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선보이는 젊은 작가, 배명훈이 알라딘 독자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 배명훈 편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59522

 

 

 


예전과 비교할 때 SF소설의 지평이 조금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문단에서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어 생각하거나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처럼 장르소설을 두고 ‘예술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몇몇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오롯한 순문학도 오롯한 장르문학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의 장르적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고, 언젠가는 경계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소설의 장르적 경계가 먼 미래에도 유지될 거라고 보시나요? 또 국내 문학계 내 순문학 vs. 장르문학을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나 관점 변화가 어떤 방향(더 나은 쪽,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ID 뮯)

 

경계는 생각보다 오래 유지될 것 같습니다. “문단”은 균일한 조직체 같은 것은 아니고 경계가 모호한, 꽤 폭넓은 사람들의 활동영역을 가리키는데요, 그 안에는 상징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능도 있고, 잡지나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이중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할 지면을 주거나 장르소설을 책으로 내는 활동 측면에서는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발표된 글에 상을 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단의 기능 중 창작활동이 일어나는 영역을 보면 경계가 약해지는 현상이 꽤 자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상징권력 쪽은 변화하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고요, 보통 권력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거지 자연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실이 소설 같고 소설이 더 현실 같은 요즘,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이야기가 아닌 더 넓고 더 큰 공간을 주 무대로 하여 소설을 쓰고 계신 것 같아요.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ID 지키미)

 

추리소설도 꽤 연습을 했었고, 지금 쓰고 있는 소설 때문에 현실 공간을 공부를 좀 하기도 했고 한데, 지금 당장 현실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쓰고 있지는 않네요. 자세히 보시면 제가 은근히 추리소설 쪽으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수도 있을 텐데, 네, 제 단편 지면들이 워낙 성격이 다양해서 다 챙겨보기가 어렵기는 합니다. 그래서 틈틈이 단편집을 내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엘릭시르에서 나오는 <미스테리아>라는 잡지 창간호에 소설을 실은 적이 있는데, 그 시리즈는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 잡지를 자세히 보시면 몇몇 SF 작가들이 그쪽에서 꽤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논리적인 이야기여서 서로 통하는 거겠지요?


한국 배경으로 범죄소설류를 구상하다보면 턱 걸리는 데가 하나가 있는데요, 다른 나라 작가들도 하는 고민이겠지만, 사건이 밝혀진다고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보니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더 집어넣게 되는데, 그러면 말 그대로 이야기가 깔끔해지지 않아서 망설여지곤 합니다. 느와르나 하드보일드 느낌으로 가야 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룰 수 있을 텐데, 그쪽은 또 다른 이유에서 취향이 아니어서요.


어느 소설이나 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명료해지려면 추리소설의 배경도 결국 가상세계가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사실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거 사실 작가 머릿속에 있던 범죄현장이고 트릭이고 단서거든요. 취사선택에 의한 가상세계인데, 그것도 쓰다 보면 이게 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거 어차피 내가 방금 심은 단서잖아’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도 평소 SF장르를 좋아해서 관련 책이나 영화 등을 찾아 읽고 보는 편인데 한국 SF는 자주 접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한국 SF라는 장르만의 매력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최근 SF의 범주에 관하여 사람들이 SNS에다가 쓴 글을 보았는데, 과학적 소재 못지않게 다른 분야(예를 들면 철학이나 내면 심리, 사회구조 같은)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도 SF라고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갈리더라고요. 이에 대해서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작가님께서 소설가를 꿈꾸도록 하셨던 결정적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인물이 누구인지 여쭈어보고 싶네요! (ID 김남영)

 

안녕하세요, 김남영 님. 한국 SF의 매력은 역시 한국 작가가 쓴, 한국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꽤 의미 있는 지점인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미국 SF는 미국인이 인류를 대표해서 고민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이야기거든요. 고전으로 갈수록 콕 집어서 미국이나 영국 국적의 백인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많고요. 그런데 2017년의 관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위화감이 느껴지는 측면이 많답니다. 사실 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요. 한국 작가가 쓴 SF에는 우리 이야기나 우리 관점이 담기게 되기 때문에, “기존 SF와는 달리 한국적인 삶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을 종종 듣게 되는데요, 이건 소소한 차이가 아니고 꽤 결정적인 기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요.


저도 종종 “과학소설 전문가”들이 과학소설의 “과학” 부분에는 자연과학이나 공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도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들을 보곤 하는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런 글을 봤을 때 그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부분을 전혀 못 알아보는 걸 보면, 발언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 자체는 일종의 레토릭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실제로는 맞는 말이니까 마음껏 시도하시면 됩니다. 하드 SF라고 불리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야기만 진정한 SF로 평가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한데, 그런 의견에 대해 오랫동안 SF 분야에 종사해온 작가, 번역자 등등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모두가 하드 SF를 써야 할 이유는 전혀 없고, 그냥 광범위해진 SF 월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가 취미여서, 사실 작가가 되게 만든 책을 떠올리기가 불가능하답니다. 그냥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워낙 쉽게 만드셔서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예술과 중력 가속도‘ 등 이번 작품을 비롯하여 배명훈 작가님이 전작들(청혼, 첫숨) 등 다수의 글들이 SF적인 서사를 외피로 하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그 기저에 흐르는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SF적 서사를 위해서는 상상력과 과학기술적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 작가님의 학력 등의 배경이 막연히 이공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외교학 전공이시더라고요. 특별히 상상력을 개발하고 과학기술적 지식을 얻기 위해 하시는 작가님만의 노력(공부나 취미 등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만 해봅니다만…)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존재론적 철학 등 깊이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많은데, SF 서사에 이러한 의미를 담은 데에는 나름대로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ID 채윤파파)

 

SF적인 서사를 외피로,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기저로 구분하실 필요는 없고요, SF가 원래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SF 서사에는 원래 존재론적 철학 등 깊이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SF들만 따져도 전부 다 그런 것 같네요.


상상력은 어느 예술에나 필요하겠지만, SF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는 것은 좀 있을 것 같고요,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은, <과학동아>에 실리는 지식 정도면 차고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과학기술이 만들어낼 변화를 우리 생활에 연결시켜서 상상하는 능력 같은 건데, 앞뒤가 잘 맞게 논리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연습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고실험이 잘 돼 있어야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 안에 독자가 들어갔을 때 별 거리낌 없이 몰입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자신의 작품 중에 다시 한 번 더 써보고 싶은, 그러니까 리메이크 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좋아하는 영화 작품이 있나요? (ID 신민경)

 

슬럼프를 극복하는 비법 같은 게 따로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울 따름인데, 그 기간을 넘기고 나면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글이 막히는 것도 글쓰기의 정상적인 단계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소설은 공식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쓰는 형식의 글이 아니어서요, 장편을 쓰면 이런 고통을 좀 덜 겪게 되기는 합니다. 단편 열 편을 쓰면 그런 일을 열 번을 겪어야 하지만 같은 분량의 장편 하나를 쓰면 단편 기준 세 번 정도의 고통만 한 차례 겪으면 되거든요.


썼던 글 다시 쓰기는 잘 안 하지만, <청혼>은 단편이었던 걸 중편으로 완전히 다시 쓴 글입니다. 장편을 리메이크하고 싶지는 않고, 단편은 단행본에 묶이기 전에 대폭 수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좋아하는 영화는 이것저것 많은데, <스타워즈> 최근 시리즈들을 보니까, 헉 소리가 나게 좋더군요.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연작소설 타워로 처음 접해 지금까지 쭉 SF 장르로 기억되는 작가님의 자리가 마련되어 좋습니다. 실상 1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SF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초현실이거나 비현실이거나, 그로 인해 쉽게 접하기도 어렵고, 접해도 빠져들기 어렵다)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은 거 같고, 더군다나 한국작가의 SF라는 상투적으로 비춰질 만한 고정된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것 같은데(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질문을 하는걸 보니 제가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꾸준히 SF의 길을 걸어오시고 또 걸어가고 계시는 작가님이 말하는 SF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질문을 남겨봅니다. 트위터에서도 작가님의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독자와의 만남과 같은 행사도 알음알음 떠오르네요. 신작 소설로 다시금 작가님과 마주하는 자리를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ID 동심)

 

SF는 재미의 소스가 다양합니다. 칼 세이건의 <콘택트>라는 소설은 저한테는 앞부분이 엄청 지루했는데요, 전파천문학에 대한 설명이 그야말로 설명의 형식으로 잔뜩 들어있어서요, 과학자분들은 이 부분을 엄청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우주전쟁이나 모험 같은 부분을 좋아하고요, 요즘 제가 소설의 실용적인 기능이라고 주장하는 “소설에 담겨 있는 공기” 측면에서도 SF는 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몰입했을 때, 읽다가 덮어둔 책을 다시 펴 들었을 때 기대하게 되는 공기라는 게 있잖아요. 몰입감이라고 할 수 있겠고. SF의 공기는 뭐랄까, 후덥지근한 날 에어컨이 켜져 있는 공간에 딱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잘 정돈된 공기, 혹은 “conditioned air” 같은 느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문명의 느낌, 좋은 의미의 합리성에서 오는 편안함,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F적인 글감, 소재들은 주로 어디서 어떤 것을 보고, 혹은 어떤 생각에서 이어져 오는 편인가요? <안녕, 인공존재!>의 ‘조약‘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독자로서 궁금합니다. (ID 이예은)

 

글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몇 년 전에 SF 작가들이 단체로 과학자분들한테서 주입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보니까 인위적인 주입은 잘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주입되는 내용보다는 강연을 하고 있는 과학자 자체를 구경하는 데서 더 많은 영감을 얻게 됐으니까요. 말하자면 잘 다듬어진 양질의 소재보다는 오히려 길에서 주운 게 더 가치가 있었던 셈인데, 창작자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직접 골라서 주워 담아야 의미가 있는 거라, 거기에 해당되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귀찮지만 여행을 가거나, 번거롭지만 뭔가를 직접 해 보거나, 되도록 안 하고 싶지만 공부를 하거나.

 

 

 
배명훈 작가님은 글을 쓰실 때에 특이한 습관이 있으신가요? 글이 안 써질 때에 주로 하는 행동은? (ID 영감)

 

특이한 습관이 있을까요? 잠버릇 같은 거라 저 스스로는 자각을 못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이 안 써지면, ‘이건 글쓰기의 정상적인 단계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괴로워하고요, 큰 창문이 있는 곳으로 일하는 장소를 옮겨 보기도 하고, ‘그래, 오늘은 카페에서 하는 거야’ 하고 짐을 챙겨서 나갔다가 ‘역시 일은 집에서 하는 거지’ 하면서 도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놀아야겠죠. 죄책감이 충분히 쌓이면 인간의 창의성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이 난 건데, 글이 안 써질 때 종이를 막 구겨서 바닥에 버리는 일 같은 것도 한번쯤 해 보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붙들고 있는 건 디지털 파일이라 던질 수가 없고…….
별다른 비법은 없지만, 아무튼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으면 결국은 쓸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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