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히말라야로 갔는가
릭 리지웨이 지음, 선우중옥 옮김 / 화산문화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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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릴레이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주듯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인가.

혹은 본래가 하나였으므로 마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옷을 갈아입듯이 그렇게 외양만 바꾸어 가는 것인

가. 이 책에는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등반가들과 그들의 탐험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주

제의식은 그처럼 가볍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이야기를 꾸려가는 주된 내용이 아버지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딸이 히말라야에서 죽은 아버

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례여행이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로서의 시간은 분명히 있다. 그러

면 지나버린 시간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잃어버린 아니 지나 가버린 시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야

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릭 리지웨이가 죽은 친구의 딸인 아시아를 데리고 자신의 친구이자 딸의 아버지

인 조나단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행이 그러하며 릭이 경험한 극한의 등반과 모험이야기가 중간중간 삽입된

것이 그러하다.

20여년전 릭은 조나단이 포함된 등반대의 일원으로 중국 히말라야의 명봉 민야 콘가산을 오르다가 뜻밖의

눈사태를 만나게 된다. 이 사고로 조나단은 현장에서 릭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고 그의 시신은 민야 콘가산

기슭에 돌무덤으로 남는다. 가족에게 전달된 피뭍은 모자와 일기장만이 그의 죽음을 말해주는 징표였다. 아

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라나는 아시아는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산을 좋아하는 독립심 강한 숙녀

로서 성장한다.

시간은 이“?이어지는가. 죽은 조나단은 생전에 티벳불교에 꽤나 심취했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일기에 따

르면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무소유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매일매일의 삶을 생의 마지막

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하게 살아 내려는 자기절제가 강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히말라야의 대자연과 그 속에

깃든 불교적 세계관에 심취한 조나단은 그래서 자기 딸의 이름도 아시아로 지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20여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전개된다. 성장한 아시아는 지금까지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해주었던

아버지의 친구에게 아버지의 무덤에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하고 이에 조나단의 죽음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던 릭은 흔쾌히 동의한다. 아시아와 릭은 티벳의 창탕고원등 아직도 문명의 이기가 거의 침범하지 못한 지

역을 멀리 돌아 조나단의 무덤을 찾는 긴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도중에 20여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로 문명화된 카투만두와 라사에 실망하기도 하고 성산인 카일라스산의 사원에서 죽은 조나단을 추억하며

라마승의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인간이 한번도 오르지 않았던 눈에 덮힌 티벳고원의 무명봉을 오르기도 하면

서 과거를 회상하고 내면을 돌아보는 여행을 계속한다. 여행길은 아시아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지만 릭

은 순간 순간 조나단의 일기와 자신의 모험이야기를 통하여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이윽고 여행의 막바지에

그들은 셀파와 통역자 등을 물리치고 단둘이 민야 콩가산 기슭의 조나단의 무덤을 오른다. 간신히 찾은 무덤

에서 그들은 쌓은 돌의 절반이 허물어져 산짐승과 독수리의 먹이로 회손된 채로 일부만 남아 있는 시신을

보게된다.

릭은 사고 당시를 회상한다. 자신의 품에 안겨 마지막 호흡을 하던 조나단. 조나단의 영혼이 떠나가는 것을

느끼던 절체절명의 순간. 그리고 그를 장사지내던 아픈 기억속에 회한에 잠기고 딸인 아시아는 눈물을 흘리

며 아버지의 무덤을 어루만진다. 릭은 허물어진 무덤의 돌을 다시 쌓고 있는 아시아를 바라보며 티벳 불교식

으로 윤회를 말하면서 조나단의 무덤을 찾은 것을 계기로 자신을 내면을 돌아보고 지금까지는 자신의 삶을

위해 친구의 지혜를 빌렸다는 자책감을 느끼며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아시아도 시신의 일부가 회손된 것

이 아마도 독수리들 탓이었을 것이라는 릭의 얘기에 그것은 어쩌면 아버지도 바랬을 것이라는 대답으로 히

말라야의 정신세계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은 모험과 여행이야기를 다큐멘터리식으로 다루고 있어 우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그러면서 동시에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고 있어 깊이를 더해 준다. 책은 오늘날 히말라야 등지에서 상업적으로 이루어지

는 등반과 자신의 등정만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왜곡된 알피니즘. 그리고 물질문명에 의해 점점

오염되어가는 지구상의 오지들에 대한 염려를 더하고 있다. 아직도 히말라야는 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용기

를 실험하는 곳이다. 그런 한편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의 순례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숨져간 많은 사람들의 영혼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아시아와 릭은 친구며 아버지인 조나단의 영혼이

자신들의 숨결을 스쳐 지나 대자연속으로 사라졌다고 믿었을까. 조나단의 영혼에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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