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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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자신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인데 나는 그의 소설을 읽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또 그의 팬이 아니라고 하기도 뭣한 것이 하루키(사실 그를 하루키.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어쩐지 '무라카미' 쪽 보다는 '하루키'라는 이름이 그에게 훨씬 어울린다.)의 에세이는 나오는 즉시 구입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국내에 소개된 하루키 에세이 중 가장 최근작이라 할 수 있다(아님 나 모르는 새에 뭐가 더 나왔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서 시작된 그의 에세이들은 십여년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적절하게 쿨하면서도 따뜻하고 유쾌하다. 후기에서 그 자신도 말하고 있지만 오십을 넘긴 작가가 20세 전후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해서 쓴 글에서 이렇게 목에서 힘을 빼고 편안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참 경이롭다(아니면 나는 이미 그 연배의 젊은 여성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을 찾아내면서 평범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즐겁다. 책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퍽이나 비범한 작가라는 생각에 다소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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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3
박완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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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이었던가, 티비에서 이 책이 드라마화되어 방송된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꽤 분노했었다(사실은 열받아서 일부러 제대로 안봤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 드라마를 만든 이들에게도 물론 나름대로의 변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그들은 최고로 정성을 기울여 음식 한 가지 한 가지에 신경써서 차려내야 하는 개성식 한정식을 조미료만 잔뜩 때려넣은 흔해빠진 밥상으로 만들어놓은 사람들이었다.

구한말에서 육이오전쟁까지, 개성상인 전처만 일가의 운명을 그린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소설적 재미가 풍부하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전처만의 손녀딸 태임으로, 어찌 보면 <토지>의 '서희'를 연상하게도 하는 이 당당하고 단아한 여성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혼란과 격동의 우리 근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역사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이전의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박완서는 그 특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입담과, 그러면서도 결코 지나치게 가볍거나 천박해지지는 않는 정갈한 글솜씨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전처만네 집안 살림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그 자체로 당시 개성 지역에 대한 풍속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연령대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덧. <미망>보다 뒤에 쓰여졌지만, 이제 전 국민의 책이 되다시피 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어떤 식으로 <미망>에서 써먹었는지도 눈에 보인다. 그것도 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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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아 뭐 먹고 싶니
진미령 / 가서원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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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령의 히트곡을 기억하기엔 좀 어린 나이라, 이 책을 읽기 전에 진미령씨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냥 이전에 잘나갔다던 가수, 개그맨 전유성씨 부인, 이 정도 밖에 없었다(그런데 내가 이 책을 도대체 왜 산거지?).

유명인이 쓴 글은 그 유명세를 제외하면 그닥 읽을 게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책 자체로도 꽤 재미있고 유용하다. 물론 진미령과 전유성이 어떻게 만나고 결혼했는가, 그리고 둘이 얼굴 맞대고 매일 어떻게 사는가, 뭐 이런 것도 재미있지만, 역시 더 인상적인 건 진미령의 살림솜씨다.

유성아, 뭐 먹고 싶니?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이런저런 살림 이야기 중에서도 음식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남들은 뭘 어떻게 먹고 사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나처럼) 꽤 재미있을 이야기가 많다. 음식에 얽힌 일화나 만드는 법 등이 아기자기하고 읽기 편하게 쓰여 있어서 가끔 집어들고 읽으면 무척 즐겁다. 그 외의 살림하는 사람이 알아야 될 여러가지 소소한 이야기들도 꽤 도움이 된다.

읽다보면 진미령씨가 좋은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정말 똑 부러지는 살림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여자랑 같이 사는 전유성씨, 아마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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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테이블 1
무라타 준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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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테이블'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프랑스 요리를 다루는 요리만화. 여주인공 세이라는 외식업계의 거물로 유명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아버지에 대항하듯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을 고집한다. 물론 그 고집에는 부모의 불화로 인해서 피폐했던 세이라의 어린시절의 상처가 숨어있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쉐프 마모루, 소믈리에 쇼타로, 파티시에 케이, 이 4인방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 들르는 손님들이 그들의 음식과 배려로 위안받고 기운차리고,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옴니버스 식의 이야기가 이 만화의 주요 내용이다.

일단 프랑스 요리에 대한 작가의 정열과 식견이 돋보인다. 결혼후 남편과 내내 프랑스 요리를 먹으러 다녀서 살이 20kg이나 쪘다는 작가 후기의 고백대로,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프랑스 요리를 소재로 만화를 그려보고자 많이 별렀던 것 같다.그러다 보니 프랑스 요리에 대한 묘사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는데, 그에 비해 스토리가 약하고, 다소 진부한 감이 든다. 옴니버스 스토리도 그냥 그만그만하고, 세이라와 부모의 화해로 끝나는 대단원은 뻔하다 못해 싱겁다.

뭔가 화려한 식당에서 기대되는 메뉴를 주문했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 에이~하는 느낌이랄까. 작가 자신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접은 느낌이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하긴 요리도 좋은 재료를 레시피대로 만든다고 해서 꼭 맛있으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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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키코 5
누노우라 츠바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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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타로의 일기'를 읽으면서는 누노우라 츠바사가 이런 식의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 못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이 '스마일 키코'는 꽤나 웃기고 재미있었다.

간결한 선으로 균형잡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그림 실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던 바지만, 눈매가 범상치 않은 유치원생 키코를 등장시켜서 전혀 특별할 거 없는 일상생활 속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키코가 분명 주인공이긴 하지만 작중 화자라고 말할 수는 없는 독특한 서술방식 덕분에 이 만화가 더 즐겁다. 특히 부모가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여러가지 태교를 하는 장면 다음에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나레이션,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키코였다' 같은 대사는 그야말로 읽는 이를 큭큭거리고 웃게 만든다.

(비범한) 유치원생 아이와 (평범한) 젊은 부모, 그리고 그 주변이 펼쳐나가는 아늑하고 잔잔한 일상 덕에 보고 있으면 미소가 떠오른다. 단순하고 잔잔하지만 싱겁지 않고, 박장대소라기 보다는 기분좋은 킥킥거림을 만들어내는 만화다. 머리가 복잡한 당신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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