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씨가 떠나고, 한나라당에서는 '20대 하버드 출신' 이준석씨가 뜨는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연관은 찾을래야 찾아 볼 수도 없고, 내가 알고있는 정보래봐야 기사 한 두편이지만, (정치, 대학, 국가, 대중에 대한 인식 측면에서)여러모로 흥미로운 비교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 자신도 양자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김근태가 ‘민주화-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67년 김근태는 대통령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가 군에 강제로 끌려가면서”라고 한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이준석은 “2004년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한다. 7년 전이니까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이 후 김근태는 강제징집-수배-노동운동-고문-인권운동-구속-(비주류)제도권 정치 입문의 길을 걸었다. 반면 이준석은 “고등학교 때만 해도 정치도 참 재미있을 것 같은 분야였는데 국회에서 인턴 할 때 보좌관 한 명이 ‘나중에 뭘 해도 생계형 정치인은 되면 안 돼’ 라고 말했다”면서 “그 때 들은 말 덕분에 정치에는 관심을 싹 끊었다”한다. 이준석은 이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버드-무료 과외 봉사단체-창업-(주류)제도권 정치 입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의 삶 중에서, 아마, 내가 이해가능한 것은 아무래도 이준석 쪽일 것 같다. 서울과학고(!)나, 하버드(!!!)나, 무료(?) 과외나, 창업(!!!!!), 의원(!!!!!!!) 따위를 삶의 지평안에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어도 그렇다. 오히려 국가내란 음모 사건이 되는 학생운동, 수배-도망,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빌던” 대공분실의 분위기, 결사체 조직 등등등의 삶의 궤적은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부모 세대의 가난-자수성가 신화(‘해봐서 아는데’(?)), (잘 되지도 않는)영어공부(미국인-외국인 위화감(?)), 정치 불신(돈되는 정치(?)) 같은 것은 20대 상당수의 공통감각 같은게 아닐까. 그리고, 되려 그런면에서, 이준석의 ‘삶’은 전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부럽지도 않은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발언들이 충분히 이해가능하고, 수긍할만한 것이라는 건 아니다. 또한 트위터의 언급이 정치적 성향이나 인식구조, 삶의 궤적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마, 이준석의 등장이 한나라당의 쇄신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누가와도 마찬가지다.) 생각이나 정치적 입장이 ‘26살짜리’ 따위라서가 아니라, 그의 삶이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로서의 정치와 ‘생계형 정치인’에 대한 혐오(?), 가치중립으로서의 과학과 학문에는 결단-행동-정치의 가능성은 이미 차단되어 있다. 성공신화, 봉사활동, CEO 경험이 그것을 보충해주지도 않는다. (‘나꼼수’=민간인 발언은 꽤 영리했지만.)

 

저 50~70년대의, 아니 훨씬 더 오래된 계보들을 숨기고 있을, 소위 ‘민주화 투사’들이 이 땅을 뜨고 있다. 시간이, 투사들의 역사보다 긴 ‘그것’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투사’의 칭호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 정부의 근시안과 무식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김근태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라 한다.

 

이리저리 마지막 부분에 대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제대로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자기반성, 분노와 비난, 다짐과 희망 모두 마땅치 않다. 이렇게 하자.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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