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집 이층 / 신경림 지음 / 

2014년 1월 14일 발행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나희덕 지음 /

2014년 1월 13일 발행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다. '클래스'라고 칭할 만한 경지에 오른 이들은 으레 믿을 만한 결과를 내놓는다. (엄밀하게는 2014년 1월 출간된 시집이지만) 2014년 2월에는 '클래스'를 증명하는 시집들을 만나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신경림, 갈대 부분) 같은 문장을 만났을 때,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나희덕, 뿌리에게 부분) 같은 문장을 만났을 때의 마음의 수런거림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언덕에 위태롭게 앉은 집이 사공이 사는 오두막이었다. 다리를 저는 사공이 기우뚱대며 배를 미는 동안, 그의 딸은 이마를 덮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빈대떡을 부쳤다. 종일 그 집 툇마루에 안아 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강물을 구경하고 싶다는 내 생각은 한번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

그 툇마루에 가 앉아 있고 싶다. 네 등 뒤에 숨어.

네 가슴팍 사이에 숨어, 너로 해서 비로소 스무살이 되어.


신경림, <네 머리칼을 통해서, 네 숨결을 타고> 부분


1935년 태어나 이미 80해를 보낸 신경림 시인의 눈은 대부분 지나간 시간에 머물러있다. 가난했던 날들, 오래도록 믿어오던 것들, 역전 사진관집 이층이라는 젊은 날의 꿈. 한도 꾸밈도 여한도 없는 담백한 문장들을 따라 읽다보면 "작약과 들국화와 쑥부쟁이와 찔레꽃과 매화꽃과 복사꽃"같은, 꽃과 꿈 같던 날들이 펼쳐지는 것 같다.



손보다는 섬모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

너무 많은 물은 머금지 않는 수축포가 좋다

물과 공기가 드나드는 투명한 막이 좋다

일정한 크기가 되면

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

둘로 나뉘지만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아서 좋다


나희덕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부분



극단적으로 경제적인, 생활과 시스템의 효율성에 지쳐 마음이 아주 힘들 때 이 시를 만났다. 사람의 몸과 미생물의 몸. 지금도 세포분열을 지속하고 있을 몸의 성실함을 함께 생각했다. 그 언젠가 미토콘드리아의 시절도 있었을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희덕의 시집에 등장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며 불가사리며 새, 장미며 나비 같은 이미지들을 상상하면 보이지 않는, 보지 못한 것들의 성실함에 마음이 울린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온순한 아메바들이, 서로의 온기를 찾아 무정형의 몸을 웅크리며 서로를 안는 장면을 상상하면 감동스럽다. 2013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2014년의 두 달이 지났다. 3월이 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2014년을 맞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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