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 Taeguk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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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지난 토요일에 조조로 봤습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 힘들 정도의 반열에 오른 영화가 되었더군요. 솔직히 둘 다 썩 취향은 아니나 굳이 안볼 정도도 아니라서 가서 봤는데..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좋았습니다만 중간중간의 잔혹함은 역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돈 주고 왜 이런 고문을 당하고 있나..하고 잠시 잠시 고민하면서 봤다는;;

1. 사실 저도 "거대 담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 쪽은..이야기해봐야 해답도 없고, 설사 해답 비슷한 걸 찾는다 해도 그걸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적다는 걸 알기 때문에(예. 저 비겁합니다).

그래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불러일으킨 우리 정치와 역사에 대한 관심은 반갑더군요. 80년대 학번들이 제가 감당하기 힘들게 정치적이었다면 90년대 중반 이후 학번 아이들은 또 감당 안되게 무관심한 거 같았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현실이 늘 지금같지 않았다는 걸, 과거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한번 환기할 수 있는 건 다행이다, 싶어서요(쓰고보니 참 역사전공자스런 발언;;;).

2. 감상은 한마디로 하자면 전쟁은 절대, 절대, 절대 안돼. 라는 것. 세상의 주전론자들 데려다가 가둬놓고 골백번 틀어주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건 도대체 뭣 때문에 전쟁을 하는 건지 원래도 이해 못했지만(그 전 예고편에서는 "트로이"를 보여주더군요. 나같으면 헬레네 따위 백명이라도 파리스에게 줘버리겠어요-_-;;;), 영화를 보고 나니 더더욱. 더 얘기하면 뤼시스트라타적 담론으로 갈 거 같아서 이정도로;;;;.

3. 전쟁은 안돼, 라는 것과는 별개로 전쟁터에서의 인간성, 이라는 문제도 생각하게 만든 건 진석(원빈)의 행동양식. 물론 그는 전장에서도 인간애를 잃지 않는 착한 인물이지만, 전쟁터에서 진석처럼 구는 건 어찌 보면 어리광이 아닐까요. 물론 그런 인간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게 전쟁이라는 것이 문제지만요.

그에 비해 진태(장동건)는 인간성을 버렸고, 처음에는 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해 시작한 행동이었다 해도 갈수록 전쟁의 화약 냄새 자체에 점차 미쳐갑니다. 그렇지만 전쟁터에서 필요한 건 역시 진태 같은 타입의 군인이겠지요. 전쟁은 없어야 하는 것이지만, 시작한 이상은 또 이겨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나중에 깃발부대 부대장이 된 진태를 보고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좀 웃었습니다. 그래, 넌 어느 군대건 군대에선 무조건 출세할 타입이었어..하구요.

4.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종로통, 구두닦이 형 진태, 우등생 동생 진석, 형이 동생 손에 쥐어주는 만년필, 자기는 이빨에 바람 들까봐 안먹는다며 동생에게만 사주는 아이스케키, 뛰어가서 전차를 잡아타는 두 형제의 웃음소리...눈부셨습니다. 곧 깨어질 평화란 원래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인지.

영어 제목이 "Brotherhood"가 될지도 모른다던데, 단순한 형제애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부 잘 하는 동생에게 가족의 미래를 걸고, 자기는 편지 한 장 제대로 쓸 정도의 교육도 받지 못해도, 구두닦기로 하루 해가 저물어도, 동생 공부하는 뒷모습만 보면 흐뭇한 그 한국적인 정서가 외국인들에게도 얼마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태극기"중의 전쟁 묘사는 미국에서건 유럽에서건 먹혀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 부분은 개발 도상국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될수도..

(사실 극중 진태는 그야말로 과하게 동생에게 올인, 입니다. 어머니도 약혼녀도 동생 뒷전이더군요. 두 꽃미남을 등장시켜서 일부러 그런 코드를 넣은 건지, 아니면 그저 절절하게 묘사하다보니 그리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 일본에서 히트하면 아마 팬픽 무지하게 쏟아져나오고 코미케에 태극기 부스 꽤나 늘어설 거 같습니다-_-;;;)

5. 이래저래 제일 불쌍한 건 영신(이은주). 전장에서 싸우는 남자들은 그나마 대의명분이라도 있지만, 명분없는 학살의 대상이 되는 여자와 아이들은 더 가엾습니다(..게다가 대부분의 전쟁에서 여자들은 철저하게 객체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죠. 이 얘기 하다 보니 2번에서 꾹 눌러 참았던 얘기가 또 나오려고 하는;;;). 그야말로 삿된 입으로 죽음 직전에도 영신을 철저하게 모욕하던 남자들에 대한 혐오가 너무 크고, 마지막까지 결백을 말하던 영신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그리고, 설사 영신이 정말 그랬다 해도 그녀를 단죄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병을 미친 듯 사살하던 진태를 나무라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었을 테니까요. 그것도 혼자만의 생존이 아닌 늙은 시어머니와 어린 동생 셋..모두 다섯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는걸요.)

6. 장동건은 이제 거리낌 없이 연기파 배우라고 부를 수 있겠더군요. 나름대로 10년팬인지라, 기뻤습니다. 10년팬이라지만 한 거라곤 아무도 안보는 장동건 주연의 영화들(예컨대 "패자부활전"이라던가;;)을 영화관 가서 봐 주는게 다였는데, 그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의 주변사람들 반응(...)을 생각하니 장동건이 그동안 얼마나 별로인 영화에 출연했었는지 알 것도 같네요-_-;;;

미남이라는 건 물론 굉장히 좋은 겁니다만, 장동건도 안정환도 연기 실력보다, 축구 실력보다 인물이 더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사람들인지라, 그래서 그 인물을 스스로 부담스러워 했던 사람들인지라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실력으로 최고에 오른 모습은 흐뭇하군요.

7. 중간에 좀 괴로운 장면들이 있고, 너무 어린 애들에게 보여주기엔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만(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엄마랑 많이 왔더라구요) 결론은 극장에서 한번 봐 줘야 할 영화다 싶습니다. 토요일 조조에 중년 남자분들이 단체로 우르르 오신 걸 보니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힘, 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저도 기대해보고 싶어질 정돕니다.

8. '태극기 휘날리며' 때문에 6.25에 대해 새삼 관심이 생기신 분이라면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제가 읽은 6.25 문학의 최고 절창입니다. 박완서씨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전쟁터의 묘사는 없지만, 6.25라는 전쟁을 당시의 일반인들이 어떻게 겪어내었는지가 그야말로 생생합니다. 모 책소개 프로 때문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더 알려졌지만, 이 책도 전국민에게 읽히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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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마운틴 - Cold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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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금요일 저녁, 원래는 같이 일하는 선배언니랑 퇴근하면서 하나로 마트에서 장보고, 양재천가를 산책하는게 정해진 코스인데 어제는 날씨 때문에 산책은 아무래도 불가능. 다소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8인의 여인들”을 볼까 했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콜드 마운틴”으로 낙찰. 10년 만에 가본 뤼미에르 극장은 10년 동안 한번도 안고쳤나 봅니다-_-;;; 뭐 그래도 금요일 저녁에 느긋하게 나가서 표 사고 걸어서 집에 들어올 수 있으니 고맙죠.

1.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갔지만 우리가 기대한 건 “시대물 로맨스”였다구요. 그런데 웬 “태극기 휘날리며”의 미국판 여성 버전(.....), 전쟁영화 무지 싫어하는데 요새 볼만한 영화들은 왜 다들 전쟁영화인지-_-;;;.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도 보고 싶긴 한데 그것도 전쟁영화잖아요ㅠ_ㅠ. (영화만드는 사람들은 다들 피튀기는게 그리도 좋은지...이 추세로 나가다간 저는 역작용으로 “어린 신부”같은 영화를 보러갈지도 모른다구요-_-;;;)

2. 쥬드 로가 톰 행크스가 되어 버렸습니다-_-;;;. 연기는 늘었는지 모르지만 이전의 그 뽀샤시 꽃미남 버전은 어디로 가고. 흑. 아니면 남자는 수염 안 깎고 구질구질하게 있으면 다 거기서 거기인건지도.

니콜 키드만은 정말이지 멋진 언니 ㅠ_ㅠ.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사실 로맨스보다 전쟁을 겪으면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아가씨였던 여주인공 아이다(니콜 키드만)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지가 되어준 루비(르네 젤위거)와의 자매애랄까. 이런 것. 게다가 어쩌면 그렇게 추레하게 차리고 나와도 예쁜지. 제가 원래 니콜 키드만같은 타입을 좋아하거든요.

음..로맨스는, 분명히 쥬드 로와 니콜 키드만 사이의 로맨스가 주요 코드이긴 한데, 전쟁 전에 둘이 뜨겁게 연애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서로 뭘 보고 그렇게 절절하게 기다리고 숨가쁘게 돌아오는지가 좀;;;;;; 뭐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닌지 심지어 주인공들끼리도 겨우 재회하고서 서로 나누는 대화가 “우린 서로 잘 알지도 못해요” 어쩌고라니-_-;;;.

르네 젤위거는 왜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았는지가 납득이 가는 연기였습니다. 그야말로 억새풀, 잡초같이 살아온 여장부로, 처음 만났을 때 갑갑스런 아가씨였던 아이다를 조련해가는 모습이라니. 강한 여자 만세!!

3. “태극기 휘날리며”의 데미지가 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이것도 뭐 못지 않더군요. 생각해보니 사실 우리도 남북전쟁, 그쪽도 남북전쟁. 비슷할 수 밖에요. 전쟁터의 묘사는 그 영화나 이 영화나 똑같이 끔찍하고, 전쟁에서의 적보다 오히려 내부의 적이 더 소름끼치는 것도 비슷합니다. “태극기”에서는 그 반공청년단(이게 정확한 명칭이던가..그 영신이를 죽였던 집단 말입니다), “콜드 마운틴”에서는 전장에서 뛰쳐나와 고향으로 돌아온 탈영병을 무자비하게 ‘사냥’하는 의용대. 그 의용대들 하는 짓을 보니 저것들이 남북전쟁 끝난 다음에는 KKK단이 되었겠구나, 싶더라구요. 저런 식의 내부적인 폭력은 정말 구역질이 나고, 저거 보다는 차라리 전쟁터가 낫겠다, 싶지만 사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내부폭력도 용인되는 거겠지요. 아무튼 전쟁은 정말이지 백해무익...(이런 영화 보다보면 저런 전쟁을 하겠다고 날뛰는 남자들이란 아예 정치를 시키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정말이지-_-;;)

4. 굳이 전쟁만이 아니라, 저는 부수고,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게 정말 싫어요. 제가 남성성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분도 그런 부분이구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도 여성성의 승리를 내비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루비가 농장에 굉장히 집착하거든요.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스산해진 땅을 다듬고, 도닥이고, 키우고, 풍성하게 하는 것은 여자들이고, 루비와 아이다가 패잔병인 남자들까지 끌어안고 농장을 다시 재건하지요. 남자가 필요없다, 는 아니지만 편지로 인만(쥬드 로)에게 혼자서는 못 견디겠으니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던 아이다가(그래서 인만이 탈영병이 되었던-_-;;) 혼자 딸을 키우면서(루비네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5. 감독이 안소니 밍겔라길래 들어본 이름인데, 했더니 “리플리”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그 감독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뭔가 일관되는 스타일이 있는 영화들이긴 해요.

레옹의 그 소녀 나탈리 포트만이 조역으로 나옵니다. 나중에 자막에서 이름 보고 깜짝. 그야말로 여자가 되었더군요. 역시 예뻐요.

6. 뭔가 산만한 리뷰였지만, 뭐 그럭저럭 볼거리는 있는 영화였습니다. 전쟁 장면 봐도 데미지가 없으신 분에게라면 권할 만..(전 데미지가 있는 타입이라서 괴로웠습니다). 이미도씨가 또 자막번역을 날림에 윤색으로 해놔서 그게 좀 거슬리더군요. 어디 영화번역 잘 하는 사람 좀 안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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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포드 와이프 - The Stepford W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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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꼭 보려고 했던 영화인데, 게으름피다가 코 앞 극장에서 하는 거 놓치고 압구정까지 보러 갔다 왔습니다. 스포일러 만땅이예요..(라지만 어차피 이번주면 다 내릴 듯 하니).

1. 저야 70%가 니콜언니, 때문에 보러 간 영화인데, 니콜 키드만도 얼굴에선 나이든 태가 조금 나긴 납니다만 몸매는 여전히 나이스 그 자체더군요.

영화 보면서 내내 니콜 키드만이 꼭 한번은 저 '스텝포드 와이프'가 된 모습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스텝포드 와이프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비인형 스타일이라는 건데, 바비인형으로 제일 어울리는 니콜이 금발 휘날리며 나오지 않을 리가 없지요. 입고 나온 드레스도 완전히 인형옷;;;;(바비인형 사면 처음 입고 나오는 기본형).

근데 그러고 나와서 애교떠는 모습 보고 있자니, 니콜이 좀 더 어릴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풍의 영화에서 남부처녀 역할을 했으면 끝내줬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젠 좀 늦었고, 아쉬워요. 그 얼굴에 그 몸매에 그 애교..진짜 멋졌을 텐데 말이죠.(아, '콜드 마운틴'에서 남부처녀로 나오긴 했지만 그건 좀-_-;;;)

2. 스텝포드란 마을 전체가 무슨 '마사의 키친'에 나오는 세트 같고, 와이프들은 다들 가사도 퍼펙트, 외모도 퍼펙트한 그 설정, 솔직히 말하자면 일단 눈은 즐겁더군요. 그런 면에서 보면 거기 나오는 남편들도 조금은 이해가 가긴 가는....뭐 이렇게 나이브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극중에서 머리 속에 나노칩을 심어서 여자들을 바꿔놓는다는 그 수술이라는 거 자체가 너무 황당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별로 위기감이 안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요. 아니 뭐 얼굴 이쁘고 몸매 쭉 뻗고 가사일 잘하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다는 장식품보다 더 복잡한 일에는 관심이 없는 여자들이 오글오글 모여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게 나름대로 보기 좋았다고 하면 욕먹을지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제 최근의 행보를 돌아보니 그걸 꿈꾼 남자들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는 거죠 뭐.....

그렇지만 사실 제가 저 스텝포드 와이프에 등장하는 류의 장면들을 보기 좋아하는 건, "저렇게 되고 싶어서"라기 보단 "저러고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아니까" 보는 것만으로 흐뭇해, 쪽에 더 가까운 거 같긴 해요. 여자들이 모피니 보석이니 휘감고 쉬크하게 나오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런 파스텔 톤 옷+멋지게 세팅한 머리+퍼펙트한 가사 실력+꽃과 나무 가득한 햇살 쏟아지는 배경..이런 건 너무 취향이라서 ㅠ_ㅠ. 영화 자체의 플롯은 상당히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눈이 즐거워서 좋았다니까요.

3. 니콜 언니도 니콜 언니지만, 조역으로 나온 베트 미들러랑 글렌 클로즈의 연기도 좋았고, 그 게이 역을 한 남자배우 연기도 재밌어서, 배경이랑 조역들 연기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글렌 클로즈의 블랙 코미디는..

1975년에 만들어졌던 영화를 리메이크 한 거고, 원작이었던 아이라 레빈의 소설은 당시 '페미니즘의 상징'이었다는데..75년작 영화는 섬뜩한 스릴러였다는데 이번 영화는 코미디더군요. 글쎄, 플롯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플롯 대로였다면 진지한 스릴러가 되기엔 너무 개연성이 약하고, 코미디인 편이 나을 거 같긴 한데 말이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여성개조에 대한 부분이 너무 나이브하게 설정된데다 그 해결법도 좀 황당해서, 진지해지긴 어려웠다는..

4. 처음에는 남자들의 환상이나 반란으로 보였던 영화는 결국 그 배후에서 모든 걸 조종한 것 조차 여자였다는 결말로, 철저하게 남자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남자들이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싶었는데 앞자리 커플 중에 남자분은 "영화 정말 재밌다"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면서 나가긴 하던데...암튼 여자들끼리 보기에 훨씬 좋은 영화긴 해요. 파자마 파티 같은데서 틀어놓고 같이 웃으면서 보면 딱 좋은.

5. 니콜의 남편역으로 나온 매튜 브로데릭은 한때 나름대로 미소년 청춘스타였던 거 같은데, 정말 곰돌이풍 이웃집 아저씨가 되어 버려서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

그렇지만 영화관 로비에 헐리우드판 "쉘 위 댄스"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거기 나온 수잔 서랜든 언니 얼굴이 저게 정말 46년생 여자의 얼굴 맞나 싶을 정도라서, 세월이 누구한테나 똑같이 흐르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46년생이면 저희 엄마랑 동갑인데, 거짓말 안 보태고 포스터의 얼굴은 제 나이에 더 가까워 보이더라구요-_-;;;.그 젊음의 비결은 멋진 연하남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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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 Before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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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화를 보고 나서 수첩을 뒤졌다. 내가 '비포 선라이즈'를 봤던 날짜를 찾고 싶어서. 96년 4월 4일.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8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1. 고백하자면, 내게 이 영화가 슬픈 가장 큰 이유는 영화 속의 두 주인공에게 여실히 나타나는 세월의 흐름 때문이었다. 늙어도 너무 늙었다. 그들 얼굴의 세월을 보면, 다음 수순으로 당연히 생각나는 건 그 세월 동안 나도 저만큼 늙은 거 아냐?라는 자각. 아, 끔찍해.

(두 배우가 나보다는 몇 살 더 먹었다던가, 확실히 나이들어 마르면 더 늙어보인다던가 하는 걸로 위안하고 싶은데, 어째 그게 더 처량맞게 느껴진다-_-;;)

2. 이 영화는 주인공들 얼굴의 세월 만큼이나, 너무 솔직하다. 20대와 30대의 차이를 저렇게 여실히 보여줘 버리다니. 용기있고 모험적이고 꿈많던 20대의 그들은 이제 삶에 지치고 따분해하고 불행해하는 30대로 바뀌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저걸 저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라고 분개. 그러니 내가 영화 중간의 유람선 장면에서 잠시 졸아버린 건, 전날 새벽 다섯시까지 못 잔 탓도 있겠지만 30대의 그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너무 식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자주 듣는 얘기를 영화관에서까지 듣고 싶진 않다구.

영화 속 80분이 그대로 현실의 80분이 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확실히 다소는 지루하다. 그들이 돌아다니는 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3. 비엔나에서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은 누구나 다 부러워할 꿈같은 로맨스였지만, 그런 "Once in a Lifetime" 식의 경험이 남은 삶에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 조차 이 영화는 가감없이 드러낸다. 제시와 셀린느, 둘 다 과거를 잊지 못했고, 그래서 현실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현재 그들의 상황을 보면, 차라리 그들이 반년 후 비엔나에서 다시 만났다면 어떤 식으로 마무리가 되었든 현실을 살아가기엔 더 나았을거다..라는 생각도 드니까.(사람 일 알 수 없는 거니 로맨틱에만 기대지 말고 연락처를 교환했어야 했다는 교훈을 30대가 된 그들도 실감하고 있는 듯도 하지만;;;)

물론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그들이 나눈 대화만으로 현재 그들이 불행하다고 단정지어버리기도 어렵고, 특히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한 제시의 고백이 옛 연인을 만난 유부남의 상투적인 멘트가 아닌지 하는 의심도 지울 수 없긴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내가 20대가 아니라 30대라는 걸 증명해 주는 거지만.

4. 9년전의 줄리 델피가 그렇게 꿈같이 아름답지 않았다는 걸 회상 장면을 보고야 깨달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에단 호크의 변한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은터라(도대체 왜 그리도 망가진 건지..같이 본 후배 말 대로 우마서먼이랑 사는 게 힘들었나-_-), 줄리 델피의 나이든 모습은 상대적으로는 오히려 나아보이긴 했는데. 아, "죽은 시인의 사회" 시절의 에단 호크를 생각하면 세월은 정말이지 무상하다. 근데, 에단 호크가 데이빗 베컴이랑 많이 닮아보이는 건 내 눈에만 그런 걸까.

5.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좀 더 어렸다면 30대의 그들이 내 눈에 아름답게 보였을까가 궁금하다. 동질감만 강하게 느껴졌을 뿐 그들에게 감탄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 슬펐다. 그들이 걸어다녔던 파리처럼, 나이들어도 여전히 쿨한 매력이 풍기는 모습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꼭 봐야 할 영화였지만 여러 모로 이 영화는 내게 서글프게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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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 다이어리 - The Motorcycle Di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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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간의 열광에 비해, 나 자신은 체 게바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긴 호기심에 이것 저것 자료를 찾아봐도, 역시 내가 그에게 열광할 일은 그닥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나쁘지 않다. 사실은, 꽤 좋았다.

2. 기승전결의 팽팽한 스토리는 없다. 영화는 그저 여행의 시작에서 끝까지, 물 흘러가듯 흘러간다. 그래도 12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는 않다. 물 흐르듯 금새 가버린다.

3. 게바라 역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어딘가 키아누 리브스를 닮았다. 물론 그보다 좀 더 어리고, 좀 더 단정하고, 당연히 좀 더 라틴적이지만. 맑은 물 같은 얼굴을 한, 고질병인 천식으로 자주 고생하는, 그러면서 럭비 선수이기도 한 의대생. 이 부조화는 저 배우를 통해 기막히게 매력적으로 뭉쳤다. 실제의 체가 저런 모습이었다면, 저렇게 구도자 같고, 저렇게 올곧고, 저렇게 진심이고, 저렇게 아름다웠다면...그런 그가 혁명을 외쳤을 때 그 목소리가 주변 사람들의 귀에 참으로 선명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결국 사람들을 진정으로 매혹하는 것은 인물의 개성이니까.

4. 영화는 젊음의 순수와 열정을 보여주지만, 그 치기까지도 감추지 않는다. 제목의 저 모터싸이클은 너무 작고, 너무 낡았다. 친구 알베르토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극장 안 관객들 모두 어이없어 실소한다. 그 말할 수 없이 어설픈 교통수단에 몸을 의지하고 떠나는 그들은 로시난테를 타고 떠나는 돈키호테와 판초 이상으로 무모해 보이므로.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젊음의 치기, 그리고 참으로 험한 여정이었음에도 그 길을 끝까지 가는 열정,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수...그래서 이 영화는 아련하다. 젊어 죽은 혁명가의 빛바랜 일기답게.

5.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미의 풍광은 험하고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에 가고 싶다는 충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기행문 '쉬 트래블즈', '화가 사석원의 황홀한 쿠바', 그리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미, 매체를 통해 남미를 접하면 접할수록 나는 그 광활하고 열정적이고 아직은 야성적인 땅을 헤매기가 두려워진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미는 내게 먼 땅으로 남으리라. 언젠가는 그 곳에도 가고 싶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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