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신인상, 한겨레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독자에게 대화를 건네기 시작한 시작한 소설가 한은형이 독자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차분하고 깊은 답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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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수록 작가님의 표현력에 푹 빠지는데요. 정말 그 책들을 쓰는 필력을 어디서 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 책입니다. 그리고 연습이요. 저는 초등학교 때 숙제로 하던 짧은 글짓기 같은 걸 아주 즐거워하며 미루는 일 없이 하곤 했습니다. 어떤 낱말을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그것을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파괴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거든요.
작가님은 어떻게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결심한 적은 없습니다. ‘이것 아니면 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습니다. 글자라는 걸 알게 되고, 글자로 이루어진 세계를 만난 다음부터요. 완전히 홀렸었거든요.
작가님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아직 쓰지 않은 다음 작품입니다. 단편이 될지 장편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작품(?)을 애정과 애착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는 이유와 독자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소설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한 그 세계보다 매력적인 세계란 없습니다. 매력이란 뭘까요? 참을 수 없이 그 대상이 궁금해지고,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어지는 상태라 생각합니다. 제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 매력 때문이고, 소설을 쓰는 이유 역시 그런 세계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역할이요? 그런 게 꼭 있어야 하나요? 제게 소설은 재미를 주기 때문에 세상 어느 것보다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울게 하다 웃게 하고, 마음을 간지럽히다가 수치심을 일깨우기도 하고, 마음을 부풀게 하다가 하강시키고… 오욕칠정, 그 이상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게 또 있나요, 소설 말고?
『거짓말』의 하석이나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에서 만난 여름과 모호한 문장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냉소적인 시선에 감춰진 따뜻함이라고 할까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라는 단편에 보면 이런 문장이 있어요. “아, 인생이란!” ‘인생이란’ 뒤에 붙었던 문장부호가 느낌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마침표 같기도 한데 모호함을 위해 찾아보지 않겠습니다. “아, 인간이란!” “아, 인생이란!” 이런 탄식이 나오는 소설들이 있어요. 그런 걸 쓰고 싶어요. 그리고 재미가 있는. 제가 느끼는 재미와 독자가 느끼는 재미가 얼마나 일치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지루한 건 못 견디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은 평생 작가로써 살아가시겠죠? 너무 부럽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힘드실 것 같아요!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었나요? 어떻게 헤쳐나가셨나요?
- 그러길 바랍니다. 평생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 유일한 바람입니다. 엄청나게 힘들지는 않고 아득할 뿐입니다. 가장 힘들 때는 작가가 되기 전의 시간이었습니다. ‘작가가 되는 것’으로 헤쳐나가긴 했으나… 앞으로 헤쳐나갈 시간에 비하면…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작업을 하실 때가 많으실 텐데 건강은 괜찮으세요, 혹시 목 디스크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신 적은 없나요? 자신만의 건강관리 비법이 궁금합니다.
-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간헐적으로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걸 (하려고) 합니다. 많이 걸으려고 하는데 점점 걸을 수 있을 만한 날들이 줄어들어서……
학창 시절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 스탕달의 『적과 흑』입니다.
여름밤 충동적으로 뭔가를 한 적이 있으신가요?
- 여름밤에는 뭔가를 하지 않기가 어렵지 않나요? 뭐든지 부풀어오르는 시간입니다. 그 뜨거운 공기가 인간의 몸 역시 데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음을 느끼며 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여름밤에요. 맥주를 마시면서. 어둠이 산을 지웠고, 물소리와 풀냄새가 진해졌고, 옆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가 산을 에워싸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다고 느끼시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이 그러신가요.
-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자제력을 잃고 쏟아져나오고 싶어한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저의 게으름을 지탄하고, 제 손가락을 건드립니다. 저는 간지러움을 참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진짜로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냄새는 진해지고 소리는 옅어지고 심장이 뛰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