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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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정보지를 보면서 일할 곳을 찾는 그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과 오버랩된다.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천사라는 타이틀을 잃고 지상에 떨어진 미하일의 모습에서 이름도 드러나지 않고 별로 짐도 없는 그를 본다. 미하일과 그는 둘다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의 집에 살면서 또는 회사의 컨테이너 숙소에 살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는 것도 닮았다.

 

하나 더, 천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던 미하일과 달리 그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전해준다. 말을 하지 않고 같은 자리, 비슷한 시간에 담배를 같이 피웠던 춘자가 그랬고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몰매를 맞던 마이클이 그랬고 나이 든 교수가 그러했고 폐지를 줍던 젊은 그녀가 그러했었다. 그가 결코 사람들에게 따뜻하다거나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말들로 그들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며 먼저 다가서지 않으려고 한다. 즉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지랖 넓게 누구에게나 마구 다가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럴지라도 기본적으로는 따스함을 장착하고 있다. 담배를 달라던 춘자에게 아무말 없이 건네고 폐지를 줍던 그녀에게도 양갱을 건넨 것을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같이 있기를 권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기를 원하고 알아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가 하는 말이 전부가 아님을, 그 속에 무언가 정이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천사라는 정체를 숨기고 있던 미하일처럼 말이다.

 

그는 침입자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입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놓아주고 가는 침입자다. 그는 춘자가 가던 그 자리를 침입했고 그로 인해 유대관계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 인연을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침입자들이다. 동료기사들은 그의 일상이 녹아있는 공간에 침입한다. 한 순간의 여유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그들의 삶이 어긋나서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그들은 그의 컨테이너에 모여 술을 한잔 한다. 그것이 그들이 그를 침입하는 방식이며 그들의 일상에 생긴 침입자들인 여유를 누리는 방식이다.

 

그는 침입자다. 비록 노교수가 그를 초대하기는 했어도 노인과 딸만의 공간에 침입한 사람이다. 노교수는 경제를 가르쳐 주겠다고 그를 불렀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침입하고 그로 인한 관계가 또 다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임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에 누가 침입하는 것을 꺼린다. 싫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공간은 필요하다. 그 공간을 뚫고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를 받았다고 여기고 불쾌해한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자신의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을 즐기는 사람의 패턴 상 자신의 일상생활이 짜여진 계획에 맞게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일상에 브레이크를 주는 것이 바로 이 침입자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문밖에서, 때로는 현관에서,  때로는 집안으로 침입한다. 조용한 일상에 전화로, 문자로 침입한다. 이런 그들의 침입을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이한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택배기사님들이다.

 

이름보다는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명으로 불리는 그들, 행운동을 맡았기에 행운동이라 불리는 그를 통해서 작가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침입하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그려낸다.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행운동,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워낙 별난 사람들이어서 그들 자체가 특별한 사건들이 되어 버린다. 왜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아무리 봐도 그는 하늘에서 잘못 떨어진 천사 미하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택배기사들의 삶 뿐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린 시절 놀이터에 존재하던 뺑뺑이와도 같다. 한번 돌리고 타면 그것이 멈출 때까지 그곳에서 계속 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밖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지만 떨어져서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그런 모험을 잘 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을 하러 나가고 일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잔다. 그리고는 계속 반복이다.

 

그런 일상속에서 침입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찮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유를 주는 존재들일수도 있다. 행운동, 그의 뺑뺑이는 이제 멈췄다. 천사 미하일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행운동이라는 이름은 떼어버린 그는 어디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침입자가 되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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