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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인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채수동.고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다 읽었다. 작년(2004년) 2. 23. 시작해서 꼬박 1년 만이다. 이 책 자체가 하루에 한 장씩 읽게 되어있어 편제를 충실하게 따라 완독한 셈이다 (그러나 마지막 이틀치 부분은 결말이 궁금하여 한꺼번에 읽어버렸다). 편제도 그렇지만 일천쪽이 넘어가는 양에 어울리게 내용 자체도 만만치 않아 오래 걸린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제목 자체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닌가. 제목이란 대부분의 책에서 그 책의 내용을 압축하고 집약해서 붙이는 법이다. 너무 통속적이거나 진부하지 않게 말이다. 그런데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은 얼마나 진부하면서 통속적인가. 좋게 말하면 얼마나 버거운 제목인가. 아마도 톨스토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제목의 책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
책의 표지에서부터 보이는 톨스토이의 얼굴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범접키 어려운 인상을 갖게 한다. 마치 성경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처럼 말이다. 하얀 수염을 나부끼며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 대자연 속에서 피조물들에게 내리는 신의 섭리를 깨달아 알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가운데 삶의 예지를 발견하는 현자. 톨스토이의 모습에서 그런 영감을 가진 얼굴을 발견한 후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내자신 아직 그 인생 속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가운데 톨스토이처럼 나날의 삶을 지극한 명상 속에서 깨달아 가고 결국 한 완결된 삶으로서 마감하지는 못할진데 그가 남긴 글의 도움을 빌어 인생이란 무엇인가의 한 답을 얻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큰 줄기는 신을 긍정하라는 것과 이 땅의 삶은 현실의 삶으로서 유한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긴, 영원속의 삶의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면 신을 어떻게 긍정하며 그 긍정하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또한 이 땅의 삶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 삶이라면 현실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장시간에 걸쳐 독서한 책이라 구체적인 말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각성된 영혼을 가진 인간은 그 영혼을 주관하는 신의 존재를 받아 들여야 하며 신의 뜻 즉 인간의 보편적인 선의 가치를 늘 기억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바탕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인류가 최후까지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톨스토이는 이에 배치되는 전쟁과 억압, 착취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하여 부정하고 투쟁해야 할 것들로 본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여 말하면 이렇게 가는 길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종교이다. 아니 종교적인 자세이다. 신을 긍정하는 선의야말로 지극히 종교적인 것이니까.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것도 세계 여러 종교의 경전들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성경 신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랑이며 인류애의 표본으로 언급되고 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톨스토이는 말년에 그리스도 정교회에서 파문당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그만큼 특정종교에 경도되지 않고 인류보편의 종교를 추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는 일년을 시작하는 첫날 첫장에 '그리 중요치 않은 평범한 것을 많이 알기보다는 참으로 좋고 필요한 것을 조금 아는 것이 더 낫다.'고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 마지막 글귀에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무한하게 작은 현재뿐이다. 그리고 그 현재 속에서 인간의 삶이 영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정신력을 그 현재에 집중시켜야 한다.' 고 쓰고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가 걸었고 또 이제 제시하고 있는 인생의 해답. 그것을 받아 들이건 거부하건 각자의 자유이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한 예시를 톨스토이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다소 난해하게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인가라고 다소 좁혀서 구체적으로 물어본다면 그 하나의 해답이 이 책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제시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일년동안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씩 만났던 톨스토이와 이제 당분간 작별하려고 한다. 그동안 아침을 다소간 경건하게 시작하게 해주었던 톨스토이. 앞으로도 든든한 동반자가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