 그런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교합해서 신종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바이러스라기보다는 몸에 좋은 균으로 작용해서 우리에게 침투해온다. 마스크로 가리고 소독제를 발라서 씻어내기보다는 두팔 벌려 환영하고 싶은 그런 변종이다.
제목에 얽힌 나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휴가는 우가라고 읽었다. 휴가와 우가. 전혀 말도 안되는 조합이지만 일본어의 유사어라던가 그런 식으로 말장난을 쳐놓은 트릭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휴가에 관련된 일인가 하는 생각도 했더했다. 후가와 유가라고 제대로 읽은 후에도 오해는 계속된다.
제대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저것이 사람이름이라고 짐작도 하지 못한 나머지 유가는 과자 이름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라면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글을 정독하지 않는 버릇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후가와 유가라는 친구들의 이름이 더욱 뇌리에서 계속 박혀있다. 이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도 말이다. 나에게 쌍둥이가 있다면,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몸이 바뀐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생각했을까.
후가와 유가가 어린 시절 주워 와서 읽곤 했던 권수가 중간중간 비는 만화책은 터치나 러프다라고 했다가 나중에 러프라고 알려준다. 이 두 작품은 1990년대 끝자락 내가 처음으로 만화책이라는 것에 빠져있을 무렵에 만났던 작품이다. 아다치 미스루의 작품. 고통과 공포로 가득찬 그들에게 따스함을 주었던 만화. 나 또한 그 작품에 매료되어서 그 작가가 그린 책을 시리즈로 한꺼번에 빌려놓고 읽을만큼 좋아했더랬다. 아는 작품을 책에서 만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마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