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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홍은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보는 꿈을 한번쯤 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두 바퀴를 오로지 스스로의 다리의 힘으로만 굴려, 땀 흘려 길을 확장해 나가는 즐거움을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미처 짐작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 자신 스스로 라이더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자전거타기를 좋아하는지라 그리고 자전거타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탄천인근에 살고 있는 터라 이따금 자전거를 타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주말. 자전거를 타고 탄천변을 따라 달리면서 두어번 쉬다보면 어느새 한강이었다. 양수리를 지나면서 급격히 넓어진 잠실벌의 한강을 마주하면 마치 바다에 서있는 듯, 탁 터진 시야에 가슴까지 후련해지고....... 넘실거리는 파도. 바람에 떠다니는 조각배. 낮게 깔린 맑은 구름. 강변에 늘어선 고층빌딩들.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길을 더 달려 여의도를 지나 김포, 강화도까지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 아직까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사실 이렇게 해서 가는 길이라고 해봐야 집에서 탄천을 따라 한강까지 25키로남짓. 거기서 강화까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달려간 길은 무려 6,000킬로가 넘는 길이다. 그것도 로키산맥등 험한 고개와 자동차들이 무섬게 질주해오는 도로를 달리는, 장장 80여일에 이르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캔터키주인가 하는 곳에서는 개들의 습격으로 라이더들이 공포에 떤다던데...... 그런 험한 일들을 겪으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른바 먹물든 사람으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여기고 그 먼길을 달려갔다. 책의 활자사이마다 흩뿌린 저자의 땀으로 흥건하다. 우리의 여행자는 달릴수록 처음의 여행의 흥분과 어설픔에서 벗어나 노련해져간다. 하루의 주행거리를 170여킬로가 넘게 확장해 나가면서 몸은 점점 단련되고, 그래서 정신이 아닌 몸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에 빠지기도 한다. 대서양에 자전거 뒷바퀴를 담그면서 시작한 횡단여행은 태평양에 앞바퀴를 적시면서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 책의 장점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동부에서 서부까지 8시간의 시차가 있는 나라. 주의 경계를 넘어 달리면서 시간을 한시간씩 조정해야하는 나라. 이 큰 나라의 내륙 깊숙히 들어가면서 만난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들려 준다는데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자전거로 야금 야금 땀 흘리면서 가는 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정치와 경제의 블랙홀로서의 미국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일상속의 다양한 미국인들의 모습과 자연의 풍광이 이 긴 여행을 통해 비록 표피적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런 장점은 아마 여행자가 저널리스트이었기에 또한 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일반 여행객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도 기자의 호기심과 취재력에 힘입어 여행기의 내용이 단순히 여행자 개인의 내면적인 사색과 풍경이야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로 풍부해질수 있었으리라. 오가는 길에서 저자에게 붙들려(?) 인터뷰당한 라이더들의 다양한 모습도 재미있었다.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그 다음 장면이 기대되는 즐거움. 마치 내 자신이 자전거 여행길에 동참하고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오로지 몸을 사용해서 땀 흘리며 도전하는 여행. 여행지의 사람과 풍광과 정서를 마음껏 호흡하고 즐기는 여행. 가히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여행이다.
저자는 자전거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로 이룩해가는 혁명의 전사로 스스로를 명명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사람이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하면 미국 전체 에너지소비의 25%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회사들은 도산할 것이고 에너지회사들은? 그로인한 정치 경제의 엄청난 지각변동이 이어질 것이고. 당연히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데....... 물론 이와 같은 혁명이 현재로선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꿈을 가지고 달리는 자전거여행은 행복하다. 책을 읽어 가면서 이런 거대한 담론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그처럼 길고 힘든 트레일을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이 책에서 그가 잠깐 언급한 한반도 해안을 따라 달리는 코리안트레일만이라도 실행해 봤으면 하는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