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물농장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인간이 주인이었던 농장에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을 내쫓고 자신들이 농장을 차지한다. 결국은 자신들도 인간들처럼 권력을 누리게 된다. 이 한 권의 책을 단 두문장으로 줄인다면 간단하다. 내가 읽은 동물농장은 그런 의미였다. 빨간색의 얇은 원서. 그 이후에 읽었던 책도 역시나 원서였다. 작품해설이 붙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문맥 그대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비채에서 나온 [동물농장]을 읽기 전 작품해설을 먼저 읽어본다. 내가 읽었던 동물농장이 아니다. 이것이 단순한 동물우화가 아닌 정치적 알레고리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알레고리는 겉으로 드러난 축어적 의미가 아닌 비유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문학형식을 말한다.(224p) 이 책이 정치적 사상을 그렇게 많이 띠고 있을 줄이야.
해설에서는 본문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작중인물들과 사건과 비유적 의미를 도표로 그려놓아서 아주 이해하기 쉽다. 장원농장의 주인이었던 존스는 실제로는 러시아 시대의 니콜라이 2세를 의미하고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실세인 나폴레온은 스탈린을 의미한다. 나는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을 정말 딱 반쪼가리만 이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자에서 온 말은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영어와 같고 앵글로- 색슨 말은 순수한 토박이 말과 같다. (263p)
번역자는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토박이 말을 살려 번역했다고 한다. 가령 milk를 우유 대신 젖이라고 번역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단어를 여러 개의 한국말로 바꿀 수가 있다. 문맥에 맞게, 분위기에 맞게,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선택해서 바꾸는 것이 바로 번역자의 몫이다. 번역자는 원서에서 작가가 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화 시켜서 풀어낸 것이다. 많고 많은 동물농장 중에서 김욱동 번역의 비채의 동물농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을 몰아낸 농장에서 주인은 동물'들'인 것 처럼 보였다.적어도 초반기에는 그러했다.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며 열심히 일을 했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기뻐하며 성취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작가가 의미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북한을 연상했다. 단 한 사람의 독재자. 그를 위해서 일을 하는 모든 국민들. 공산주의 국가인 그들에게는 모두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라는 표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고위 지도자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모든 동물들이 일을 해서 개와 돼지들만 배불리 먹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폴레온은 정작 아무것도 한 것도 없지만 자신에게 훈장을 수여해서 메달을 두개나 목에 걸고 동물들 앞에 나타났으며(117p) 동물들이 어렵고 힘들게 완성한 풍차를 '나폴레온 풍차'라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정말 그가 동물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이름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름을 붙였어야만 했을 것이다.
농장은 번성하고 조직도 갖추어졌으나 동물들은 여전히 배고팠고 돼지들은 살이 쪘다. 그들은 절대 일하지 않았고 서류작업에만 충실했다. 아무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수는 없었다. (175p)
어떤 힘든 경우에도 돼지들은 힘들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로 매우 편안히 지내는 것처럼 보였고 몸무게가 늘어나 있었다(156p)고 한다. 북한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들이 말하는 인민들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한다. 한때는 기아에 굶주려서 죽은 사람들이 많을만큼 말이다. 그럴지라도 고위 간부급들은 결코 굶주리지 않는다. 그들은 국제 원조를 받은 것들을 자신들이 소유로 돌렸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인민들이 힘들게 일한 것들도 모조리 다 빼앗았던 것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지금 현재의 동물농장은 바로 북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동물들은 인간을 내쫓으면서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 인간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22p)고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권력을 잡은 자 모두가 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을지어다. 이것과 다른 바가 무엇인가 말이다. 그들은 모두가 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을수도 있다.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한번 들여놓은 권력의 맛은 손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는 자꾸 더 큰 사리사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중의 삶은 혁명 전의 제정 러시아 시대나 혁명을 일으킨 뒤 소비에트연방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234p)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지금의 수령이 아닌 그 반역자를 다시 수령으로 모시게 될까. 그렇다면 지금과 하등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온전히 바꿀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이다. 정말 권력에 욕심이 없고 민중을 위하는 사람 말이다. 과연 그러한 인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