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싸이클 다이어리 - The Motorcycle Diar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세간의 열광에 비해, 나 자신은 체 게바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긴 호기심에 이것 저것 자료를 찾아봐도, 역시 내가 그에게 열광할 일은 그닥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나쁘지 않다. 사실은, 꽤 좋았다.

2. 기승전결의 팽팽한 스토리는 없다. 영화는 그저 여행의 시작에서 끝까지, 물 흘러가듯 흘러간다. 그래도 12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는 않다. 물 흐르듯 금새 가버린다.

3. 게바라 역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어딘가 키아누 리브스를 닮았다. 물론 그보다 좀 더 어리고, 좀 더 단정하고, 당연히 좀 더 라틴적이지만. 맑은 물 같은 얼굴을 한, 고질병인 천식으로 자주 고생하는, 그러면서 럭비 선수이기도 한 의대생. 이 부조화는 저 배우를 통해 기막히게 매력적으로 뭉쳤다. 실제의 체가 저런 모습이었다면, 저렇게 구도자 같고, 저렇게 올곧고, 저렇게 진심이고, 저렇게 아름다웠다면...그런 그가 혁명을 외쳤을 때 그 목소리가 주변 사람들의 귀에 참으로 선명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결국 사람들을 진정으로 매혹하는 것은 인물의 개성이니까.

4. 영화는 젊음의 순수와 열정을 보여주지만, 그 치기까지도 감추지 않는다. 제목의 저 모터싸이클은 너무 작고, 너무 낡았다. 친구 알베르토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극장 안 관객들 모두 어이없어 실소한다. 그 말할 수 없이 어설픈 교통수단에 몸을 의지하고 떠나는 그들은 로시난테를 타고 떠나는 돈키호테와 판초 이상으로 무모해 보이므로.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젊음의 치기, 그리고 참으로 험한 여정이었음에도 그 길을 끝까지 가는 열정,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순수...그래서 이 영화는 아련하다. 젊어 죽은 혁명가의 빛바랜 일기답게.

5.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미의 풍광은 험하고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에 가고 싶다는 충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기행문 '쉬 트래블즈', '화가 사석원의 황홀한 쿠바', 그리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미, 매체를 통해 남미를 접하면 접할수록 나는 그 광활하고 열정적이고 아직은 야성적인 땅을 헤매기가 두려워진다. 그래서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미는 내게 먼 땅으로 남으리라. 언젠가는 그 곳에도 가고 싶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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