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역사 하얀 이론 - 탈식민주의의 계보와 정체성 ㅣ 한길신인문총서 18
이경원 지음 / 한길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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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버트 영이 맑시즘을 중심으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계보와 실천적 함의를 재구성하려고 했다면(<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이경원은 제3세계 민족주의를 그 중심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 모두 서구 아카데미즘의 문법 안으로 경사되어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저항적 실천이라는 본래적 의미를 상실해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탈환을 위한 방법과 연대의 가능성을 각각 다른 곳에 걸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경원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저항담론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주된 이유로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어색한 결합’을 꼽는다. 계급과 민족을 ‘이론적 허구’로 치부하는 풍토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서구의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경원은 ‘아직도 물질과 정신의 탈식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과도기’로 규정된 현재의 상황에서, 제3세계 민족주의는 서구 문화제국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전제 안에서 이 책은 ‘탈식민주의’의 계보를 흑인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구라는 저항의 대상은 점차 선연해지고, 흑인 민족주의, 범아프리카주의, 네그리튀르와 같은 저항적 실천과 이론을 주창했던 이들의 이론적 지반이 되짚어진다.  


 여기서 저자가 가장 힘주어 설명하는 이론가는 역시 ‘파농’인데, 파농을 둘러싼 연구경향의 변화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이론적 모순을 가속화하는 기점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연구의 경향이란, ‘하나는 1960년대 아프리카 민족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미국의 신좌파, 흑인 과격단체에서 주창한 ‘고전적 파농주의’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이후에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탈식민주의·문화연구 등의 영역에서 전개되는 ‘비판적 파농주의’다.’(184) 여기서 고전적 파농주의는 오로지 마르크스적 파농만 부각시켜왔고 비판적 파농주의는 프로이트적 파농에 주목한다. 호미 바바를 필두로 하는 ‘비판적 파농주의’는 결국 투쟁을 중시하는 마르크스적 파농은 점차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정신분석학과 탈구조주의에 거의 무비판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비판적 파농주의’는 서구이론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그러나 위와 같은 이경원의 논지 또한 몇 가지 의문을 남긴다. 그의 말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도하는 온갖 이론의 향연이 우리의 비판의식을 혼미케 하며 피아의 식별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 그리하여 그 특유의 완고한 저항의지를 내장한 민족주의가 역설적으로 다시 요청된다면, 도대체 그 적은 누구인가. 그가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도 그것은 문화다원주의, 초민족주의, 세계화, 자본화 등으로 일컬어지는 서구 문화제국주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과연 ‘민족주의를 시대착오적 골동품으로 우리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서구의 전략이고 문화제국주의의 결과인 것일까. 이경원이 한국 내부의 바바로 생각하고 있는 인물들은 대개 임지현과 같은 민족주의 비판론자들이다. 그의 도식대로라면, 내부 파시즘과 같은 논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문화제국주의의 음모를 무비판적으로 수용·내면화한 결과로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이러한 논리는 자본화에 뒤따르는 대규모 이주, 국가의 제국적 통치기술 학습, 내부 하위주체에 대한 제국주의적 이분법과 같은, 말하자면 제3세계 내부의 제국주의적 열망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서구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즉 제1세계의 자기반성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같은 논의가 대규모로 발생하게 된 원인에는 이미 준제국적 위치에 도달한 한국 내부의 현실적 징후와 증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할 때, 민족주의가 제국 질서에 대항하는 저항담론이 될 수 있는가. 아니, 한국은 여전히 제3세계의 범주 안에서 파악될 수 있는가. 
 

 또한, 이 책이 설정한 제1세계와 그에 대립하는 제2세계, 제3세계라는 구도가 어느 정도의 현실적 규정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여전히 서구와 비서구라는 이분법적 대립에 기초하고 있는 이러한 구도는 제3세계의 저항의 산물인 탈식민주의가 ‘지배-내-구조화’ 되면서 발생되는 또 다른 지적 제국주의의 반복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여기서 하나의 전제는 모든 ‘‘타자에 관한’ 또는 ‘타자를 위한’ 재현은 결국 주체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로부터 전유된 탈식민주의 또한 주체중심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자생적으로 발생했던 저항적 탈식민주의를 제3세계가 탈환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이 주체의 이동이 저항의 공간을 산출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논리가 가지고 있는 함정 즉, 각 사회 내부 혹은 국가 간의 역학관계나 대립의 구도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책에서 제3세계 민족주의 혹은 민족문학의 연대를 주창할 때, 그 범위가 모호해지거나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아마 그 제3세계라는 범주를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 끼워 넣으려고 할 때에 생기는 이물감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현재 상황과 흑인의 저항 민족주의를 겹쳐 저항의 대상으로 서구를 지목하는 것이 다소 어색해지거나, 나이브한 것이 되고 마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물론 이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통째로 생략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큰 틀에서 설명하고 있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계보학은 한국학 연구, 혹은 실천적 탈식민주의에 대한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제시해준다. 아프리카나 알제리와 같은 곳과는 달리 한국에서 탈식민주의는 지속적으로 저항해야 할 대상이 이미 사라진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또한 그것은 이미 국가 간 협의를 통한 정치적 해소 이후 식민지 유산의 청산, 심정적 증오와 같은 형태로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달리 말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처단과 저항이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탈식민적 실천이 내부자(협력자)에 대한 고발이나 처단의 형태로 대리보충된 것은 아닐까. 파농의 말대로, 폭력이 피식민자를 주체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면, 그러한 계기가 말소되어 버린 상황에서의 탈식민주의란 어떤 모습인가.
다른 한편, 탈식민주의의 서구적 전유 이후 본격화된 식민지 연구 혹은 한국학 연구의 궤적과 전망도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볼 문제이다. 파농 이후의 서구에 의한 포스트콜로니얼 연구의 포식은, 이 책이 말하는 대로 어떤 면에서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일환이었던 탈식민주의를 언어의 유희로 변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혹은 보다 정교해지는 이론적 기반과 서구적 인식론과 철학적 계보에 기반을 둔 아카데미즘으로의 포섭이 한국학의 한계를 규정짓거나 구미에 맞는 성과만을 산출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것은 90년대 이후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포스트콜로니얼 연구로의 방향전환을 맞았던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저간의 사정과 함께 사유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저항사 이후 탄생과 기원을 문제 삼는 근대성 연구, 지배자의 언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권력 분석 등으로 논제화 된 식민지 연구의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보는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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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ㅣ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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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를 단번에 읽어낼 방법은 존재하는가. 더욱이 그것이 한 사람 안에서 인지되고 체험되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면? 제각기 다른 표정·생각·판단 하에 한 장소 안에 모인 군중, 그리고 그들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나마 공통된 목적. 아마도 그것이 한 사람에 의해 단숨에 그려지기 위해서는 그 속의 있었던 한 인물의 내면을 읽고·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리라. 하지만 그들과 그 시간 전체를 동일한 것으로 가정하는 방법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황폐성’과 ‘무질서성’으로 가득한 이 유물과 마주한 ‘고고학자’의 과제란 어떤 것인가. 이 폐허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나의 영화이기도 하면서, 꿈이기도 한, 하지만 일어난 사건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이 소설은 ‘미궁 속에 빠진 몽유병자’인 독고민이라는 인물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황해도 출신으로 포목상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한국전쟁 때 남하하여 2년간의 군 복무 후에, 넥타이·군복·고구마·무연탄 장사를 거쳐 미군부대의 ‘궁정화가’가 되었다가, 지금은 ‘간판가게 점원’인 이 말 없는 인간의 꿈은 ‘숙’과의 재회를 위한 목적 속에서 순환한다. 애초에 죽은 인물로 등장하는 이 사람에게 표정이란 없다. 그는 장소와 인물들을 건너 뛰어가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사는 ‘얼굴 없는 화자’이며, ‘A이면서 A가 아닌’자이다. 이와 같은 서술자의 꿈 속에서는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기시감 속에서 서술된다. 독고민이 사랑한 ‘최초의 여자’의 얼굴처럼 ‘왼쪽 뺨에 까만 점’을 가진 여성이 9명 등장하고, 말 없는 ‘사팔뜨기’ 여성이 2번, ‘빨간 넥타이’를 찬 남성이 최소한 2번 등장한다. 무엇보다 ‘독고민’의 삶은 ‘김용길’ 박사의 삶과 겹쳐지고, ‘간호부장’의 죽은 아들의 얼굴과 겹친다. 여기서 김용길 박사는 「라울전」에서 나타난 바 있는, ‘보지 않고 믿는 것’과 ‘보아야 믿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토끼, 말, 코끼리의 우화 속에서 현대 주체 분열의 현상을 발견해내고, 그것이 현대사회에 와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재현되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가라앉지 않도록 뜰 주머니를 주고, 분열하지 않도록 코르셋을 주”어 해결하려는 ‘도마의 형제’로 묘사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동일성의 사유를 밀어붙여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독고민’의 존재는 김용길 박사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면서 그 비동일성을 재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개체로 존재하되 개체가 아닌 자, 인류의 기억의 두께가 잠재되어 있는 자로서 독고민은 그 자체로 구원을 예비하기 위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흔히 ‘5.16에 대한 소설적 대응’이라고 설명되어 온 󰡔구운몽󰡕에서 최인훈이 구상했던 것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혁명군과 정부군의 대립 속에서 쫒기는 독고민은 혁명의 가능성의 조건이자, 혁명의 공통 기억을 재현하는 자이다. 결단에의 요구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 인물은 끝내 이렇다 할 말을 하지는 않지만, 고고학 입문 필름을 보고 나와 크리스마스 거리를 걷는 연인에게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추구자라는 면에서, 저 황폐성과 무질서성으로 가득 찬 역사의 증거로 여겨지는 그는, 혁명의 실패 이후에도 이어지는 공통감각을 드러내는 존재로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그 대신 읽지 못하는 책도 늘어난다. 아이디어를 내고, 구조를 찾아, 문제를 조직한 후, 답을 내는 과정은 여전히 버겁다. 소설 분석에는 '이 쯤이면...'이 없다. 계속 부족하고, 그런한에서 말해져야 할 것들은 많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 배치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 아닌가. 어쨋든 써야한다. 폭풍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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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반복해서 걸려오는 장기구독 권유 요청 전화에 못이겨, 3년 구독을 어렵싸리 결정하고, 받아놓고도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전자 영인본 USB를 구석에 고이 모셔둔 사이, 3권의 계간지를 받고, 한 번도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40% 할인이라는 매력에 몇 권의 책을 창비에서 구입했다. 아래의 책이 그것들이다. 별 연관도 없어보이는 것들을 한데 묶어 산 이유야 별다른 게 있겠냐마는, 한 권은 도착하자마자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갈 처지에 놓였고, 한 권은 사자마자 지하철에서 읽었으며, 한 권은 이미 여러 책 들 속에서 읽었던 것들이라, 언제 다시 읽게 될 지 모르겠고, 나머지 한 권은 늘 그렇듯, 언젠가 읽을 요량으로 전시해 둘 예정이다.(그리고 전시용 책들이 언제나 그렇듯, 읽게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1. 약 2년 전쯤부턴가 이 중의 한 책에 대해 뭔가 써봐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적이 있었고, 이내 그만 두었다. 그 후 몇 번인가 대상을 바꾸어가며, 같은 다짐을 계속하고 있는데, 여전히 지켜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상대방을 쫓을 때, 준비운동과 출발 자세를 가다듬는데 많은 시간을 쏟지만,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몇 걸음 떼다가, 이내 자세가 잘못 되었다며,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애초에 쫓으려던 대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2. 이 중의 어느 책은, 벌써 25쇄째다. 연재 할 때, 몇 회를 읽었고, 잠시 좋았다가, 이내 잊고 지내던 중, 쫓기듯 읽었다. 그리고 책과 상관없이, 몇 번 정도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 경험을 하고나서야, 다 읽었다. 처음엔 떨리다가, 잠시 실망한 후, 감탄도 한숨도 없이 책을 덮었다. 나는 이 책이 어떤 면에서 '작가'에 대한 글이라고 느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3. 최근 창비는 열 내면서, 몇몇 작품과, 작가와, 책에 대한 홍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영화, 황금어장 등등이 그것의 무대가 되고 있고, 그게 정치적, 문학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팔 걷어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성공한 효녀와 효자는 점점 늘어가고, 반대로 할아버지의 말씀은 힘을 잃어간다.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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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ㅣ 최인훈 전집 5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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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야기’ 충동을 언어를 통해 실어 나르던 ‘서사시적 형식’이 근대에 주도적인 양식이 되지 못하는 하나의 명백한 원인을, ‘경험의 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징후를 전쟁(1차 세계대전)에서 찾았던 사람은 벤야민이었다. 그에 따르면, 진지(陣地)전·인플레이션·물량전·권력자를 비난의 표적으로 삼은 수많은 전쟁에 대한 ‘책’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온 기존의 ‘이야기’를 대체해버렸으며, 그것이 인간의 전략·경제·육체·도덕적 경험을 박탈해버렸다. 그러자 진리의 서사적인 면인 ‘지혜’는 더 이상 전달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그 자리를 ‘정보’가 대신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과정의 끝자락에는 ‘소설의 발흥’이라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인쇄술에 기반한 ‘책’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경험을 전달하는 지혜의 총화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히 내면으로 침잠하는 고독한 개인의 묘사로 경사된다. 만약, 우리가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오토메나크’의 고민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태풍󰡕의 서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끝내 누설하지 못한 ‘비밀’과, 그 비밀을 만들어낸 ‘묻혀버린 앎’이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앎이 간신히 붙잡은 세계의 전체상(혹은 역사)은 어째서 거부할 길 없는 자연현상으로 명명되어 있는가. 이 글은 위와 같은 몇 개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씌어졌으며, 그 물음의 발본적인 해명보다는 차후 독서를 위한 최인훈 소설의 징후들을 지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을 미리 밝혀둔다.

주지하다시피, 󰡔태풍󰡕의 중심적인 서사는 ‘오토메나크’라는 애로크 출신 나파유군 장교의 비밀스런 앎과, 그에 뒤따르는 고뇌와 선택에 집중되어 있다. 뒷배경을 대강 스케치 해보자면, 그는 친나파유주의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애로크의)독립 운동이 ‘완전히 땅 밑으로 숨어버린 시대’에 대학에서 ‘나파유 고전 문학’을 전공하고, ‘이와히 습격’을 통해 ‘정신적인 나파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인물이다. 또한 근엄한 군인의 몸가짐을 ‘절대 안전’의 의장으로 생각하며, 이데올로기라는 ‘제2의 혈액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그 이데올로기란 ‘사회주의와 내셔널리즘과 보수주의를 한데 묶은’ ‘파시즘(혹은 그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아시아 공동체의 사상)’을 말한다.

여기서 그가 고전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는 자주 눈앞에 펼쳐진 어떤 현실과 그 전체상을 읽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읽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카르노스가 감금되어 있는 저택을 본 기분을 ‘어쩐지 소설을 읽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가 하면, 그 저택의 미술품 진열실을 보고 ‘니브리타 문학의 여러 페이지’를 떠올린다. 나파유 본국과 식민지인 애로크의 정치적 불평자들에게 복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키다다 키타나트의 󰡔신국의 이념󰡕이 장황하게 설명되고, 며칠씩 늦게 도착되는 신문과 󰡔아이세노딘에서의 니브리타의 식민통치󰡕 등과 같은 책을 틈틈이 읽는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그의 독서는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를 해석되어 있는 것으로, 그 위에 다른 해석을 가할 수 없도록 한다. 이를테면 총통의 언어, 󰡔신국의 이념󰡕, 며칠씩 밀려와 거기에 적힌 모든 일들이 딴 세상 일처럼 느껴지는 신문은 이미 공개되어버린 앎의 목록들이며, 그렇게 구축된 세계란 ‘정돈된 세계’이므로 해석이 들어설 자리란 없다.

이렇게 오토메나크가 이미 소유한 책과 언어를 ‘드러난 앎’이라고 명명해 본다면, 그 반대편에 ‘감추어진 앎’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것은, 마야카의 말, 비밀문서, 진실의 소리 등이다. 이 앎의 뭉치들은 예의 그 ‘정돈된 세계’에 균열을 내며, 그런 한에서 그에게 있어 고뇌의 종자가 된다. 물론 이는 적들의 소리이며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공간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토메나크에게 어떤 실질적인 체험의 형태로 인식된다. 특히 비밀창고 속에서 찾아낸 비밀문서, 보물, 아편 등은 그에게 역사 그 자체로 인지되고 있다. 아만다의 방이 어슴푸레 보이는 이 비밀의 공간 속에서 발견한 문서더미를 발견한 그는 “역사라고 하는 물건이 홀연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손에 총을 들고 주머니에 돈과 아편을 감추고 나타났다.”(119)고 생각하며, 한없이 미미하게만 느껴지던 자신이 ‘어느 모서리를 붙’들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문서 속에서 찾아낸 아이세노딘 남녀들의 수많은 사진들은 그들의 ‘생생한 인생’을 묘사해주며, 그 얼굴들 속에서 그는 ‘애로크’의 드러나지 않았던 반쪽의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거기서 지난 백년 동안의 참말 역사를 발견했다는 황홀감과 절망 속에서 급기야 이렇게 말한다. “만일에 내가 그놈의 시니, 소설이니 하는 것 말고, 정치학이나 그런 것을 대학에서 택했다면 이런 사실을 알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125)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세계의 전체상은 여전히 전달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런 비밀스런 앎들은 외설스러운 것이어서, 이 감추어진 것들을 가로막음으로써만 가짜 나침반으로 항해하는 배를 표류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쩌면 아도르노가 제시한 오디세우스의 비유를 떠올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달되지 않음 혹은 전달될 수 없음이라는 비밀의 근원적 아포리아이다. 저 드러나지 않은 지식은 세계를 해석할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으로 전달될 수 없을 것이다.(어쩌면 최인훈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 이르러 이 소설에서 바다가 세계로, 태풍이 역사(의 국면으)로 환유되어 나타나는 사정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태풍이 일기 전의 약간 뜸한, 어떤 고요함의 시간’, 그러니까 전쟁기이지만 모두가 전쟁 중은 아닌, 그러나 거의 모두가 전쟁 중이라고 생각하는, 이 파국 직전의 시간이야말로 최인훈이 반복해서 돌아가야 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썼지만 책임은 못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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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2011-10-0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까지 써놓고 책임은 못 지겠다고? ㅋㅋㅋㅋ
 

이번 학기에는 최인훈 전집을 통독하는 수업과, 식민지 말의 친일문학론으로부터 60년대에 이르는 전중 전후 지식인의 포스트 콜로니얼리얼적 실천들을 더듬어 나가는 수업을 듣는다. 흥미롭게도 두 수업은 60년대라는 시대를 후기 식민지라는 규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읽어야 할 것들은 많고, 주어진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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