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소개말과는 조금 다르게 이른바 세기의 명재판을 소개한 책이라기보다는 재판이라는 창을 통해서 본 역사적인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요약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50건의 사건과 재판을 분석해보면 재판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하고(유고 전범재판), 시대의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을 재판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는가 하면(히틀러 암살음모재판), 재판이 없었더라면 훗날에 역사적 사실로도 남지 못 했을 사건(피라미드 도굴범재판)이 재판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그나마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든지 하는 등등의 다양한 사건들이 저자 특유의 저널리스트적인 문체로 압축되어 전개된다. 도판도 풍부하다. 퍽 재미있고 유익한 교양서적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에 언급된 사건들은 역사적 사건으로 이미 대중에게 널리 회자된 것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졌거나 혹은 문학작품으로 활자화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학술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고 작가들의 작품으로 되새김질 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식상할 수도 있는 사건들을 재판이라는 돋보기를 동원해서 새롭게 조명해 놓았다는 데에 이 책의 특장이 있지 않나 싶다.
책의 서두는 ‘결국 정의가 이기게 될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 예수에 대한 즉결재판(저자의 표현), 그리고 노예선 아미스타드 재판과 아우슈비츠재판, 현대의 일련의 국제재판들을 언급하고 있다. 서두이자 결론인 듯한 이 글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재판과 그것을 통한 이성의 진보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재판이란 무엇인가. 네이버사전에서는 ‘소송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원고 · 피고의 주장을 듣고 그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리는 소송절차, 소송법적 의미로는 재판기관인 법원 또는 법관이 소송사건에 대해 내리는 판단 또는 의사표시’라고 돼 있으나 이 책의 관점으로 보면 재판이란 결국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무엇이 정의이며 지켜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를 판단해 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50개의 사건과 재판과정을 추적해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한 시대를 견인해내는 재판의 중요함과 역사를 창조하는 힘으로서의 재판의 위대함에 대하여.
이 책에는 재미있는 재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재미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고 아마 당시의 시대에서는 그 나름의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나 싶은데)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딱정벌레가 곡식을 다 먹어버려 결국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므로 그리고 돼지가 사람을 해하였으므로 이런 곤충이나 짐승을 재판에 회부한 것이다. 당시 국선변호사들은 의뢰인인 쥐나 벌레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하니 이른바 중세암흑기라고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한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오늘날로 말하면 컴퓨터가 어린이의 정서와 지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였으므로 컴퓨터를 재판에 회부한다든지 자동차가 사람을 해하였으므로 사람과 자동차를 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인데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그냥 웃고 넘길수 만은 없는 듯하다.(저자의 설명은 당시 사람들은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은 신으로 악은 짐승으로 화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결국 이런 재판까지 이르게 됬다고 함)
재판에서의 유창한 변론은 피고인에게 꼭 유리한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예수는 즉결심판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소크라테스도 비슷했다. 언변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주장과 입장을 설파해서 상황을 역전시킬수 있었음에도 침묵함으로 오히려 보다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이다.
책에 소개된 여러 재판 중에서 오늘날의 상황과 관련하여 두고두고 생각해볼 만한 사건은 ‘린드버그아들 유괴사건’이 아닌가 싶다. 국민적 영웅이 직접 피해당사자인 이 사건은 직접증거는 하나도 없고 간접증거만 있는 상황에서 언론과 수사기관은 유력한 피의자를 피고인으로 만들었고 결국 그는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고 전기의자에 앉혀졌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재판이다. 책에는 재판을 말하면서 재판제도에 대하여도 조금씩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통해서 당시의 재판도 배심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테네의 배심제는 우리의 배심제와 마찬가지로 배심원들에게 유, 무죄 판단권만 있었다고 한다. 배심원은 당연히 추첨으로 선발했으며 직접민주제도의 원조 국가답게 배심원은 1,000명 이상도 참여했었다고 한다. 괴테와 관련해서는 영아살해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수잔나 마가레타 그렌트 사건’이 흥미로운데 당시 괴테는 젊은 변호사로서 이 사건을 주의깊게 관찰하였다가 그의 불멸의 작품 ‘파우스트’에 이 사건을 차용했다고 한다.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리스와의 계약을 통해 영혼을 저당잡히고 인생의 궁극을 찾아 헤메이는데 그러다 만난 순수한 여인 그레트헨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녀를 파멸시킨다. 그런데 이 여주인공이 바로 영아살해의 주인공인 수잔나라는 것이다. ‘파우스트’에서의 그레트헨은 작품의 말미에 죽어 부활하여 하늘로 오르게 되는데 그렇다면 괴테는 이 영아살해의 주인공에 대한 재판의 부당성과 피고인에 대한 연민을 자신의 역사적인 작품에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흥미로운 사건들이 넘쳐난다.
재판관도 아니고 재판제도에 대한 전문가도 아닌 필자로서는 이 책에 언급된 개별 재판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다만 책에 소개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재판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하나의 재판이 결국 역사에 어떻게 기여하게 되는가에 대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저자가 의도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