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황정은 외 지음 / 2014년 4월 23일 발행


오월 초순의 햇살은 일제히 수직에 가까워지고
마음은 몸 곁에서 한 뼘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문재, 자작령 中)

5월은 감각의 계절이라고 할 만하다. 나날이 높아지는 쨍한 하늘과 내리쬐는 햇볕. 매년 이 시기엔 젊은 소설을 읽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된 듯하다. 등단 십년 이내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젊은작가상 작품집을 읽으며 '젊음'의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젊음'은 감각을 기억한다. 황정은의 윤리적인 소설  <상류엔 맹금류>를 읽다보면 마치 윤리처럼 불편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中)


소설은 "나는 오래 전에 제희와 헤어졌다"로 시작된다. 상냥하고 보잘 것 없는 연애였다. 빚을 두고 멀리 달아나는 대신 신산스러운 삶을 선택한 부부는 빚에겐 윤리적이었으나 그들의 자녀에겐 그렇지 못했다. 아무도 나쁜 사람이 없었으나 함께 있어 불행한 가족과 떠난 기묘한 나들이, 쏟아지는 짐을 끌고 가느라 카트에 부딪친 안쪽 복사뼈가 보라색으로 멍이 든 제희를 보며 나는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도저히 저들과 이 계곡 근처에 앉아 도시락을 나누어먹고 싶지 않은. "계곡 바닥은 습했고 부패중인 식물 냄새로 공기가 진했다" 라고 묘사되는 수로 옆에 앉아 그녀는 이 착한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이상한 장소에 자리를 펼치고 밥을 먹고 있는 노부부와 그들 곁에서 울적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젊은 남자, 그리고 그들을 등지고 앉은 여자."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中)


오래 전 기억에 대해 드문드문 전하는 서술임에도 몇몇 감각은 명확하게 되살아난다. 때론 감각에 관한 기억이 서사에 관한 기억보다 명확하다. "그러는 게 옳지 않았을까" 뒤늦은 회한처럼 몇몇 감각은 불편함으로 기억된다. 땀만 흘리며 묵묵히 걷던 이의 뒷모습이며 열심히 준비한 것은 알 수 있었으나 맛이 느껴지지 않았던 음식 같은. 돌려 말하지 않는 소설을 읽으며 소설처럼 선명한 감각을 함께 느낀다. 꼭 소설과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닐지라도, 마치 경계에 선듯 이토록 불편했던 감각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기에.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지음 / 2014년 5월 20일 발행


 

젊음의 감각은 선명하다. 반면 등단 후 삼십여 년이 지난 원숙한 시인이 전하는 감각의 경지는 풍요롭다. 흐드러지는 감각의 빛. 5월처럼 만개한다. 


철쭉한테는 꽃 핀 데가 해발의 끝이었다. 흰 꽃들은 저마다 목숨을 내걸고 봉기(蜂起) 발기(勃) 궐기(蹶)중이었다.  흰 꽃들이 있는 힘껏 제 몸을 열어놓고 있었다. 더이상 어쩔 수 없는 만개(滿開)였다.

(이문재, <꽃멀미> 中)


풍란이 꽃대궁을 밀어올리는 철이면 흑산도는 향기에 감금됩니다. 향기의 감옥이지요, 맑은 날엔 뿌리가 박혀 있는 공기 속으로 향기들이 날아가버리지만, 안개가 피어오르는 날이면 풍란 향기는 빽빽해집니다. 참깨 짜듯이 짓눌려지는 것이어서 풍란 저희들조차도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였다지요, 아마.

(이문재, <풍란 이야기 中>)


시가 있어야 할 자리를 고민한 시인이 십년 만에 엮어낸 시집. 십년 새에 아름다움을 스마트폰으로 찍을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변했지만, 계절은 돌아오고, 꽃은 피고 감각은 영원하다. 시집이 재현하는 선명한 감각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국수를 삶고 나무가 자란다. 향기에 감금된 섬처럼 황홀한 감각들을 읽으며, 더욱 맹렬해질 빛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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