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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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에서 느낀 산뜻한 소설이었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 - 우다영


ㅁ 밤과 징조와 연인. 세 단어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런 제목이 나오늘 걸까. 정확히는 밤'의' 징조라고 하는 걸 보아하니, 어떤 걸 보았길래 밤이 생길 '기미'를 알아차린걸까. 연인은 그 사이에서 무엇이었을까. 이런 사소한 의문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겨울날이었다. 서가에서 발견했던 그냥 눈에 띄던 제목의 책을 읽었다. 읽는 동안 묘하게 현대소설과 좀 다른 느낌이었다. 안에 들어간 총 8편의 단편들 중 절반 정도는 좀 더 산뜻하다고 느꼈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쓸 때서야 책이 18년 11월에 발간되었고 작가가 90년생(!!)이라는 걸 알았다. '엄청 최근 책이었구나.' 이해되면서도 조금은 놀랐다.


ㅁ [밤의 징조와 연인들]들은 우다영 작가님의 8편의 단편소설집이다. 아마 첫 번째 소설집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소설집이 있긴하지만 작가님의 이름이 걸린 책은 이것이 처음인 듯 했다. 누군가의 첫 소설집이라... 생각해보면 문학작품에서 누군가의 첫 소설을 읽어본 경험이 얼마나 있던가 싶었다. 보통 스테디셀러나 유명작가의 최신 책을 주로 눈에 띄게 두는 서점에선 이제 막 등단하신 작가님의 첫 소설책을 발견하는 게 엄청 어려운 일이리라. 근데 눈에 띄던데... 내 눈에 왜 띈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레 끌렸던 책이라서 보게 되었다. 어떤 책이든 보게 된 계기가 중요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니... 별 상관은 없는 것 같다. 어쨋든 이 기회에 새로운 작가님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하고 있다.


ㅁ 전반적으로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연애를 빙자한 우연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제목이 연인들이란 제목을 보고 "이건 '연인들'이라기 보단 '인연들'이 맞지 않나?" 생각했다. 제목이 그냥 한 단편소설의 제목인줄도 모르고...;; 어쨋든 책 뒷 표지에 나와있듯이 어떤 '기미'들을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지나왔는가. 나는 각 단편들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들이라 생각했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서 이수와 석이의 관계가, [노크]에서 자신을 찾아온다던 여성의 전화도 그렇고, [셋]에서 만난 세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들도, 이 모든 게 어떤 게 일어날 '기미'였던 게 아니었을까. 작가님의 그들의 삶에 '기미'를 가미하여 서사가 진행된다. 마치 지금 글을 쓰면서 앉아 있는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기미'라는 걸 암시하듯이.


ㅁ 모든 단편소설집들이 그렇지만, 좋은 작품도 있다가도 별로인 작품도 눈에 띈다. 조금 신선했던 작품은 바로 [미래와 밤]이었다. 처음엔 '어디서 봤는데...'라고 생각하다가 계나라는 이름을 보고나서 알았다. '아 한국은 싫어서 후속편이구나.' 장강명 작가의 [한국은 싫어서]의 작품에 대한 이후의 이야기를 담으셨다. 물론 저 작품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읽는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왜나하면 그걸 제끼고도 중요한 진짜 같은 허구가 들어있으니까. 어쨌건 신선했다. 이야기가 마무리된 소설의 연장선을 엿본 기분이라 재밌게 읽었다. 마치 영화 엔딩크레딧 이후 짤막하게 나오는 쿠키영상 같은 기분이랄까? 다른 단편소설에 비해 무척 짧은 내용이었지만, 왠만한 것들보다 기억에 많이 남은 소설이었다.(소설들의 비중이 일정하진 않은 듯했다. [미래와 밤]은 짧은 편에 속했다.)


ㅁ 개인적으로 한국현대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내 정서와 감정에 더 맞는 느낌이라서 그러는 편이다. 처음에는 유명한 작가님들의 조금은 유명한 작품부터 읽기 시작한 게 어느덧 어떤 취향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작가의 폭과 작품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한국현대소설만의 공통적인? 약간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난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바닥에 두텁게 깔린 물안개. 촉촉하기 보단 축축한데, 그렇다고 어두운 날은 아니면서 동시에 너무 밝지 않고 주변은 살짝 흐려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런 공간. 딱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모든 한국현대소설을 읽은 게 아니기까 이 느낌이 그 분야를 설명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서서히 자리잡고 있었던 건 맞다. 이건 소설들의 배경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소설을 읽을 때 음미하는 느낌이다. 소설에 쓰이는 단어부터 구절 하나하나가 주는 느낌이었다.


ㅁ 그러던 와중에 다른 느낌을 받은 책이 [밤의 징조와 인연들]이었다. 읽으면서 뭔가 신선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아마 작가 특유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작가님들은 나와 시대적으로 좀 떨어진 사람들이었고, 나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 쓴 소설은 [밤의 징조와 연인들]이 처음이었다. 이게 사람이 사는 시간대에서도 차이가 만들어지는 걸 느꼈다. 뿐만 아니라 단편소설 하나하나에도 주제도 참신한 게 있다. 앞서 말한 [미래와 밤]이 가장 신선했고, [조커]나 [셋]도 살짝 그런 면을 느꼈다. 물론 어떤 나이가 더 참신한 걸 만드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대를 산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이전에 읽은 한국현대소설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지 않을까.


ㅁ 책 끝무렵엔 보통 작품해설 비슷한 게 있다. 거기에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난 그게 장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늘어져 있는데, 다 필요없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고르자면 다음과 같다.

그 때 그녀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은 '신비로움'이다.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신기하고 묘함'을 의미하는 이 단어 속에 우다영의 소설세계를 압축해서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390 작품해설(한영인 문학평론가)

그렇다. 작가님이 그렇게도 말하던 '기미'나 우연, 인연, 그리고 징조. 이 모든 게 바로 저 신비로움이라고 뭉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난 조금은 다른 느낌, 오히려 '우연의 기묘함'이라는 말로 뭉치고 싶지만 말이다. 물론 그 어감이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이쪽이나 저쪽이나 비슷하다고 본다. 어쨋든 작가님이 노린 게 이런 부분일까. 앞으로 나올 책들이 기대되는 작가님이다. 어떤 소설로 또 다시 산뜻함을 주실지 기대하며 끝맺는다.

이 책이 지나온 과거와 당도할 미래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저자님의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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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6일의 문장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는 '작은 일탈'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낯선 장르의 음악 들어 보기, 가 본 적 없는 가게 들어가기 등 조금만 변화를 줘도 일상이 훨씬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것.


월간 [좋은 생각] 1월호


ㅁ 요즘 따라서 일상이 단조롭다고 생각했다.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앞을 나가기 위한 공부를 하고, 그리고 남은 시간은 잠깐의 휴식.


그런 나날들이 모여 나를 이루는 것임을 잘 알지만, 반복된 삶이 잠깐씩 지루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가지 않은 길로 가는 짓을 하곤 한다.


매번 갔던 길에는 이미 볼 만큼 봤기 때문에, 그냥 빠른 속도로 걷지만,


새로운 길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조금은 주변을 관찰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변화가 가끔씩 개운한 느낌을 주곤 했다.


이것이 바로 소냐 류보머스키님의 '작은 일탈'이었나 보다.


ㅁ 저기서 말한 가본 적 없는 가게를 들어가본다거나, 그런 일도 나름 참신해보였다.


요즘 딱 지루함을 느낄 때가 왔는데, 좋은 정보를 얻었다.


지나가다가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봐야겠다. 그리고 새로운 음악도 좀 찾아보고 말이다.


그런 사소한 일탈, 습관 이런 게 사실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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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5일의 문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지 않는 이상, 나이든 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한 질문이 뒤따랐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섰다.


[퇴적공간](민음인) - 오근재


ㅁ 서글프다. 나이가 든다는 게 너무 서글프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그런데,


위 문장을 쓰신 저자님,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모든 노인들은 어떤 기분인지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각 시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어릴 때는 어려서, 청년이 되선 그 시간을 즐기거나 미래를 위해 발버둥치느라,


어느 정도 정착하면 자식이나 주변을 챙기느라 그 시간대를 전혀 고찰하지 못한다.


노인이라는 어떤 위치에 도달하는 순간, 드디어 진지하게 앞서나갈 시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정말 첫 문장은 확 와닿는다. 일정 수준의 소득이 없어지는 순간,


어떤 사회적 잣대로 결정된다는 게 서글펐다.


노인이란 직책이 아직 나에겐 많이 멀었지만, 


과연 그걸 어떻게 받아드릴지 미리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조금 서글펐다. 지금도 지나가면서 노인분들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늙어가는 게 꼭 슬픈 일은 아니겠지만,


오늘만큼은 좀... 뭔가 시간이 정말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날이었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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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4일의 문장


답은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


주간시사지 시사IN 546호 - 문재인 정부를 흔든 '공정의 역습' 기사 中


ㅁ 어떻게 정의하느냐? 공정에 관한 정의를 사실 위 문장 뒤에 나온다.


그게 너무 길어서 시작하는 문장만을 가져왔다. 


(혹시 관심 있다면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335 를 참고)


정치적인 요소를 벗어나서 그냥 '공정'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사였다.


ㅁ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평등은 과연 어떤 걸까?


노력한만큼 그 결과를 보상받아야한다는 입장과,


애초에 구조적인 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좀 더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난 저 두 가지에 대해 어떤 게 과연 평등한 일인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어느 쪽이든 맞는 것 같았다. 노력한만큼 보상받는게 맞고, 


동시에 노력 자체를 할 수 없는 약자라면 그들에겐 기회를 더 주는 게 맞다.


그런데, 어떻게 그 중간을 지켜야하는 걸까...


ㅁ 군대에 있을 당시에 생각했지만, 어느 쪽도 평등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 읽은 저 기사가 내가 말한 딱 그 주제였고,


지금까지도 복사해서 집에 보관하고 있다.


각각을 기사에선 비례원리와 보편원리라고 부른다. 지금도 보면 두 원리의 중심을 잃어버려


사회적 갈등으로 불지피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교육제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거기에 복지제도는 당연하다.


애초에 약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까진 좋은데, 기회라는 게 한정적이다 보니까.


우선권을 준다면, 노력한만큼 보상받지 못할 누군가가 생길 수 밖에 없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사회적 격차는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어렵다.


중간이 어딜까. 그 중간을 놓친다면 정말 끝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사회는 어떠한가? 현존하는 여러 '공정'이란 이름의 제도들이 어떠한지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하지 않을까?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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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3일의 문장


칼럼리스트가 할 수 있는 사회에 가장 유용한 일 중 하나가 학술 전공자 열명이 읽고 말한 연구 결과를 가져와서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겁니다. 우리는 대중화할 수 있습니다.


[지식의 표정](마음산책) - 전병근 : '데이비드 브룩스'의 말 中


ㅁ 어떤 전공과 그것에 대한 대중화는 정말 극과 극이다. 마치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차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더 괴리감이 큰 기분이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와 어느정도 알고 있는 아마추어,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 이 세 부류간의 괴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과정이 분명히 필요한 법인데, 


그게 없다면 그 분야는 점점 소홀해지고 쇠퇴하는 것 같다.


가령, IT 산업에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쉽게 접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의 IT에 대한 이해가 있는 편이며, 그런 환경에서 IT에 관한


더 깊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취미 정도로 갖는 아마추어들도 늘어난다.


그 중 몇 명은 더 전문적인 부분을 다루고 싶어진다면, 그들이 그 분야의 전공을 배우기 시작하고,


새로운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이런 세 부류간의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분야의 미래는 그렇게 밝진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분야엔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다.


내가 공부하던 분야도 그리 적절한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적절한 의견이 오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에 기여하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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