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 3
박완서 지음 / 문학사상사 / 1990년 9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이었던가, 티비에서 이 책이 드라마화되어 방송된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꽤 분노했었다(사실은 열받아서 일부러 제대로 안봤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 드라마를 만든 이들에게도 물론 나름대로의 변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그들은 최고로 정성을 기울여 음식 한 가지 한 가지에 신경써서 차려내야 하는 개성식 한정식을 조미료만 잔뜩 때려넣은 흔해빠진 밥상으로 만들어놓은 사람들이었다.

구한말에서 육이오전쟁까지, 개성상인 전처만 일가의 운명을 그린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소설적 재미가 풍부하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전처만의 손녀딸 태임으로, 어찌 보면 <토지>의 '서희'를 연상하게도 하는 이 당당하고 단아한 여성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혼란과 격동의 우리 근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역사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이전의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박완서는 그 특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입담과, 그러면서도 결코 지나치게 가볍거나 천박해지지는 않는 정갈한 글솜씨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전처만네 집안 살림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그 자체로 당시 개성 지역에 대한 풍속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연령대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덧. <미망>보다 뒤에 쓰여졌지만, 이제 전 국민의 책이 되다시피 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어떤 식으로 <미망>에서 써먹었는지도 눈에 보인다. 그것도 꽤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